# 77
귀환 마교관
77화
퍼퍼퍽!
순식간에 생도 세 명이 비수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놀랍게도 세 명 모두 요혈을 가격 당했다.
사망.
커다란 바위 뒤에서 비수를 날린 조문탁은 자신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곡보옥 역시 놀란 표정으로 조문탁을 돌아보았다.
‘이 녀석… 암기 다루는 실력이 이 정도였나?’
하지만 두 사람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방금 쏘아 보낸 비수에는 능소소의 힘이 실려 있다는 것을.
능소소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그녀가 얼른 조문탁을 향해 나직이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한 번 더!”
“어? 아, 알았어!”
조문탁이 다시 품에서 암기를 꺼내들었다.
이번엔 손가락 사이에 네 자루의 암기가 들렸다.
파밧!
조문탁이 손을 뿌리자 네 자루의 암기가 동시에 날아갔다.
쒹! 쒸익! 쒸익! 쒸이익!
다음 순간 능소소가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실라페! 한 번 더 부탁해!’
- 귀찮군.
실라페가 시큰둥하게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암기 네 자루를 각각 낚아채고는 낭아반 생도들을 향해 날렸다.
보통 사람에겐 그 모습이 마치 암기 네 자루가 각각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트는 것처럼 보였다.
쒸엑! 쒸엑! 쒸에엑! 쒸에엑!
푸푹!
“으악!”
“커억!”
두 명의 생도가 비명을 내질렀다.
깡! 푹!
하지만 한 자루는 상필지의 검에 의해 튕겨 나가고, 다른 한 자루는 표적을 맞추지 못해 나무 기둥에 박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낭아반으로서는 순식간에 다섯 명이 사망한 상황.
상필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기이한 암기술이군.’
보통 암기는 최단거리인 직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암기는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고서야 부릴 수 없는 영역.
‘혹시 당이협이 나선 것인가?’
하지만 상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암기로 유명한 사천당문의 당이협이라면 충분히 이 정도로 다룰 수 있겠지만, 그는 분명 수위무사 임무를 맡았다고 들었다.
그런 그가 조직대항전에 개입할 리는 없을 터.
‘어쨌든 잡아보면 알겠지.’
상필지가 시선을 돌려 암벽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눈길을 던진 요굉과 조미미가 히죽 웃었다.
“헤에, 저곳이었군요.”
“정말 깜짝 놀랐지, 뭐야?”
두 사람이 선두로 암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조문탁이 다시 네 자루의 암기를 꺼내 들고 던졌다.
‘실라페!’
능소소의 부름에 이번에도 실라페가 날아가는 암기를 낚아채고는 각각 생도들을 향해 쏘아 보냈다.
순간 상필지가 번뜩이다시피 몸을 날리더니 세 자루의 암기를 동시에 쳐냈다.
따다당!
하지만 한 자루의 암기는 결국 한 생도의 옆구리를 가격하고 말았다.
“크윽!”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혈이 아니어서 부상 판정을 받았다는 것.
“후후. 재미있는 녀석들이군.”
상필지가 싸늘하게 웃었다.
본래 정교관들은 생도들의 전투에 직접적인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즉 생도들을 보호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나서지 않는다.
단, 교관끼리 맞닥뜨린 경우는 제외다.
이번 조직대항전에서 상필지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사비강과 승부를 보는 것.
물론 이후에 비무대회가 준비되어 있지만, 그전에 그와 검을 겨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엔 없군.’
암벽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셋뿐이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서는 생도가 분명하다.
한편, 능소소는 벌떡 일어났다.
“보옥, 이걸 밀어!”
한바탕 싸우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던 곡보옥이 뜨악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이거…?”
“그래, 어서!”
능소소가 얼른 암벽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연이은 공격에 약이 오른 낭아반 생도들이 빠른 속도로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능소소의 일차적인 전략은 간단했다.
자신들이 몸을 숨겼던 이 커다란 바위를 암벽 사이의 길목으로 밀어뜨려서 진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조문탁이 입을 척 벌리고 말했다.
“이, 이걸 어떻게 움직여?”
“보옥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조문탁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곡보옥이 흠칫거리고는 능소소를 보았다.
능소소가 신뢰 가득한 눈길로 곡보옥을 보았다.
“할 수 있지? 너라면!”
“그, 그, 그럼! 할 수 있고말고!”
곡보옥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큰소리를 쳤다.
언덕 아래를 힐끔 보니 낭아반 생도들이 암벽 사이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제길!”
곡보옥이 양손을 바위에 대고 온힘을 다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그가 기합성을 터뜨리자 바위가 움찔 움직였다.
조문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 움직였다. 정말 움직였어!”
“이 새끼야! 놀라지만 말고 너도 거들어!”
“아, 알았어!”
조문탁이 얼른 바위를 밀기 시작했다.
“으야아아압!”
드드득.
바위가 천천히 이동했다.
능소소가 목봉을 뻗었다.
‘실라페!’
- 귀찮군.
다시 소환된 실라페가 나른한 표정을 짓더니 커다란 바위에 손을 대고 밀기 시작했다.
물론 타인에게는 뒤에서부터 돌풍이 불어와 바위에 마구 부딪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곡보옥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바람도 돕고 있어! 으야아압!”
드드드드드!
쿠쿠쿠쿠쿵!
마침내 바위가 비탈길을 따라 굴러가기 시작했다.
암벽 사이로 진입해서 올라오던 요굉과 조미미가 눈을 크게 떴다.
“저런… 미친…!”
순간 두 사람이 뒤돌아서 경공을 펼쳐 내려갔다.
쿠쿠쿠쿠쿠우웅!
한참을 굴러간 바위는 암벽 사이에 끼이면서 가까스로 멈췄다.
“됐다!”
조문탁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이제 어쩌지?”
그의 말에 능소소가 얼른 조문탁과 곡보옥의 손목을 낚아챘다.
“어쩌긴. 삼십육계지!”
“뭐라고?”
능소소는 대답 대신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달려갔다.
물론, 이 역시 실라페의 도움으로 그녀의 능력 이상으로 내달릴 수 있었다.
조문탁과 곡보옥으로서는 내내 운 좋게 바람이 돕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한편, 오르막길이 막혀 버린 낭아반 생도들은 그저 놀랍다는 표정으로 커다란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휘유. 저걸 어떻게 움직인 거지?”
“흐흐흐. 그 녀석들 분명 특목반이었지? 역시 걔들이 제일 재미있어.”
조미미와 요굉이 비탈길을 틀어막은 커다란 바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마침 그 뒤로 다가온 노치은이 상필지를 돌아보았다.
“흐음. 이제 어쩌죠?”
“비켜라.”
상필지가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르릉.
순간 그의 무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의 위압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낭아반 생도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상필지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일검을 내질렀다.
“하아아앗!”
쒸이이익!
까앙!
청명한 금속성이 숲속에 울렸다.
상필지의 검은 정확히 바위 표면에 맞닿아 있었다.
“…….”
상필지가 검을 거두어 들이는 순간,
쩌적! 쩌저적!
바위 표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꽈자자장.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바위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 아닌가?
“흐음. 길이 열렸다.”
노치은이 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요굉이 히죽 웃고는 걸음을 내디뎠다.
“가자!”
**
“헉, 헉, 헉! 어디까지 가는 거야?”
곡보옥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셋 중에서는 가장 몸이 무겁고 경공에 자신이 없는 그였기에 아무래도 체력적 부담이 컸다.
마침 능소소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 역시 땀을 뚝뚝 흘리며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조금 전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엄청난 기운이었다.
‘아마도 교관님이시겠지.’
그 정도의 기를 발산할 수 있는 사람은 생도가 아니리라.
그 말은 곧 여기까지 낭아반이 도착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뜻.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 아까 보았던 풀숲이 보였다.
유난히 수풀이 우거져 있던 곳.
매설란이 몸을 숨기자고 했지만, 능소소가 반대했던 그 풀숲.
조문탁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긴….”
“문탁, 최대한 들키지 않을 곳이라면 어디가 좋을까?”
“들키지 않을 곳이라니….”
“시간이 없어!”
조문탁이 멈칫거리고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려나? 그래봐야 생도들이겠지만.”
머리 위의 나뭇가지였다.
하지만 상필지 교관까지 속일 자신은 없다는 뜻.
능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해. 올라가자.”
“뭐, 일단 작전이 있긴 한 거지? 아무리 우리가 잘 숨어도 상 교관님 정도면….”
“일단 시도해볼 수밖에.”
능소소가 말을 가르며 대꾸했다.
조문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뭐든 해보지, 뭐.”
순간 그가 몸을 훌쩍 날려 나뭇가지 위로 단숨에 날아올랐다.
과연 경신법이 뛰어난 조문탁다웠다.
‘실라페, 도와 줘!’
능소소 역시 몸을 훌쩍 날리자, 강한 바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부웅 떠올라 나뭇가지 위에 매달릴 수 있었다.
조문탁이 손을 뻗어 그녀를 나뭇가지 위로 올렸다.
“보옥! 어서!”
조문탁이 소리쳤지만, 곡보옥이 안절부절못하며 소리쳤다.
“난… 거기까지 올라가기….”
“할 수 있어! 힘내, 보옥아!”
능소소가 소리치자 곡보옥이 입술을 꾹 씹었다.
그가 천천히 물러서더니 기합성과 함께 몸을 내던졌다.
“이야아아압!”
곡보옥이 나무 기둥을 발로 쿵 차며 딛자, 조문탁과 능소소의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실라페! 보옥을 도와줘!’
- 저 돼지는 무겁다.
‘실라페!’
- 쳇!
결국 실라페가 투덜거리면서도 곡보옥을 안아들며 위로 솟구쳤다.
후우우웅!
‘헛! 또 바람이?’
느닷없이 바닥에서부터 일어나는 상승 기류에 몸을 실은 곡보옥이 얼떨결에 나뭇가지 위로 올라왔다.
이쯤 되자 곡보옥도 능소소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소소… 너….”
“쉿. 조용히 해.”
능소소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실프들의 속삭임을 느꼈다.
‘역시…!’
이번에도 생도들이 앞장서서 다가오고 있었다.
상필지는 언제나처럼 그 뒤에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기척을 죽여.”
능소소의 주의에 두 사람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기다렸다.
마침 낭아반 생도들이 저만치 아래에 모습을 보였을 때, 세 사람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조금만 더….’
능소소가 고운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확실하게 생도들을 유인해야 한다.
이윽고 낭아반 생도들이 거의 바로 아래까지 다다랐을 때였다.
“지금이야. 저 풀숲으로 암기를 날려.”
“뭐?”
조문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표적을 눈앞에 두고 엉뚱하게 풀숲으로 암기를 날리라니?
하지만 능소소는 단호했다.
“어서!”
“알겠어….”
조문탁이 품에서 네 자루의 암기를 꺼내 풀숲으로 쏘아 보냈다.
그 순간.
‘실라페!’
그녀의 부름에 이번에도 실라페가 나타나 풀숲으로 쏘아진 암기를 낚아채고는 생도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기이한 광경에 조문탁이 눈을 부릅떴다.
한편, 우거진 풀숲 앞까지 다다른 낭아반 생도들은 느닷없이 날아드는 암기를 보고 얼른 몸을 피했다.
쒸이익! 쒸익! 쒸익! 쒸이익!
퍽! 파바밧!
세 자루의 암기가 빗나갔지만, 가장 앞장 서 있던 요굉은 제일 먼저 날아든 암기에 왼쪽 어깨를 맞고 말았다.
부상 판정.
요굉의 표정이 모처럼 일그러졌다.
“이거 슬슬… 약 오르네?”
“저런 곳에 몸을 숨겨 봐야 소용없을 텐데 말이야.”
조미미가 미간을 찡그렸다.
“흐음… 어서 가서… 치자.”
탓.
느릿한 말투와 달리 노치은이 화살처럼 달려 나갔다.
“후후, 좋지이!”
요굉과 조미미가 그 뒤를 따랐다.
생도들이 너도나도 수풀을 향해 뛰어드는데.
“멍청한 놈들. 멈춰라.”
그들 뒤에 있던 상필지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대다수의 생도들이 수풀 사이로 사라진 후였다.
이를 지켜보던 능소소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됐어!’
한편, 상필지는 수풀을 빤히 바라보더니 불쑥 고개를 들었다.
“헉!”
능소소는 물론 조문탁과 곡보옥도 화들짝 놀라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상필지의 눈이 세 사람과 정확히 마주쳤다.
“크크. 잔재주를 쓰는구나. 사 교관에게 전해라. 내가 곧 만나러 가겠다고.”
그러더니 상필지는 수풀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가까스로 안도의 숨을 내쉰 조문탁이 능소소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곳에 뭐가 있는 거야?”
“확실하진 않지만…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을 거야.”
“기관진식? 그럼 상 교관님은….”
“이미 눈치는 챘지만 생도들을 구하려고 들어가신 거겠지.”
“그렇구나….”
조문탁이 멍하니 중얼거리면서도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절박하고도 짧은 순간, 기관진식을 이용해서 이들을 따돌릴 생각을 하다니.
‘소소는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구나.’
그때였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조직대항전에서 3할의 생도가 사망했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