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76화 (76/670)

# 76

귀환 마교관

76화

쉬쉬쉭!

매설란이 이끄는 귀갑조는 최대한 신속하면서도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다람쥐처럼 잽싸게 달리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굼벵이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용자림에서 꽤나 깊숙한 숲속.

마침 저만치 잔뜩 우거진 수풀이 매설란의 시야에 들어왔다.

‘좋아, 저곳에 몸을 숨기면 되겠다.’

귀갑조의 제일 목표는 생존이다.

은신과 방어력이 뛰어난 생도들로 구성되어 있다지만, 무엇보다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게다가….

‘그 순간을 대비하려면 역시 안전하게….’

생각을 마친 매설란이 막 걸음을 떼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요.”

능소소가 멈칫하더니 제지했다.

앞장선 매설란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느냐?”

“아무래도… 좀 이상해요.”

“무슨 말이야?”

“공기의 흐름이 달라요.”

“뭐?”

능소소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더니 저만치 수풀이 우거진 곳을 가리켰다.

“저기만… 공기의 흐름이 달라요.”

매설란이 미간을 곱게 찡그렸다.

공기의 흐름이 다르다니.

이건 또 뭔 천진한 소린가?

사비강으로부터 듣긴 했다.

능소소에게는 이능이 있다고.

범상치 않은 능력인데, 웬만한 무공보다 훨씬 쓸모가 있을 거라고.

한데 이런 식으로 능력이 발휘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이래서야 능력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지 않나?

‘저건… 그냥 여자의 직감 같은 건가?’

하지만 무인에게 여자의 직감을 강조하다니.

안 될 말이다.

매설란이 냉정하게 말했다.

“느낌으로 움직일 때가 아니야. 우린 우선 매복할 장소를 찾아….”

“그렇지만 저긴 아닌 것 같아요.”

“소소.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저긴 수풀이 우거져 있으니 당연히 공기의 흐름이 다를 수밖에….”

“아니요. 그런 것과는 좀 달라요. 질적으로. 뭔가 상당히 이질감이 드는….”

그때 조문탁이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그래서 저긴 영 아닌 것 같아?”

“응.”

능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단 생각이 들어.”

그러자 조문탁이 매설란을 돌아보았다.

“교관님, 소소의 말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너까지….”

“전 지금까지 소소와 수련을 해왔습니다. 소소의 기감은 보통 사람 이상입니다.”

매설란이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숲 쪽을 돌아보고는 기감을 활짝 열었다.

없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다.

그런데 능소소는 저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밑도 끝도 없는 그녀의 감각을 믿어야 할 것인가?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자신의 감을 믿을 것인가?

“헷갈릴 때는 한 번쯤 생도들을 믿어도 좋아.”

문득 사비강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렇단… 말이지?

조문탁은 이미 신뢰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결국 그녀가 체념하고는 말했다.

“좋아. 우선 근처에서 잠시 쉬도록 하자.”

“저쪽으로 가면 개울이 있어요.”

능소소가 북쪽 방향을 가리켰다.

매설란이 약간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이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서 잘도 아는구나.’

물론 그녀는 그것이 실프의 속삭임이라는 것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허공을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실프는 오로지 능소소에게만 보였으므로.

매설란이 조문탁을 돌아보았다.

“문탁, 근방을 염탐해 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예, 교관님.”

그렇잖아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조문탁이 대답과 동시에 몸을 훌쩍 날렸다.

“우린 개울로 가서 일단 쉰다.”

매설란은 귀갑조를 이끌고 천천히 이동했다.

**

“크아악!”

생도 한 명이 부러진 발목을 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 곁에 쪼그려 앉은 요굉이 비수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아파?”

“크윽…! 죽여 버린다!”

“에이. 그건 불가능하지. 이미 넌 죽었는데?”

요굉이 히죽 웃으며 놀려댔다.

그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는데.

“이 개새끼들! 너무 하잖아! 이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냐!”

마침 한쪽에 쓰러져 있던 생도가 복부를 움켜쥐고는 소리쳤다.

요굉이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흐응. 개새끼라니… 우리 부모님은 개가 아닌데…. 너야말로 너무하잖아?”

“미친놈…!”

“헤에, 죽은 놈이 자꾸 말을 하니까 짜증나네.”

요굉이 히죽 웃더니 품에서 비수를 꺼내 날렸다.

쒸이이익! 빠악!

“크아악!”

갈비뼈를 얻어맞은 생도가 데굴데굴 구르며 앓는 소리를 내질렀다.

요굉이 저벅저벅 다가갔다.

“사실 우린 너희들을 노린 게 아니었거든. 그런데 지나가는 길에 딱 있지 뭐야? 차려놓은 밥상은 먹어 줘야 예의잖아. 안 그래? 히히히.”

“미친놈들…!”

“아무래도 넌 시체로서의 본분을 잊은 것 같아.”

요굉이 발을 들어 올리더니 상대의 무릎을 지그시 밟았다.

“뭐, 뭐하는 거냐?”

“시체 좀 밟는 거야. 히히.”

“미친…! 그만 둬!”

요굉이 히죽 웃는 순간.

쉬이이이잇! 퍽!

“크윽!”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로부터 가슴을 얻어맞은 요굉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어떤 새끼…!”

눈을 부라리던 요굉이 멈칫거리고는 상대를 보았다.

수위무사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망자에게 뭐하는 짓이냐?”

그러자 한쪽에 서 있던 상필지가 성큼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수위무사가 그를 돌아보았다.

“이 생도가 사망자에게 부상을 입히려고 했소.”

“해서 부상을 입혔나?”

“그전에 막았소.”

“그럼, 뭐가 문제지?”

상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수위무사가 슬쩍 미간을 구기고는 말했다.

“낭아반 생도들의 행실에 대해 지금 항의가 들어오고 있소. 필요 이상의 폭행은 삼가 주시오.”

“흐음. 항의라…. 그렇다고 수위무사가 생도에게 폭행을 해서야 쓰겠나?”

“그건…!”

“일단 알겠네. 내가 주의를 주지.”

말을 마친 상필지가 요굉을 돌아보았다.

“들었느냐? 정도를 넘지 마라. 귀찮은 일이 생기면 버릴 테니까.”

“헤헤, 죄송합니다.”

요굉이 실실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상필지가 수위무사를 돌아보았다.

“주의를 주었으니 그만 가보시게.”

“…….”

수위무사는 탐탁찮은 시선으로 상필지를 빤히 응시하다가 이내 부상자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조미미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특목반은 어디로 간 거야? 다른 반 생도들은 너무 시시하잖아.”

“특목반도 시시할지 몰라.”

깡마른 노치은이 꿈결처럼 멍하니 중얼거렸다.

조미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냐. 그 녀석들 지난 번 비무를 보니까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어. 우리하고 붙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야.”

“흐흐흐. 하긴 그 녀석들도 삼대영 완승으로 비무를 치렀으니까. 확실히 기대는 되는군.”

요굉이 히죽 웃었다.

조미미가 흐느적거리며 나직이 노래 부르듯 말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특목반, 특목반. 어디어디 숨었을까? 거기거기 숨었구나. 특목반 머리가 보이면 내가 먼저 그 목을 쳐야지이.”

그녀의 노래에 생도들이 스산한 웃음을 지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는 눈이 있었으니….

‘저것들 도대체 뭐야?’

조문탁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저만치 멀어져 가는 생도들을 보았다.

조직대항전은 어디까지나 훈련의 일환이다.

한데 골절을 시키다니.

게다가 이미 사망한 생도에게 부상까지 입히다니.

내심 분노가 차오르면서도 은근한 공포심이 피어올랐다.

‘저것들 정말 광기가 장난 아니잖아? 이대로라면 위험할 지도.’

녀석들과 만나는 건 최악의 상황이다.

담임 교관도 상필지가 아닌가?

‘일단 알려야겠어!’

조문탁이 얼른 몸을 날렸다.

탓!

한편, 생도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상필지.

그가 돌연 멈칫거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흐음.”

그의 눈길이 어느 나뭇가지로 날아들었다.

조금 전까지 조문탁이 은신하고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나뭇가지는 바람결 때문인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무뚝뚝하게 말을 흘린 그가 조문탁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교관이 갑자기 방향을 틀자, 생도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그를 뒤따랐다.

아무렴 어떤가?

어디로든 가서 사냥하면 그만이다.

**

“교관님, 위험합니다.”

개울가로 돌아온 조문탁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그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매설란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좋지 않아.’

하필이면 상필지 교관이 이끄는 낭아반이라니.

“그 녀석들 완전히 미쳤어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아요.”

조문탁은 자신이 본 것들을 그대로 전했다.

곡보옥이 으르렁거렸다.

“기본도 안 되어 있는 것들! 그러고도 정도의 후기지수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내 당장…!”

“감정적으로 나설 일은 아니다.”

매설란이 냉정하게 말했다.

상필지는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다.

“이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됐군. 바로 이동한다.”

매설란이 걸음을 내디디려는데.

“늦었어요. 너무 가까워요.”

능소소가 멍하니 어딘가를 보며 말했다.

매설란이 고개를 돌렸지만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기감을 활짝 펼치자 멀찍이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는 것을 겨우 눈치 챌 수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

이대로 낭아반과 부딪치면 생존자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조직대항전 우승도 우승이지만, 무엇보다 사비강이 생각하는 것들이 어긋나 버릴 거다.

그때 능소소가 다가왔다.

“교관님,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매설란에게 차근차근 전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매설란이 걱정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겠어?”

“괜찮아요. 이 둘이라면.”

능소소의 눈길이 조문탁과 곡보옥에게 향했다.

정작 조문탁과 곡보옥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매설란이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알겠다. 부디 조심하도록 해.”

“걱정 마세요.”

매설란이 조문탁과 곡보옥에도 신뢰를 가득 담은 눈길을 보냈다.

“너희들만 믿는다. 잘 해줘.”

“예? 아, 뭐… 예.”

조문탁과 곡보옥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다들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이동한다.”

다음 순간, 매설란이 귀갑조를 이끌고 몸을 날렸다.

“어?”

조문탁과 곡보옥이 얼른 그 뒤를 쫓으려고 하자, 능소소가 붙들었다.

“너희들은 아냐. 여기서 싸워야 해.”

“뭐라고?”

“우리가 시간을 끌 거야.”

“뭐? 우린 겨우 세 명이잖아!”

“나한테 생각이 있어. 먼저 저곳으로 가서 몸을 숨기자. 문탁이 최대한 은신술을 펼쳐서 우리 기척도 함께 지워줘.”

능소소가 가리킨 곳은 비탈진 언덕 위였다.

커다란 암벽이 양쪽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약 반 장 정도의 너비로 오를 수 있는 길이 나 있었다.

“저 암벽 위로 올라가 숨겠다고?”

능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곡보옥이 피식 웃었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그 밥맛없는 것들과 한 바탕 놀아 보지! 뭐하냐? 문탁, 설마 쫄았냐?”

“누, 누가 쫄았다고 그래?”

“그럼, 어서 몸을 숨기자고.”

“쳇, 나도 모르겠다!”

조문탁이 투덜거리며 두 사람을 따라 이동했다.

암벽 위로 오른 세 사람은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개울가로 상필지와 낭아반 생도들이 도착했다.

“킁킁. 냄새가 나는데 말이야. 냄새가….”

요굉이 코를 실룩이며 중얼거렸다.

상필지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생도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찰나.

쒜엑! 쒜엑! 쒜에엑!

어디선가 허공을 가르며 세 자루의 비수가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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