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75화 (75/670)

# 75

귀환 마교관

75화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싸워야 한다.

“크억!”

비명이 들렸다.

응조반 생도 한 명이 소리쳤다.

“교, 교관님! 이대로는 너무 위험합니다! 전멸할 위기입니다!”

등부형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제길, 제길…! 하필 특목반이라니…!’

도대체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 녀석은 자신을 이다지도 괴롭힌단 말인가?

스르르릉!

사비강이 시퍼런 검신을 뽑아 들었다.

번뜩이는 날을 보니 벌써 살이 베인 것처럼 아려 왔다.

“뽑지 않을 거요? 그거.”

사비강의 시선이 오호천황도로 향했다.

등부형이 움찔거렸다.

그때 또 다시 들린 목소리.

“교관님! 후퇴해야 합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후퇴! ‘작전상 후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왜 굳이 싸워야만 한단 말인가? 우선 빠지자!’

그가 마음을 굳히고 얼른 바닥을 차려는데.

성큼.

사비강이 한 걸음 다가섰다.

단지 한 걸음.

한데 그 위압감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강하다.

‘제, 젠장…!’

몸이 바위처럼 굳어 버려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교관님! 어서… 크억!”

결국 소리치던 생도는 염자량의 검에 의해 요혈을 베이고 말았다.

사망이다.

사비강이 씩 웃었다.

“설마 달아날 생각이었소?”

“끄음.”

“살고 싶다면 이대로 무릎을 꿇고 항복해도 좋소.”

제법 큰 목소리였기에 주변의 생도들도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뜻밖의 제안이었기에 응조반 뿐만 아니라, 특목반 생도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병장기를 겨눈 채 잠시 경계를 두었다.

그때 연우경이 불쑥 나섰다.

“단순한 항복으론 안 됩니다.”

“뭣이?”

등부형이 눈을 부라리며 그를 쏘아보았지만, 연우경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적어도 마음의 소리는 들어야지요.”

“음? 하하하! 그것도 좋겠군.”

사비강이 웃어젖히자, 염자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음의 소리? 그게 뭐야?”

연우경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응조반은 앞으로 특목반을 선배처럼 모시며 항상 먼저 예를 갖추겠다고 맹세하면 이번엔 그냥 보내 드리지요.”

“뭐라?”

등부형의 입매가 연신 씰룩였다.

당장이라도 험한 말이 튀어나갈 듯.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군. 그리고 이 말도 해야겠소. 나, 등부형은 앞으로 사비강 교관과 특목반 생도들을 무한히 사랑하겠다.”

“이보시오… 교관.”

등부형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잔뜩 억눌린 목소리를 흘려 냈다.

“지금 장난하자는 거요?”

“장난이 아닌데. 장난 같았소?”

문득 사비강의 눈빛이 전에 없이 싸늘해졌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

하지만 등부형도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스르르르릉!

마침내 그가 오호천황도를 뽑아 들었다.

“오오! 드디어!”

“교관님이 직접 나서 주신다!”

몇몇 살아 남은 응조반 생도들이 일말의 희망을 품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굳이 가시밭길을 가시겠다.”

“그 가시밭에 누가 들어설 지는 두고 볼 일이 아니겠소?”

등부형이 도를 꽉 움켜쥐었다.

분명 사비강은 자신보다 고수다.

하지만 이 세상이 어디 법칙대로만 흐른다던가?

이변이 있어 재미있는 곳이 바로 강호무림이다.

‘오늘 내가 그 이변을 만들어 보마.’

등부형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뭐, 좋소. 그럼 이만 정리합시다.”

사비강이 한 손을 들어 올리고는 까딱거렸다.

“오시오.”

‘건방진…!’

등부형이 미간을 좁히더니 일갈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받아랏!”

그가 평생을 익혀 온 비응도(飛鷹刀)의 제일초식 혈응활도(血鷹滑刀)가 사비강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

‘좋았어! 깔끔해!’

문득 자신감이 치솟았다.

지금 펼친 일초식이 그의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깔끔하게 구사한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몸 상태가 좋았다.

‘오늘 같은 상태라면 정말 승산이 있을 지도!’

마치 한 마리의 매가 미끄러져 가듯 날카롭게 횡으로 베어 들어가는 도신.

쉬이이이잇!

휘리리릭!

사비강이 얼른 보법을 밟아 몸을 회전시키며 뒤로 물러났다.

‘흥! 소용없다! 한 번 노린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비응도의 무서운 점.

허공으로 비상한 비응도가 이번에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빠르게 하강했다.

제이초식이 곧장 연계됐다.

염화조(炎火爪).

대각선으로 매섭게 내려치는 도신.

위협을 느낀 사비강이 얼른 몸을 옆으로 날렸다.

쒸에에엥!

검기를 머금은 오호천황도가 사비강이 서 있던 자리의 나무 기둥을 베어 버렸다.

꾸드드득, 쿠웅!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천천히 넘어가더니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쓰러졌다.

“어쩌면…!”

“이길지도!”

지켜보던 응조반 생도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희망을 품었다.

두 교관의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생도들은 도검을 섞지도 않았다.

그만큼 두 사람의 싸움이 흥미진진했기에.

분위기를 탄 등부형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좋다, 좋아! 오늘처럼 몸이 가벼운 날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여느 때보다도 몸이 가벼웠다.

때문에 칼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자신감이 더욱 상승하고 있었다.

“훗!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만 칠 거요? 생도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소?”

이제 그는 격장지계(激將之計)를 쓸 만큼 심리적인 여유를 찾아갔다.

그는 곧장 제삼초식인 풍운비응(風雲飛鷹)을 펼쳤다.

쒸에에에엥!

오호천황도가 한 마리의 매처럼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상승했다.

사비강이 얼른 땅을 툭 찍어 차며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등부형의 신형이 하늘로 솟구쳤다.

‘끝이다!

그는 온몸의 무게를 실으며 오호천황도와 함께 사비강에게 떨어져 내렸다.

천근응조(千斤鷹爪)의 변초다.

피하기엔 늦은 상황.

검기를 가득 머금은 오호천황도가 무섭게 추락했다.

‘그래, 바로 이 보도야 말로 나와 최상의 궁합이다!’

찰나, 베르타스가 허공을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스카앙!

두 개의 빛줄기가 서로 부딪치며 지나갔다.

“……!”

지켜보던 생도들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등부형이 눈을 부릅뜨고는 도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 이건…!”

철컥.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검집에 갈무리했다.

그러는 사이, 등부형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한 자 정도나 짧아진 오호천황도를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베르타스와 오호천황도가 부딪치는 순간, 거짓말처럼 오호천황도가 반으로 갈라지며 일부가 날아갔다.

그 순간 회전하며 날아가는 도신의 파편이 꿈결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부러진 도신은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 꽂히면서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이럴… 수는….”

그의 눈동자에 이슬이 맺혀 갔다.

“… 아아.”

주르륵.

마침내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으아아아아!”

그가 절규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십 년.

무리 십 년이나 모은 급료로 장만한 칼이었다.

뇌물로 받았던 보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애정을 쏟았다.

그런데… 그런데…!

‘이것마저 이런 꼴이 나다니!’

“으흐흑!”

이제 등부형은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부러진 도신을 어루만졌다.

자하낙인도와 승룡도에 이어 오호천황도까지.

자신을 거쳐 갔던 보도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그려졌다.

생도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체통을 지키기에는 슬픔과 충격이 너무 컸다.

패배의 쓰라림보다는 오호천황도를 잃었다는 허탈감이 더욱 그를 괴롭혔다.

겨우 진정을 한 그가 천천히 일어났다.

‘애초에 무리였는지도.’

뒤늦은 깨달음.

이미 흑사방에서 사비강의 실력을 확인했음에도 무모하게 도전한 게 잘못이다.

무인이란 자고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어떤 변명이 통하랴.

한 차례 지독한 슬픔을 겪고 나자 오히려 상황이 냉정하게 파악됐다.

“졌소. 사비강 교관께 한 수 배웠소.”

그가 천천히 포권을 취했다.

툭, 툭, 뎅그렁. 챙그렁.

응조반 생도들이 저마다 들고 있던 병장기를 떨어뜨렸다.

등부형을 비롯한 생도들이 저마다 엄지에 붉은 색소를 묻히고는 목을 그었다.

실전으로 치자면 자결이나 마찬가지.

마침내 백의 무복을 입은 수위무사들이 나타나 사망한 교관과 생도들을 이동시켰다.

마침내 단리정과 민유향, 백미령도 사비강이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수고했다. 네 활약이 컸다.”

사비강의 칭찬에 단리정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비강이 생도들을 둘러보았다.

사망자는 없다.

“좋아, 그럼 계속해서 이동한다.”

“옛!”

생도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이건… 도대체…?”

숲 바닥에 내려선 수위무사 두 명이 당황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으!”

“끄으으!”

여기저기 쓰러진 생도들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모두 붉은 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는데, 실제로 당한 부상도 꽤 심각했다.

옷자락이 찢어진 것은 물론이요, 살이 베이거나 뼈마디가 부러진 생도도 있었다.

게다가 내상을 입어 피를 토한 자들까지.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꽤나 부상이 깊었다.

모두 이년생 화룡반이었다.

“이봐, 괜찮나?”

호위무사가 생도 한 명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는 팔이 부러져 반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끄으… 그 녀석들, 미쳤다고요! 너무 심해요. 아윽…!”

“그게 누구지?”

그때 한쪽에서 누군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화룡반을 이끄는 담임 교관인 호열(湖烈)이었다.

“제길! 일년생 낭아반 녀석들이오! 상필지 교관까지 가세해서 아주 미쳤나 보오! 이렇게 거칠게 하다니!”

수위무사가 얼른 교관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교관께선 괜찮으시오?”

“젠장,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소. 어디까지나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살살 상대했더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물론 그의 말대로 정말 살살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상필지가 너무 강했다.

게다가 낭아반 생도들은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았다.

거칠기로 유명한 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호열이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제재를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너무 심하지 않소?”

“주의 정도는 줄 수는 있겠으나 제재할 근거는 없소.”

이러한 대회 중에는 응당 부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데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지 말라는 규칙까지 더해지면 대회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꼭 해마다 이런 경우가 생긴다.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필요이상으로 과격한 공격을 펼치는 생도들.

“쳇! 다시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

하지만 이미 사망으로 판명된 그가 낭아반과 조우할 일은 없다.

그는 이를 뿌득 갈고는 낭아반이 걸어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

화룡반을 그 지경으로 만든 낭아반 생도들은 그곳에서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 모여 있었다.

상필지는 희끗한 머리카락을 척 늘어뜨린 채 바위에 앉아 있었고, 생도들은 각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쉬는 중이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낭아반 생도들은 하나 같이 어딘지 음산하고 광기를 머금은 듯 보인다는 점이다.

애초에 여운진이 낭아반을 그런 생도들 위주로 구성한 탓이다.

자신의 권법을 제대로 전수받기 위해서는 다소 과격한 성정에 의외성을 지닌 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까닭인지 음산한 성격의 상필지와도 상성이 잘 맞는 편이었다.

마침 낭아반에서 암기를 가장 잘 다루는 요굉(姚宏)이 뭉툭한 비수의 날을 혀로 핥았다.

“흐흐. 이년생 녀석들, 꼴좋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손보고 싶었는데. 잘난 척하는 게 영 재수 없어서.”

“흐응. 다음엔 어떤 녀석들을 노려볼까? 사냥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연검을 사용하는 조미미(趙美美)가 흐느적거리며 웃었다.

“삼년생, 파천반(破天班)을 노리는 건 어떨까? 거기에 정말 꼴 보기 싫은 생도 하나가 있거든. 흐흐흐.”

그러자 바위에 묵묵히 앉아만 있던 상필지가 스르르 눈을 뜨고는 요굉을 노려보았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적을 상대하면 뒈지기 십상이다.”

“예에.”

요굉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조미미가 불현 듯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특목반 생도들은 어떨까?”

“오오, 그거 좋겠네. 그 녀석들 요즘 너무 기고만장한 것 같단 말이지. 크크크.”

그러자 마침 깡마른 체구에 눈 밑으로 그늘이 잔뜩 진 생도, 노치은(盧治隱)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그 애들 살 맛 좀 보고 싶었어.”

마치 병자처럼 보이는 그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대도를 들고 있었다.

물론 연습용 칼이었지만, 도신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다.

방금 전의 격전에서 손속에 한 줌의 사정도 두지 않은 탓이다.

마침 상필지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건 괜찮군. 이번엔 특목반을 치도록 한다.”

“흐흐흐. 앗싸.”

생도들이 저마다 광기 서린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내키는 대로 설쳐도 되는 겁니까?”

“훈련은 언제나 실전처럼.”

상필지가 무감한 표정으로 허락의 뜻을 나타냈다.

요굉이 히죽 웃으며 비수를 핥았다.

“흐흐. 이거 잔뜩 기대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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