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8화 (18/670)

# 18

귀환 마교관

18화

사악. 사악. 사악.

뻣뻣한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는 여운진.

지나다니는 생도들이 그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여운진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을 힐끔거리는 생도들을 모두 일장에 쳐 죽이고 싶었다.

‘억울하다. 억울해. 억울하다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난 밤 사비강이 보여주었던 마공이 떠나질 않았다.

그건 절대로 정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택마인주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은 학장이 사비강 이마에 찍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학장은 언제나 원리원칙에 목숨을 거는 자다.

무엇보다 관칙을 우선시 하는 자.

그런 학장이 마인을 감쌀 이유가 뭐가 있나?

자신도 똑똑히 보았다.

학장의 손가락 끝이 사비강 이마에 닿는 것을.

그렇다면 택마인주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만약 택마인주가 가짜였다면?

설마 천세명이 일부러?

여운진은 얼른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천세명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충성을 다했던가?

“그래, 천 부장이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믿을 수 있는 근거도 없잖아? 아니다, 아니야. 무턱대고 의심해선 안 된다.”

여운진은 넋이 나간 사람마냥 중얼거리며 쓸었던 곳을 또 쓸고, 또 쓸었다.

마침 지나가던 생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여운진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이 녀석들! 감히 교관을 비웃는 것이냐!”

여운진이 문득 고개를 들고 으르렁거렸다.

마침 웃고 있던 생도들이 얼른 눈치를 살피고는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중 두 명은 여전히 헤실헤실 웃으며 여운진을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 중 한 명이 바로 곡보옥이었다.

여운진이 눈을 부라리며 곡보옥에게 소리쳤다.

“노옴! 어디서 교관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비웃는 것이냐!”

“교관이라니요? 여기 교관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곡보옥이 눈살을 찌푸리며 짐짓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운진이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감히 나를 업신여겨?’

그러거나 말거나 곡보옥은 여운진을 쳐다보더니 ‘아!’ 하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죄송합니다.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을 해버리거든요. 비록 지금은 잡역꾼으로 계시지만, 한때 교관님이셨다는 것을 깜빡 하고 있었지 뭐예요. 선배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뭐? 잡역꾼…? 선배?’

여운진은 이제 눈이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생도를 폭행이라도 했다간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해지리라.

그가 부들부들 떠는데.

“몸을 떠시는군요. 혹시 어디 불편하십니까?”

“사라져라.”

“예?”

“당장 사라져라. 죽여 버리기 전에.”

“허어, 그렇게 으름장을 놓으시면 어디 생도들이 겁나서 학관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생도를 상대로 협박을 하시다니요. 만약 이 사실을 제가 보고라도 하면….”

“이런 호로 자식들이!”

결국 참지 못한 여운진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도 주먹에 권기를 싣지 않은 것은 실낱같은 이성이 남았기 때문이다.

만약 권기를 실어 후려쳤다간 무방비의 생도가 즉사해 버릴 수도 있기에.

그랬다간 가벼운 처벌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런데,

부우웅!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주먹이 어느 순간 ‘턱!’ 잡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곡보옥은 눈을 휘둥그레 떴고, 여운진도 콧잔등을 팍 구겼다.

“웬 놈이…!”

마지막 남은 이성조차 끊어지며 고개를 휙 돌리는데.

“너, 네놈은…!”

여운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사비강…!

그의 주먹을 맨손으로 막은 자는 다름 아닌 사비강.

그가 싸늘하게 웃으며 여운진을 바라보았다.

“생도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한편, 곡보옥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언제 여기에…?”

사비강이 곡보옥을 돌아보더니 차갑게 일렀다.

“꺼져라. 다치기 싫으면.”

“지, 지금 생도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협박? 계도하는 거다.”

“계도라니…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정말 웃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까?”

사비강의 표정이 더욱 서늘하게 굳었다.

순간 곡보옥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모르게 저 눈빛을 보면 오금이 저려 온다.

여운진이 노발대발하면서 소리치는 것보다 훨씬 무섭다.

결국 곡보옥이 시선을 피하고는 물러났다.

“칫!”

그가 혀를 차며 멀어져 가자 여운진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손을 뿌리쳤다.

“놓으시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생도들에게 손찌검을 하면 되겠소?”

“흥! 애초에 생도들이 저리 무례한 것은 담임 교관의 계도가 잘못되었기 때문 아니겠소? 특목반 녀석들은 하나 같이 되먹지 못한 것들이니!”

“하하하.”

“뭐가 우습소?”

“애초에 특목반을 편성한 분이 바로 여 선배 아니시오? 그런데 이젠 내 탓으로 돌리니 우스워서 그랬소.”

여운진이 움찔 떨고는 사비강을 쏘아보았다.

그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기고만장하지 마시오. 나는 분명히 당신이 쓴 마공을 보았소.”

“마공이라….”

사비강이 말끝을 흐리고는 기감을 펼쳐 슬쩍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혹시 이런 것 말이오?”

순간 사비강의 손바닥 위에 짙푸른 기운의 구슬이 맺혔다.

파지지짓! 치지짓!

강렬한 기의 파장을 일으키는 구슬.

푸른 구슬 겉면에는 시커먼 기운이 휘감아 돌고 있었다.

여운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노, 노옴! 역시 마공을…!”

그가 반사적으로 물러나며 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마공에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었기에 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변했다.

그가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필이면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비강은 그런 여운진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아니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요?”

화르르르륵!

이번에는 다시 그의 손 위에 화염 창이 생겨났다.

“허억!”

여운진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날 밤, 사비강이 자신에게 날렸던 그 화염 창!

“네, 네놈의 정체는 도대체 뭐냐?”

“글쎄. 내 정체가 뭘까?”

“역시 네놈은 마인이구나!”

“후후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니까.”

“이놈! 내 반드시 네놈의 정체를 만천하에 까발려… 헉!”

말을 쏟아내던 여운진이 기겁을 하며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치지지지짓!

그의 눈앞에 시커먼 구가 형성되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밤 자신의 눈앞에서 폭발했던 그 기체였다.

사비강이 차디찬 미소를 지으며 여운진을 보더니.

“꽝!”

“으아악!”

사비강이 내지른 소리에 여운진이 기겁을 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는 엎드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깨달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비강이 손으로 입을 막고 쿡쿡 웃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여운진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적당히 하시오! 여긴 정도맹 산하 용천관이오!”

“누가 뭐랬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이 내 눈앞에서 마공을 펼쳐 보이지 않았소?”

“내가 언제?”

사비강이 정말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자 여운진이 눈을 희번덕였다.

“저, 또, 또 거짓말을!”

그때였다.

마침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바로 천세명을 비롯한 그의 측근 교관들이었다.

여운진이 반색하며 천세명에게 달려갔다.

“천 부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천세명이 여운진을 힐끔거리고는 불편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커험! 험!”

그러자 등부형이 여운진을 은근히 막아서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오? 여 교관.”

“방금 저놈이 또 마공을 사용했습니다!”

여운진이 줄곧 천세명을 보고 소리쳤다.

천세명이 힐끗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사비강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천세명이 냉랭하게 일렀다.

“그쯤 하시오. 여 교관.”

“천 부장님…?”

“그 일은 이제 그만 논합시다.”

“천 부장님! 설마 절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저놈이 정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공을 제 눈앞에서 펼쳐…!”

“여 교관!”

천세명이 버럭 소리쳤다.

이번엔 공력이 담긴 소리였기에 여운진도 움찔 떨고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천세명이 여운진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일은 이미 끝났소. 더 이상 추태를 보이지 마시오.”

“천 부장님….”

“그리고 사 교관.”

천세명이 사비강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사비강이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여 교관의 망상 증세가 심각해져서 큰일입니다.”

“흥! 망상인지 현상인지 내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 모를 일. 하나, 그대도 너무 나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나대다니요. 저는 그저 볼일이 있어 나가려는 길에 여 교관님과 마주쳤을 뿐입니다.”

“조심하시오.”

“예,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비강이 포권을 취하고는 몸을 돌렸다.

천세명이 몸을 가늘게 떨고는 사비강의 뒷모습을 빤히 노려보았다.

마침 등부형과 언벽 등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주 기고만장했군요.”

“저 녀석을 이대로 두고만 보실 겁니까?”

천세명이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이번에 새로 뽑은 창법 부교관을 특목반에 배정하려고 하오.”

“그게 누구인지요?”

천세명이 나직이 읊조리자, 교관들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사비강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군요.”

**

숲속 나뭇가지 위에서 낮잠을 자던 사비강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는 나뭇가지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암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빨리 나와라.”

누구에게 한 말일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람 한 줄기가 부는가 싶더니 이내 한 인영이 나무 아래에서 나타났다.

두건을 깊게 눌러 쓴 홍염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암살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후후. 그거야 네 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모를 일이지. 인간을 절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내가 아는 누군가가 했던 말이거든.”

홍염이 해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하신 자를 찾아냈습니다.”

“이틀이나 더 걸렸군.”

“하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홍염이 다소 절박하게 외쳤다.

사비강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게 중요한 건 결과다. 최선이라는 건 너희들에게나 중요하겠지.”

“……!”

“뭐, 이번엔 봐주지. 원래 내가 한 번은 잘 봐주거든. 하지만 두 번은 없다.”

“명,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지귀(地鬼)입니다.”

지귀는 사비강이 적어 준 지명 중 한 곳이었다.

사비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귀라… 생각보단 멀군. 뭐, 어차피 한 번은 다녀와야 하니 오히려 잘 된 걸지도.’

생각을 마친 사비강이 홍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수고했다. 가도 좋아.”

“그럼 이걸로 더 이상 찾지 않으시는 겁니까?”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고 있어? 종종 보면서 정을 쌓아 가자고.”

사비강이 어깨에 손을 척 걸치고 말하자, 홍염의 안색은 안쓰러울 정도로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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