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창천주를 만나다
번쩍!
햇빛을 받은 황금 걸복이 빛을 반사시키며 빛나고 있었다.
남하림은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은 산을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형산이군.”
가슴에 무거운 바위를 올려놓은 느낌.
남하림은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형산으로 올라가는 순간 되돌릴 수 없었다.
천천히 산문을 통해 형산으로 들어섰다.
‘흐음…… 이 기운들인가?’
개방도들이 형산 일대에서 느꼈다던 기운들이 주위에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남하림은 그 기운을 무시한 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산으로 올라섰다.
스르르르-
남하림의 주위로 수상한 기들이 산문에서부터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모두 열 명인가.’
정확히 인원을 확인했다.
‘백무라…….’
백무 속에서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귀찮은 싸움이지만 어차피 그들 모두 제거해야 했다.
“여기에서 싸우기에는 불리하군.”
홀로 싸우기 위해서는 은폐가 없는 지형이 나을 것 같았다.
휘익!
남하림은 빠르게 움직였다.
스으으으-
백무 속에서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걸황…… 우리를 유인하고 있다.’
그의 능력이라면 기를 숨긴 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기척을 내며 자신들이 쫓아올 수 있도록 했다.
‘네놈이 원한다면……!’
사주천의 수장 사주는 망설였지만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걸황을 잡는다.”
“알겠습니다.”
백무 속에서 수하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 * *
일각 정도 형산을 오르자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다.
작은 공터 주위로 큰 나무들이 없었다.
‘이 정도면 딱 적당하군.’
남하림은 걸음을 멈추며 추격자들이 쫓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왔군.’
스으으으으-
차가운 기운이 주위에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백무가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좋은 재주들을 가지고 있구만. 하지만…… 이런 짓들은 나에게 통하지 않지.”
쏴아아아아-
남하림이 바람을 일으키며 주위에 생겨난 백무를 밖으로 불어냈다.
슈우우우웅-
백무가 밀려나면서 열 명의 사주백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들의 정체는?”
“……우린 사주천으로 걸황, 그대를 죽이기 위해 왔다.”
“그렇군. 당신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온 것만으로 이곳에 그가 있다는 게 확실해졌소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그 생각을 무참히 깨뜨려 주시는군.”
사주는 살기를 내뿜으며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걸황을 죽여라.”
스스스-
사라졌던 그들 주위로 백무가 다시 피어올랐다.
“어허. 다른 사람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의미 없다니깐.”
타앗!
남하림은 백무 속으로 달려 들어가 양손으로 강룡십팔장을 펼쳤다.
퍼어어엉!
콰아아앙!!
동시에 뻗어나간 쌍장에 비명이 쏟아졌다.
“아아아악!!”
콰아아아앙!
연이어 폭음이 터졌다.
백무 안에서는 절대무적이라 자신했던 사주백무인들이 한 명씩 쓰러졌다.
백무는 남하림에게 그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았다.
사주는 어이가 없었다.
“금강불괴에…… 만독불침이란 말인가?”
백무는 숨을 참는다고 해도 피부에 노출만 된다면 중독될 정도의 독무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남하림은 백무에 대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만독불침은 모르겠고…… 웬만한 독에는 중독이 안 될 거라 하더군.”
‘잠시 물러나야 한다.’
사주는 백무로 남하림을 사로잡을 계획을 빠르게 수정한 뒤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앞서 남하림이 움직였다.
허리에서 꺼낸 황금 타구봉.
백무 안에 들어간 남하림의 손에서 타구봉법이 펼쳐졌다.
퍽퍽퍽퍽퍽-!
묵직한 타격 소리가 백무 안에서 울려 퍼졌다.
“아아악!”
수하들의 비명 소리들이 뒤이어 나왔다.
퍽! 퍽! 퍽!
남하림은 시야가 아닌 오직 감각으로 사주백무인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커어어억. 망할…….’
사주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백무살이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창천주까지도 죽일 수 있거늘…….’
휘이익.
휙.
수하들이 마치 마대자루처럼 백무 밖으로 떨어졌다.
하나…… 둘…… 여덟…… 아홉.
수하들 모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백무가 서서히 그치고.
홀로 남은 사주가 질린 눈으로 남하림을 보았다.
탁탁.
남하림은 황금 타구봉으로 손바닥을 치면서 마지막으로 서 있는 사주의 앞으로 다가섰다.
“당신만 남았군.”
“걸…… 황. 인정을 안 할 수 없군. 그동안 창천이 왜 당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알겠어. 직접 싸워보지 않고서는 모를 수밖에.”
남하림의 첫인상을 보며 강해 보이지만 잘하면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싸워봐야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다.
“그런 말은 이제 지겹소이다.”
“건방지군. 수하들을 처리했으니 나 또한 쉽게 이길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난 지금까지 싸우면서 상대를 쉽게 생각한 적은 없소이다. 가끔 가볍게 생각한 적은 있긴 하지만.”
“……나를 찾아낼 수 있다면 인정하겠다.”
파앗!
사주의 몸이 짧게 빛을 낸 뒤 투명하게 변했다.
‘오호…… 이건 또 색다른 방법이네.’
완전히 몸이 투명해진 사주를 보면서 주위를 살폈다.
기의 흐름을 찾으려고 할 때였다.
핏!
정확히 목을 노리는 기
남하림은 순식간에 허리를 돌리며 뒤로 물러났다.
날카로운 검기가 스쳐 지나갔다.
“흐음,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군.”
또다시 살기가 나타났다.
핏! 핏! 핏!
연이어 남하림이 취리건곤보를 펼치며 좌우로 움직였다.
‘생각보다 빨라.’
파아아앙!
등 뒤를 가격하는 소리.
남하림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다행히 등에 그의 일장이 쏟아졌지만 거의 영향은 없었다.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는군.”
사주의 움직임을 알지 못해 공격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예상외로 빠르게 움직였다.
우우우웅-
남하림은 신법을 펼치면서 안력을 높였다.
눈에 보이는 시야가 아닌 기의 흐름으로 주위를 살폈다.
‘저기 있군.’
자연기와 사람의 내력에서 나온 기가 한 방향에서 뭉쳐 있었다.
사주가 아무리 내력을 감춘다고 해도, 살아 있는 한 몸속의 내력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 없었다.
사주는 두 번의 공격을 성공시키자 자신감이 생겼다.
‘훗, 아직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군.’
스윽.
그는 사신검을 들었다.
‘아무리 내력이 강한다고 한들 사신검에 심장이 뚫리면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
사주는 만일을 위해 정면이 아닌 남하림의 등 뒤로 움직였다.
이제 남은 일은 등에서 심장을 향해 찌르는 것뿐.
마지막 한 걸음.
휘리릭!
바람이 눈앞에서 불었다.
‘어…… 디…….’
눈을 한 번 깜빡인 사이.
앞에 있어야 할 목표물이 사라졌다.
빠르게 주위를 살폈지만.
“실망이군.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다니.”
‘뒤다!’
사주는 재빨리 뒤를 돌아섰지만 남하림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보는 걸까?”
원래 방향에서 다시금 남하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익!
그는 앞으로 서너 걸음 물러나면서 돌아섰다.
퍼어억!
남하림이 허공을 향해 황금 타구봉을 내리쳤다.
번쩍.
눈앞에 뇌전이 터지는 듯했다.
황금 타구봉은 정확히 사주의 태양혈을 가격했다.
투명하게 변했던 사주의 신형이 나타나며 바닥 위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쿠우웅!
땅이 꺼지는 듯한 굉음.
“우우욱.”
사주의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순간 번쩍거리며 몸이 아래로 급속도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비스듬히 놓인 바닥을 보았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 일어나야…… 해.’
분명 내 팔이 맞는데 당겨도 끌려오지 않았다.
“정신이 없는 모양이구려.”
쓰러진 그의 눈앞에 남하림의 발이 다가오면서 위로 올라갔다.
휘이익!
위에서 멈추지 않고 떨어진 발은 그대로 얼굴 정면을 가격했다.
퍼어억!
얼굴 안면이 대부분 부서졌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정신을 잃진 않았다.
“그만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지요.”
“걸황…… 한 번만…….”
구차하게 살고자 하는 목소리.
“미안하군요.”
쿠와아아아아앙-!!
그를 향해 중원 무림 최고의 장법 강룡십팔장이 펼쳐졌다..
* * *
사주를 죽인 뒤.
창천은 조용했다.
남하림이 화엄호로 움직이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오래전 기억을 되살리며 천천히 화엄호의 북쪽으로 향했다.
‘저곳이군.’
사당이 나타났다.
남천묘의 붉은 현판 아래로 문이 닫혀 있었다.
사당의 정문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남하림은 합장을 한 뒤 고개를 숙였다.
창천주의 존재를 떠나 이곳은 부정할 수 없는 조상의 위패를 모신 곳이었다.
남하림은 손잡이를 밀었다.
스르르르-
사당의 정문이 안으로 열렸다.
“들어가 볼까?”
겉모습은 여느 사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곧바로 위패가 모신 안으로 들어섰다.
스윽.
한 번 더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저기 있군.’
많은 위패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 놓여 있는 위패가 보였다.
남하림이란 이름이 또렷하게 보였다.
“기분이 이상하군.”
스윽.
남하림은 위패를 들어 올렸다.
우우우우우-
사당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내 생각이 맞았군.’
지상에는 사당 외에 큰 건물이 없었다.
하나 이곳은 수많은 자재들이 들어왔던 곳.
화엄호에 그 많은 자재들을 몽땅 빠트리지 않았다면, 있을 만한 장소는 한 곳밖에 없었다.
사당 아래에 지하가 있는 게 틀림없다.
드르르륵.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내려갈 수 없겠지.’
남하림은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따로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라고 하지만 지하는 마치 지상에 있는 듯 밝았다.
“오호. 이런 방법이 있군.”
천장의 구멍을 통해 내려온 햇빛을 아래에서 반사시켜 사방을 밝게 만들었다.
남하림은 주위를 살폈다.
지하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도록 지상의 일반 전각들과 구조가 같았다.
“이 정도로 지어야 그 많은 자재들이 필요했겠지.”
남하림은 지하에 내려온 목적을 잃은 버린 듯 신기하게 구경을 했다.
정원을 지나자 문이 나타났다.
포오옹.
닫혀 있는 문 안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수면 위에 가볍게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다.’
이곳에서 기척을 낼 인물은 한 명 밖에 없다.
덜컹.
문을 열어젖히자, 인공적으로 만든 호숫가 보였다.
지상에서 연결된 배관을 따라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 천주.’
그곳 끝에 앉아 중년인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만나보고 싶었던 인물.
창천의 전인 창천주가 틀림없었다.
남하림은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여기에서 무엇을 잡습니까?”
“낚시를 하는 게 안 보이는가? 당연히 고기를 잡지 않느냐.”
“고기가 있긴 합니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스윽.
그는 고개를 올려 남하림을 보았다.
“옆에 앉아서 던져 보아라.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느냐?”
“그렇긴 하네요.”
척.
남하림은 그의 옆에 놓여 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바닥에 놓여 있는 낚싯대가 보였다.
“여기 미끼는 없습니까?”
“여기에서 고기를 잡을 때는 미끼가 필요 없느니라.”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냥 바늘에 주둥이가 걸리는 멍청한 고기가 있겠습니까?”
“클클클. 말이 많은 녀석이었군. 걸황이라고 해서 근엄한 줄 알았거늘. 소문이 엉터리로 난 모양이야.”
“말이 안 되니 물어보는 것도 문제가 되는 모양입니다.”
“그냥 하면 돼. 굳이 물어볼 게 뭐가 있겠어. 낚시는 잘 잡으면 만사형통이야.”
“흐음…… 알겠습니다.”
휘익!
남하림은 낚싯대를 잡은 뒤 물 아래로 던졌다.
그들 사이에 고요함이 흘렸다.
입질이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낚싯대를 던진 지 얼마 됐다고.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군. 어떻게 이런 성격으로 걸황이 되었지?”
“낚시와 걸황은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상관이 왜 없어? 낚시를 하다 보면 사람 성격이 나온다고 하지 않더냐?”
“전 체질에 맞지 않을 뿐입니다.”
“잠시만 조용히 좀 하자. 이러다 오는 고기 전부 도망가겠다.”
“……그러죠.”
말문을 닫은 지 반각도 지나지 않은 시각.
“우리 계속해서 낚시만 할 것입니까?”
“허어…… 신무맹의 맹주가 차분하게 기다리는 맛이 없군.”
“제가 낚시를 하러 온 게 아니잖습니까?”
“낚시를 하러 온 게 아니다? 그럼 뭐 하러 들어왔느냐?”
“신무맹의 맹주이자 걸황, 그리고 양천의 전인이 제가 여기에 낚시하고자 왔을 것 같습니까?”
“오호, 대단한 인물이 찾아오셨구려. 영광이군.”
그는 낚싯대를 걸쳐 놓은 뒤 남하림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제가 무엇을 원할 것 같습니까?”
“음…… 원하는 것을 얻고 조용히 돌아갈 것 같군.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모릅니다.”
“난 여기에서 백 년을 살 생각이지. 네가 천수를 다해 죽을 때까지. 그동안 나갈 생각은 없느니라.”
“아하…… 잘됐네요. 무림은 앞으로 백 년 동안 조용하겠군요.”
“후후후, 그렇지. 그동안 중원인들은 걸황에게 존경을 다하지 않겠느냐. 내 생각이 어떠냐?”
“……하하, 아하하하하!”
남하림은 대소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