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창천주 죽다
창천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왜 웃느냐? 내 말이 우습다는 것이더냐?”
“당연히 웃기지 않습니까.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게 당신 덕분이라는 말처럼 들리거든요 아닌가요?”
“클클클. 사실이지 않느냐?”
“허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대단하네요.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들이 어떻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됐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하다.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전부 내가 처음부터 계획을 했던 대로 이루어졌다. 첫 시작으로 네가 양천의 전인이 되었던 게 우연이라 생각하느냐?”
“…….”
“그와 인연을 맺도록 만든 게 누구라고 생각했느냐?”
“그 일을 당신이 의도했다는 것인가요?”
“그렇다. 창천을 상대하는 것은 구천의 전인 중에서 양천의 전인만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모를 변수였던 균천의 전인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구천마제를 만들어냈지.”
남하림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창천주의 표정을 보면서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대단하시네요. 이 모든 것이 당신 뜻대로 될 수 있었다니…….”
“물론 내가 계획한 것과 조금씩은 다르게 흘러가긴 했지. 첫 번째로 네가 개방에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만 무림과 인연을 맺어야 하기에 계획은 수정을 한 뒤 그대로 두었지. 원래 계획은 무림맹으로 보낼 계획이었지.”
“…….”
“뭐…… 구천마제의 비밀을 푸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창천과 인연이 닿도록 열심히 노력을 했지. 물론 지금의 네가 이룬 무공은 내가 해준 것이 아니다. 네 노력이긴 하지. 이렇게까지 대단한 녀석으로 내 앞에 나타날 줄은 예상 못 했다.”
창천주는 미소를 지었다.
남하림은 서로 상대해야 할 적이지만 자신의 핏줄이었다.
“최종 계획은 네 몸으로 대혼술법을 펼치려고 했다. 근데 어느 날 생각이 바뀌었지. 굳이 내가 아니어도 내 후손이 중원 최고의 인물인데 대혼술법을 펼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백 년 정도만 여기에서 조용히 지내기로 결정을 내렸지. 결론적으로 너에게도 좋은 일이지 않느냐?”
“생각하는 것을 봐서는 제 조상님이 맞긴 하네요.”
“하하하하! 핏줄은 속일 수 없지. 내 계획을 받아들이겠느냐?”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백 년 뒤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음…… 그때는 이번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야겠지.”
그가 하지 못했던 일.
무림의 멸살이었다.
“백 년이 늦어진다고 해서 큰일은 아니니까.”
“전혀 생각이 변하지 않는군요.”
“사람이 변하는 건 죽는다는 뜻이다.”
창천주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남하림은 결정을 내렸다.
“역시 답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네요.”
스윽.
창천주는 시선을 돌리며 일어났다.
“멍청한 녀석.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느냐?”
“…….”
“여기에서 네놈이 죽는다면 네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 그래도 나와 싸우겠느냐?”
“내가 먼저 죽는다면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허어…… 이런 이기적인 놈이 있나? 생각하는 짓을 보니 진짜 내 후손이 맞군.”
창천주는 한 발을 움직인 듯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여기에서 똑바로 생각한 뒤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
창천주는 안으로 사라졌다.
‘망할…….’
남하림은 기운이 빠졌다.
방금 그가 보여준 한 수만으로 무공이 어떠한지 느꼈다.
‘그를 죽일 수 없어.’
창천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무공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하림은 사당으로 자신 있게 들어왔다.
하지만 단번에 그 자신감이 무너져 내렸다.
자리에 앉은 채 인공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잔잔한 수면 위에 얼굴이 나타났다.
멍한 표정으로 기운을 잃은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넌…… 누구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이…… 얼굴이 내가 맞아?’
남하림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누군가 내 몸에 대혼술법을 펼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남하림은 수면에 비친 얼굴을 일각이 지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스르르르-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평소와 다른 눈동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방금 그것이…… 혼령안이군.’
혼령안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천 명의 혼을 가두었다는 귀물.
‘혼령안이라…….’
그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은 없었다.
‘모험을 걸 수밖에 없네.’
창천주가 자신의 몸에 대혼술법을 펼쳐 몸을 빼앗긴다고 해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스윽.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천주를 찾아 나섰다.
* * *
창천각으로 들어섰다.
‘쯔쯔. 멍청한 놈. 좀 더 똑똑할 줄 알았거늘.’
창천주는 고개를 짧게 흔들었다.
남하림의 표정을 봐도 어떠한 결심을 했는지 알았다.
“백 년이라도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의 뜻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날부터 즐겁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겁자가 되었으니 하루하루 죽을 때까지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지요.”
“그렇군. 양심의 가책을 가진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멍청한 놈이로다. 네놈이 무림을 위해 목숨을 내걸 이유가 있느냐? 대체 자신의 목숨과 가족들의 목숨까지 내놓고 무림을 위해 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림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난 무림을 사랑합니다.”
“미친놈. 네가 무림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들이 알아줄 것 같으냐? 처음에는 좋아해 주겠지. 하지만 하루, 한 달, 일 년, 십 년이 지나면 네놈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서 그런 그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더냐?”
“나를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마음 편히 죽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한 게 아닙니다. 난 아무런 미련 없이 죽고 싶을 뿐입니다.”
“……이기적인 놈이구나.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이기적인 놈이다.”
스윽.
창천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원하는 대로 상대해 주마. 걸황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보고 싶군.”
“싸우기 전에 한 가지 요청할 게 있습니다.”
“…….”
“당신과의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내 몸을 가져가십시오.”
“이유가 있느냐?”
“내 몸을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남하림의 말처럼 몸을 원한 것은 맞았다.
걸황의 몸을 가진다면 무림은 이미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싫다. 굳이 네놈의 몸을 차지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알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남하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신에 무단기를 끌어냈다.
우우우웅-
창천각이 흔들거릴 정도로 남하림의 내력은 대단했다.
‘허어어어, 이 정도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니…… 천괴지체를 완성했군.’
창천주도 하지 못했던 천괴지체를 완벽하게 익힌 남하림의 육체.
창천주 또한 천괴성의 기를 받고 태어난 인물이다.
때문에 양천의 전인으로서 천괴지체를 이룬 남하림의 몸이 부러웠다.
“…….”
그의 몸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순간 욕심이 났다.
현재의 몸은 모든 내력을 이끌어 내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
‘천괴지체라면…… 하늘도 가질 수 있거늘.’
남하림은 그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창천주의 눈동자를 보았다.
‘흔들리고 있다.’
남하림은 내색은 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강룡십팔장을 하나로 함축시킨 무인장을 준비했다.
창천주를 상대하기 위해, 단 한 번 펼쳐낼 무공.
생과 사의 순간 앞에서 무인장(無人掌)을 끌어 올렸다.
‘벌써 이 나이에 이런 수준까지 펼칠 수 있군.’
창천주는 인정했다.
남하림의 기세는 하늘조차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좋구나. 어서 들어오너라.”
창천주는 두 팔을 벌린 채 남하림의 공격을 기다렸다.
살랑.
남하림의 손바닥에서 가벼운 미풍이 부는 듯했다.
스으윽-
창천주는 가만히 선 채 미풍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머리카락이 뒤로 휘날리지 않았다면, 미풍을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휘이이잉-
이번에는 천장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스르르르-
창천주의 뒤에 있던 창천각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창천주만 서 있을 뿐.
“클클클. 무인의 경지에 올라섰군.”
‘실패…… 다.’
“이십 대에 무인경이라…… 아무리 내 후손이라 하지만 믿을 수 없군. 난 이백 년이 지나서야 그 경지에 도달했거늘.”
“우욱.”
남하림은 단전에서 통증을 느꼈다.
몸이 견딜 수 있는 한도 이상의 힘을 끌어 올린 부작용이었다.
‘세상의 힘으로도 이길 수 없군.’
남하림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휴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했습니다.”
“이제 알았느냐?”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슨 제안을 말하는 것이냐?”
“백 년만 조용히 지내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크하하하하, 웃긴 놈이로군. 이미 떠나간 배는 잡을 수 없다.”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가 후손이지 않습니까?”
“약은 녀석이로군. 네 녀석의 성취를 봐서는 살려두어서는 안 될 놈이로다. 무공을 익힌 지 이십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무인경을 깨달은 놈이다. 백 년이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지. 그만 죽어야겠다. 아니지 이왕 죽일 바에는 네놈의 몸을 차지하는 게 좋겠군.”
스으윽.
창천주는 손을 뻗어 남하림의 몸을 짓눌렀다.
“우욱…….”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크크크, 다른 놈이 아니라 같은 핏줄에 대혼술법을 펼치기는 처음이군.”
“으으윽…….”
“아무리 발악해도 반항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네놈이 사랑하는 놈들을 한 명씩 죽여주마. 무림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걸황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간이 될 것이다.”
* * *
나란히 누워 있는 남하림과 창천주의 신형.
우우우우웅-
창천주의 눈동자가 점점 검게 변했다.
슈우우욱.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 나온 흑안의 기가 남하림의 눈동자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르르르-
점차 남하림의 눈동자도 흑안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으으음.’
창천주는 눈을 뜨고자 했다.
그런데,
‘뭐지? 왜 눈이 안 뜨이지?’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전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툭툭.
‘어떤 녀석이지?’
창천주가 뒤로 돌아서자,
‘헉.’
처음 본 인물이 바짝 다가왔다.
#NAME?
#NAME?
#NAME?
#NAME?
창천주는 사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편안하게 누워 있는 남하림이 보였다.
창천주는 순간 눈앞에 있던 사내도 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NAME?
#NAME?
슥슥슥.
창천주의 주위로 수많은 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혼령안이라니.’
하북소가에서 녀석이 혼령안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백 년을 살아온 그로서도 혼령안에 천 명의 혼이 정말로 가두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NAME?
-놔라. 난 창천주이다. 난 죽지 않았다!
#NAME?
#NAME?
#NAME?
-미친놈들이……!
#NAME?
-아아악!!
창천주를 향해 천 명의 혼이 달려들었다.
천 년을 버텨온 창천주의 혼이 조금씩, 점점 사라져 갔다.
#NAME?
* * *
스르르르-
남하림은 눈을 떴다.
주변으로 어둠이 가득했다.
‘여기는…… 아…… 맞다. 이곳은 사당의 지하였지.’
어떻게 해서 지하에 들어왔는지 기억이 났다.
남하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력을 올려 주위를 살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둠에 적응이 되면서 주위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으음.”
옆에 시신이 누워 있었다.
‘창천주.’
창천주의 시신을 보던 남하림은 문득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신이 오래전에 죽은 듯 보였다.
“……내가 꽤나 많이 누워 있었던 모양이군.”
석상에서 내려온 뒤 천천히 걸었다.
지하에선 살아 있는 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하의 공간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거의 무너져 내린 상태였으니까.
‘만일 사람들이 여기에 내려왔다면 내가 여기에 없었겠지.’
남하림은 지하 동굴 끝을 보았다.
사당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군.’
밖으로 나가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우선 위로 올라가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안쪽으로 움직였다.
‘여기는…….’
인공 호수도 무너졌는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졸졸졸.
지상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갈라진 틈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음…… 어디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인데…….”
콰아앙!
남하림은 물이 빠져나가는 곳을 향해 일장을 뻗었다.
“후후후, 괜찮은데…….”
일장에 의해 바닥이 파였다.
두둑.
방금 전의 충격으로 천장에서 흙이 떨어졌다.
‘이런, 안 되겠네.’
잘못하다가는 생매장을 당할지도 몰랐다.
‘천장을 파고 갈 수 없겠는데?’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깨달은 남하림이 시선을 돌린 그때,
“엉? 이건…….”
방금 일장을 뻗은 바닥에서 물방울이 올라오고 있었다.
‘화엄호와 연결이 되어 있어.’
이곳을 뚫고 화엄호로 나갈 수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일 잘못된다면 천장이 무너져 수장을 당할 수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
“……에라, 모르겠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천장이 무너지기 전, 단 한 번에 끝을 내야 했다.
우우우웅-
남하림은 전력을 다해 강룡십팔장을 펼쳤다.
콰아아아앙!!
폭음와 함께 바닥이 무너지면서 호수의 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곧바로, 천장이 충격을 받은 듯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