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영문자, 본래의 몸을 찾다
영문자는 눈과 귀를 감았다.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재미있어. 이런 기분은 처음이군.’
목숨을 걸고 무당산을 내려가는 수하들의 싸움 소리가 울렸지만, 걸황과 검제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순중의 등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시원했다.
‘다음번에는 더 재밌게 놀 수 있겠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순중의 움직임이 멈췄다.
영문자는 감았던 눈과 귀를 떴다.
“내려왔는가?”
“네. 영문자님…….”
“고생했다. 나를 내려라.”
너덜너덜한 팔이 힘없이 움직였다.
“허어…… 이거 참.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줄은 몰랐군.”
만신창이가 된 몸.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강했어…….’
걸황과 검제.
화가 나기보다 너무 빨리 끝났다는 아쉬움이 강했다.
남하림과의 대결에서 마지막에 밀렸던 순간이 생각났다.
‘조금 더 버텼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지.’
그는 양천의 천괴지체에 대해서 잘 알았다.
흔들흔들.
힘이 들어가지 않은 팔을 보았다.
“후후후. 여하튼 오랜만에 짜릿했어.”
“영문자님, 괜찮으십니까?”
순중은 흔들리는 영문자의 팔을 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 수하들은 어떻게 되었나?”
“삼 할 정도가 당한 듯싶습니다.”
“삼 할이라…… 엄청 손해이군.”
“소신들이 똑바로 하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내 잘못이다. 무당파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게다가 걸황이란 녀석이 나타날 줄도 몰랐고.”
“비영주에게 따지도록 하겠습니다. 신무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걸황의 움직임을 놓쳤습니다.”
“한소리는 해야 하겠지만 나도 그 녀석의 기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비영주에서도 당연히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순중은 말을 하면서도 흔들거리는 영문자의 팔이 계속 신경 쓰였다.
“영문자님, 그 팔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어차피 버릴 몸. 동면시켰던 내 몸을 꺼낼 수밖에.”
“…….”
지상 최강의 육신.
천금용신(天金龍身)의 인물이 영문자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부에게 전해 들은 말.
너무나 강한 몸이기에 동면을 시켜놓았다고 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게 사실이란 말인가?’
창천영문 사이에서도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같은 것이었다.
“순중, 내 몸을 찾으러 가야겠다.”
“창천주님께는…….”
“이런 꼴로 가면 좋아하시지는 않겠지.”
“알겠습니다. 소신이 업고…….”
“됐다. 여기부터서는 혼자 움직여도 된다. 넌 먼저 돌아가서 현 상황을 그대로 전해라.”
“알겠습니다.”
휘이이익!
영문자는 신형을 날렸다.
* * *
무당파의 대승.
안휘성 삼문을 무너뜨린 창천영문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무당파를 돕기 위해 은하궁과 검문이 나서지 않았다면, 무당파는 절후대에서 배수진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었다.
배수진의 계획을 세운 인물은 걸황 남하림.
신무맹에 있던 맹주 걸황이 무림맹에서 언제 무당산으로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창천과 싸워 이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현현자는 앞에 앉은 남하림을 뚫어지도록 바라보았다.
“특이한 놈이로다.”
꿀꺽.
이휘연은 침을 삼켰다.
남하림이 결국 노인장이라고 부를까 긴장이 되었다.
“어르신, 그런가요? 전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누가? 네가? 클클클.”
현현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림 최고의 인물.
신무맹의 맹주이자 걸황이라 불리는 인물.
괴물 같은 이휘연조차 특별하다고 했던 남하림이 아닌가.
그런데 스스로 특별한 게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예끼, 이 녀석아. 농담도 심하구나. 중원에서 제일 이상한 놈이구먼.”
“어르신도 특이하시네요.”
“클클클. 네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라. 개방이 무슨 복이 있기에 네놈들을 얻다니 부럽구나. 한 놈도 아니고 다섯 명이라면서?”
“그건 제가 복이 많아서죠. 아마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좋은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클클클. 내가 보기에 넌 착한 성격과는 먼 사이 같구나.”
“어르신은 연세도 많으신데 사람 보는 눈은 잘 없으시네요.”
이휘연은 조마조마했다.
현재까지는 적정한 선을 유지한 채 대화가 이어졌다.
현현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넘어갔다.
“앞으로 창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더냐?”
“글쎄요. 명확하게 움직일 방향은 잡지 못했습니다. 당분간은 그들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네요.”
“차라리 먼저 창천을 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전 무림에서 힘을 모아 공격을 하면 충분히 이길 것이라 생각이 되네만.”
“그건 창천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창천으로 쳐들어가는 동시에 그들은 무림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사라진다는 게 무슨 말이더냐?
“말 그대로 존재를 지운다는 뜻입니다. 한 발 물러나는 것이죠. 아마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영원하지만 우린 아니잖아요.”
“그게 정말이더냐?”
“제가 누구입니까? 걸황입니다. 무림에서 이런 말이 있죠. 걸황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라고…… 하하하하!”
“…….”
남하림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넨놈 은근히…… 자애감이 심하구나.”
“그런가요?”
“클클클. 자애감이 심하든 아니든 간에 무림이 어떻게 될까 걱정을 했느니라. 근데 맹주를 보니 청성에 돌아가서 조용히 지내도 되겠군.”
“먼 길을 와주셨으니 고맙습니다. 돌아가시는 길은 제가 편안하게 가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혹시 다음에 지나가다가 시간이 되면 한번 놀러오게나.”
“어르신이 그때까지 살아 계시면요.”
“…….”
‘……한 번은…… 터질 줄 알았다.’
이휘연은 슬쩍 현현자의 눈치를 살폈다.
버럭 화를 낼 것 같았던 현현자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킥킥킥. 이 녀석이 왜 조마조마한지 이해가 됐도다.”
악의가 없는 남하림의 미소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맞다. 네놈이 올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테니 꼭 오너라.”
“그렇게 하죠. 혹시 좋아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왜?”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좋은 술이나 부탁함세. 문에서도 가끔 구해주긴 하다만은 마음에 안 들어서. 얻어먹는 주제에 요구하는 것도 그렇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사람을 시켜 한 달에 한 번씩 좋은 술을 보내 드리지요.”
“클클클. 말이라도 고맙다.”
한 달 뒤, 청성산의 암자에 오른 현현자는 나무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상자를 열지 않아도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았다.
향긋한 주향이 올라왔다.
“좋구나.”
덜컹.
현현자의 눈에서 웃음이 나왔다.
“녀석…… 정말 특이한 녀석이로다.”
* * *
구우우우웅-
지하로 통하는 석문이 열렸다.
쏴아아아아-
지하에서 한기가 몰아쳐 왔다.
계단 아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깊게 깔렸다.
“여기는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두 손이 너덜거리는 인물.
영문자는 차가운 지하 아래로 한걸음씩 내려갔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척척.
어느 정도 눈에 익숙해졌는지 주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섰다.
팟!
길게 이어진 지하 동굴.
영문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안으로 걸었다.
터벅터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 끝까지 온 그가 걸음을 멈췄다.
슥슥.
영문자는 어깨로 동굴 벽을 건드렸다.
툭.
어깨에 걸린 부분을 누르자,
우우우웅-
동굴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영문자는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온통 깔린 검은 액체 위로 건장한 청년의 신체가 떠 있었다.
“후후후, 오랜만에 내 모습을 보는군.”
영문자의 대혼술법은 특이했다.
동혼술법이라 하여, 신체를 옮긴 뒤 본래의 몸에서 영혼의 잔재가 사라지기 전에 동면을 시켜놓았다.
물컹.
영문자가 육신의 옆으로 누웠다.
스으으으윽-
액체에 담긴 청년의 신체와 영문자가 아래로 천천히 잠겨 내려갔다.
영문자는 눈을 부릅뜬 채, 서서히 검은 액체 속에 잠겼다.
마치 밝게 빛나는 밤하늘에 떠 있는 듯.
슈우우우욱-
수많은 빛들이 눈앞으로 밀려들어왔다.
파아아앗!
영문자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상체를 일으켰다.
“…….”
스윽.
손을 들었다.
너덜거리는 손이 아니라 젊은 사내의 손.
옆에는 또 다른 자신의 육신, 아니, 시신이 놓여 있었다.
타악!
바닥에 내려섰다.
전신에 솟구치는 힘이 느껴졌다.
“돌아왔군.”
* * *
무당파와 창천영문의 결전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무림은 너무나 조용했다.
그날 이후 금방이라도 혈전이 시작될 거란 예상과는 달리 무림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맹주전으로 들어서는 여인.
신소소가 문 앞에 선 준극남에게 다가갔다.
“아직 안 나오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벌써 한 달인데…….”
“주모님, 주군께서 나오시면 곧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잠시 방에 갔다가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기운이 빠진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신무맹으로 돌아온 남하림은 곧장 맹주전의 개인 연무실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 달이 넘도록 밖에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무아지경에 잠긴 채 깨어날 때까지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양천의 수련.
천괴지체의 수련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영문자와 싸웠던 마지막 순간.
위험한 순간이었다.
‘천괴지체가 아니었다면 그가 아니라 내가 당했다.’
내력을 쏟아낼 수 있는 체력의 차이가 영문자와 그의 차이였다.
이제는 완벽한 천괴지체를 완성해야 할 시기.
‘양천의 기는 비워야 하거늘.’
천괴지체를 이룬 뒤 소홀히 했음을 인정했다.
‘큰일 날 뻔했어. 이 상태로 창천주를 만났다면 이기지 못했을 거야.’
창천주는 분명 그보다 더 강할 게 틀림없으니까.
남하림은 연무실로 들어온 뒤 오직 천괴지체에 대한 수련을 계속했다.
비우고 비우고 다시 비우고 또 비웠다.
그동안 비웠다고 확신했던 것들이 남아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한 달이란 시간조차 비웠다.
스윽.
남하림은 감았던 눈을 떴다.
“으으으윽.”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머리 위로 두 손을 쭉 뻗었다.
“아이고…… 뻐근하네.”
두 시진 정도 가부좌가 더 이어졌다.
일어나려고 하자,
사뿐.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괜찮군.”
천괴지체를 수련하면서 끊임없이 비우고 또 비웠다.
텅 빈 남하림의 몸은 당연히 가벼워 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과 다르게, 대기의 기운을 완벽히 조절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비워야 채울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비워야 했고, 새롭게 채워야 하는 천괴지체를 만들었다.
스윽-
손을 내밀었다.
일 할의 힘을 내기 위해 일 할의 힘을 받아들였다.
파아아앙!
정확히 일 장의 앞.
허공이 울렁거리며 비틀어지면서 파동이 일어났다.
슈우우우욱.
파동 뒤로 생겨난 반발력이 거셌다
“이 정도면 다시 붙어도 괜찮겠지.”
남하림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끌어냈다.
“나가볼까? 거의 한 달 정도 지난 듯한데…… 기다리고 있겠지?”
남하림은 연무실에서 나왔다.
‘뭐지?’
코를 실룩거렸다.
“킁킁…….”
팔을 들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이런, 심하구나. 나한테서도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네. 일단 씻어야겠어.”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움직였다.
‘소소?’
신소소가 방 안에 있었다.
드륵.
문이 열며 남하림이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뭐 하냐?”
“앗, 오빠!”
신소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워어어어…… 잠깐. 냄새 난다.”
“저 씻었어요!”
“그게 아니라…… 내가 냄새가 난다고.”
“괜찮아요. 우욱!”
신소소는 한 번 안은 후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얼른 한 손으로 코를 막았다.
“봐라. 냄새 난다고 했지?”
“대체 안에서 뭐 했어요?”
“몸속에 있던 노폐물 냄새일 거야. 잠시 씻어야겠다.”
“어서 들어가세요. 완전 코가 썩겠어요.”
“그 정도로? 옷 좀 준비해 줘.”
“준비할 테니 빨리 들어가세요.”
* * *
탈탈탈!
남하림은 머리를 털면서 밖으로 나왔다.
“개운하구만.”
“여기 있어요.”
신소소는 의복을 건넸다.
다시 예전처럼 좋은 냄새가 났다.
“고마워.”
“수련은 잘 됐어요?”
그녀는 걸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럭저럭.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그렇구나. 잘됐네요.”
남하림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했다.
“한번 보여줄까?”
“정말요?”
“원한다면.”
“한 번 보여주세요.”
남하림은 신소소를 껴안은 채로 손을 올렸다.
술렁.
방 안의 공간이 비틀어지면서 원형의 구가 생겼다.
퍼어엉!
원형구가 터지면서 빛이 번쩍거렸다.
그와 동시에 호신강기가 나오면서 두 사람을 감쌌다.
“어때?”
“…….”
신소소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대단하다는 것만 느껴질 뿐.
타아아앗.
그때, 방문이 세차게 열렸다.
“…….”
강한 폭발음에 단숨에 달려온 준극남이었다.
“주군, ……주모님.”
방 가운데서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
“준 호위,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준극남은 빠르게 문을 닫았다.
‘주군께서…… 나오셨구나.’
두 사람이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 준극남이 미소를 지었다.
후다다닥.
곧이어 맹주전에서 일어난 소리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준 호위, 무슨 일이지?”
“검제님, 그게…… 주군께서 주모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래? 연무실에서 나온 모양이구나.”
“방금 그 소리는 뭔가?”
그때 안에서 남하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휘연 형,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