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영문자 부상당하다
‘강하다.’
진경진인은 당황했다.
한 번의 부딪힘에 상대의 강함을 알았다.
순중은 야수와 같았다.
그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살기를 뿜으며 진경진인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쉬이이익-
검기가 아닌 검강.
순중의 검에서 펼쳐진 검강이 긴 타원을 그리면서 진경진인의 목을 향했다.
‘허어억, 이놈이!’
진경진인은 얼른 뒤로 물러나면서 순중의 검강을 막았다.
까아아앙!
“우욱.”
순중의 강한 힘에 충격을 받은 진경진인의 손이 떨렸다.
“무당도 별게 아니군.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쉐애애액-
순중은 다시 한 번 더 검을 내리쳤다.
진경진인은 떨리는 두 손으로 검을 고쳐 잡았다.
“이놈! 나를 얕보지 마라!”
번쩍이는 검강.
진경진인은 목을 향해 다가오는 순중의 검을 다시 막아냈지만.
콰아아앙!
검이 부딪힌 충격에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어……!’
쿠웅!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스윽.
순중이 빠르게 다가섰다.
차가운 살기가 먼저 목을 베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번쩍!
순중이 검을 머리 위로 올리자 살기가 쏟아졌고.
슈우우우욱-
검이 진경진인의 목을 향해 바람을 가르며 떨어졌다.
‘피해야 하는데……!’
생각과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휙!
진경진인의 얼굴 앞으로 불쑥 검이 튀어나왔다.
까아아앙!
이번에는 순중의 검이 튕기면서 뒤로 물러났다.
“어떤 놈이냐?!”
순중은 진경진인의 옆에 나타난 인물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무심한 눈빛을 한 청년의 손에 들린 것은 일반적인 검이 아니었다.
“검…… 제?”
이휘연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먼저 진경진인을 일으켰다.
“일어나십시오.”
“고, 고맙다.”
진경진인은 힘겹게 일어났다.
이휘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목이 잘렸을 것이다.
뒤로 물러나면서 순중과 마주 선 검제의 뒷모습을 보았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도 이휘연을 좋아하지 않았다.
천살성을 지녔다는 것이 알려진 후부터 쭉 그는 무당파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장문인의 뜻을 거역하기 싫어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던지 진조진인에게 달려든 것도 맞고.
하지만,
“…….”
순중을 가볍게 밀어내는 무공.
이휘연은 여전히 누구보다 무당파의 검을 펼치고 있었다.
목숨을 구해준 이휘연의 모습에 진경진인의 만감이 교차했다.
“당신의 상대는 내가 해주지.”
“검제, 얼마나 대단한지 보겠다.”
파아아앗!
순중은 전력을 다해 검강을 뿌렸다.
우우우웅-
태극흑검에 내력을 끌어올리자 붉은 태극이 생겨났다.
콰아아앙!!
순중의 검강과 부딪힌 홍태극에 의해 거대한 폭음이 사방으로 퍼졌다.
파앗!
이휘연은 두 팔을 펼치며 기의 파장을 막아서며 진경진인을 보호했다.
“여기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는가?”
“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알겠네. 조심하게.”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한 번 더 부딪히는 이휘연과 순중을 보았다.
‘……태극의 정수를 보는구나.’
그들의 싸움은 차원이 달랐다.
콰아아앙!
무당은 검은 부드럽다고 했다.
한데 태극흑검의 위력은 무거웠다.
순중은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받았다.
‘이길 수 없어.’
이휘연과 두세 번 부딪히면서 깨달았다.
한 번의 부딪힘으로도 고수들은 상대의 실력을 알고 승패 또한 알았다.
스걱.
검의 잔상에 허리와 허벅지에 적지 않은 상처가 생겼다.
계속해서 막아낼 수 없었다.
“아아악!!”
수하들의 비명이 계속해서 들렸다.
‘수가 부족해…….’
수하들은 인원수에서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절후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우위를 가질 수 없었다.
물러나지 않으면 전멸이다.
“모두 물러나라.”
순중의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수하들은 곧바로 절후대를 빠져나갔다.
“와아아아-!! 이겼다!”
절후대 안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제기랄!’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입에 넣은 듯 구겨진 표정으로 물러났다.
‘검제…… 그 녀석을 없애야 한다.’
문제는 검제 이휘연이었다.
그를 확실히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은 영문자밖에 없었다.
순중은 한소리 들을 각오로 영문자의 앞에 부복을 했다.
“송구하옵니다.”
영문자는 그의 몸에서 혈흔 자국들을 보았다.
“검상이군. 누구에게 당했지?”
“검제입니다.”
“귀찮은 놈이군.”
“…….”
두 번 공격했지만 두 번 다 절후대에 완벽히 들어서지 못했다.
시간은 벌써 이각이 흘렀다.
계속 이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 불리한 쪽은 창천영문이었다.
“할 수 없군.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영문자는 결정을 내렸다.
“소신이 뒤를 따르겠습니다.”
순중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아, 가볼까?”
영문자는 절후대의 입구에 도착한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스윽.
앞으로 나오는 인영을.
“검제, 내가 오는 것을 알았군.”
이휘연은 강한 기운을 가진 인물이 절후대로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남하림이 말했던 인물.
이휘연이 이길 수 없을 거라 확신했던 그의 무공.
얼마나 강할 것인가.
상대해 보고 싶었다.
“그대가 영문자인가?”
“그렇다. 내가 영문자이지. 좋은 자리에서 만나 반갑네.”
파앗!
영문자의 양손에서 빛이 뻗었다.
인사를 하는 도중에 바로 공격한 것.
‘이것이…….’
남하림이 조심하라고 했던 단심광.
빛의 공격이었다.
스르르륵-
곧바로 홍태극이 앞으로 나타나며 단심광을 막아섰다.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빛이 뻗어 나가지 못한 채 중간에서 사라졌다.
영문자의 눈빛이 변했다.
“오호, 대단한 실력이다.”
그동안 많은 적수를 상대했지만 지금처럼 간단하게 단심광을 지워낸 적은 없었다.
“마음에 들어. 오늘 재미있게 놀겠군.”
찌이이이잉-!
영문자가 손을 위로 올리자 단심무형검이 솟구쳤다.
“순중,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 놈들을 정리해라.”
“넵.”
영문자가 이휘연을 막는 동안 순중이 앞으로 빠르게 치고 나갔다.
그때,
샤르르르-
순중의 앞으로 미풍이 불어왔다.
‘이건……!’
그 속에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재빨리 걸음을 멈추며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채채챙!
두 자루의 검이 부딪히면서 서로 상대를 밀어내려고 했다.
‘대체 누구지?’
상대의 검은 부드러움 속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앞으로 밀고 나갈수록 상대의 검에 힘이 빠지면서 말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스으으-
그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태극의 문양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태극혜검!’
순중은 곧바로 상대의 무공을 알아보았다.
무당파에서 검제를 제외하고 태극혜검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는 인물은 검선 진무도인 외에는 없었다.
콰아아앙!!
태극헤검의 위력에 순중은 뒤로 밀려났다.
진무도인은 연이어 삼 초식을 펼치면서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헉헉…….’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무도인의 숨이 급하게 차올랐다.
태극혜검의 내력을 제대로 받치기 위해서는 체력이 충분히 받쳐주어야 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겠건만……!’
아쉬웠다.
심력과 내력이 크게 필요로 하는 태극혜검을 오랫동안 시전하는 것은 무리였다.
뒤로 밀리고 있던 순중은 약간 여유가 생긴 순간,
‘됐어.’
기회를 찾았다.
반격의 시간이었다.
* * *
콰아아앙!!
태극흑검과 단심무형검이 부딪혔다.
번쩍.
단심무형검이 부서진 듯 빛이 폭발하며 터졌다.
산발로 퍼져 나간 빛이 이휘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이이이익!!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태극을 만들며 단심무형검의 산광을 막아냈다.
치이잇-
산광 중 하나가 이휘연의 팔을 스치며 지나갔다.
‘뜨겁군. 하필이면……!’
순간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슈욱.
영문자의 손이 불쑥 다가왔다.
‘끝났군!’
그는 잠시 동안 검을 들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휘리리릭!
하나 이휘연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몸이 나가면서 왼손으로 태극을 펼쳤다.
“이 녀석이……!”
영문자의 팔목을 휘감았다.
손을 빼지 않는다면 뼈가 산산조각 날지 몰랐다.
파앗!
영문자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잠시 떨어진 채 이휘연과 영문자는 서로 노려보았다.
“검제란 이름이 아깝지 않아. 근데…… 이 실력이 전부라면 나를 이길 수 없어.”
“이길 수 없을지도. 하나 지지는 않소이다.”
“과연 그럴까?”
“못 믿겠다면 다시 해보겠소?”
“좋지. 오랜만에 싸울 맛이 나서 좋구만!”
챠르르르-
영문자는 허리에서 검은빛 연검을 뽑았다.
“묵연광검. 이것이 진정한 본인의 검이지.”
연검의 장점은 좌우 어디에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것.
여러 가지 검 중에서 가장 익히기 어려운 것이 연검이었다.
‘까다롭군.’
파아아앗!
영문자가 묵연광검을 앞으로 밀어냈다.
똑바로 다가오는 검.
‘하지만……’
이휘연은 당장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린다.’
연검을 상대할 때 급해서는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잘 알았다.
휘이익!
‘지금.’
가슴을 향해 다가온 상대의 검을 향해 태극흑검이 뻗어내면서 먼저 선수를 치듯 루슬구검(樓膝拘劍)를 펼치며 묵연광검을 감았다.
“호오…… 멋진 한 수다.”
영문자는 꼬임을 풀기 위해 반대로 묵연광검을 비틀며 물러났다.
“한 번 더 막아내는지 볼까?”
챠르르르-
좌우로 흔들거리는 묵연광검의 움직임이 더욱 컸다.
‘어차피 들어오는 방향은 한 곳이다. 그곳만 막으면!’
스으으-
이휘연은 뒤로 바닥을 쓸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바닥을 차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차아앗!
그와 동시에 묵연광검이 날아오른 이휘연을 향해 솟구쳤다.
“흔들리지 않는 연검은 의미가 없다.”
태극흑검을 아래로 향해 찔렀다.
수십 개의 검기가 폭우처럼 떨어졌다.
‘젠장!’
콰아아아앙!!
영문자는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났다.
‘당했다.’
간단하게 끝을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자신 있게 꺼낸 묵연광검은 무당파의 검에 통하지 않았다.
‘이것이었나?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는 않는다는 말이.’
영문자는 확실히 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방어하는 것뿐이지만.’
성철각과 비무를 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무슨 말이지?”
“우주제일이신 걸황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소이다.”
휘익!
이휘연의 곁으로 남하림이 내려섰다.
“간지럽게 형까지 그런 말을…….”
“후후, 사실이라 할 줄 알았는데. 이젠 같이 싸워야겠다.”
“안 그래도 언제 나서야 할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영문자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비겁한 놈들! 합공을 한다고?”
“목숨 걸고 싸우는데 비겁한 게 어디 있습니까.”
남하림의 비웃음이 거슬렸다.
“네놈이 중원 최고의 인물이라고 불리는 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안 부끄럽습니다.”
“…….”
“당신들은 오늘 여기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겁니다. 저기 소리 들리죠?”
남하림의 말처럼 후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예상보다 올라오는 게 빨랐다.
절후대에서 시간을 너무 보낸 게 패착이었다.
‘아직은…… 지금 바로 이놈들을 밀어낸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우우우우우우-
절후대가 진동할 정도로 단전을 개방했다.
“처음이다. 이 정도의 내력을 끌어낼 정도로 네놈들이 강할 줄은 몰랐군.”
영문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챠르르르-
묵연광검이 소리를 내며 단심광을 뿌리기 시작했다.
“내가 저 검을 막지. 나머지는 부장이 알아서 처리해.”
“알겠어요.”
이휘연이 먼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태극흑검이 가슴 앞에서 큰 원을 그렸다.
스으으으응-
홍태극의 문양이 점점 진하게 생겨났다.
‘태극혜검을 이 정도로 펼칠 수 있는 놈이 있을 줄이야.’
그그그그.
단심광과 홍태극의 기가 서로 부딪히면서 상대를 밀어내고자 했다.
우우우웅.
남하림은 무단기를 전력으로 개방했다.
타앗.
이휘연의 한 걸음 뒤에 있던 남하림의 신형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양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
“강…… 룡…… 천…… 장.”
기존의 강팔십팔장이 아닌 새롭게 창안한 열아홉 번째의 초식.
양손 위에 생긴 황금빛 구(球).
남하림의 모습은 태양을 두 손에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영문자를 향해 던졌다.
구구구구궁.
황금 구가 천천히 영문자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망할 놈이……!!’
영문자는 이휘연을 향한 공격을 멈추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황금 구를 향해 단심광을 쏟아냈다.
파아아아앗!
전력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급한 상황.
단전에 남은 한 줌의 내력을 남김없이 담아낸 단심광이 황금 구를 파고들어갔다.
덜덜덜덜.
절후대가 떨렸다.
남하림과 영문자의 대결.
무단기를 뚫고 들어선 단심기가 점점 황금 구를 깨뜨리려고 했다.
‘힘을 더 내야 한다.’
내력은 이미 한 줌의 내력도 없었다.
마지막 방법.
‘천괴지체…… 금강수력을 극성으로 펼친다면……!’
남하림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슈으으으흡-
천괴지체를 통해 대기의 기를 빨아 당겼다.
남하림의 전신에서 황금빛이 솟구쳤다.
전신으로 퍼진 천괴지체의 힘.
뒤로 밀려 나가던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됐다. 한 번 더 힘을 낼 수 있다.’
“하아아아압!!”
남하림은 기합과 함께 양손을 강하게 앞으로 밀었다.
우우우웅-
팽팽한 두 힘에 뒤로 조금씩 밀리던 황금 구가 튕겨 나가면서 영문자를 덮쳤다.
번쩍.
콰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터지면서 절후대의 모든 싸움이 한순간 멈추었다.
털썩.
결과는 참혹했다.
영문자의 두 손이 너덜거렸다.
뼈가 완전히 부서진 듯 아래로 처진 채 힘없이 움직였다.
‘내…… 가…… 이놈에게…….’
쉬이이익-
영문자의 정면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검기.
‘어이없군. 이렇게 죽는가.’
보통의 공격이라면 모를까.
이제 그는 이휘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때,
휘익!
영문자의 앞으로 순중이 튀어나오면서 이휘연의 검을 막아냈다.
까아아앙!!
“우우욱.”
그 또한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다.
이휘연의 검을 받아낸 충격에 몸속 내부가 뒤엉켰다.
“크윽, 영문자님, 죄송합니다. 물러나겠습니다!”
“……!”
휙.
순중이 영문자를 등에 업었다.
“뭣들 하느냐? 목숨을 걸고 길을 뚫어라!”
후방에선 절후대에 들어오지 못했던 수하들과 무당파에 올라온 검문과 은하궁의 무인들이 싸우고 있었다.
타아앗!
결국 창천영문의 무인들은 은하궁과 검문이 뚫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