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73화 (274/328)

273. 중원으로 나가다

걸황 남하림.

그가 마교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걸황과 천마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가 마교에 나타난 이유.

창천 때문이라 했지만 무엇이 그를 마교로 불러들었는지 여전히 궁금했다.

‘설마 본 천에 변절자가 숨어 있단 말인가.’

주문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변절자는 없다.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창천이기에 그럴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걸황이 마교에 나타난 이유.

하나 이미 주문자는 혼란스러웠다.

그사이 초강유가 남하림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뇌의 죽음 후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남하림은 마천궁에서 말없이 사라졌었다.

“걸황, 여긴 언제 왔는가?”

“조금 특별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혹시나 해서 왔는데 이상한 무공을 쓰는 자가 있더군요.”

스윽.

혈성마가 다가왔다.

“천마님, 공무공을 쓰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저자가 자기 입으로 공무자라고 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군. 공무자라. 확실히 공무공이라면 걸황의 말대로 이상한 무공이라 볼 수 있지.”

남하림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여기 또한 할 만큼 했다.

“이제 천마께서 왔으니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이거 참…… 계속 도움을 받고 있군.”

“공짜는 없습니다. 나중에 전부 청구할 테니 그렇게 아세요.”

“크하하핫, 좋네.”

천마 초강유는 화통하게 대소를 터뜨렸다.

걸황이 원하는데 무엇인들 주지 못할까.

남하림은 돌아섰다.

천마와 함께 온 만통자와 신소소가 뒤에 서 있었다.

“우린 그만 가죠.”

“아…… 네, 천주님.”

“알겠어요.”

두 사람 다 굳이 남의 싸움을 끝까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후후후.’

천마광장에서 떠나는 남하림의 뒷모습.

“휴우…….”

초강유는 크게 호흡을 했다.

모든 것이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움직일 만하오?”

“…….”

주문자는 남하림에게 공격당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당신이 나를 봐줄 만한 실력이라고 보는가?”

슥슥-

초강유는 미간이 간지러운 듯 손가락으로 긁었다.

“당신이 공무자라고 했나?”

“…….”

“꽤 대단한 명성이었다는 것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 한 가지 잊은 모양이군. 난 천마이자 변천의 천주다. 창천주의 개 따위가 이길 수 없는 높은 분이시지.”

부르르-

주문자의 몸이 떨렸다.

창천주의 개.

도발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무단기는 자신의 무공과 극성이었으나, 남하림은 자신을 끝장내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다.

하나 천마 정도는 공무공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초강유는 그의 생각을 읽었다.

‘하,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군.’

휙!

그는 신형을 날리며 주문자의 앞으로 다가섰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이보다 더 당당한 보법이 있을까.

한 발 한 발 내디디는 천마 초강유의 발걸음에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쿵. 쿵. 쿵.

초강유의 기세에 주문자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날 뻔했다.

‘저건 허세다.’

하지만 이내 주문자는 평정을 찾았다.

저 기세는 그저 허풍이다.

“이백 년 전 마교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었지. 그때 천마가 누구였더라? 워낙 오래되니 기억도 안 나지만, 여하튼 그때 내가 손을 봐주었지.”

자신은 이미 천마를 상대하여 이긴 적이 있었으니까.

“과연. 전대 천마가 공무공에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어. 그리고 한마디 붙여놨더군.”

“후후후, 만나면 싸우지 말라고 하던가?”

“아, 그땐 몸이 좋지 않아서 당했다고 하더군.”

스윽-

초강유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놈이……!’

천마군림보의 무형영보(無形影步).

주문자는 곧바로 초강유의 기를 찾았다.

‘네놈이 아무리 몸을 숨겨도 의미가 없다!’

우우웅-

초강유의 기를 찾은 주문자가 공무공을 펼쳤다.

“……?”

공무공에 직격당한 무형영보가 부서지며 천마가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데,

‘어디에 있지? 공무공을 피했어?’

그가 찾은 것은 천마의 기가 아니었다.

“자신만만하더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못 찾는군. 바로 앞에 있거늘.”

스으으윽.

초강유의 신형이 주문자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슈우우욱!

곧바로 천마파천장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주문자는 공무공을 빠르게 쏟아냈지만, 천마파천장을 막아내지 못했다.

“커어어어-”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주문자는 눈앞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머리에서 흐른 피가 얼굴 전체로 흘러내렸다.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실력에 자만을 했단 말인가?”

“으으으-”

주문자는 신음만이 나왔다.

공무공이 허무하게 깨졌다.

“그때와는 다르지. 왜냐구? 이유는 없어. 내가 더 강한 것일 뿐.”

스윽.

초강유는 주문자의 얼굴 앞에 손을 올렸다.

“죽어라. 여기까지 온다고 수고했다.”

퍼억!

천마수가 그대로 주문자의 얼굴을 핏덩어리로 만들었다.

마교의 멸문을 당연하게 여기며 신강으로 온 창천주문의 무인들.

하지만 오히려 죽음에 이른 것은 그들이었다.

창천주문과 마교의 싸움은 주문자의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 * *

초원으로 돌아온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하림이 마교 주위로 흐르는 기의 변화를 읽었다.

“거의 정리가 된 모양이군.”

“이젠 돌아가나요?”

“마교 일도 끝났으니 신무맹으로 돌아가야겠지.”

“언제 가나요?”

“정리가 되는 대로. 내일이라도 된다면 가지 뭐.”

“알겠어요.”

“긴장하면서 움직인다고 피곤했을 거야. 쉬고 있어.”

휴식한 지 반시진이 지난 후.

모든 일을 마친 초강유와 탈혼마제가 초원으로 찾아왔다.

“허허, 여기도 심하군.”

두 사람은 초원으로 들어오며 거칠어진 현장을 보았다.

혼마신과 싸우면서 초원의 본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초원의 전각은 창문이 부서진 것 외에는 멀쩡했다.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앉았다.

초강유는 싱긋 웃었다.

“큰 도움을 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창천에서 우리를 먼저 치려고 할 줄은 몰랐군.”

“본 맹을 치기 전에 귀찮은 곳들을 정리할 모양인가 보죠.”

“무턱대고 있다가 당할 뻔했어. 도움에 예를 표하지.”

“제가 원래 착한 일을 잘하는 편이지요.”

“그런 것도 같군.”

“그럼, 신교의 일도 정리가 된 것 같고…… 내일 떠나려고 합니다.”

“벌써? 하긴 아직 그놈들이 신무맹에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빨리 돌아가야겠지. 좀 더 잡고 싶건만 아쉽군.”

초강유는 진심이었다.

“뭐, 그래도 한동안은 자주 뵙지 않겠습니까.”

“흠, 아직 창천이 남아 있으니.”

“그렇죠. 창천이 남아 있죠.”

초강유는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오늘은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게 어떤가? 폐가에서 지내게 할 순 없지.”

“괜찮습니다. 하루 정도야 지낼 수 있습니다.”

잠자리만 이상 없으면 불편할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편한 대로. 자, 그럼 오늘이 마지막인데. 한잔하겠나?”

“하하, 좋습니다.”

* * *

탈혼마제는 당분간 마교에 남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마뇌와 창천주문에 의해 전력이 줄어들었기에, 그의 존재만으로도 마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마노 할아버지, 다음에 뵐 때까지 몸 건강하세요.”

“오냐. 너도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네에……!”

탈혼마제는 멀리 사라지는 그들에게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숙님, 저 아이가 맘에 드신 모양입니다.”

“클클클. 모든 게 귀엽지 않느냐? 겁이 없는 것인지, 사파 출신 때문인지는 모르나 우리를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 좋구나.”

“출신 때문이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천성인 듯합니다.”

사파인이라고 해서 마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둘 다 특이한 녀석이지. 정파 놈이 사파의 여인을 아무렇지 않게 사귀고 있지 않느냐.”

“후후후후, 맞습니다.”

스윽.

탈혼마제는 부서진 천마문 앞에서 돌아섰다.

“교주는 앞으로 어떻게 할 텐가?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선 본 신교를 정리한 뒤 당한 만큼 배로 갚아줘야 하겠지요. 걸황에게 그놈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들었습니다.”

“클클클. 좋네. 그때 나도 움직이도록 하겠네.”

“사숙님께서 도와주신다니 감사할 일이군요.”

초강유와 탈혼마제는 다시 마교 안으로 들어섰다.

처억.

수만의 마교도들이 고개를 숙인 채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 * *

남하림과 신소소, 그리고 만통자는 신강을 내려온 뒤 빠르게 사천성으로 향했다.

히이이잉!

육두마차가 객루 앞에 멈췄다.

객루 앞에서는 이미 십여 명의 인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덜컹.

만호루주는 떨리는 손으로 마차의 문을 열었다.

“고맙소이다.”

남하림이 먼저 내렸다.

그 뒤로 신소소와 만통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걸황님을 뵙습니다.”

만호루주는 고개를 숙였다.

하루 전, 걸황이자 맹주이며 천하제일상국의 국주가 하루를 보내려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곧바로 특별관을 준비했다.

“소인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만호루주는 앞장을 서며 공손하게 움직였다.

특별관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각자 편한 자세로 앉았다.

“저녁 먹을 때까지 쉬자.”

“네, 하림 오빠.”

“천주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남하림은 두 사람과 달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쉬고 있어. 누가 찾아왔네.”

“누가요?”

“걸비에서 왔어.”

“아, 알겠어요. 다녀오세요.”

남하림은 밖으로 나가자,

휘익.

걸비가 모습을 나타났다.

“걸황님을 뵙습니다.”

“다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군요.”

걸비의 표정에 모든 것이 적혀 있었다.

“창천에서 사무련과 은하궁으로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네요.”

“…….”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했건만, 남하림은 반대로 별일 아닌 듯이 받아들였다.

“언제부터 그들이 움직였죠?”

“오 일 전이라 했습니다.”

‘오 일 전이라…….’

남하림은 창천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지금쯤이면 거의 인근에 도착하겠군요.”

“네. 저희들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남하림이 사무련이나 은하궁에 제때 도착을 할 방법이 없었다.

“신무맹에서는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그 부분에서는 소신이 오는 동안 따로 보고받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우선 창천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를 보내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 확인을 하는 중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나올 때마다 연락이 올 것입니다.”

남하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교를 공격하는 동시에 은하궁과 사파련을 친다?’

그렇다면 전면전은 아닐 것이다.

창천이 대단하다고 해도 세 곳으로 전력을 나눈 뒤 전면전을 할 만큼 생각 없는 세력이 아니었다.

‘마교와 별개로 두 곳을 공격하는 이유는……?’

남하림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언의 압박인가? 그렇다면 화문자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겠군.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네.’

살랑.

남하림은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짧작 흔들었다.

“후후, 나이도 많은 사람이 잘 삐지는군.”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두 곳을 공격하는 창천의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개방의 힘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겠어. 창천주는 재미있는 사람이야. 얼른 만나보고 싶군.’

남하림은 결심했다.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계속 알려주세요. 그리고 개방의 형제들에게 본인의 뜻을 전하세요.”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하림은 걸비에게 한 가지 명을 내렸다.

“걸황님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척.

걸비는 포권을 한 뒤 바로 사라졌다.

드륵.

남하림은 문을 열고 특별관으로 들어섰다.

편안하게 늘어져 누워 있던 두 사람이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냥 그대로 있어요.”

“아…… 네…… 송구합니다.”

“앉아서 들으세요.”

남하림은 방금 전에 걸비와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에?”

사파련을 공격한다는 말에 신소소는 깜짝 놀라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게다가 은하궁도 같이 공격한다고 했다.

“그럼 큰일 난 게 아닌가요? 빨리 움직여야 해요!”

“천주님, 맞습니다.”

만통자와 신소소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빨라졌다.

그만큼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아, 하하, 너무 다급하게 생각 안 해도 돼요. 이건 보여주기니까. 큰 의미 없이 대외용으로 움직일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화문자를 돌려보내지 않아서 빈정이 상한 겁니다.”

“…….”

“그냥 넘어가자니 수하들 사기도 떨어질 듯하고, 겸사겸사 도발하려는 것으로 보이네요.”

“음…… 그런 것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피해는 입지 않겠습니까? 창천에서 아무리 사기를 높이기 위한 차원으로 공격한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무맹에서 잘 처리할 겁니다. 내가 신무맹에 없을 때를 대비해서 휘연 형에게 모든 일을 맡겨 놓았거든요. 그들이라면 충분히 잘 할 겁니다.”

‘아! 그들이라면…….’

가끔씩 잊고 있다.

걸황이 워낙 괴물 같은 인물이기에.

신무맹에 있는 네 명의 존재.

그들 또한 괴물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좀 더 빨리 움직이도록 하죠. 내일 일찍 출발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