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56화 (257/328)

256. 창천용문을 만나다

호양평에 대한 소문은 남하림이 신무맹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퍼져 있었다.

남하림이 그저 잠시 출타한 중으로만 알고 있던 신무맹의 주요 인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역위천까지 호양평에 같이 갔을 줄이야.

일행이 신무맹으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사람은 신소소가 아닌 만통자였다.

“아니, 수장이라는 사람이 말도 없이 함부로 싸돌아 다녀도 됩니까?”

“극비를 요하는 일이라서요. 그리고 양 총관하고 몇 명한테는 말했습니다.”

“양 총관하고 검제와 독제는 당연히 천주님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 외에 누구에게 말했다는 겁니까?”

“내원 수장이신 진인께 말씀을 드렸었죠.”

만통자는 시선을 돌려 내원 수장 진후 도인을 보았다.

“흠흠, 미리 말씀을 드리지 않아서 미안하외다. 맹주께서 극비로 움직인다고 하시기에…….”

내원 수장에게 미리 말했다고 하는 마당에 더 이상 따지기도 뭐했다.

“그래도 다음에는 함부로 혼자 다니지 마시지요. 그리고 상대가 생사결을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천주님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실 분이 예전처럼 하시면 안 되지요!”

“으악,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노인장께서 이리도 본인의 안위를 걱정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다음에는 조금 조심하도록 하겠소이다.”

“천주, 조금이 아닙니다.”

“으아, 알겠소이다. 많이, 많이 조심하지요. 그럼 더 이상 이번 일은 문제가 없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이고야.”

남하림은 마중 나온 일행 사이에서 신소소의 앞으로 다가섰다.

“고마워요.”

“이젠 걱정 안 해도 돼.”

“네에……!”

신소소와 인사를 간단히 나눈 남하림은 맹주전으로 찾아온 인물들과 차를 마시며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장두철은 살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허어…… 아깝군. 설백진을 처리할 수 있을 뻔했는데.”

남하림과 설백진의 생사결.

결과는 설백진의 치욕적인 패배였다.

제대로 된 한 수도 펼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전대 무림맹주였던 유극지와 비견될 정도로 사파 최고의 무인이었는데도.

“항걸님, 이미 그를 처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긴 맹주에게 한 대 맞고 도망갔다고 소문이 났으니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할 게야. 하하하핫!”

진후도인의 말에 장두철은 대소를 터뜨렸다.

스윽.

신나게 웃던 장두철이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그만들 가세나. 맹주가 먼 길을 갔다 왔는데 피곤하지 않겠나.”

“크흠, 그렇게 하지요.”

“더 계셔도 되는데요, 사부님.”

“맹주, 옆에 눈치가 보여서 말이야.”

한쪽에 두 여인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에 하나둘씩 일어난 사람들이 맹주전을 나서며, 밖으로 따라 나오려는 남하림을 말렸다.

“우리가 알아서 나가겠소이다.”

휘이잉-

갑자기 맹주전에 덩그러니 남은 세 사람.

“흐음……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고 가네.”

* * *

남하림이 신무맹에 돌아온 뒤, 내원은 곧바로 회의를 가졌다.

한 시진 동안 혈사천에 관한 회의가 이어졌다.

창천광문까지 합세한 설백진의 혈사천을 신려세가와 주천의 합공만으로 치기에는 무리였다.

더구나 사파는 아직 완벽한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이에 신무맹은 사파 연합, 주천과 함께 설백진을 상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남은 문제는 선제공격을 할 시기.

각자의 의견이 분분했다.

회의가 끝난 후, 내원수장 진후도인은 남하림을 찾았다.

“혈사천 선제공격에 대한 의견들이 많군요.”

“그렇소이다.”

“내원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원 회의에서 진후도인은 말없이 지켜보며 의견을 경청했다.

남하림의 물음에 진후도인도 자신의 뜻을 밝혔다.

“만일 본 맹에서 먼저 움직인다면 중원인들의 시선에는 그들이나 우리나 같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무림인에 대한 중원인들의 시선.

그들은 정사의 개념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착한 놈이나 아니냐일 뿐.

진후도인의 말이 맞았다.

남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무맹을 세운 계기는 창천을 막기 위함이지 중원을 일통하거나 통치할 뜻이 아니었습니다.”

“맹주의 말이 맞소이다. 본 맹이 그들을 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지요. 설백진이 진짜든 가짜든, 그건 사파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본 맹이 관여할 정도의 일은 현재까지 일어나지 않은 셈입니다.”

신무맹이 나서기에 가장 좋은 적기는, 혈사천이 정파가 명분을 가질 만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설백진은 공식적으로는 신려세가를 필두로 한 사파 연합과 대립했을 뿐, 아직 정파 무림을 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면 됩니다. 창천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동안 우린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를 하면 됩니다.”

“맹주님의 뜻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원장께서 고생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허허허, 고생은 맹주께서 많이 하시지 않소이까.”

“오신 김에 식사나 같이 하시죠.”

“알겠소이다.”

* * *

웅성웅성.

신무맹이 들어선 뒤, 남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에 없던 상가들과 객잔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객잔 이 층 창가에 앉은 사내가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신무맹이 보였다.

‘음…… 몰래 들어가야 하나?’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찾는다고 해도 마땅히 방법은 없었다.

하루 전에 도착한 그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르르르-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사내는 창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두 명의 여인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저 여인들이 누구길래?’

사내가 그녀들의 신분이 궁금하던 찰나, 옆자리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분들이 맹주이신 걸황님과 결혼 할 분들이시지.”

스윽.

사내는 자세히 여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저들이라면…….’

휘이익!

사내의 신형이 이 층 객잔에서 사라졌다.

* * *

신소소는 유미령과 함께 신무맹과 가까운 인근 마을로 들어섰다.

늘 신무맹 안에만 있어 답답한 기분을 마을 시장 구경으로 풀 셈이었다.

“형님, 우리 저기로 가봐요.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래.”

휘익!

신소소가 먼저 앞장을 서며 달려 나갔다.

그때,

‘……이 기운은.’

유미령의 바로 눈앞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터억.

신소소는 달려가다가 갑자기 앞에 나타난 사내와 부딪혔다.

“앗!”

마치 딱딱한 벽에 부딪치는 것 같았다.

“아야…… 죄송해요!”

“꼬마 아가씨가 사람 많은 곳에서 이렇게 뛰어다니면 되나?”

“뭐예요? 누가 꼬마라고 그래요?”

“하하하, 이거 참 성격이 다혈질인데?”

“별꼴이야. 흐응.”

신소소는 콧방귀를 뀌며 사내의 옆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휙!

그때, 사내가 신소소의 팔을 잡았다.

“잠깐 도움을 좀 주면 좋겠는데.”

“……?”

신소소는 팔을 비틀며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뭐야, 이 아저씨가……!”

휘익!

얼른 반대편 손으로 사내의 목을 공격했지만.

“제법인걸.”

타악!

사내가 오른손으로 신소소의 공격을 막아냈다.

공격을 막아낸 사내는 달려오려는 여인을 향해 돌아섰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다칠 것이오.”

멈칫.

유미령은 신법을 멈췄다.

움직였다가는 신소소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었다.

“당신 누구지?”

“창천에서 왔다고 할까.”

“…….”

유미령은 신분을 밝힌 그를 노려보았다.

‘한 번에……!’

타앗!

유미령이 신법을 펼치며 순식간에 사내의 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유미령의 움직임을 파악한 사내는 잡고 있던 신소소를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아악!”

멈칫.

유미령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대단한 여인이군. 순간 놓칠 뻔했어.”

“당신은 여기서 도망가지 못한다.”

“흐음, 정말 빠르군. 벌써 주위를 포위했어.”

신소소를 인질로 붙잡은 사내는 포위를 당한 상황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상했다.

“괜찮아. 도망갈 생각은 없으니까.”

“무엇을 원하지?”

“그대의 부군이 될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

“어서 가서 그를 데리고 왔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꼬마 아가씨의 신상이 좋지 않을 거야.”

“누가 꼬마냐고!”

유미령이 사내의 손에 꼼짝없이 잡혀 있는 신소소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은하궁주, 그렇게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어. 나도 한없이 기다려 줄 수 없으니까.”

사내의 말이 끝날 때였다.

휘이이익!

유미령의 곁으로 한 인영이 가볍게 내려섰다.

황금빛 걸복.

남양성에서 이 옷을 입는 사람은 오직 한 명밖에 없다.

맹주, 걸황 남하림.

신소소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맹주전에 전해지자 곧장 달려온 것이다.

“나를 찾았다고?”

“그대가 걸황이군.”

유미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천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남하림은 서너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내의 전신에서 흐르는 기.

설백진과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창천…… 무서운 곳이야. 계속해서 이런 자들이 나올 수 있다니.’

“소소를 풀어주는 게 어떤가? 당신의 목적은 본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아. 풀어줘야겠지. 하지만 이곳은 아니야. 나를 따라오면 풀어주지. 조용히 혼자 오면.”

“어차피 풀어줄 거면 지금 풀어줘. 혼자 싸우기를 원하는 것 같은데 따라 가 주지. 난 약속은 잘 지키는 편이라고.”

“…….”

“내가 구하지 못할 것 같나? 원한다면 지금 바로 그대의 손에서 구할 수 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안 움직이는 것이지.”

사내는 남하림의 눈동자를 주시했다.

스윽.

그는 손에 힘을 풀었다.

신소소가 재빨리 남하림의 곁으로 달려왔다.

“됐나?”

“고맙군. 앞장서시오.”

사내가 먼저 신형을 날렸다.

유미령이 다가왔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지 마시고 신무맹으로 가면 됩니다.”

“조심하세요.”

“그렇게 하지요.”

파앗!

이번에는 남하림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이휘연과 당무독이 소식을 듣고 나타났다.

당무독은 사라진 남하림의 기를 찾았다.

“앗, 그새 사라졌네!”

“잠시 다녀온다고 했습니다.”

“휘연 형, 따라가 봐야지 않겠어요?”

“아니다. 다녀온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된다.”

“하아, 누군지 대단한 인물이네요. 신무맹 코앞에서 사고를 칠 생각을 하다니. 보통 인물은 아닌가 봐요.”

“그래도…… 부장보다 더한 인물이 있을까?”

“아, 하하, 그건 맞습니다. 그만 돌아가시죠.”

* * *

남하림을 멀리 데리고 나온 사내.

그는 창천십문의 일인 창천용문의 수장 용문자였다.

‘오는군.’

용문자는 혼자서 따라온 남하림을 보았다.

창천주의 몸이 될 만한 두 명의 후보.

걸황 남하림은 그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휘익.

남하림이 내려섰다.

“여기가 그대가 원하는 곳이오?”

“조용하지 않은가?”

“뭐, 충분한 것 같군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원하는 대로 됐으니 바로 시작하겠소?”

남하림은 바로 공격 자세를 잡았다.

이제 당황한 쪽은 용문자, 그였다.

“걸황, 그대를 부른 이유가 궁금하지도 않는 모양이지?”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누구인지도 관심 없소이다. 창천의 인물이라면 모든 설명이 되니까. 결국 싸워야지 않겠소이까?”

“…….”

용문자는 대답을 못했다.

그의 말이 맞지만 왠지 무시를 당한 기분이다.

“아니…… 난 그대에게 여기에 온 이유를 알려줘야겠다.”

“듣고 싶지 않겠다는데도 굳이 하려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소이다. 바쁘지 않소이까?”

“난 바쁘지 않다. 시간은 얼마든지 많지.”

남하림은 주위를 살폈다.

“거참. 이왕 알려주겠다고 하니, 편안하게 앉아서 듣겠소이다?”

“그건 맘대로 해도 좋아.”

털썩.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하림은 근처 평평한 바위에 앉았다.

“걸황, 말했듯이 나는 창천의 사람이다. 창천십문 중 창천용문을 맡고 있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오?”

“창천주께서 그대의 목을 원하셨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서로 적이니까.”

‘이런 단순한 놈…….’

걸황은 중원에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똑똑하기는 뭐가 똑똑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속이 막혔다.

“……혹시 알고 있나? 그대의 몸은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그게 무슨 말이지요? 내 몸의 주인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드디어 궁금한가?”

갑자기 남의 몸에다 주인 타령이라니.

이상한 놈이었지만, 남하림은 일단 그의 말대로 따라주기로 했다.

“궁금하긴 하오.”

“하하하. 궁금하다고 하니 알려주고픈 생각이 없군.”

피식.

남하림은 어이가 없어졌다.

‘뭐 이런 놈이 있지?’

첫인상은 대범하면서도 사내다워 보였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점점 사라졌다.

사내는 여전히 싱글거렸다.

“특별히 그대에게 가르쳐 주지. 왜냐하면 우린 같은 신세라고 할 수 있거든.”

“……?”

“창천주가 차후 세대를 이어가려면 새로운 육체가 필요하지. 현재 무림에 후보자가 두 명 있다네. 그중 한 명이 걸황 그대이지.”

“풉, 푸하하하하!”

남하림은 대소를 터뜨렸다.

용문자는 기분이 나빠졌다.

“왜 웃지?”

“우리가 같은 신세라고 한 것을 보니 나머지 한 명은 당신이라는 말인데. 당신은 웃기지 않소?”

“…….”

“창천주가 원하면 그의 몸이 되어 줘야 하는 것이오? 창천주도 웃기지만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당신도 웃기는군. 창천주가 몸을 달라고 하면 가만히 넘겨줄 것이오?”

남하림은 아직 모르는 사실.

그와 달리 용문자는 창천주에 의해 금제를 당한 채였다.

용문자는 굳어진 얼굴로 남하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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