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55화 (256/328)

255. 창천용문

칠주야 전.

남하림이 신무맹에서 나간 다음 날이었다.

역위천은 양삼의 방문을 받았다.

“양 총관이 무슨 일인가?”

“신무맹에서 지내는 건 어떠하십니까?”

“불편한 것은 없네.”

“다행입니다.”

스윽.

양삼은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소매 끝에서 한 장의 서신을 꺼냈다.

“이건 뭔가?”

“읽어보시면 됩니다.”

역위천은 서신을 펴서 읽었다.

의외의 인물이 쓴 내용.

‘걸황이…….’

남하림이 적은 글이었다.

어제 잠시 출타한다던 남하림이 남긴 서신.

그는 한 번에 서신을 읽었다.

‘황금 일만 냥짜리 의뢰.’

뜻밖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양 총관, 맞는가?”

“맹주님께서 떠나시면서 하루 뒤에 역 태상께 드리라 했습니다.”

“잠시 출타를 한 게 아니었군.”

“네, 그렇습니다.”

“이건 당연히 비밀이겠지?”

양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르르!

역위천은 화기를 일으키며 서신을 불태웠다.

“알겠네. 그의 뜻을 따르지. 내가 돈을 밝혀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신무맹의 태상이라 가는 것이네.”

“알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 *

두두두두-

호양평의 대지가 흔들거렸다.

‘시간 하나는 정확하게 지키는군.’

남하림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드디어 오는군요.”

“……!”

신명항과 기성의 몸은 이미 뒤로 돌아서 있었다.

걸황 남하림이 기다리고 있는 인물.

진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창천광문이 호양평에 나타났던 그 순간만큼 강맹한 힘.

불쑥.

저 멀리 하늘 끝에서 솟구쳐 오른 두 개의 깃발.

호천기와 함께 걸린 용병기가 분명했다.

“이런…….”

“하하하하!”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호양평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천의 전인.

중원에서는 용병왕으로 알려진 인물.

역위천이 이끄는 호천의 무인들이었다.

“걸황,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보는 바와 같습니다. 설백진, 그자가 너무 쉽게 넘어가더군요. 수십 년 동안 본 모습을 숨긴 그가 할 만한 행동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하하하하, 역시 걸황이외다.”

자신들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본 설백진.

하지만 그보다 또 한 수 앞선 남하림.

이제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역위천의 등장에 크게 놀란 인물은 건너편 진영에도 한 명 존재했다.

“……!”

호천의 무인들이 호양평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불사무혼 역위천…… 호천의 전인.’

예상하지도 못한 인물.

계획대로라면 그는 호양평에 나타나지 않아야 했다.

신려세가와 주천을 잡기 위한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오히려 반대로 혈사천이 잡힐 수 있었다.

“당했군.”

호천까지 나타난 이상 이번 싸움은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한다?’

물러나야 하는 것이 맞았다.

문제는 모양새가 나쁘다는 것.

“명분도 잃고 이기지도 못하고…… 완전 참패군.”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목숨이었다.

살아 있어야 복수를 할 수 있다.

설백진은 상황 판단이 빨랐다.

“뒤로 물리도록.”

두두둥! 두두둥!

후퇴 신호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호양평으로 나가던 창천광문의 무인들이 멈추더니, 곧바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신명항이 앞을 가리켰다.

“걸황, 저들이 뒤로 물러나는군.”

호천의 무인들이 나타나자 설백진은 곧바로 물러났다.

‘상황을 정확하게 읽었어.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군.’

보통 인물들이라면, 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경우 그대로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백진은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는 목숨을 아끼는 인물이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때가 아니네요.”

남하림의 계획은 혈사천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

물러가는 적을 억지로 쫓다가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휘익!

역위천이 다가왔다.

창천광문의 무인들을 후퇴시키는 설백진을 본 역위천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라…… 저 녀석, 왜 뒤로 빠지지? 한바탕 싸우고자 했더니.”

“똑똑한 사람입니다.”

“겁이 많은 게 아닌가?”

“아닙니다. 두렵다면 오히려 더 공격했을 것입니다.”

“에이, 재미없군.”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것도 좋습니다. 이번 사건이 사파 연합에는 크게 도움이 되겠지요.”

걸황과 역위천이 등장하긴 했지만, 결과는 신려세가의 승리로 알려질 것이었다.

설백진과 혈사파의 패배는 중원 사파 무림에 신려세가를 확실히 인지시킬 사건이기도 했다.

* * *

설백진은 창천광문과 혈사천의 수하들을 뒤로 물렸다.

확실하지 않는 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걸황…….’

그는 후퇴하는 수하들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고 전방을 노려보았다.

아쉬운 눈빛.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 수라도 겨루어 보고 싶은데.’

타앗!

설백진은 신법을 펼치며 호양평으로 나섰다.

“거어어어어얼화아아아아앙-!”

내력을 실은 목소리가 남하림을 불렀다.

호양평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들의 시선이 중앙으로 내려앉은 설백진을 향했다.

피식.

남하림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냥 가기는 아쉬운가 보군요.”

멀리서 설백진이 자신을 부르며 도발을 하고 있었다.

물러나는 마당에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설백진의 속뜻을 알 듯했다.

“걸황, 내가 대신 나갈까?”

“아닙니다. 저자가 찾은 사람은 본인입니다. 다른 인물이 앞으로 나온다면 상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것인가? 아쉽군. 실력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스윽.

이번에는 신명항과 기성이 함께 다가섰다.

“조심하게.”

“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하림은 세 명의 인물들과 시선을 마주친 뒤 돌아섰다.

그러고는 호양평에서 기다리고 있는 설백진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특유의 느릿한 걸음걸이.

남하림은 설백진의 삼 장 앞에서 멈춰 섰다.

“본인을 불렀습니까?”

“오랜만이지 않나?”

“반가운 사이도 아닌데요.”

“크크크. 그런가. 하긴 우린 반가운 사이는 아니지.”

남하림과 설백진의 시선이 부딪히자 불꽃이 튀었다.

“도망가려면 그냥 가는 게 좋지 않습니까?”

“누가 도망간다는 것이지?”

“딱 봐도 도망이 맞지 않습니까.”

“이건 작전상 후퇴라는 거라네.”

“후후후, 알겠소이다. 그렇다고 하죠. 그럼 시작해 볼까요?”

스슥.

설백진과 남하림은 원을 그리면서 옆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서로 위치를 바꾼 두 사람.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눈빛이 살벌했다.

단숨에 숨통을 끊기 위한.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찾기라도 하듯.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타아앗!

파아앗!

설백진과 남하림이 서로를 향해 움직였다.

두 사람의 동작은 간단했다.

손을 뻗는 두 사람.

누가 먼저 닿느냐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뻗은 설백진의 손이 남하림의 가슴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남하진의 손도 설백진의 복부 단전에 닿아 있었다.

퍼어억!

푸우욱!

일격을 당한 남하림과 설백진이 뒤로 물러났다.

스윽.

남하림은 가슴을 만졌다.

예전에 당했던 무력기가 틀림없었다.

‘두 번은 안 당하지.’

남하림의 몸에 단전에서 올라온 내력은 없었다.

설백진은 양천의 내력인 무단기 또한 내력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남하림에게 무력기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설백진은 그때까지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줄 알았다.

‘……이런?’

단전에 내력이 막힌 듯했다.

다행한 것은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라는 것.

호신강기가 남하림의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무단에 의해 단전이 완전히 막힐 뻔했다.

“이것이…… 양천의 무공인 모양이지?”

“아쉽습니다. 완전히 내력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는데.”

“…….”

불완전한 몸 상태로는 계속 싸울 수 없다.

양천의 전인이라고 해도 무력기가 충분히 먹힐 줄 알았건만.

한 번 수를 잘못 짚자,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놓였다.

우선 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먼저였다.

“광문오군들은 내 주위를 막아라.”

휘이이익!

휙!

네 명의 광문오군들이 재빨리 설백진을 막아섰다.

하지만 남하림은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쿠아아아아앙-!

양손에 펼쳐진 강룡십팔장의 강기가 설백진을 막아선 네 명의 광문군장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호양평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것이 걸황의 무공인가.’

남하림의 무공은 강했다.

광문군장들은 몸이 굳어졌다.

네 사람이 합친 내력을 단숨에 뚫을 뻔하지 않았는가.

걸황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낼 수는 없었다.

휙!

광문삼군 안동학은 재빨리 앞을 막아서고 연막탄을 던졌다.

퍼어엉!

그들 앞으로 시야를 가리며 연막이 피어올랐다.

“어딜……!”

남하림은 손을 휘저었다.

쏴아아아아-

강풍이 몰아치면서 앞을 가렸던 연막을 단숨에 치웠다.

“……빠르군.”

남하림 앞을 막아선 네 명의 광문군장들.

하지만 그들 뒤로 설백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쳇.’

그가 사라진 이상 이들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대들의 주인에게 전하시오. 다음에 만날 때는 도망가지 않고 끝을 내는 게 좋겠다고.”

“…….”

휘리리릭!

이제는 광문사군이 된 네 사람은 굳은 인상으로 물러났다.

남하림은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피식.

“약간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때 복수는 한 셈인가.”

설백진의 무력기에 당했던 기억을 씻어낼 수 있었다.

‘당분간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무단에 의해 설백진의 내력에 손상을 갔을 터.

호양평의 대전은 마무리가 이상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이날의 결과는 사파 무림이 설백진의 혈사천과 완전히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 * *

창천주는 보고를 받았다.

호양평에서 일어난 사건.

설백진이 걸황과의 대결에서 밀렸다.

“광문자가 졌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지다니…… 지금쯤이면 혼자서 자책을 하고 있겠군.”

창천주는 그의 성격을 잘 알았다.

“한 번 정도는 잘난 체하다 당할 수 있음을 알려줄 필요가 있지. 그 녀석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광문자는 좀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게 개벽단을 몇 알 먹여야겠어.”

“알겠습니다.”

“빨리 움직이도록. 조만간 그 녀석의 대혼술법에 무언가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대혼술법에는 완벽함이 없었다.

창천주인 그 또한 이십 년을 넘게 영혼이 부서지는 고통을 참아냈다.

완벽하다고 보았던 자신 또한 대혼술법에 의해 혼란해진 정신을 긴 시간 동안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점점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만 완벽하게 처리된다면…….’

무림에 나섰을 때 앞을 막아서는 것들은 모두 없애 버릴 것이었다.

유일무이한 존재.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음…….’

문득 남하림이 생각났다.

끝까지 싸운 것은 아니지만 설백진을 이길 정도면 재고를 해봐야 할 문제였다.

‘이대로 점점 기세가 커진다면.’

신무맹의 맹주에 올라섰다.

양천에 현천의 전인까지 되었고.

그의 주위에 균천과 호천, 주천까지 함께하고 있다.

만일 계속해서 놓아둔다면.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음…… 조금 부족해도 안전한 게 최고일 수도 있지.’

창천주는 결정을 내렸다.

“창천용문을 데리고 오도록.”

“넵, 알겠습니다.”

잠시 뒤.

동굴 밖으로 이십 대 후반의 젊은 사내가 접근했다.

그는 동굴을 향해 큰절을 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무공은 잘되고 있는가?”

“사부님께서 주신 무공을 최선을 다해 익히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익혔느냐?”

“창천신공의 칠 단계를 익히고 있습니다.”

‘으음…… 칠 단계라…….’

그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다만 문제는 작년까지 육 단계를 익히고 있었다는 것.

창천주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창천용문이 만약 창천주의 얼굴을 보았다면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군.’

창천주는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창천용문의 수준이라면 일 년이 지난 지금은 팔 단계를 넘어서야 했다.

그런데……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다.

‘이놈이 딴생각을 하고 있군. 설마 내게 몸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니겠지?’

의심의 눈빛.

창천주와 창천용문 둘 사이에는 모든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삶과 죽음까지도.

그런데…….

마음이 바뀌고 있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군.’

창천용문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후후후, 네놈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 손을 벗어날 순 없다. 언제든지 네놈을 죽일 수 있지.’

창천주는 창천용문이 어릴 적 머릿속에 금제를 가해놓았다.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창천주의 인상은 굳어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다정했다.

“잘하고 있군.”

“감사합니다, 사부님.”

“너에게 한 가지 명을 내리마.”

“무엇이옵니까?”

“그를 죽여라.”

“…….”

“걸황을 찾아 당장 그의 목을 가지고 오너라.”

창천주의 명.

의외였다.

그 또한 창천주의 몸이 될 만한 그릇이었다.

그런데 걸황의 목을 베라는 의미는…….

창천주가 대혼술법을 펼칠 대상이 본인이라는 뜻이다.

당장은 거부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그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는 제약을 제거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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