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43화 (244/328)

243. 창천상가

양진명이 가지고 온 계약서.

남하림은 계약서의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중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멈칫.

남하림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서 잠시 멈췄다.

‘이건…….’

창천상가라는 이름.

#NAME?

다섯 장의 계약서 모두 같았다.

‘창천상가.’

남하림은 그들이 창천과 연관이 있음을 단번에 알았다.

“아저씨, 창천상가는 어디에 있는 곳입니까?”

“강서성 인근 주주 석봉에 있습니다. 강서성으로 소소하게 거래하는 상가로 알고 있습니다.”

“창천상가와 다섯 분은 무슨 연관이라도 있나요?”

“그렇지 않아도 알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공신 해정 님의 유일한 가족으로 전대 상가주가 그분의 동생이라 했습니다. 지금은 전대 상가주의 아들이 수장으로 있지요 사대장인이신 네 분들이 사부님께 은혜를 갚고 싶으시다면서 그들의 재산권을 모두 창천상가에 돌려놓았습니다.”

“그런 사이였군요.”

그런 인연이었다면, 충분히 이해 갈 만한 이야기였다.

끄덕.

궁금했던 것들이 모두 해결되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닙니다. 공자님께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공신 해정이 남천상국에 접근한 이유.

결국은 창천을 운용할 자금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젠 그들이 창천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할 차례였다.

문제는 증거를 찾을 방법.

그때, 이어진 양진명의 말이 구세주처럼 들렸다.

“공자님, 그렇지 않아도 며칠 뒤에 창천상가로 표행을 떠날 계획입니다.”

“……!”

창천상가에 갈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곳에 가면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저씨, 그 일행에 저도 같이 끼어야 할 것 같네요.”

“그 모습으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중원에서 공자님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 아하하, 당연히 표사로 변장해야겠지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남하림은 대총관전에서 곧장 귀빈각으로 들어섰다.

“어, 휘연 형.”

“왜?”

“오늘은 웬일이야? 희미 누나하고 놀러 안 갔어?”

“어머니께서 오늘은 여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신다고 하더군.”

“소소도 간 모양이구나.”

“완전 신이 나서 물 만난 고기처럼 달려가던데요.”

팽유도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 누워 있던 탈혼마제도 없었다.

“노인장은 어디 가셨어?”

“국주님께서 좋은 술이 있다고 하니 마노도 신나게 가셨어요.”

“아하하!”

탈혼마제도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과 달리 사회생활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까닥.

남하림은 손을 움직이며 일행을 모았다.

“잠깐만.”

황보궁까지 포함하여 여섯 명.

남하림은 서문고에서 알아낸 내용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창천상가라…… 이름에 그냥 박아놨네. 그냥 답이 나와 있네요.”

“유도 말대로 무림을 무시했도 한참 무시했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야. 설마 우리가 그 사실을 알게 될 줄 알았을까?”

팽유도와 당무독이 한마디씩 뱉었다.

“두 사람 말이 맞아. 그들은 무림을 완전히 바보 취급했어.”

남하림의 말이 맞았다.

“부장, 창천상가에 가서 조사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며칠 뒤에 창천상가로 표행을 나간다네. 표사로 위장해서 갈까 해.”

“하림 형, 우리 모두 가는 건가요?”

“전부 갈 필요는 없고 두 명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번쩍!

팽유도와 황보궁이 손을 들었다.

“두 사람이 바로 지원을 해주니 고마운데. 근데 표사를 변장하기엔 유도와 궁은 너무 어려 보여.”

“부장, 내가 함께 가지.”

이휘연이 나섰다.

“휘연 형이 함께 가준다면 좋지.”

창천상가으로 가는 표행에는 남하림과 이휘연이 가기로 결정했다.

“부장, 우린 어떻게 할까?”

“무독은 계속해서 네 분의 행적에 대해서 알아봐 줘. 나머지는 평소대로 지내면 될 거야.”

“알았어요. 근데…… 희미 누나와 소소에게는 사실대로 말해?”

“표행 갔다 오는 데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고 하니까, 잠시 급한 일이 있어 나갔다고 해줘.”

“알겠어요. 두 분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걱정 마. 내가 위험한 일은 잘 안 하잖아.”

“그러긴 하죠.”

* * *

설백진은 천주좌에 앉은 채 몰려온 인물들을 노려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경의 눈빛으로 올려다보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시선은 종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 새끼들이…….’

중원 무림에 파다해진 소문.

혈사천주 설백진이 가짜라는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혈사천으로 몰려온 자들이었다.

“천주님, 소문이 사실입니까?”

혈공전주 장호석의 목소리에는 이미 의심이 가득했다.

“장 전주. 내가 거짓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

“그놈들의 말을 믿으면서 본 천주의 말은 믿지 않는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천주님께서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증거를 보여주시면 될 것입니다.”

빠드득!

설백진은 이빨을 갈았다.

이상하게 일이 꼬여 버렸다.

“본인이 본인인 것을 어떻게 증명하라는 거지?”

“소신에게 영신종(靈神鐘)이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유천의 신물입니다.”

장호석은 손바닥만 한 투명한 종을 꺼냈다.

설백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영신종을 가지고 있었다고?’

영신종.

신령이 깃들었다 하여, 귀신의 혼령에 반응한다는 종이었다.

존재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

설백진은 장호석이 앞으로 내민 영신종을 노려보았다.

“천주님, 영신종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됩니다.”

“…….”

영신종이 부서질 듯 매섭게 노려보던 설백천은 결국 손을 뻗어 영신종을 잡았다.

이 종이 정말로 진실을 밝혀내든 아니든,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

가짜임이 밝혀지더라도, 힘으로 누르면 될 일이었다.

“…….”

그가 종을 잡은 순간.

영신종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고요할 뿐.

‘별거 아니군.’

그렇게 설백진이 종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였다.

우우우웅-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는 영신종.

대애애앵-

작은 종소리가 천주전을 울렸다.

“가짜……!”

“…….”

설백진은 영신종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작 이런 잡기 때문에. 어이가 없군.”

빠직!

설백진은 영신종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영신종이 가루가 되며 부서졌다.

채애애앵!

까아아앙!

설백진을 향해 장호석을 비롯한 십여 명이 일제히 도검을 꺼냈다.

“정체를 밝혀라!”

“…….”

“천주님을 어떻게 했느냐?”

“어떻게라.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 크하하하!”

우렁찬 대소를 터뜨린 그가 어느 순간 웃음을 뚝 그쳤다.

설백진이 천주좌에 앉아 그들을 노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명령 하나에 목숨을 걸었던 수하들.

그런 수하들이 이제는 적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모든 게 그놈 때문이군.”

남하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따악!

설백진은 손가락을 튕겼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대전으로 들어서는 무리들.

혈백천무인(血白天武人)

혈사천주 설백진의 직속 수하들이었다.

채애애앵!

혈백천무인들은 안으로 들어선 뒤 순식간에 십여 명을 포위했다.

설백진은 웃음이 나왔다.

“크큭, 어떤가? 단 한 번이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주도록 하지. 유천을 버리고 창천을 따르겠다면 살려주마. 검을 내려놓아라.”

“……!”

부르르-

장호석의 전신이 떨렸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는 천주님을 죽이고, 이번에는 유천을 배반하라 입을 놀리고 있었다.

“당신, 본 천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군.”

“만만하지 않겠는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유천 정도는 원래부터 본인의 안중에도 없었다.”

휘익!

장호석의 검을 설백진의 앞을 겨누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군. 당신의 목으로 천주님의 원수를 갚겠다.”

“능력도 안 되는 놈들이 어디서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군. 쯔쯔, 당장 이 자리도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당신은 우릴 잘못 봤어!”

장호석은 인상을 쓰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유천의 전사들은 안으로 들어오라!”

콰아아앙-!

이번에는 장호석의 명에 수백 명의 무인들이 대전에 밀려 들어왔다.

유천전사.

설백진 또한 그들에 대해 잘 알았다.

“호…… 이놈들이 유천전사라는 무인들인가.”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던 유천전사(幽天戰士)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백진이 유천의 전인이라 하나, 유천전사의 수장은 비밀리에 유천의 무인들 사이에서 전수되고 있었다.

“유천전사의 수장이 장 전주, 그대였군.”

“맞소.”

“크크큭, 장 전주, 이들이 본인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구천마제에게도 이기지 못했던 유천이 본인을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설백진은 유천전사를 보며 비웃었다.

“천주님도 모르시는 것을 네놈이 어떻게 알겠느냐. 유천전사는 오직 유천의 존폐가 걸린 위기에서만 나타나는 존재. 구천마제와 싸울 당시에도 유천전사는 나올 필요가 없었지. 당시에는 천주님이 계셨으니까.”

“허어…… 과연. 그건 몰랐던 사실이군.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볼까?”

설백진은 전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 * *

다그닥. 다그닥.

표사복을 입은 두 사람.

창천상가로 떠나는 표행길에 남하림과 이휘연이 동행했다.

중길은 갑자기 남하림이 표사로 변장한 뒤 동행하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거기에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가는 일정이라니.

남하림은 창천상가에 가면 자신들을 일반 표사들처럼 대하라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중길은 상부에서 하는 일을 따르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표행을 나선 지 이틀째.

창천상가가 있는 석봉에 들어섰다.

표행 책임자 중길이 남하림의 곁으로 다가왔다.

“공자님, 도착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는 표사로 대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각. 다각.

석봉의 중심가를 지나가는 남천상국의 표행.

짐마차들 위로 남천상국의 표기가 펄럭였다.

마을 중심가를 반각 정도 벗어나자 도착지인 창천상가가 나타났다.

‘흐음…….’

한눈에 보기에는 일반적인 상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휘익!

중길이 말 위에서 내려섰다.

“중 형, 어서 오십시오.”

“하하, 요 형, 그동안 잘 지냈소이까?”

두 사람은 친분이 있는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요덕철은 표행의 물건들을 가볍게 스치듯 훑어보았다.

“이번에도 많이 가지고 오셨구려. 가주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좋은 술을 준비해놓았소이다.”

“고맙소이다.”

남하림은 창천상가로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폈다.

이휘연의 전음이 들렸다.

[부장, 특별히 이상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아니, 이상해.]

[어디가?]

[못 찾는 게 정상이야. 여긴 너무 일반적인 상가의 모습이거든.]

[그게 이상한 건가?]

[응. 이곳은 석 달에 한 번씩 남천에서 정산을 받고 있어.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금액이야.

근데 상가의 규모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 말이 안 돼. 거기다 걸비의 보고에 의하면, 청렴하게 산다는 소문이 돈다더군.]

[돈을 딴 곳에 쓴다는 뜻이군.]

[후후후, 맞아.]

이상적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한 상가의 모습.

남하림은 너무 이상적인 모습에서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예상대로 수상한 곳이 틀림없어.’

중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 표사와 독 표사는 그것들을 들고 오게. 나머지는 창고에 가서 물건을 내리는 걸 도와주면서 확인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남하림과 이휘연이 양쪽에 서서 나무 상자를 들었다.

묵직한 느낌의 나무 상자 안에는 황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경내에 들어서자 중년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창천상가의 가주.

건장한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의외인데……?’

상가의 인물이기보다는 무가에 가까워 보이는 풍채.

그가 중길을 반갑게 맞이했다.

“하하하, 중 상두. 어서 오시게.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아닙니다. 늘 오는 길이라 멀지 않았습니다.”

중길은 뒤를 돌아서며 손짓을 했다.

“넵, 상두님.”

남하림과 이휘연은 얼른 상가주 해주민 앞으로 나무 상자를 내려놓았다.

“열어라.”

“허허허, 굳이 확인을 안 해도 되는데…….”

“아닙니다. 일은 정확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딱딱.

남하림이 나무 상자를 열었다.

“오호…….”

상자 안을 본 해주민의 눈동자가 커지며 탄성이 나왔다.

황금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와, 그를 지켜보는 시선.

남하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해주민의 행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황금을 보면서 흔들거리는 눈동자.

그건 욕심이 틀림없었다.

스윽.

해주민은 황금을 한번 만져본 뒤 아쉬운 듯 다시 내려놓았다.

“좋군. 두 사람은 안으로 가지고 오게.”

그 자리에 상가의 수하도 있었건만, 그는 남하림과 이휘연에게 명령했다.

그는 가까운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남하림과 이휘연은 상자를 닫은 뒤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에 내려놓게.”

“알겠습니다.”

황금이 든 상자를 집무실에 내려놓았다.

“먼저 나가보게.”

“알겠습니다.”

남하림과 이휘연이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드르륵.

문이 닫힌 방 안에서 어딘가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남하림과 이휘연은 서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 창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상적이라면 이 저작권료가 담긴 상자는 상가의 가주가 아니라, 상가에서 관리하는 게 맞았다.

[이상하군]

[저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 * *

저녁이 깊었다.

두 사람은 창천상가에서 베풀어준 저녁 연회를 마친 후, 숙소에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쿨쿨.

표사들과 함께 잠을 자던 남하림과 이휘연이 일어났다.

[느꼈어?]

끄덕.

수상한 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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