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44화 (245/328)

244. 해주민

어둠이 짙은 밤.

휘익!

상가주 집무실로 인영들이 소리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스르르-

선두에 선 인물이 문을 열었다.

집무실에는 상가주 해주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창천령인님, 오셨습니까?”

“수고가 많군.”

사내가 거만하게 상가주를 내려다보았다.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따끈따끈한 금덩어리가 도착했습니다.”

“후후후, 남천상국에겐 또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군. 항상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게 아쉽군.”

“소인도 같은 생각입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한번 보고 싶군. 그것을 가지고 오게.”

“알겠습니다.”

해주민이 한쪽 벽으로 움직였다.

드르르륵-

손으로 밀자 한쪽 벽이 안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창천령인과 함께 온 일행이 열린 벽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이 황금이 든 나무 상자를 들고 나왔다.

창천령인은 나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을 가득 채운 황금.

스윽.

“여기 있습니다.”

해주민은 창천령인에게 장부를 내밀었다.

남천상국에서 황금과 함께 온 장부.

총판매금액에서 창천상가가 받아야 할 금액이 적혀 있었다.

“확실한가?”

“장부에 적혀 있는 대로 황금이 정확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창천령인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황금은 정확하게 들어 있겠지. 하지만 장부가 사실인지 모르겠군.”

“무슨 말씀이신지……?”

휘익!

창천령인은 장부를 흔들었다.

“갈수록 황금량이 적어지는 것 같지 않은가? 장부를 고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야.”

“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개를 숙인 해주민의 눈동자가 잠시 잠깐 흔들거렸다.

‘어…… 어떻게 알았지?’

그는 몇 해 전부터 장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가짜 장부를 창천령인에게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을 가지고 남천상국에 가서 확인할 수 없지 않은가.

한 번, 두 번 시도가 이어졌지만, 창천령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성공이었다.

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창천령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보게.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소인을 믿어주십시오.”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할지 모르겠군. 난 사람을 안 믿는다고.”

“아…… 네에.”

“혹시나 네놈이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싶어 하는 말이니 잘 새겨듣도록. 네가 해정 님의 마지막 후손으로 알려졌다고 해서 내가 네놈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알아들었나? 우린 얼마든지 다른 인물을 만들 수 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

창천령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를 노려본 후 밖으로 나갔다.

집무실에 혼자 남은 해주민.

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배어 나왔다.

“……후후, 네놈들이 아무리 겁을 줘도 나를 죽일 수 없어. 새로운 인물을 만들겠다고? 내가 죽으면 남천상국에서 나오는 돈을 받을 수 없을 텐데.”

남천상국에서 알고 있는 해정의 후손은 그밖에 없다.

‘그래도 당분간은 적당히 해야겠군. 만에 하나 정말로 다른 인물들을 만들지 모르니.’

툭툭.

해주민은 바닥을 두드렸다.

‘정 안 되면 여기서 그만두고 도망가면 된다. 내 모든 것들이 여기 발밑에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후후.’

수십 년 동안 모아온 수많은 돈.

언제까지 꼭두각시 인형처럼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 없었다.

‘아직 여유가 있어. 좀 더 끌어모은 뒤 몰래 가지고 나가는 거야.’

* * *

창천상가를 빠져나가는 무리들.

남하림과 이휘연은 밖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전부 들었다.

특히 기감이 뛰어난 두 사람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생각대로 해주민은 가짜가 분명했다.

[부장, 저들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남하림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휘연의 말처럼 미행을 해야 할까.

아니면…….

[됐어. 그냥 둬.]

그들을 따라가 잡아들인다고 해서 당장 남천상국과 창천과의 관계를 끝낼 수 없었다.

창천의 인물을 들쑤시듯 직접 건드리는 것은 당장 남천상국에 좋지 않았다.

남천상국은 자연스럽게 창천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남천상국과 창천 사이에 이어진 끈을 끊어야 해.’

그들 사이의 끈.

창천상가의 가주 해주민.

그가 죽거나 사라진다면 계약서는 효력이 사라지고, 다시 작성을 해야 할 것이었다.

[휘연 형, 저자를 잡아가자.]

[상가주를?]

[상국으로 끌고 가야겠어. 가짜잖아.]

[상가주가 없어지면 찾을 텐데.]

[짐마차에 잘 넣어두면 돼. 아무 못 찾도록.]

[그게 좋겠군.]

남하림과 이휘연은 불이 커져 있는 집무실로 들어섰다.

해주민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집무실을 나오려는 찰나.

휘익!

그의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무신경하게 뒤를 돌았다.

“헉…… 누구냐?”

눈앞에 나타난 두 명의 인물.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네…… 놈들은……?”

퍽! 퍽!

남하림은 곧바로 그의 혈을 눌려 점혈했다.

목소리와 함께 단번에 온몸이 굳어졌다.

“자, 이제 잘 숨겨놓죠.”

* * *

아침이 밝았다.

예상대로 창천상가는 난리가 났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침실에 있었던 가주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요덕철은 무엇인가 생각이 났는지 집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비밀 공간이 있는 벽을 밀었다.

‘없어졌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범인은 황금과 함께 가주를 끌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정신없는 창천상가와 달리, 남천상국 일행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허어. 대체 무슨 일이래?”

“그러게 말일세. 가주가 저녁 사이에 사라지다니…….”

중길은 표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남하림과 이휘연을 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긴 한데…….’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두 사람은 함께 자고 있었다.

이번 일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다.

설사 연관이 있다고 한들 확실하지도 않으니, 조용히 있는 것이 좋아 보였다.

“중 형!”

멀리서 중길을 부르면서 요덕철이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주님을 찾으셨습니까?”

“그게…… 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허어……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어떻게, 저희들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다른 곳에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잘됐군요. 빨리 연락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겠지요…… 걱정 마시고 중 형께서는 일행과 함께 그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가주님께서 행방불명이신데…… 어떻게 저희들이 먼저 떠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상국의 일로 바쁘지 않겠습니까. 떠나셔도 됩니다.”

“허어…….”

중길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처럼 계속해서 창천상가에 있을 수는 없었다.

“알겠소이다. 상국에서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라도 고맙소이다.”

일각 뒤.

남천상국 일행은 창천상가를 빠져나왔다.

남하림과 이휘연은 표사들 틈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짐마차 깊숙이 박혀 있는 자루더미가 앞에서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조용히 잘 있네. 착하기도 하지.’

* * *

혈백천무인과 유천전사의 대결.

수적 우위도 있었지만, 유천전사의 무위가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혈백천무인들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뒤로 밀리는 듯했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설백진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이놈들이…… 이렇게 강했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혈백천무인을 조직했다.

만에 하나 그의 정체를 들켰을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유천에서 가짜인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혈백천무인의 기량이라면 충분히 유천을 접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힘으로 누른다면 자신을 따를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건 자만이며 오산이었다.

유천의 무인들은 사람을 따르는 게 아니라 유천의 전인을 따랐다.

이는 유천뿐만 아니라 나머지 구천도 마찬가지였다.

휘이익!

장호석을 비롯한 오인은 설백진을 오행진으로 둘러쌌다.

“크크크. 장 전주, 겨우 다섯 명으로 본인을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는가?”

설백진은 자신만만했다.

기억 속에서 오인의 무공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일 초식에 한 명씩 죽여주마.”

“당신 생각대로 될지 모르겠소이다.”

“하, 내 생각으로는 제일 먼저 장 전주의 목이 날아갈 것 같군.”

타앗!

설백진은 곧바로 파황혈장을 펼쳤다.

구우우우웅-

장호석의 머리를 향해 날아간 혈장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혼자서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정도.

파아아아앗!

오행진이 움직이면서, 설백진의 좌우에 있던 두 명의 인물이 장호석의 옆에 다가서며 내력을 모았다.

콰아아앙-!

세 명의 내력이 합쳐진 강기가 설백진의 혈장을 밀어냈다.

설백진은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면서 의외라는 눈빛을 보였다.

세 사람이 합공을 이어가자 그 위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제법이군.”

그럼에도 설백진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다섯 사람에게 여상히 내뱉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슈우우우웅-

설백진은 완전한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의 주위로 강한 내력이 마치 주변을 짓누르듯 퍼져 나갔다.

그에 대항하는 다섯 명의 힘도 점점 강해졌다.

파아아앙!

다섯 명의 내력과 설백진의 내력은 거의 대등했다.

‘하, 미치겠군.’

설백진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합공일지라도, 유천에 자신의 무공과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무인이 있었을 줄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말이다.

혈백천무인들도 점점 수세에 몰렸다.

“유천전사를 과소평가했나. 하는 수 없군.”

설백진은 혈백천무인을 향해 소리쳤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저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꿀꺽.

설백진의 명에 혈백천무인들이 일제히 환단을 꺼내 삼켰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그들의 전신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

온몸이 터질 듯 근육들이 부풀어 올랐다.

“크아……!!”

동시에 괴성을 지르며 피부가 붉게 변했다.

“장 전주. 잘 봤느냐? 이게 바로 진정한 혈백천무인이라는 것이다.”

“……!”

“적당히 하고 말을 들었다면 같이 갈 수도 있었건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시간 이후로 유천은 사라질 테지.”

“누구 맘대로……! 네놈들은 절대로 유천을 이길 수 없다!”

장호석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휘이이익!

파아아앗-

혈인으로 변한 혈백천무인들이 유천전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아악!”

“괴물…… 이다!!”

전신이 붉게 물든 혈인으로 변한 혈백천무인의 신체는 금강불괴와도 같았다.

티이잉!

까아아앙!

유천전사의 도검이 몸에 꽂히지 않고 튕겨 나왔다.

푹.

스걱.

그에 반해 유천전사들은 한 명씩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장 전주, 우리도 그만 끝을 내지.”

우우우우웅-

설백진의 내력은 끝없이 올라갔다.

동시에 다섯 명을 상대로 한 파황혈장의 십오 초식 분화혈광(焚火血光)이 퍼져 나갔다.

장호석은 눈앞에 다가온 붉은 혈장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이것은 피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

파아아앗!

분화혈광은 동시에 다섯 명의 전신을 지나쳐 갔다.

스르르르-

쿠우우웅.

비명조차 없이 숨이 멈춘 채 바닥에 쓰러졌다.

유천의 멸문은 시간문제였다.

설백진은 대전 밖으로 향해 나섰다.

“모두 죽고 싶은 모양이군.”

유천의 무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 또한 대전 안의 상황을 알았다.

유천전사들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본인을 따르겠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유천의 전인만을 따르기로 맹세했던 그들이었지만, 설백진의 신위에 저절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털썩.

그들 중 한 명이 무릎을 꿇자 한 명씩, 한 명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유천의 무인들이 설백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남천상국에 도착한 남하림과 이휘연.

남하림은 창고에 들어가기 전, 싣고 온 물건들 사이에서 묵직한 자루를 빼냈다.

휘익!

그러고는 자루를 어깨에 둘러맸다.

중길을 향해 인사를 했다.

“수고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자루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몰랐다.

오는 도중, 남하림이 자루를 연 뒤 무엇인가 확인하는 모습을 보았다.

궁금증에 슬쩍 물어보고 싶었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묻지를 못했다.

“형, 가자.”

“그래.”

이휘연은 떠나기 전 그동안 함께했던 일행과 짧게 눈인사를 했다.

남하림은 자루를 맨 채로 귀빈각에 들어섰다.

“앗. 형들이다.”

황보궁이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잘 지냈어? 아무 일 없었지?”

“네. 심심하게 지냈습니다. 어…… 그게 뭡니까?”

남하림의 어깨에 멘 자루를 보았다.

“이거?”

쿠웅!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궁금하면 한 번 봐.”

그들 옆으로 팽유도와 성철각, 당무독이 다가왔다.

“잘 다녀오셨어요?”

팽유도는 인사를 하면서 자루에 무엇이 들었나 고개를 쭉 내밀었다.

스윽.

자루를 푼 황보궁의 손이 멈칫거렸다.

“대…… 형. 이건…….”

“응, 사람이야.”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황보궁은 옆에 세 명에게도 잘 보이도록 자루 입구를 벌렸다.

완전히 굳어버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물.

남하림이 잡아왔다면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었다.

“궁아. 일단 묶어서 안에 들어가자.”

“아…… 네에. 대형.”

황보궁은 입구를 빠르게 묶은 뒤 번쩍 들어 올려 귀빈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당무독이 물었다.

“부장, 누구야?”

“창천상가의 주인 해주민.”

“……상가주를 통째로 잡아왔어?”

“가짜야. 해정의 가족은 없더군.”

“아하…….”

남하림은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을 일행에게 알려주었다.

“정말로 창천의 인물이 맞군.”

“조만간에 이자가 없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상국에서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거야. 아마 사대장인 그분들에게도 연락이 가겠지.”

남하림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 가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사대장인 그분들이 공신 해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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