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42화 (243/328)

242. 단서를 찾다

남천상국의 차기 국주는 일공자 남경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무리 집중을 했다고 하지만, 문을 두드릴 때까지 누가 찾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

게다가 평소라면 문을 두드린 후, 먼저 신분을 밝혔을 텐데.

남경은 하던 일을 멈추고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시오?”

스르르르-

문이 슬며시 열리면서 머리가 쏙 들어왔다.

“헤헤헤, 혀어어어엉.”

“…….”

마치 어린 개구쟁이 시절처럼, 남하림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신무맹의 맹주이자 걸황.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막냇동생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예전과 똑같은 저 모습을 보니 그런 대단한 인물이라는 게 잘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예전처럼 행동한다 해도, 막상 예전처럼 대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 게.”

“뭐야, 형. 말이 왜 어정쩡해? 차라리 높임말을 쓰든지.”

“들어와.”

남하림은 가볍게 뛰어 들어섰다.

“형, 뭐 하고 있었어?”

“그냥…… 내가 하는 일 알잖아. 늘 장부 보거나 서류 정리하는 일이지.”

스윽.

남경의 책상에는 호남성 각지에서 올라온 장부들과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상국 일은 할 만해요?”

“그럭저럭.”

“흐응, 할 만한가 보네.”

“왜 그렇게 생각하냐?”

“옛날부터 재미있는 일은 재미없는 척했잖아. 비겁하게 혼자 재미 보려고. 맞지?”

“참 나,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 대단하다.”

남천상국에 있었던 옛날에도, 그런 일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곤 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 있었다.

“앉아라.”

“고마워.”

마주 보며 앉게 되자,

피식.

남경은 갑자기 툭 실소가 터져 나왔다.

중원 최고의 영웅이 막냇동생이었다.

그냥 현 상황이 웃겼다.

“그래, 용건이 뭐냐?”

“그게…… 뭐랄까.”

남하림은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말하기 어려워?”

“응, 많이 곤란해요.”

“곤란한데 나에게 왔다는 건, 도움을 받고자 하기 위함이지?”

“그렇긴 하죠.”

남경도 남하림 못지않게 머리가 뛰어났다.

“혹시 그 곤란한 일이, 상국과 관련된 일이냐?”

“맞아요.”

“그렇군.”

남경의 표정이 애매했다.

남하림같이 대단한 인물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지만, 그만큼 상당히 어려운 일임엔 틀림없었다.

“상국에 있는 다른 사람도 생각해 봤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형밖에 없던걸.”

“음…… 아버지도 모르시냐?”

“비밀리에 움직이는 일이라서 아버지는 제외했어요.”

‘비밀이라. 얼마나 큰일이기에…….’

남경은 이쯤 되자 동생이 무슨 말을 꺼낼지 두렵기까지 했다.

“형, 상국의 모든 자금에 대해서 조사해 보고 싶어.”

“자금 조사? 자금의 흐름을 알고 싶다는 거냐?”

“네. 맞아요.”

남천상국의 자금흐름표.

뜬금없이 찾아와서 하는 부탁이 본 상국에서 제일 중요한 자금흐름표를 보여달라는 것이라니.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심각했다.

남하림이 무작정 찾아오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다.

누군가에 무슨 말을 들었거나, 아니면 직접 들었을지도 모른다.

‘상국의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군. 상국에서조차 모르는 일을 어떻게 알았지?’

정상적이라면 큰일은 결코 그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하림은 그 의미가 뭔지 모르고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찾아온 이유.

국주인 아버지가 아니라, 남경 본인을 찾아왔다.

막내가 자금흐름표에서 정말로 찾는 게 무엇일까.

남하림의 부탁을 거절해야 할까. 아니면 들어줘야 할까.

“안 된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죠. 제가 한 말들은 못 들은 일로 해주세요.”

“포기가 너무 빠르지 않아? 네가 원하는 것을 꼭 봐야 하는 게 아니냐?”

“맞아요.”

“……정말로 나를 믿는 것이냐?”

“당연히. 형제잖아요.”

“…….”

두 사람은 피를 나눈 형제가 분명했다.

어릴 적부터 꾸중 들을 짓은 하지도 않았지만,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한 후에도 변명이나 거짓말은 한 번도 한 적 없는 녀석이었다.

남경은 그 한마디에 결정을 내렸다.

“하림, 네가 요구한다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다만.”

결심을 선 남경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무작정 보여줄 수는 없어. 형제 사이라고 해도, 내가 맡은 위치에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으니까. 자금흐름표를 원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 나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

“역시 형은 남천상국을 이끌어갈 차기 국주가 맞아요. 당연히 이유를 알아야겠지요.”

남하림은 그동안 무림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다.

중요한 내용은 일부러 제외했지만, 구천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남경에게는 엄청난 극비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야.’

남하림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은 소문과 많이 달랐다.

대부분 남하림의 소문들은 무공이 강하다느니 최강이라느니 하는 것들이었을 뿐, 자세한 속사정은 무림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엄청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릴 때는 자기 자신밖에 몰랐던 막냇동생이 중원의 마지막 빛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중원 무림의 신화가 되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설득력은 있어.’

남하림이 자금흐름표를 원한 이유를 알았다.

중원 무림을 어지럽게 만드는 모든 원흉인 창천이라는 곳으로 남천상국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하아, 본 상국에서 그들에게 자금이 나가는 것 같다니…… 이걸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국주인 아버지에게조차 비밀로 진행하는 일.

‘한 번 정도는 조사할 필요가 있다.’

장차 남천상국의 주인이 될 남경이었다.

상국의 자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다면 차후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진 않는다.

남경의 고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걸황이자 신무맹의 맹주인 동생.

남하림을 믿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려는 거냐?”

“이십 년 된 자료부터 볼까 해.”

“그렇게 오래전부터?”

“응. 할 때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마 형에게도 좋을 거야.”

“그렇긴 하지. 알겠다.”

스윽.

남경은 탁자 아래 서랍에서 열쇠를 꺼냈다.

“여기 있다.”

서문고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

몇십 년이 지난 오래된 자료들을 모아둔 지하 서류 보관실이었다.

“고마워. 형이 있어서 다행이야.”

남경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일이라면 중원 무림의 일.

그 중대한 일에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니, 형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끝난 거야.”

남하림은 볼일을 다 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바쁘지 않아?”

“밥시간도 됐는데 먹고 가라.”

“앗, 그럴까?”

* * *

당무독도 구천신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병풍에서 공신이란 두 글자가 나타났다고 했다.

“어이가 없네.”

너무나 뜻밖의 인물이 수면 위로 솟구치듯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

구천신품을 제작한 공신 해정이라니.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힐 단서를 뿌려놓고, 과연 누가 비밀을 풀 수 있을까 구경하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죽었다는 건 거짓말이었군.”

“그렇지. 어디 깊숙한 곳에 숨어 있을 거야.”

“하지만 창천주의 정체를 알았다고 해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

“찾아야지.”

세상의 모든 원흉인 창천주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느낌이 들었다.

입을 쭉 내밀던 남하림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데…… 다들 어디 갔어? 휘연 형은 요즘 얼굴 보기 힘드네?”

“희미 누님이 아침부터 찾아와서 소풍 간다고 했어.”

“와…… 휘연 형도 그 못난이랑 놀아준다고 피곤하겠다…….”

“부장, 아무리 봐도 희미 누님은 못난이까진 아니잖아.”

“아니, 못난이 맞아.”

“허허, 그래그래.”

당무독이 피식 웃음을 지을 때였다.

귓가에 남하림의 전음이 들렸다.

[공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봐야겠어.]

[아, 그럼 그분들도…… 조사를 해보는 게 어떨까?]

[그분들이라면. 중원 장인인 네 분?]

[공신의 제자들이잖아.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해. 다만 이번 일은 걸비 중에서도 극비에 해당하는 일이라는 거 잊지 말고.]

* * *

남천상국에 온 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낮에는 상국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깊은 야밤에는 서문고에 몰래 들어가 장부 서류들을 살폈다.

설렁.

한 손으로 장부 서류들을 넘겼다.

‘양 아저씨가 일은 잘하신다니깐.’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이 정확했다.

거의 이십 년 동안의 자금흐름을 보는데도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다음 연도를 볼까?’

남하림이 보던 장부를 덮으려고 한 순간.

멈칫.

‘뭐지, 이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저작권료.’

휘익.

남하림은 앞서 보던 연도의 장부를 다시 펼쳤다.

중원 장인 네 분.

전기, 전승, 전전, 전결의 앞으로 큰 금액이 지출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 해정의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찾았다…… 이거였어.’

다섯 명의 저작권료에 대한 금액은 상당했다.

‘하, 이 정도의 금액이면 웬만한 무림 단체를 유지하고도 남을 금액이야.’

공신 해정이 일부러 남천상국에 접근할 만한 이유다.

‘결국 돈이었군. 하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창천은 남천상국을 이용했다.

‘내일 양 아저씨를 만나봐야겠어.’

그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알아야 했다.

* * *

남천상국의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정리하며 지시하는 인물.

대총관 양진명.

중원에서는 그를 남천뇌인이라 불렀다.

그가 없이는 남천상국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남하림은 대총관전에 들어섰다.

남천상국의 전 업무들을 취급하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하림은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움직였다.

그래서 그들은 남하림이 옆에 있어도 똑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남하림은 보법을 펼치며 그들의 시선에서 비스듬히 벗어났다.

두 개의 경내를 지나 대총관의 업무실로 들어섰다.

문 옆에도 호위 무사들이 지켜 서고 있었지만, 그들 또한 남하림이 지나가는 모습을 흐릿하게 볼 뿐.

‘어…… 뭐지?’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남하림의 뒷모습을 본 호위무사는 그때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

“이보게, 저기…… 걸황이…… 계시네?”

“에엥? 저분께서 언제 들어가셨는지?”

“……?”

두 호위무사는 안으로 들어간 남하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스으윽.

익숙한 건물 속 수많은 방들을 지나 대총관의 업무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안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엇……?!”

눈앞에서 남하림을 보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사내.

“이런, 제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신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제가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볼일 보시지요.”

남하림은 짧게 고개를 숙인 후,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남하림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양진명이 문 앞까지 나왔다.

“공자님께서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잠시 지나가다 들를 수도 있죠.”

“하하하, 그렇습니까?”

양진명은 웃음을 터뜨렸다.

대총관전은 지나가다가 들린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상국의 맨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찾아오지 않는 한 일부러 지나갈 수가 없었다.

양진명은 의자를 가리켰다.

“일부러 소인을 만나러 오셨을 텐데.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아, 잠시만…….”

양진명은 문밖에 선 수하들에게 당분간 사람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스윽-

탁자에 다시 돌아온 뒤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부탁할 게 있어서요.”

갑자기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부탁이라.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상국의 일입니까?”

“네. 맞아요.”

다른 사람도 아닌 양진명을 찾아온 이유는 상국의 일일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일이십니까?”

“상당히 중요합니다.”

“……국주님께서 아셔도 상관없는 일입니까?”

“음…….”

남하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알아도 상관없지만, 당분간은 비밀로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께서 아신다고 해도 문제는 안 되겠지만, 당분간은 모르시는 게 좋을 듯해요.”

“알겠습니다. 비밀로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궁금하신 게 무엇입니까?”

“저작권료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저작권료라면…… 남천사대장인이신 네 분의 저작권료입니까?”

“네.”

뜻밖의 질문에 양진명은 솔직히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질문.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네 분이 아니라 한 분 더 저작권료를 받는 사람이 있더군요. 근데 따로 저작권료가 개인적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한 곳으로 한꺼번에 나가는 듯해서요.”

‘……음,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은…….’

남천상국의 장부를 보았다는 뜻.

서문고에 들어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대공자께서 열쇠를 주셨군.’

서문고까지 들어가면서 삼공자가 찾아낸 것이 사대장인의 저작권료다?

걸황이자 신무맹의 맹주.

보통 신분이 아닌 남하림이 찾아낸 것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림에 중요한 일이군요.”

“맞습니다.”

“혹시 본 상국에 해가 되는 물건입니까?”

“그건 아닌 걸로 봐요.”

“하, 다행입니다. 잠시 걱정이 됐습니다.”

스윽.

양진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어요.”

남하림은 그가 어디에 가는지 알았다.

비문고에 갔을 것이었다.

서문고가 남천상국의 업무에 관한 자료들을 모은 장소라면, 비문고는 각종 계약 서류나 중요한다고 여긴 서신들을 모아놓은 장소.

일각이 지난 후.

비문고에 갔던 양진명이 돌아왔다.

손에는 천으로 싸인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공자님, 이것이 그분들과 계약한 증명서들입니다.”

“고맙습니다.”

남하림은 탁자에 내려놓은 계약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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