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장강수로채
슥슥슥.
삽협채 두 척의 수적선이 옆으로 돌았다.
화포를 제대로 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순간.
척! 척! 척!
수적선 옆 화포의 문이 순서대로 열렸다.
“저 개……! 아니……!”
태진천은 욕이 튀어나오다가 멈췄다.
“후개님, 삼협채에서 우리를 맞히려는 것 같습니다.”
첫 발은 경고용이라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정말 침몰시키기 위해 배를 맞히려는 것이었다.
“채주, 사정거리가 여기까지 오는가요?”
“이 정도면 아슬아슬할 듯합니다.”
“그런가요? 이대로 당하고 있을 겁니까?”
“…….”
남하림의 말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태진천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그때,
또다시 삼협채 수적선에서 화포 소리가 터졌다.
피우우우우웅-
피우우우우웅-
두 척의 수적선에서 화포 십문이 동시에 날아왔다.
퍼어어엉!
퍼엉!
강물에 떨어진 화포에 의해 수적선이 좌우로 세차게 흔들거렸다.
“개새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화포에 맞아 죽을 것이다.
‘삼협채, 네놈들이 먼저 건드렸다.’
“뭣들 하느냐? 일자대형으로 돌려라!”
둥! 둥! 둥!
중창달은 북을 치면서 소리쳤다.
“빨리 배를 돌려라!”
장강의 파도를 가르며 네 척의 수적선이 옆으로 돌아섰다.
두두두두두-
그리고 화포에 폭탄을 장전했다.
피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앙!
그사이에 상대방의 폭탄은 점점 배로 가깝게 떨어졌다.
‘우욱.’
태진천은 흔들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건너편을 노려보았다.
‘분명 교동 그 새끼가…… 중간에서 이간질을 했을 게야.’
우좌선의 성격으로는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우 채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일단 내가 먼저 살아야지 않겠소.’
“채주님, 장전 준비되었습니다.”
“발사!”
태진천의 명령이 떨어지자 중창달이 북을 치면서 깃발을 흔들었다.
두우우우우우웅!
“우측부터 발사!”
콰쾅쾅쾅!
네 척의 수적선에서 순서에 맞춰 화포가 발사되었다.
장강의 물결 위로 폭탄이 날아갔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십여 발의 폭탄이 삼협채 수적선 앞에 떨어졌다.
비록 맞히지는 못했지만 파도가 심하게 치면서 좌우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화포를 쏠 준비를 하던 수적들이 몸을 이기지 못해 좌우로 쓰러졌다.
곧바로 반격을 해야 했지만, 이미 준비를 마친 박포채의 수적선에서 쉴 새 없이 화포가 날아왔다.
박포채 채주 태진천은 네 척의 배를 두 척으로 나눈 뒤 돌아가면서 화포를 쏘았다.
삼협채의 입장에서는 마치 쉬지 않고 연이어 화포가 발사되는 듯했다.
쿠아아아앙!
삼협채 수적선 앞으로 떨어지는 화포의 폭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화포 한 발이 우좌선이 타고 있는 삼협채 대장선의 선수에 떨어졌다.
콰아앙!
갑판을 뚫고 아래로 떨어진 후 폭발!
우좌선은 당황했다.
“뭣들 하느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라!”
우르르르-
수적들이 바닥에서 새어 들어오는 강물을 막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피우우우웅-
또 한 번의 소리.
우좌선은 고개를 돌려 머리 위를 보았다.
‘어…… 어…….’
바로 머리 위까지 다가온 폭탄.
이번엔 제대로 배 중앙에 떨어질 각이었다.
‘박포채에서 이 정도로 사격술이 좋은 놈은 없는데……!’
우좌선은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폭발에 대비했다.
“폭탄이 떨어진다! 조심해라!”
콰아앙!
두두두둑.
중앙 돛대에 폭탄이 정확히 맞았다.
뿌지직.
“아아아악! 돛대가 쓰러진다. 모두 피해라!”
웅웅웅웅-
부러진 돛대는 선미를 향해 떨어졌다.
쿠우우우웅!
큰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더 이상 배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완파가 되었다.
“앗싸!”
남하림은 주먹을 쥐며 환호했다.
“대형, 정확했어요.”
“궁아, 내가 이 정도야. 아하하!”
정확한 각도를 재며 정확한 양의 화약을 넣었다.
“채주, 이 정도면 된 것 같지 않소? 아니면 완전히 침몰시켜 버려도 되겠소?”
“저어…… 후개님. 그것까지는…….”
삼협채에서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후개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채주가 사람이 좋구려. 채주도 아시겠지만 이런 일은 어설프게 상대하다 보면 오히려 나중에 뒤통수를 맞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괜히 대인인 척하다가 수하들까지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후개님의 충고를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 일도 마무리가 된 듯한데.”
“아, 네에. 저기 삼호선에 올라타시면 됩니다. 소인이 가는 방향까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태진천은 직접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나 장강을 타고 내려가다 일어날 불상사을 사전에 막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모두가 따라주는 것은 아니었다.
* * *
태진천은 얼른 전서를 날려 보냈다.
장강수로채에 두 장의 전서가 도착했다.
삼협채와 박포채에서 보낸 전서.
총채주 비진독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우좌선이 보내온 전서의 내용.
#NAME?
그리고 태진천이 보낸 전서.
#NAME?
분명 걸협오성이라 적혀 있었다.
두 장의 전서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 비진독.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해 보았다.
삼협채의 배를 빼앗은 범인은 걸협오성이고.
이놈들이 중간에 박포채를 협박한 뒤 공격하여 삼협채를 부수고 강소성으로 가고 있다?
추측은 비슷했지만.
비진독은 오산을 하고 있었다.
‘일단 범인은 걸협오성이군.’
범인을 알았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빈 당주, 박포채를 협박하여 추령소로 가는 인물들이 걸협오성이라 한다. 어떻게 할까?”
“총채주님, 그들이 정말로 걸협오성이라면 후개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아마도…….”
“좋은 기회입니다. 그들은 천사회의 적입니다.”
“그들을 잡는다면 혈사천주님께서 좋아하시겠지?”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여기는 장강입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빈 당주, 자네의 말이 맞다. 걸협오성이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해도 물에 빠지면 살아날 수 없다. 장강은 우리의 놀이터지.”
비진독은 결정을 내렸다.
“그들을 호도에서 만날 것이다.”
장강수로채의 총본채는 동정호에 있었다.
걸협오성을 완벽하게 포위할 수 있는 장소.
동정호로 흐르는 장강의 지류인 호도강에서, 걸협오성이 타고 오는 배를 포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후후후, 그놈들이 호도까지 이틀이면 도착할 것 같군.”
“네, 그렇습니다.”
“빈 당주,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그놈들이 절대로 도망을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혹시나 뭍에 내릴 것을 대비해서 호도강 주위를 완벽하게 포위하도록 하겠습니다.”
“크크크크, 좋아.”
총채주 비진독은 만족스러웠다.
동정호를 향해 내려오는 걸협오성.
놈들은 앞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후개를 본 수채에서 잡다니…… 운이 좋군.’
하지만 비진독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상대의 신분.
걸협오성은 개방의 제자였다.
중원 제일의 정보력을 가진 개방.
그들이 떠들지 않는다고 해도 동정호가 뭍으로 급박하게 움직이면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하루도 지나가기 전에 그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동정호 주위에 알려졌다.
* * *
퍼더덕!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서구 한 마리.
목표를 찾았는지 공중으로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배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전서구가 방향을 돌리며 내려왔다.
퍼덕.
전서구가 날갯짓을 하면서 당무독의 팔에 앉았다.
장강에 걸비전서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부장아, 일이 생긴 모양인데?”
당무독은 전서를 꺼냈다.
“여기 있어.”
남하림은 먼저 전서를 받았다.
휘릭!
둥글게 막아놓은 전서를 폈다.
“이거 재밌는데…….”
남하림은 전서를 옆으로 돌렸다.
당무독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진짜네.”
“진짜 재미있겠어.”
돌아가며 전서를 본 이들이 피식 웃었다.
‘형님들은…….’
황보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서의 내용은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걱정이 앞설 만한 일이다.
스윽.
황보궁은 손을 내민 탈혼마제를 보았다.
“이놈아, 나도 한 번 보자.”
눈을 부릅뜬 채로 황보궁을 노려보는 노인.
처음과 달리 황보궁도 그의 눈빛에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였다.
“여기 있습니다.”
탈혼마제도 전서를 읽었다.
“……큭, 이걸 보고 재미있겠다고? 어디 부분이 재미있다는 게냐? 네놈들은 진짜 미친놈들이 맞군.”
탈혼마제의 반응에 유미령도 궁금해졌다.
“저도 주십시오.”
유미령도 전서를 받아 읽었다.
“동정호 호도강에 장강수로채 기다리고 있음.”
‘헉!’
박포채 채주 태진천은 깜짝 놀랐다.
그는 걸협오성이 타고 있으니 조용히 지나가겠다는 뜻의 전서를 보냈었다.
‘왜 이렇게 되었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걸협오성과 싸울 이유가 없는데.
“채주, 어떻게 전서를 보냈는지 모르겠으나 장강수로채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모양이외다.”
“소, 소인은 그저 걸협오성께서 타고 계신다고…… 죄송합니다. 괜히 밝힌 듯합니다.”
“아, 미안할 것은 없소이다. 채주의 뜻을 그들이 오해한 듯하군요.”
태진천은 걱정이 되었다.
한 척의 배로 장강수로채를 이길 수 없었다.
차라리 근처에서 내려 육로로 강소성에 가는 방법이 좋을 듯했다.
“후개님, 내리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태진천의 뜻과는 달랐다.
“재밌는 일이 있는데 어디 간다는 말입니까?”
“…….”
정상적이라면 그들이 수로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호도강에는 최소한 십여 척 이상의 배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배 한 척으로는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침몰할 터.
하지만 태진천과 달리, 당무독은 목소리가 밝았다.
아니, 흥분하고 있었다.
“부장,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어떤 방법인데?”
“저번에 사천으로 가는 도중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을 중독시킨 놈이 있었잖아.”
남하림은 무슨 말을 할지 곧바로 이해했다.
“아! 하하, 좋은 방법이야. 가능하겠어?”
“충분히. 이 녀석이 제법 똑똑한 것 같거든. 동정호에 가는 동안 조금 훈련을 시키면 괜찮을 거야.”
“뭘 하려는 것이냐?”
탈혼마제가 갑자기 툭 나섰다.
굳이 그에게 비밀로 할 일은 아니었다.
“전서구를 이용해서 장강수로채의 배에 독을 한 번 뿌려보려고요.”
“그 짓은 독비곡 놈들이 잘하는 짓인데. 그곳과 연관이 있나?”
“그건 아니지만, 독비곡을 아시는군요.”
“그 정도는 기본이 아니냐? 내가 생각 외로 많이 알고 있다.”
“그러네요.”
“독비곡의 전인도 아니면서 새를 이용할 수 있다?”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아서요. 한번 보세요.”
슥슥-
당무독은 전서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전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꾹꾹.
전서구가 소리를 내며 머리를 끄덕였다.
파다닥!
전서구는 발에 옥병을 달고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돛대 위에 내려선 후 주둥이로 툭툭 건드리며 옥병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삐이이익!
당무독은 소리를 내며 전서구를 불러 들었다.
“흐흐, 어떻습니까? 귀엽지 않습니까?”
“…….”
“요거 하나면 배 한 척 정도는 전부 독살시킬 수 있지요.”
당무독은 가방 안에서 십여 개의 옥병을 꺼내 들었다.
“설마 그게…… 전부 독인 게냐?”
“맞습니다.”
싸움에서 독을 뿌리는 놈이 제일 치사하다.
상대하기도 가장 까다롭다.
‘이놈이…… 제일 미친놈이군.’
“아무리 당문이라고 해도 네놈 같은 녀석은 본 적이 없다. 사실대로 말하라. 네놈은 사천당문이 아니지?”
“당문 출신이 맞습니다만, 제가 유별난 건 인정합니다.”
탈혼마제와 당무독의 대화에 태진천은 손이 떨렸다.
그가 독광걸인 줄은 알았지만 소문 보다 훨씬 겁나는 인물이었다.
이들은 한다면 하는 인물들임에 틀림없었다.
“저어…… 독광걸님.”
“나에게 할 말이라도?”
“정말로 장강수로채의 인물들을 전부 독살하실 것입니까?”
“우리를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않소이까? 당연하지요.”
“그건 그렇지만…….”
털썩.
태진천은 그대로 부복을 했다.
“제발……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공격하지 않고 그들을 살려준다면 우리가 죽을 수도 있소이다.”
“독광걸님,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태진천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진심이 느껴졌다.
“이거 참, 채주께서 너무 진정성을 보여주시니…… 부장, 어떻게 할까?”
휙!
태진천은 빠르게 남하림의 앞으로 부복을 한 채로 다가왔다.
“후개님, 제발 저들을 살려주십시오.”
“무독도 말했지만, 살려주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뒤통수는 싫은데.”
“절대로……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항상 후개님을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아이고…… 이거야 원. 채주를 보니 마음이 약해지는군요. 알겠소이다.”
남하림은 한 발 물러나는 척했다.
사실 원래부터 그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무독, 채주가 여기까지 성의 있게 왔는데 한 번 정도는 그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어?”
“부장이 원한다면. 뭐, 좋아. 죽이지는 않고 기절시키는 정도로만 하지.”
“고마워. 무독은 너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야.”
“별말씀을, 내가 아니라 부장이 너무 좋은 사람이지.”
덥석!
태진천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진천의 눈에 안도의 빛이 스며들었다.
탈혼마제는 그 장면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신파극도 아니고.
‘잘들 논다. 원래부터 죽일 생각도 없었던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