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박포채
퍼어어엉-!
피우우우웅-
화포가 터지면서 폭탄이 날아갔다.
콰아아앙!
십여 장의 거리.
“아아아…… 아쉽네.”
남하림은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폭탄을 보았다.
삼협채 채주 우좌선은 깜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 담았다.
화포를 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 새끼들이…… 돌았나?”
우좌선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부채주 조발이 화포를 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반대로 수항대주 교동은 빠르게 눈치를 챈 듯했다.
부채주가 정말로 미치지 않고서야 화포를 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채주님, 아마도 다른 인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는가?”
“부채주는 화포를 이렇게 똑바로 쏠 줄 모릅니다.”
“하긴, 화포 솜씨는 본 수채에서 제일 떨어지는 녀석이지.”
우좌선은 수항대주의 말을 인정했다.
한 번 만에 배로 근접할 정도의 화포 실력.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영입하고 싶을 정도군.”
피우우우웅-
또다시 폭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앙!!
이번에는 정확하게 세 척의 수적선 중 한 척에 떨어졌다.
“아아악!!”
교동은 좌측 수적선에서 일어난 폭발을 보았다.
사정거리 안에 완전히 들어섰다.
“채주님.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큰일입니다.”
적은 두 번째 화포만으로 정확히 포격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화포를 저렇게 잘 쏘지?’
군대 경험이 없이는 거리와 각도를 잘 조절할 수 없다.
하지만 무작정 저놈들을 따라갈 순 없었다.
반격을 하지 않는 이상, 한 발씩 쏘는 상대의 화포에 배가 부서질 수 있었다.
‘아깝지만…….’
그렇다고 화포를 쏴서 부채주가 타고 있는 삼협채의 배를 폭파시킬 수는 없었다.
배가 아깝기도 하고.
“우선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쫓아간다. 그리고 본채에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넵. 알겠습니다.”
두우우웅!
북소리와 함께 파란색 깃발이 올라갔다.
남하림은 거리가 멀어지는 세 척의 수적선을 보았다.
“이게 무슨 신호요?”
“거리를 유지하면서 쫓겠다는 것입니다.”
담구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허어, 누군지 모르지만 똑똑한 사람이군요. 무작정 공격을 해올 줄 알았는데.”
“저어…… 후개님. 채주님께서는 한때 수군에서 근무를 하셨습니다.”
“군부라…… 제대로 배운 모양이군.”
* * *
끼이이잉-
공중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날던 매 한 마리가 아래로 빠르게 날아와,
휘리리리- 처억.
사내의 팔에 내려앉았다.
그는 매 다리에 묶여 있는 전서통에서 전서를 뽑았다.
‘긴급용이군.’
사내는 전서를 들고 대왕수채 안으로 달려갔다.
장강수로채 총채주 비진독이 안으로 들어선 사내를 맞이했다.
“총채주님, 삼협채에서 긴급을 요하는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우좌선이? 갑자기 왜?”
“여기 있습니다.”
전서를 중간에서 받은 빈구삼이 전서를 총채주에게 전달했다.
‘흐음…… 무슨 일이지?’
전서에도 정확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심지어 전서를 보낸 당사자 또한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우선 무슨 일인지 한번 알아봐야겠군.”
총채주 비진독은 장강의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탁!
지도 위를 가리켰다.
‘지금쯤이면 여기를 지나가고 있겠군.’
장강의 수로를 따라 움직이자, 그의 시선이 곧 박포채에 닿았다.
“빈 당주.”
“넵. 총채주님, 하명하십시오.”
“지금 당장 박포채에 명을 내려 삼협채의 배를 훔치고 달아난 녀석들을 잡도록 하라.”
“존명.”
장강수로채 총채주 비진독은 대수롭지 않은 듯 몸을 돌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큰일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되는 법이었다.
* * *
박포채 채주 태진천은 곧바로 총채주의 서신을 받았다.
삼협채의 배들 중 한 척이 내려가고 있으니, 박포채에서 잡아놓으라는 간단한 내용.
“멍청한 놈. 어떻게 배를 빼앗길 수 있지?”
“채주님, 우리 수채에게는 잘된 일입니다. 이번 기회에 총채주님의 신임을 얻는 겁니다! 잘만 된다면 조만간 총부채주의 직책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자네의 말이 맞아. 삼협채를 꺾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 한때 수군에 있었다고 잘난 체를 심하게 하더만 배나 빼앗기고 있다니…… 이거 기분이 너무 좋군.”
태진천은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기분 좋게 웃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우양, 배를 모두 띄워라. 삼협채에서 잃어버린 배를 찾으러 가야겠다.”
“넵. 알겠습니다.”
“감히 장강수로채를 건드리는 놈이 어떤 놈인지 면짝을 한 번 봐야겠어.”
그는 박포채 포구에 정박된 대장 수적선에 올라탔다.
다다다다다다-
박포채의 수적들이 네 대의 배에 나누어 승선했다.
뿌우우우웅-!
나팔 소리가 울렸다.
“출항하라.”
휘리리리릭!
돛이 펼쳐지면서 네 척의 수적선이 박포채에서 출항했다.
* * *
담구장은 선수와 선미를 번갈아 보면서 울상을 지었다.
‘지금쯤이면 올 때가 됐는데…….’
뒤에서는 두 척의 배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공격을 하지 않고 따라온다는 것은…….’
합공이다.
전방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조만간에 박포채의 영역에 들어간다.’
삼협채 채주 우좌선이라면 장강수로채에 연락을 했을 것이다.
총채주가 나선 게 분명했다.
느긋하게 바람을 즐기는 걸협오성과 두 명의 일행.
담구장은 조심스럽게 후개 남하림의 옆에 다가섰다.
“후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조만간에 우린 박포채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박포채도 당신이 있던 삼협채와 비슷한 규모를 지니고 있소?”
“네, 그들도 네 척의 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원은 삼백 명 정도입니다.”
“네 척의 수적선이라.”
남하림은 일행을 보며 소리쳤다.
“모두 잘 들었겠지? 앞에서 수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네?”
“알겠어. 조금 심심했는데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
담구장은 얼이 빠졌다.
걱정이 되어서 말을 해주었더니.
하나 그들에게선 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 몰라. 난 말해줬어. 분명히.’
결과적으로 담구장의 염려는 맞았다.
선수 앞에서 네 척의 수적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우웅! 두우웅!
박포채 소속의 네 척.
북소리가 울렸다.
수적선들은 나란히 일자로 장강을 가로막은 채 나타났다.
남하림은 선수에 서서 앞을 보았다.
뒤에서는 두 척이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당무독이 다가섰다.
“부장, 어떻게 할까? 강이 아닌 육지라면 부딪쳐서 싸우면 되는데.”
“후후후. 맞아. 그렇게 할 거야.”
“그대로 부딪치자고?”
“좋은 생각 같지 않아?”
“나쁘지는 않네.”
당무독은 가볍게 대답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저어…… 후개님…… 어떻게 할까요?”
“멈추지 말고 그대로 갑니다. 그대로 받아 버리세요.”
“……!”
담구장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미친…….’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가 보기에 후개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후개님. 서로 부딪치면 십중팔구 부서집니다!”
“괜찮습니다. 내 배도 아닌데 부서져도 상관없어요.”
자신의 배가 아니라는 여상한 남하림의 말에 조발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저게 무슨 성인이야?!’
중원 무림은 남하림을 가리켜 성인이라 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었다.
저놈은 사악한 놈이었다.
장강의 수귀보다 더, 정파가 아닌 사파인보다 더!
“좀 더 빠르게! 최고 속도로 달려라!”
남하림은 소리를 크게 질렀다.
마침 바람도 뒤에서 불어오는 덕에 파도를 가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슈우우우웅-
배는 멈추지 않고 전방의 배를 향해 나아갔다.
일행은 모두 밖으로 나온 뒤 충격에 대비했다.
‘아……! 죽었다.’
꿀꺽.
담구장은 손에 힘을 주며 손잡이를 꽉 잡았다.
뒤에서 그들을 쫓던 삼협채 채주 우좌선은 전방을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 놈들…….”
지금쯤 배는 멈추거나 속도를 낮춰야 했다.
하지만 놈들의 배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무작정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설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배가 부서져서 움직이지 못하면 불리한 건 그들이다.
박포채의 수적선에는 거의 삼백 명의 수적들이 타고 있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머리가 빈 듯 무식하게 부딪치려고 하는 인물들의 낯짝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어…… 어……?”
채주 태진천 또한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파도를 가르며 다가오는 배를 보았다.
“누구냐? 이 미친놈들은……?”
그냥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행동들.
화포를 쏘지도 못할 만큼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태진천은 다급하게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부딪힌다! 조심해라!”
쿠우우웅-!
뿌지지직!
두 척의 배가 부딪치면서 세차게 흔들거렸다.
끼이이익-!
서로 부딪힌 배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점점 움직임이 멈춰 섰다.
다행히 완전히 완파가 되진 않았다.
충격에 의해 바닥에 주저앉았던 태진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 뒈졌어!!”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얼굴을 보고 싶었다.
태진천은 선수로 가며 상대편 배 갑판에 있는 인물들을 노려보았다.
그들 사이에서 한 팔이 잘린 부채주 조발도 보였다.
“조발, 지금 무슨 짓이냐?!”
“…….”
조발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처음 보는 얼굴들.
여섯 명의 청년과 노인 한 명, 그리고 한 명의 여인.
휘익!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기 전에, 일곱 명이 동시에 움직이며 넘어왔다.
‘무림인……!’
너무나 가볍게 신법을 펼친 그들.
태진천은 앞에 내려선 그들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이자들은…….’
다섯 청년들의 모습은 익히 들은 소문의 인물들과 모습이 비슷했다.
‘아하아…….’
삼협채 부채주 조발이 눈치를 볼 정도의 거지 청년.
‘크, 큰일 났다. 총채주께 알리지 않으면 전멸이다.’
대장 수적선이 부딪치자 나머지 세 척의 배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다가왔다.
휘익!
휙!
박포채 수적들이 우르르 대장선으로 올라왔다.
“채주님, 괜찮으십니까?”
“…….”
수하들이 도검을 꺼내 들었다.
태진천은 얼른 그들을 막았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네에?”
“이 새끼들이, 죽고 싶어? 무기를 빨리 내려놓지 않고 뭐 해?!”
“나참, 이놈들이 누구라고 쫄기는…….”
중창달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말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태진천은 다섯 명의 청년 중 남하림을 향해 포권을 했다.
“무림 영웅 후개님을 뵙습니다.”
“금방 알아보는군요. 이젠 도둑질도 못하겠네.”
‘맞구나. 젠장…….’
역시 후개 남하림이 맞았다.
그럼 나머지 네 명은 당연히 개방의 영웅 걸협오성.
덩치가 큰 청년은 황보세가의 황보궁일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뒤로 물러났던 중창달이 흠칫거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괜히 나섰다가 죽을 뻔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척.
중창달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깝네요. 모두 죽일 수 있었는데.”
털썩!
중창달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소인이 죽을 짓을 했습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모두 죽일 텐데요.”
“……!!”
남하림의 한마디에 박포채 수적들은 정신이 무너지는 듯했다.
“우리에게 덤비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는 적을 죽이면 재미가 없는데.”
태진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중원 무림에 영웅이자 성인으로 알려진 인물.
정말로 자신들을 죽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하하, 농담입니다. 놀란 모양이군요.”
남하림은 대소를 터뜨렸다.
‘아 씨……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태진천은 겨우 안심한 듯 얼굴색이 돌아왔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박포채 채주 태진천입니다.”
“그렇군요. 반갑소이다.”
“넵. 소인도 후개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우리 소개는 안 해도 되겠지만 혹시나 해서. 탈혼마제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소?”
‘커어억?’
태진천은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전대 마교의 고수로 천마와 버금가는 마인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저기 노인장이 탈혼마제입니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더군요. 상대의 내력을 뺏는 흡성대공을 익혔다고 하니…… 조심하세요.”
태진천은 오줌을 지릴 뻔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수적들도 걸협오성의 위명보다 탈혼마제의 악명에 더 겁에 질렸다.
“후, 후개님, 소신들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냥 빠르게 강소성으로 가고 싶을 뿐인데…… 자꾸 거슬리는 일이 생기는군요.”
“아하…… 죄송합니다. 급하신지 모르고…… 저희들이 길을 막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 배가 부서져 가지고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이까?”
“후개님, 저희 배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삼협채의 배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오호, 그렇습니까? 채주께서 배를 주신다니 고맙소이다.”
“…….”
“이왕이면 사람들도 같이 빌렸으면 하는데. 어떻겠소?”
“넵.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모실 수 있습니다.”
피우우우우웅-
그때,
갑자기 선미의 방향 뒤에서 따라오던 삼협채의 수적선에서 화포의 폭탄이 날아왔다.
퍼어어엉!
거리가 짧았는지 십여 장 뒤 강물에 떨어졌다.
‘저저저, 저건 갑자기 왜 화포를 쏘고 지랄이야!!’
태진천은 튀어나올 듯 눈을 부릅뜨며 삼협채의 수적선을 보았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수항대주 교동이 채주 우좌선을 부추겼다.
“채주님. 누군지 모르지만 대장선과 부딪힌 것 같습니다. 바로 화포로 공격을 하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태진천이 다친다면 총채주께 문책당하지 않을까?”
“불가항력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삼협채의 배를 훔치고 달아난 놈들입니다. 그놈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불상사라고 한다면…….”
교동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박포채의 채주 자리는 원래 그가 내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총채주에 의해 갑자기 태진천으로 바뀌었던 것.
그래서 늘 태진천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우좌선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후후. 일이 잘못되어도 모든 것은 이 녀석의 탓으로 돌리면 되겠군.’
“좋다. 교동, 자네의 뜻대로 저놈들을 잡지. 화포를 준비해라.”
“넵, 알겠습니다.”
휘리리릭!
교동은 붉은색 깃발을 흔들었다.
“화포를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