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동행
“크하하하하!”
탈혼마제의 웃음이 마혈옥을 울렸다.
그 또한 개방의 후개란 말을 듣자마자 대소가 터졌다.
“중원의 무림이 얼마나 물러 터졌으면 개방 거지 놈들이 천하제일이라고 떠들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호장악은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당연하겠지.
개방 역사상 단 한 번도 무적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노부에게 그 녀석을 죽여 달라는 것이군.”
“천마님께서 부탁을 하셨습니다.”
철컹!
탈혼마제는 두 손을 묶어놓은 금제철갑을 잡아당겼다.
“나를 풀어주면 좋지 않을 텐데.”
“……그래서 이것을.”
“그건 뭐냐?”
손바닥을 펴 보이려던 호장악이 움찔했다.
탈혼마제의 눈빛에 주눅이 든 것.
어찌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른 인물도 아닌 탈혼마제에게 마혼단을 복용해야 풀어주겠다니.
“크크크크, 겨우 이것으로 나를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호장악은 금세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분은 마혼단으로 제어할 수 없다.’
호장악의 염려는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휘익!
탈혼마제가 팔을 잡아당기자,
벽에 단단하게 박혀 있던 금제철갑이 끊어졌다.
투우욱.
‘허어억!’
탈혼마제에게 호장악의 멱살이 잡혔다.
‘어떻게? 철갑을 찬 채로……!’
철갑 속에는 마기를 끌어내지 못하도록 금제가 되어 있었다.
철컹!
하지만 두 개의 철갑은 마치 장난감처럼 쉽게 부서졌다.
“겨우 이것으로 나를 잡아놓을 수 있다고 본 것은 아니겠지?”
“죄송…… 합니다.”
휙!
탈혼마제는 그의 멱살을 잡은 뒤 옆으로 던졌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있으려니 심심했다. 그동안 잘 먹고 지낸 보답으로 그놈들을 죽여주마.”
“…….”
“마교로 온다고 했느냐?”
“네…… 맞습니다.”
“키킥,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나가볼까.”
투툭.
탈혼마제가 마혈옥의 문을 향해 걸어 나가자 발목에 찼던 철갑이 바스러져 끊어졌다.
‘……저분은 일부러 마혈옥에 들어오셨다.’
탈혼마제는 천마에게 도전한 후, 자신의 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 마교의 인물들을 상대로 무작정 흡성대법을 펼칠 수 없었다.
천마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었으니까.
마혈옥은 죽여도 죽여도 아무 상관없는 자들만 득실거리는 곳.
이것이 탈혼마제가 마혈옥에 들어온 이유였다.
‘잘못하면 일이 커지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군.’
호장악은 탈혼마제가 마혈옥을 나선 뒤 마교를 어지럽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의 염려와 달리, 탈혼마제는 마혈옥을 나선 뒤 곧바로 마교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크크큭, 마교는 언제든지 칠 수 있지.’
* * *
석자무관을 나온 뒤.
여섯 명은 신강으로 향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는 내내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중원에선 신강으로 가는 길은 거칠며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배웠었다.
“지금…… 우리 신강으로 가는 길에 있는 거 맞지?”
“하림 형, 맞아요.”
“난 또 이상한 곳으로 가는 줄 알았다.”
“저도요…….”
주위 광경은 평온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표정도 다들 밝아 보였다.
“여기에는 전부 마교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상하게 소문을 낸 거야?”
다섯 명도 남하림과 같은 생각이었다.
석자무관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나자, 청해에서 신강으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조금씩 길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탁탁탁.
흑발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노인이 길가에 놓인 바위에 앉아 신발을 털었다.
“새 신발이라 발가락이 아프군. 좀 더 큰 걸 가지고 와야 했어.”
스윽-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인영의 기척.
“큭, 이제 오는군. 기다리기 지루했노라.”
노인이 신발을 다시 신었다.
휙!
“어차…….”
노인은 앉은 자리에서 아래로 내려섰다.
슈우우욱-
마기가 돌풍을 일으켰다.
‘저 노인인가?’
남하림 또한 노인의 모습이 보이기 전부터 마기를 느꼈다.
노인의 목소리와 눈빛.
지옥에서 튀어나온 듯한 마기로 가득했다.
남하림이 그와 마주 섰다.
“후개라는 녀석이 자네구만.”
“…….”
한마디, 한마디에 불쾌감이 퍼져 나갔다.
“네놈들은 걸협오성이라는 녀석들이고.”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크하하하핫! 노인장이라 했는가? 소문대로 엄청난 녀석이로군.”
대소를 터뜨린 노인.
그는 마혈옥에서 나온 탈혼마제였다.
마혈옥에서 나온 후, 그가 가장 먼저 들은 무림 소문은 개방의 후개에 대한 것.
개방이라 무시했던 게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문이 대단했다.
천마의 뜻이 아니라도 한 번 만나고 싶어졌을 정도.
탈혼마제는 곧장 그들이 나타날 만한 길에서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냐?”
“노인장보다 강한 마기를 뿌리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무림에선 나를 탈혼마제라 한다.”
“아하…… 탈혼마제시군요.”
“오호, 나를 아는가?”
“죄송합니다. 얼핏 지나가다가 들은 적은 있지만…… 정확히 어떤 분인지는 모릅니다.”
“키키키킥, 개방에서 똑바로 교육을 시키지 못한 모양이군. 최소한 무림에서 짬밥을 먹으려면 내 이름 정도는 들어야 했을 텐데.”
그때 팽유도의 전음이 들려왔다.
[하림 형, 그는 전대 천마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도전자였어.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중간에 도전을 포기한 인물이야. 중원에 돌던 소문으로는 천마에게 졌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을 한 게 아니라서.
누군가는 만약 그가 계속 도전했다면 천마가 되었을 거라고 해.]
[호오, 대단한 노인장이었군.]
결론은 눈앞에 있는 탈혼마제는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
볼일이 있다면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대단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큭, 네놈들, 특히 제일 뺀질거리는 네놈을 기다렸지.”
“제가 잘못한 게 있습니까?”
“그거야 난 모르지. 난 그저 부탁을 받고 오다가 네놈의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방법은 없군요.”
“크크크큭, 여기를 지나서 마교로 가려면 나를 이겨야 한다.”
슈유유유유유-
마풍(魔風).
남하림은 인상을 찡그렸다.
무단은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기가 역시 정파인에게 좋지는 않군.’
정공을 익히지 않는 상태에서도 남하림의 몸속에서 거부감이 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허…… 이 녀석 봐라?’
탈혼마제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남하림을 주시했다.
개방의 제자, 후개라면 분명 정파의 심공을 익혔을 터.
아무리 내공이 고강하며 정순하더라도 마공과 부딪친다면 완벽하게 힘을 사용할 수 없다.
남하림이 무단의 힘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탈혼마제의 입장에서는 그의 모습이 놀라우면서도 신기했다.
탈혼마제는 양손에 내력을 끌어 올렸다.
마혈옥에 갇혀 있는 동안 마공 수련을 수없이 했다.
흡성대공 덕에 천마보다 내력은 더 높을 것이란 자신감에 차 있을 정도.
우우우우우-
“일단 가볍게 인사를 해보겠네. 한 번 막아보게나.”
탈혼장(奪魂掌)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초식.
수십 마리의 악마가 그가 펼치는 일 장마다 떠올랐다.
악마의 형상이 남하림을 잡기 위해 뻗어 나왔다.
“노인장이 가볍게 하시겠다면 저도 가볍게 시작해야겠군요.”
남하림이 탈혼장의 중심을 향해 강룡십팔장을 펼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앙!
탈혼마제의 탈혼장과 강룡십팔장이 하나씩 부딪히며 서로 상쇄되었다.
‘재미있게 노는군.’
탈혼마제는 갑자기 오기가 붙었는지 멈추지 않고 장법을 이어갔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한 명이 나가떨어지지 않고서는 끝이 나지 않을 듯한 공방.
조금씩 부딪히는 소리가 커졌다.
‘허어…… 이 녀석 보통이 아니군!’
탈혼마제는 남하림의 무력이 생각 외로 강하자 내심 놀랐다.
개방이라고 무시했던 생각이 단번에 사라졌다.
“크핫! 정말 개방에서 이런 놈이 나올 줄은 몰랐군.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타앗!
탈혼마제는 신법을 펼치며 남하림의 전방에 나타났다.
슈우욱-
이번에는 탈혼수(奪魂手)!
날카로운 마기가 실린 손끝이 남하림의 어깨를 찔러갔다.
하지만,
타아아앙!
육편이 아닌, 쇳덩어리를 찌르는 소리가 났다.
오히려 탈혼마제의 손끝이 뒤로 밀려났다.
‘호오? 금강불괴까지……!’
탈혼수로 찌르지 못할 것이 없었다.
가장 단단한 바위조차 구멍을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것이 바로 탈혼수다.
“넌…… 대체 누구냐?”
황당한 목소리가 그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개방에선 이런 놈을 키울 수 없었다.
휘이익!
탈혼마제의 눈앞으로 남하림의 일장이 날아왔다.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속도.
스윽-
탈혼마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지만.
‘크윽?!’
예상이 빗나갔다.
퍽!
탈혼마제의 어깨에 일장이 부딪혔다.
‘허억!’
무단의 힘을 완벽하게 이끌어내지 못한 남하림의 공격.
만일 완벽했다면 한 수만에 끝이 났을지도 몰랐다.
탈혼마제는 휘청거리며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났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차라리 방심을 했다면 이해라도 갔다.
이건…….
절대로 방심한 것이 아니었다.
믿기지 않았다.
어깨 부위에 최소한 뼈 한두 개가 부러진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후개, 인정하마. 나도 최선을 다해서 싸우겠다.”
전신에 마기가 퍼져 나갔다.
그의 몸은 점점 진한 흑색으로 물들어갔다.
앞전에 보여주었던 탈혼마제의 마기와는 천지 차이.
그의 모습은 마치 마신과도 같았다.
천마가 개방의 후개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했을 때, 마교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하림을 보니 그런 생각이 지워졌다.
‘이놈이 유별나게 강하다.’
탈혼마제는 한 걸음씩 남하림의 앞으로 다가섰다.
우우우우웅-
덜덜덜덜.
하늘이 울고 땅이 떨렸다.
남하림은 몸을 비우고 몸을 채웠다.
“무단지경(無丹之竟) 무심지경(無心之竟) 무신지경(無身之竟) 무신지무(無身之無).”
구결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무단지공을 이루며 천괴지체를 이루는 것.
탈혼마제는 혼자 입안으로 중얼거리는 남하림을 노려보았다.
“크윽, 이놈, 무엇을 외우는지 모르나 이제 끝이다!”
남하림의 심장을 향해 탈혼수를 뻗었다.
금방이라도 그의 심장이 관통될 듯했다.
그리고 탈혼수가 남하림의 심장 부위 피부에 닿는 순간,
번쩍!
빛이 번쩍였다.
“크아악!”
남하림의 육체가 한순간에 황금빛을 뿌리면서 변해갔다.
마치 황금동인과도 같은 눈부심.
남하림의 눈동자도 황금색으로 변했다.
‘이걸……!’
전설상의 경지로 알려진 외공 최고의 무공인 금강천신무(金剛天身武).
탈혼마제는 믿기지 않았다.
개방의 제자가 금강천신무를 깨우쳤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개방…… 은…… 네놈을 이렇게 키울 수 없다.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냐?”
“우린 개방의 제자가 맞습니다.”
“……!”
타앗!
이를 악문 탈혼마제는 다시 움직이며 탈혼장과 탈혼수를 뻗어냈다.
최강의 초식 탈혼마혼장과 탈혼극의수를 펼쳤지만.
두 초식 모두 금강신무의 몸에 닿지도 못한 채, 강룡십팔장의 진룡귀매(眞龍貴梅)에 의해 중간에서 사라졌다.
탈혼마제는 제정신이 아닐 정도였다.
‘강룡십팔장이 강한 줄은 알지만…… 이 정도는 아니거늘!’
그는 수십 년간 마혈옥에서 흡성대공을 익혔다.
그런데…… 겨우 약관밖에 안 되는 녀석을 이기지 못하다니.
“망할…… 난……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나보다 강한 놈은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노인장은 강하오.”
“네놈도 이기지 못하는데 어찌 강하단 말이냐?”
“허어, 노인장이 무슨 천하제일인입니까?”
“…….”
“그게 아니라면 나에게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탈혼마제는 남하림의 말을 생각했다.
“큭.”
코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이 녀석보다 광오한 인물을 만난 적이 없었다.
사부였던 전전대 천마도 광오했지만 천하제일인이라 자신 있게 내뱉지 못했다.
‘……자기 입으로 천하제일인이라 하다니. 이놈은 미친놈이 틀림없다.’
“크큭, 큭, 좋아. 후개, 졌다. 자, 어떻게 나를 죽일 것이냐?”
“스스로 졌다고 하는 사람을 죽일 정도로 막 나가지 않습니다.”
“이래서 정파는 안 돼. 과감하게 끊고 맺는 게 없으면 항상 뒤통수를 맞지.”
“누가 그냥 보내준다고 했습니까?”
“그럼?”
“앞으로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금제를 할 건데요?”
남하림은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 * *
탈혼마제는 내력을 사 성으로 올려보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있다니…….’
손에 내력이 올라오지 않았다.
내공금제법.
그는 이제 삼 성까지의 내력만을 펼칠 수 있었다.
단전에서 사 성 이상의 내력을 끌어올리려고 해도 힘이 나오지 않았다.
탈혼마제이니 삼 성 내력이라도 웬만한 녀석들을 잡을 수 있지만.
절정급 이상과 싸울 때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완전 미친놈이로다.’
처음에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엄청난 녀석이기도 했고.
하지만 마교에 가는 이유를 들었을 때는 완전 미쳤다고 확신했다.
마교의 입장에서야 예전부터 곤륜파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멸문까지 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사천성은 곤륜파와 부딪치지 않고도 충분히 갈 수 있었으니까.
이번 경우는 사천성을 한꺼번에 잡기 위해 마뇌란 녀석이 머리를 쓴 탓에 곤륜파가 희생된 것이었다.
‘음…… 왠지 잘못 건드린 것 같군.’
탈혼마제는 마혈옥을 나서게 되면, 천하의 강자들에게 도전을 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단번에 깨졌고, 사라졌다.
자칭 천하제일인이라 말하는 어린 녀석과 싸워 졌다.
즉, 금제를 풀고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다면 남하림만 이기면 된다.
‘두고 볼까. 정말로 천하제일인이 될지. 그동안 네놈을 따라다니면 아주 재미있을 테지. 크큭.’
슬쩍.
황보궁은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유도 형, 괜찮아?”
“하림 형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 괜찮은 거야.”
팽유도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다.
반 시진 전.
탈혼마제의 한마디가 충격적이었다.
“좋다. 후개가 천하제일인이 될 때까지 뒤를 따라다니겠다.”
“노인장은 마교에서 할 일이 없습니까?”
“난 마교의 마혈옥에서 나온 몸이다. 딱히 갈 곳도 없지. 귀찮게 하지 않겠다.”
“참 나, 맘대로 하세요. 하지만 우리 일에 방해가 될 때에는 다칠지 모릅니다.”
“알겠다.”
기이한 동행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