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거래를 마치다
돈황상국의 총관실은 반시진 전부터 시끄러웠다.
“이보시오. 왕 총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들이 물건을 똑바로 포장을 했으면 불에 타지 않았을 게 아니오. 일을 똑바로 하지 멍청한 서장 놈들 때문에 본인이 상부에서 욕을 먹어야 한다 말인가?”
“해순 선생님, 죄송합니다.”
타아아앙!
해순이 탁자를 내리쳤다.
“이게 죄송하다면 되는 일인가? 물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불에 타서 사용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일세!”
‘아…… 씨…… 우리가 불을 질렀냐고…….’
마음만은 따지고 싶다.
왕 총관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잔소리를 반시진 동안 듣는 중이었다.
“왕 총관, 지금 당장 내 앞에 내놓아도 사천까지 운반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줄 아는가?”
“죄송합니다.”
“멍청하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하는 게 무슨 총관질을 한다고…….”
“……!”
자존심을 건드리는 그의 말.
왕 총관은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그때였다.
드르르륵-
집무실이 열리며 급히 사내가 들어섰다.
왕 총관은 사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과 있을 때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거늘……!’
화가 난 채로 들어온 사내를 째려보았다.
“소남.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긴급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보고를 하라고……!”
“총관님, 죄송합니다. 정문에 손님이 찾아왔기에…….”
“뭣이라고? 그깟 손님이 누구라고 자리를 비우면서 오다니 정신이 있는 겐가?”
“그게…… 그가 말하기를 서궁상국에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
휙.
왕 총관은 해순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서궁상국이라니……? 정확히 말해라.”
“본 상국과 거래를 하고 싶다고 국주님이나 총관님을 뵙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고를 친 뒤 우리와 거래를?”
왕 총관은 어이가 없었다.
스윽.
해순이 나섰다.
“누가 찾아왔는지 한 번 만나보는 게 좋겠소.”
다른 세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고, 남하림과 팽유도는 사내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로 들어섰다.
왕 총관은 두 사람을 보자 다시금 화가 날 것 같았다.
척.
왕 총관은 대충 포권을 했다.
냉랭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천의 서궁상국에서 왔다고 들었소이다. 본인은 돈황상국의 왕한이라 하오. 총관을 맡고 있소이다.”
슥.
남하림은 대충 인사를 날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서궁상국의 남하림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남하림? 이자가!’
왕 총관은 솟구치는 화를 겨우 참았다.
“개방의 후개…… 가 맞습니까?”
비단옷을 두른 거지.
등에 도를 맨 거지.
“하하하! 맞습니다. 서장에도 제 활약상이 퍼졌군요.”
왕 총관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단숨에 높아졌다.
“후개, 뻔뻔하기 짝이 없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는 겁니까?”
“이런, 왕 총관님. 초면에 이리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타아아앙!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오? 그대가 본 상국의 물건을 모두 불태웠음을 알고 있거늘. 정녕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까?”
“총관님. 우선 화를 푸시지요. 그래서 제가 모래바람을 뚫고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까?”
“흥!”
왕 총관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엄청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물건 값을 못 받은 모양이군.’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어제 이곳에 도착해서 잠파란 분의 집에 하룻밤을 보냈지요. 그분의 부모와 아내도 채취한 환비균장을 돈황상국에 팔더군요.”
“…….”
“그들이 총관께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항상 좀 더 값을 올려준다면서 칭찬하는 걸 들었습니다.”
“흐음…….”
왕 총관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조만간 중원에서 물건을 판 대금이 들어오면 맛있는 것도 먹으려고 했다는데…… 아, 저녁 내내 혹시 제가 불 지른 것 때문에 대금을 받지 못했을까 걱정이 되지 뭡니까.”
“그건…… 사실 받지 못했소.”
왕 총관은 대답을 하면서 슬쩍 구석에 앉아 있는 해순을 보았다.
남하림은 그의 행동을 전부 지켜보면서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선금으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
“놀랐네요. 남천상국은 거래처와 계약을 할 때는 모두 선금으로 합니다만.”
“정말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후개께선 남천상국의 셋째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렇지만서도, 불이 났더라도 일단 서장상회에 납품은 끝난 것이니 대금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지요. 본 총관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외다. 그런데…… 정확히 인수가 안 됐기에 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왕 총관은 어느덧 화를 내고 있었다는 걸 까먹었다.
“쯔쯔.”
남하림은 혀를 찼다.
“원래 서장상회가 장사꾼들이 아니라 상도를 잘 모르지요. 총관님도 아시다시피 장사는 장사꾼과 거래를 해야 하는 법이외다.”
“맞소, 맞소이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해 제가 사과하는 의미로다가, 불에 탄 물량의 금액을 두 배로 지불하겠소이다.”
‘허어억? 두 배를……?’
“그리고 서궁상국과 거래를 하면 서장상회에서 거래하는 매입 대금을 두 배로 하겠소이다.”
“커어억!”
왕 총관의 커진 눈동자.
그리고,
챙그랑!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린 해순 선생이었다.
왕 총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랫동안 환비균장의 판매처를 찾기 위해 많은 곳을 알아보았지만, 대량의 환비균장을 매입하겠다는 업체는 없었다.
환각 성분이 짙은 환비균장은 중원에 들어가는 자체가 불법이며 관에 추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많은 양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서장상회를 통해 팔 수밖에 없었다.
근데…….
서궁상회에서 나섰다.
다른 상국도 아닌 중원오대상국의 서궁상국이라면 무조건 계약을 해야 했다.
그리고 서장상회에게 당했던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후루루룩.
남하림과 팽유도는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총관 집무실에 남은 세 사람.
왕 총관은 국주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
“유도야, 차 맛이 좋구나.”
“그런가요? 전 항상 똑같던데.”
“난 자꾸 고소한 맛이 나는구나.”
“아항.”
‘저놈이…… 내가 누군지 아는군.’
깊은 생각에 잠겼던 해순은 고개를 돌렸다.
‘후후후, 후개, 네놈이 얼마를 제시하든 그들은 네놈들과 거래하지 못한다.’
당장 두 배의 보상금을 준다는 말에 왕 총관이 흔들렸지만, 거래를 서장상회와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넌 여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갈 것이다!’
국주를 만나러 간 왕 총관이 돌아왔다.
“후개, 국주님께서 만나보시겠다고 하셨소이다.”
“잘됐습니다.”
“따라 오시지요.”
남하림은 그와 함께 국주실로 향했다.
왕 총관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후개…… 방금 제 방에서 본 인물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서장상회 쪽 인물 같던데.”
“어떻게…… 아셨소이까?”
“느낌이 왔지요. 후후.”
“저어…… 근데…… 서궁상국에서 정말 본 상국과 거래를 하고자 하는지요?”
“어렵겠소이까?”
“그들과 계약을 한 게 있소이다. 그 문제 때문에 국주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뭐, 그렇겠지요. 무턱대고 장사하는 건 아닐 테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이다. 국주님을 일단 뵙는 걸로 하시죠.”
“네. 알겠소이다.”
잠시 뒤.
국주실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정정한 분이시네.’
육십가량의 노인.
돈황상국의 국주 앙진함.
하지만 눈빛만큼은 청년 못지않게 빛이 났다.
왕 총관은 옆에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목소리도 낭창했다.
“후개가 창도에 찾아올 줄 몰랐소이다.”
“저도 창도에 올 줄 몰랐지요.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후개께서 배포가 크군. 고맙네.”
국주 앙진함의 시선에 들어온 젊은 사내.
남하림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천성적인 성격이구먼.’
“왕 총관이 오면서 말을 하지 않던가?”
“들었습니다. 거래를 원한다고 해도 이미 서장상회와 거래가 있기에 어렵다고 했습니다.”
“맞네. 그들과 십 년의 계약을 맺었네. 다른 곳과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독점 계약이지.”
“흐음, 누군지는 모르지만 계약서를 잘 썼네요.”
“우리도 그 당시에는 그들밖에 없었네.”
“당연히 이해합니다. 사실 서로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돈황상국도 확실한 판매처가 있으면 좋을 테니까요.”
“서궁상국에서 제시한 금액이 마음에 들지만 미안하네. 저들과 남은 계약은 오 년 남았네. 그때는 어떻겠는가?”
국주는 서궁상국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서궁상국이라는 대상국과 거래를 하면 많은 이익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혹시 위약금이라는 게 있습니까?”
“위약금? 거래를 일방적으로 끊을 때 말인가?”
스윽.
국주는 왕 총관을 보았다.
“그건……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거래를 일방적으로 끊지 못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허어…… 그건 우리가 불리한 게 아닌가?”
“죄송합니다. 그래서 다른 조항을 하나 넣기는 했습니다만…….”
“뭔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왕 총관은 상국의 서류보관실에 빠르게 다녀왔다.
스윽.
“여기…… 서장상회와 작성한 서류입니다. 여기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남하림은 왕 총관이 가리킨 조항을 천천히 보았다.
씨익.
‘됐어.’
* * *
두근두근.
국주실에 가는 해순의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왜…… 나를 보자는 것이지?’
무엇인가 그들 사이에 모종의 일이 발생한 듯했다.
드륵-
문을 열고 들어섰다.
탁자에 앉은 두 사람.
해순은 국주와 후개의 시선을 받았다.
“해순 선생, 앉으시오.”
“…….”
해순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해순 선생, 오늘 여기 후개와 함께 자리한 이유는 한 가지 통보를 하기 위함이외다.”
“무슨 통보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오늘 이후로 본 상국은 귀하의 서장상회와 거래를 끊겠소이다.”
타아아앙!
해순은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지금 장난하시는 것이오?”
“허어. 해순 선생, 흥분을 가라앉히게.”
“크흐흠.”
해순의 손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휙.
옆에 앉은 남하림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저 새끼가…… 대체 어떻게 한 것이지?’
“국주, 계약서에는 분명히 십 년 동안 무조건 거래를 한다고 되어 있소.”
“맞소이다. 거래서에 그 내용이 있지요.”
스윽.
국주는 계약서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여섯 번째 조항을 보시오.”
#NAME?
여섯째. 본 상국이 타 업체에 인수가 되는 경우.
본 상국과 맺은 계약은 그날 이후 무효가 되며 새로운 계약은 인수한 업체와 새로운 계약을 한다.
해순의 얼굴이 붉어졌다.
“크흠, 지금 상국을 서궁상국에 팔겠다는 것이오?”
“…….”
“국주, 여기 밑에 있는 계약 내용을 읽지 않았소이다.”
#NAME?
“잘 보셨소이까? 돈황상국을 서궁상국에 팔 수 없소이다.”
“푸훗!”
남하림은 웃었다.
“왜…… 웃는 것이오?”
“이보시오. 누가 서궁상국에서 인수를 하겠다고 했소?”
“……!”
“이곳을 인수하는 곳은 남천상국이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천상국의 만석표국에서 인수하는 것이지요.
즉, 내가 이곳의 주인이 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단 뜻이지. 아하하하!”
남하림은 목청껏 대소를 터뜨렸다.
* * *
돈황상국은 변한 게 전혀 없었다.
주인만 바뀌었을 뿐 국주와 총관은 그대로였다.
“공자님, 남천상국에서 환비균장을 어디에 사용하실 것입니까?”
“환비균장은 강한 환각 성분 때문에 마약으로 대부분 사용될 위험이 있어 관에서 관리하고 있죠.”
“그래서…… 본 상국도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유능한 제 형제가 말하기를, 환비균장에서 중독성을 약하게 하면 진통제로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남천상국에 의료품을 취급하는 부서에 연락을 하면 곧바로 서궁상국을 통해 팔 수 있을 겁니다.”
“아…… 하……! 고맙습니다. 이제야 본 상국도 당당하게 물건을 팔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왕 총관께서 많이 도와주면 고맙겠소이다.”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죽일 놈의 새끼…….’
해순은 상국을 나와 마을로 내려가는 남하림과 일행의 뒤를 따랐다.
‘이대로 돌아가면 교주에게 죽는다. 그는 실패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
최소한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후개의 목숨이 필요했다.
‘이것이라면…….’
양손에 하나씩 들린 천뇌탄.
‘이…… 노오오오오옴!’
치지지직-
천뇌탄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헉……!’
두 사람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치지지지지직-
천뇌탄의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런! 빨리 심지를 뽑아야 한다!’
쏘옥. 쏙.
“하아, 하아…….”
그 짧은 순간, 해순의 온몸에 땀이 흘렸다.
“풋, 그냥 터졌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안 그래?”
“맞아.”
휙!
해순이 빠르게 뒤로 돌아섰다.
휘릭!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천뇌탄이 사라졌다.
“이게 터지면 다치겠는데? 신교와 싸울 때 던질 용도로 사용하면 적당하겠어.”
“후개……!”
해순이 내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챠르르르르-
‘이게 무슨……?’
옆으로 돌아오는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철썩!
눈앞이 번쩍이며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패애애애앵-!
해순의 얼굴을 가격한 성철각의 일각.
털썩.
해순은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몸이 회전하며 떨어졌다.
“커어억!”
짧은 비명과 함께 목이 꺾인 채 숨이 끊어졌다.
“잘했어. 이놈들은 또 이상한 약을 먹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