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79화 (80/328)

79. 살각 전멸

‘겨우 세 명으로?’

아무리 강한 무공을 지녔다고 해도 저둔지의 출구를 완전히 봉쇄할 순 없다.

“저놈들을 뚫어라!”

살수들이 세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허, 못 나간다니깐.”

타아앗-!

남하림이 타구봉법을 펼치며 살수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탓! 탓! 탓!

살수 수십 명이 타구봉에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며 나가떨어졌다.

콰아앙-!

묵흑반도의 굉음.

화려하게 펼쳐지던 초반의 초식과 달리, 용병들과 살수들을 상대하면서 점점 단순하면서도 실전형의 초식으로 변해갔다.

번쩍!

짧고 굵게 펼쳐지는 도법.

내력의 소모는 예전보다 덜하면서도 위력에는 변화가 없었다.

묵흑반도가 거의 팽유도의 신형과 일체화되어 보일 정도.

보폭 또한 삼 보를 벗어나지 않았다.

‘느려……!’

삼 보 내에 모든 적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휙!

휙!

살기를 담은 살수들의 공격.

하나 팽유도의 일 보가 펼쳐질 때마다 살수의 검들은 허공을 가를 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모양이군.”

스강-

“커억.”

타앗!

하늘에서 도기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아아악!”

살수들은 비명을 내지를 힘도 없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도기.

묵흑반도가 움직이면 살수의 목숨이 끊어졌다.

부우우웅-

두꺼운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철썩!

“으악!”

성철각은 자신이 움직이는 이유를 잊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추는 취무(醉舞).

마음에 따라 몸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움직였다.

언제부터인가 심신일체(心身一體) 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것.

스으으응-

성철각의 양발에서 두꺼운 내기가 붉은빛을 흘렸다.

“한종리환영출각(漢鐘離幻影出脚).”

둑둑둑둑.

한 번의 일각(一脚)에, 서른여섯 개의 그림자가 춤을 추며 무작위로 허공을 찍었다.

“으으으악!”

“커억!”

겨우 각법?

살수들은 이내 자신들이 얼마나 큰 착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목과 얼굴, 전신의 모든 부위가 끊어질 듯했다.

스걱.

스걱.

너무나 날카로워 오히려 고요한 살기.

픽핏핏.

독침이 박히는 소리와 살수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아아악.”

“컥.”

“살려…….”

이휘연의 검과 당무독의 독침에 살각의 살수들이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살수들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뭣들 하고 있어? 저놈들을 죽여라!”

독정은 고함을 질렀다.

자신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줄 알았건만.

다가오는 걸협오성을 보며 그들은 점차 싸울 의지를 잃었다.

살수들의 몸은 점점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이봐. 당신.”

남하림은 살각주 독정에게 손에 들고 있던 타구봉을 던졌다.

슈우우우-

타구봉이 회전하며 만들어낸 강기.

거대한 압박감이 독정을 노리고 날아갔다.

‘타구봉을 던지다니……!’

콰아앙!

독정은 굳은 표정으로 타구봉을 옆으로 쳐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굉음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고개를 들었다.

쿠아아아아와-

부릅뜬 붉은 눈동자.

거대한 용이 커다란 입을 벌린 채 괴성을 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강룡…… 십…….’

다급히 부월창을 잡아당긴 독정은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거대한 부월강막을 머리 위로 펼쳤다.

두두두두두-

강룡십팔장법이 부월강막을 내리쳤다.

‘어…… 억……!’

부월강막의 마지막 남은 막 위로 거대한 기가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독정은 뒤로 휘청거렸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크으으으- 난…… 살각의 주인이다!’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순 없다.

미완성의 무공.

휙!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부월창을 던졌다.

지금이 아니면 펼칠 기회가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내력을 펼치자 심장이 터져 나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검은 피.

혈맥을 따라 시커멓게 변할 정도로 검은 피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크큭, 후개. 받아라.”

슈아아아아앙-!

손을 펼치자 독혈장(毒血掌)이 뻗어나갔다.

‘독장!’

남하림은 다시 한 번 일장을 뻗었다.

염천멸사(炎天滅死)!

화르르르-

화룡의 기세가 남하림의 앞에서 폭발하며 독혈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놈…… 받아랏!”

펑! 펑! 펑! 펑!

독정의 눈은 이미 검게 변한 상태.

내력을 멈추지 않으면 폭주하여 머리가 터져 나갈 것이다.

쿠와아아앙-!

남하림은 물러나지 않고 제자리에서 맞섰다.

‘쉽게 끝내지 않겠다는 말이군.’

승룡포박(乘龍捕縛).

양손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린다.

슈와아아아앙-!

이번에는 승룡이 하늘로 솟구쳤다.

퍼어어어엉!

독정의 사타구니에서 머리 위까지 뚫고 지나간 일 장에 상의가 찢겨 날아갔다.

‘으으으으-’

이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감히 넘보지 못할 무공.

독정의 내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살각주, 네놈은 개방을 언급하지 말았어야 했다.”

퍼어어억-

남하림이 펼친 최후의 일 장이 그대로 독정의 앞면을 가격했다.

빠각-!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

“커어억!”

쿵콰아아앙-

마지막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간 살각주가 바닥에 떨어졌다.

살각 오백여 명과 맞선 다섯 명의 걸협오성.

저둔지대혈전.

불굴의 의지와 진정한 개방도를 보여준 대혈전이었다.

* * *

“뭣이라!”

신려세가주 신명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급보.

호위대주 병주학이 죽었다.

‘병 대주가……!’

그뿐 아니라 호위대까지 모두 당했다.

‘크윽, 살천성, 네놈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

신명항은 극대한 분노로 눈동자에 붉은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가주 형님, 호위대주가 당했다면 소소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

“개방에서 소소를 보호하고 있는 게 정말 맞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다.”

신명항은 자신의 아우에게조차 신소소와 함께 있는 개방도의 정체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호위대주가 하장촌으로 간다는 사실을 살각에서 알아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간에서 호위대를 기다린 뒤 죽일 수 없지.’

최측근이 아니고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놈의 물건을 산산조각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을…….’

후회를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내가 자초한 것이다. 욕심 때문에…….’

신소소의 목숨과 구천신품은 비교할 수도 없다.

“아우님, 세가의 모든 정보를 동원해서 소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게.”

“가주 형님, 걱정 마십시오. 개방에서 보호하고 있다면 무사히 돌아올 것입니다.”

“고맙네.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네. 개방에 먼저 연락을 보내게.”

“곧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후다다닥.

그때, 가주실로 빠르게 달려오는 기척이 들렸다.

덜컹!

얼마나 다급했는지 문밖에서 보고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다.

“가주님!”

자경단주 문단은 인사조차 잊었다.

“무슨 일인가?”

“아가씨를 쫓던 살각주가 죽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남아 있던 부상자가 증언했다고 합니다.”

“똑바로 보고하라.”

“걸협오성에 의해 살각의 대부분이 죽었고, 그 와중 살각주 독정은 후개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만 후개가 항복한 부상자들에겐 사람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신명항은 후개와 걸협오성의 무공에 놀라면서도, 신소소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말에 안심했다.

“문단, 방금 그 말이 사실인가?”

내당주 신명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되물었다.

“네. 확실합니다.”

“가주 형님, 개방에서 후개를 보내 소소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빨리 개방에 연락해서 소소를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우선 후개가 그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네. 아우님은 개방에 연락을 뒤 다른 일을 맡아주게.”

“무엇입니까?”

“살각이 무너졌다면 살천성 전체가 움직일 가능성이 크네. 아우님은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게. 살천성이 움직이면 본 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이건 명백한 본 가에 대한 선전포고니까.”

“알겠습니다. 살천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습니다.”

신명진은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호위대주의 죽음과 살각의 공격.

‘어디든 내부에 간자가 숨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영후.”

신명항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네.”

건물이 울리는 듯 목소리가 들렸다.

“세가 안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찾아라. 왜 이리 똥파리들이 날아드는지 모르겠군.”

“죄송합니다.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네.”

“알고 있습니다.”

신명항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며 천천히 창가로 움직였다.

창문 아래로 세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타악.

두 손으로 창문틀을 내리치듯 잡았다.

“살천성…… 요즘 기고만장(氣高萬丈)한다더니 본 가를 아주 우습게 봤군. 내가 너무 조용하게 지낸 모양이야.”

지옥명왕이라 불리던 신명항.

‘감히 내 딸을 건드리다니……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 *

중원의 소문은 빨랐다.

“허 참…… 무지막지하게 빠르군.”

마을에 들어선 여섯 명.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개방도보다 소문이 빠르다는 게 말이 돼요?”

팽유도는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한 소문이 신기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면 대부분의 화두는, 얼마 전 저둔지에서 일어났던 살각과 걸협오성의 대혈전.

“살천성의 살각이 찍소리도 못하고 걸협오성한테 박살 나 버렸다고 하더구만.”

“게다가 살각주가 후개에게 덤비다가 일 장에 개아작을 당했다고 했다네?”

“허허. 요즘 거지들이 얼마나 기가 센지…… 괜히 건드렸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

허름한 정문 위에,

개방풍천분타.

여섯 글자의 현판이 걸려 있었다.

개방 분타의 문은 항상 개문(開門).

팽유도는 먼저 안으로 들어선 후 인기척을 냈다.

“누구 없소?”

불쑥.

언제 쓰러져도 모를 분타의 건물 안에서 머리만이 불쑥 솟았다.

“누군가? 자네들은 못 보던 거지구만.”

“도광걸이오.”

쿵.

고개를 내밀었던 개방도가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아이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나왔다.

여섯 명의 모습은 근래 널리 퍼진 유행 거지 복장.

“방금 누구라 했소? 혹시 잘못 들었는가 싶어서…….”

휙!

팽유도가 허리에 찬 개방목패를 던졌다.

중욱은 눈을 크게 뜨고 팽유도가 던진 개방목패에 달려 있는 자루매듭을 보았다.

오결의 매듭.

본 방의 당주급 인물이다.

목패에 새겨진 글을 한 자씩 천천히 읽자,

“특…… 외…… 부. 어…… 뭐지?”

“팽이란 글자요.”

“아, 예. 팽…… 유도. 흐으헉!”

태애앵!

손에 들려 있던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타앗!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가는 중욱.

“후개님이 오셨다! 후개님이 오셨다!”

쿵쾅쿵쾅! 쿵쾅! 쿠르르릉!

건물 안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후다닥!

분타주가 입에 한가득 음식을 물고 뛰쳐나왔다.

“흐그늠이 으디……!”

툭툭툭.

입안에 들어 있던 밥알이 튀어나왔다.

“비단……! 비단……!”

소문처럼 비단을 입은 거지를 찾으려고 했다.

“나요.”

보통 삼베처럼 보이는 재질의 옷.

머리카락은 빛이 나게 살랑거렸지만 뒤로 넘기지는 않았다.

스윽.

남하림은 개방목패를 꺼내 보여주었다.

#NAME?

“아이고, 죄송합니다. 한 번에 몰라 뵈어서…… 근데 옷이 비단이 아니셨습니까……?”

“이게 비단보다 더 비싸오.”

“엥……? 정말입니까?”

‘비단보다 비싼 옷이 있어?’

분타주 정전국은 슬쩍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아 참, 지금 식사 중인데 같이 드시겠습니까?”

“먹고 왔소이다. 많이 드시오. 오는 길에 혹시 몰라서 싸가지고 왔소.”

성철각이 천에 싼 음식을 내밀었다.

“하이고, 감사합니다. 그냥 오셔도 되는데…….”

“잠시 신세를 질까 해서 찾아왔는데 맨몸으로 오면 되겠소.”

“아하핫! 신세는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하튼 잘 먹겠습니다. 역시 후개님은 저희들을 생각하시는 게 남다르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얼른 밥을 먹고 나오겠습니다.”

“천천히 드시오.”

* * *

삼백여 명의 거지들.

풍천분타 소속 거의 대부분의 개방도들이 모여들었다.

정전국은 바짝 다가앉은 방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을 부릅떴다.

‘저놈들이…… 평소에는 모이라고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빠져 자던 놈들이……!’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분타에 하나둘씩 들어왔다.

남하림이 말했다.

“당연 본 방의 제자들은 얼마 전 일어난 일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예. 그렇지 않아도 후개님과 걸협오성의 명성이 하늘을 치솟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천성에서 앙심을 품고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개방의 형제들은 필히 조심하십시오.”

“걱정 마십쇼. 그놈들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개방을 건드리는 순간 중원 무림에 퍼져 있는 십만개방도의 힘을 맛보게 될 겁니다. 이 모두가 후개님과 걸협오성의 덕분이지요.”

분타주 정전국의 말처럼, 지금의 개방은 예전의 개방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맥이 끊겼던 개방 영웅 후개의 말 한마디에, 중원 전국 개방도들의 위세가 등등해졌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우리들 때문에 많은 형제들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말입니다. 형제들의 목숨은 바로 나의 목숨이지요.”

분타의 개방도들은 남하림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후개님이 우리를 보고 형제라고 하셨다!’

불끈.

우리는…… 개방의 형제!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짜릿해졌다.

벌떡!

모여 있던 개방도 한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리 후개님을 위해 만세삼창을 합시다!”

뜬금없이 만세삼창이었다.

“후개님 만세!”

“만세!”

“만세!”

“후개님, 만세!”

남하림은 그들을 보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

옆에서 그 장엄하고 이상한 광경을 지켜보던 신소소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와…… 유도 오빠, 정말 멋지지 않나요?”

“난…… 쪼옴 부끄러운데…….”

“말 한마디에 모두가 믿고 따르잖아요!”

“푸흐읍, 부장은 늘 아니라고 하지만 예전부터 관심받는 걸 좋아했지. 어쩔 땐 앞뒤도 안 맞고.”

당무독의 말에 이휘연이 한마디 툭 던졌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세상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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