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78화 (79/328)

78. 저둔지대혈전

파앗!

타앗.

팽유도와 성철각, 당무독이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살수들은 세 명의 기세에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번쩍.

팽유도의 묵흑반도가 터지고,

휘릭-

성철각의 환보걸선각이 뻗으며,

핏핏핏.

당무독의 연쌍비투가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철썩.

푹푹푹푹!

일초의 공격에 순식간에 살수 이십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으악!”

뒤에서는 이휘연의 태극흑검에 수하들이 비명을 질렀다.

‘걸협오성…… 이 정도의 무공을 지녔을 줄은……!’

휙!

독정은 남하림과 함께 서 있는 신소소를 보았다.

‘저년만 잡으면 된다.’

처음부터 자신들의 목표는 신소소였다.

‘단숨에 치고 빠진다.’

독정은 부월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남하림의 목을 향해 날렸다.

“쌍부월참!”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내력을 한꺼번에 끌어넣었다.

휘이이이잉-

좌우에서 방향을 교차하며 날아오는 두 개의 부월도.

원형의 강기가 단숨에 남하림의 몸을 산산조각 낼 듯했다.

“내 뒤로 와.”

신소소는 남하림의 등 뒤로 몸을 가렸다.

‘……넓구나.’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든든함.

세상까지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직스러움.

그냥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쑤욱-

남하림은 허리에서 타구봉을 뽑았다.

삼십육초 타구봉법.

봉(捧)결의 구결을 끌어 올려 좌우 양쪽에서 날아오는 부월도를 향해 일타만구(一打萬寇)의 초식을 펼쳤다.

타타타타타-

여유롭게 제자리를 지키던 신형이 만 개의 타구봉으로 갈라져 부월도의 강기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부월도가 앞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강기의 힘을 잃어갔다.

‘와…….’

신소소는 저도 모르게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두려움 없이 자신감 있는 눈.

강인하게 느껴지는 굳게 다문 입술.

뒷짐을 쥔 채 오직 타구봉을 든 한 손만으로 부월도를 막는 모습은-

자신이 상상으로 그렸던 이상형 그대로였다.

챙그랑!

결국 두 개의 부월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독정은 손을 올려 남하림을 가리켰다.

“후개……!”

“맞소만. 당신은 누구요?”

신소소의 입이 떡 벌어졌다.

‘후개…… 이분이 후개였어……!’

* * *

살각주 독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수하들은 하나둘씩 쓰러졌다.

살각의 정예가 힘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목숨이 끊어졌다.

‘후개, 이놈이……!’

남하림은 신소소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크윽…… 이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지 않고 덤벼든 자신의 실수다.

삐이익-

독정은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퍼어엉-!

그 순간,

연막탄이 터지면서 반경 십 장을 가렸다.

허공 속에서 살각주 독정의 목소리가 울렸다.

“후개,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독정과 살수들의 기척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음엔 다르기는…….”

남하림은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뭐야.’

초롱초롱한 눈동자.

그것도 잠시, 신소소는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치자 볼이 붉게 변했다.

지금까지 저질렀던 민망한 장면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으으…… 나쁜 사람들이야. 모두 알면서…… 망했어.’

남하림은 정리가 끝나고 다가오는 네 사람을 맞이했다.

“고생했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이젠 살각에서 누굴 노리는지 알겠군. 왜 이 녀석을 잡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역시…… 맞구나.”

다섯 명의 시선이 신소소에게 집중됐다.

“……그만 보세요. 왜 자꾸 쳐다봐요?”

“이상하잖아. 특별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응, 맞아. 예쁜 것도 아니고…….”

성철각도 덩달아 한마디 했다.

부끄러움에 정신적으로 몸부림치던 신소소는 성철각의 말에 벌컥 화를 냈다.

“뭐라고요? 내가 어때서요? 울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했어요. 성 아저씨는 은근히 사람 약 올리는 게 있어!”

“어, 아저씨……?”

“철각 형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화를 내냐. 신려세가의 가주께서도 딱 그거네.”

“우리 아빠가 뭐요?”

“딸 바보.”

“이봐요. 독광걸 씨. 그럼 내가 못생겼다는 건가요?”

“못생긴 건 아니고, 그냥 예쁜 얼굴은 아니라는 거지. 음…… 다시 봐도 예쁜 얼굴은 아니야.”

“…….”

동경하는 사람 앞에서 못생겼다고 놀리다니.

안 그래도 이번 생은 망했구만.

신소소는 왠지 서러움이 밀려왔다.

쓰윽.

남하림의 손이 신소소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만 놀려. 이 정도면 예쁜 얼굴이야.”

“에게, 부장이 웬일이야? 백화미를 보면서도 예쁘단 말 한마디 하지 않았잖아.”

“맞아. 역시 하림 형은 눈이 좀 특이한 것 같아.”

신소소는 팽유도를 째려보았다.

“후개님이 어디가 특이해요. 내가 보기엔 여기에서 제일 정상이구만.”

“봤지? 내가 정상이라잖아.”

남하림은 신소소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신소소는 이제야 남하림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올라가 있는 것을 눈치채고 몸이 굳어버렸다.

“저어…… 근데.”

“뭘?”

“왜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 난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후개였잖아요. 다들 진짜 걸협오성이고…….”

“우리가 아니라고 한 적 없지 않냐?”

“지금까지 서로 부르던 이름도 달랐잖아요.”

“우린 가끔 서로 이름을 거꾸로 부르기도 해. 예전부터 그랬어.”

“난 임하남.”

“난 도유팽.”

성철각의 차례.

하지만 신소소가 눈을 흘기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만하세요. 또 놀리는 거 알아요.”

“아…… 미안.”

남하림은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네가 뜬금없이 우리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믿지 않는데 계속 걸협오성이라고 우기는 것도 이상한 거 같고. 안 그래?”

“그, 그렇긴 한데…… 그럼 언제 말하려고 했어요?”

“때가 되면. 뭐…… 지금처럼. 여하튼 이제 알게 됐잖아.”

“그, 그리고 그동안 제가 실언을 좀 많이 한 것 같은데…….”

“난 무슨 말을 했는지 잊었어. 굳이 신경 안 써도 돼.”

신소소도 지나간 일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일 뿐.

“그보다 대체 무슨 일인지 짚이는 게 없어? 너 왜 쫓기고 있어?”

“저도 몰라요. 나쁜 짓은 하나도 안 했다고요. 휴우…….”

답답한지 신소소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는 일.

“하림 형, 우선 조용한 장소로 움직이는 게 좋겠어.”

“그렇게 하자.”

* * *

탕!

살각주 독정은 바닥을 내리쳤다.

‘어이가 없군.’

살각 전체가 나섰는데도 다섯 명을 이기지 못했다.

걸협오성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이처럼 강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

만일 이 사실이 중원에 알려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대망신이 아닌가.

겨우 한 번의 짧은 대결에서 거의 일백의 수하들이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다.

‘독광걸, 그놈 때문에 독이 무용지물이었어.’

가장 자신 있었던 살각의 장점이 전혀 쓸모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후휴우우우-”

그는 긴 호흡을 하며 냉정을 되찾았다.

살각이 싸우는 방식.

‘철저하게 기습할 것이다.’

휘익!

그때 놈들의 행방을 찾으러 갔던 수하가 내려섰다.

“걸협오성을 찾았습니다.”

“잘됐군. 어디 있지?”

“저둔지에서 하룻밤을 보낼 듯합니다.”

“저둔지라면…… 야외가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아마도 기습을 대비하기 위해서 야외를 택한 것 같습니다.”

“제법 머리를 굴렸다만 본 살각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독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준비하라. 죽은 형제들의 복수를 위한 시간이 왔다.”

스윽.

슥.

살수들이 하나둘씩 살기를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샥, 샥.

저둔지로 향하는 살각의 살수들.

그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신소소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걸협오성에게 복수하는 것.

저둔지로 들어서는 입구는 좁았다.

상대의 쪽수가 많았다면 한 번쯤 의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할 적의 수는 겨우 다섯 명.

매복을 당한다고 한들, 한두 명이 막아낼 수 있는 입구는 아니었다.

독정이 신호를 보내자 살수들의 움직이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스르르-

정찰을 나간 수하가 다가왔다.

“그놈들의 동태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고? 언제부터?”

“반시진이 거의 다 되어갑니다.”

‘안 움직인다고?’

독정은 느낌이 이상했다.

자신들이 뒤를 쫓고 있는 것을 알면서 가만히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접근한다.”

그는 수하를 따라 걸협오성이 쉬고 있다는 장소로 움직였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모닥불을 중앙에 두고 앉아 있는 모습.

기감만을 숨긴 채, 너무나 평온히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가?’

독정의 표정이 뒤틀어졌다.

천하의 살각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인가?

‘두고 보자. 나중에도 그런 여유가 있을지!’

검은 구름이 다가와 달을 천천히 감싸기 시작했다.

구름에 덮인 저둔지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겼다.

스윽-

신호를 보내자 수하들은 입에 재갈을 물었다.

슥슥.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면서 저둔지로 다가서는 살수들.

거리가 오 장까지 좁혀지자 살침을 쏘기 위해 긴 대롱으로 바꿔 물었다.

훅!

이십여 개의 살침이 동시에 쏟아졌다.

핏! 핏! 핏!

살침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성공이다.’

살침에 맞은 이상 살아날 수 없다.

스슥-

천 조각을 머리에 쓴 채 움직이지 않는 시체들.

살수들이 가장 가까운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퍼석.

‘뭐지?’

손에 이상한 느낌이 났다.

천 조각을 천천히 잡아당기자,

‘속았다!’

있어야 할 시체가 없었다.

천 조각 안에는 나뭇잎과 풀잎이 사람 모양처럼 뭉쳐져 있을 뿐.

그때,

데구르르르-

독정은 긴장한 채, 뒤를 돌아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바닥을 굴러오는 옥병.

피시시식-

그가 미처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옥병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재빨리 숨을 멈췄다.

“각주, 독기가 없습니다.”

“망할…… 이런 장난질을…… 감히 살각에 독이 통할 것 같으냐?”

하지만,

“으흐흐, 글쎄. 벌써 중독됐을 텐데…….”

흰 연기는 시각적 효과를 주기 위해 뿌린 밑밥일 뿐.

“컥…… 내력이…… 사라졌어.”

“산공독이다!”

“커어억, 멸절독…….”

살수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무인에게 내력은 목숨과도 같은 법.

심상치 않은 소리에 하나둘 검을 뽑아 들었지만.

이미 독은 몰려든 살수들의 주위로 퍼져 있었다.

“뭐라고?”

뒤에서 수하들을 지켜보던 독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독광걸…… 또 그놈이다.’

“뭣들 하느냐?! 해독제를 마셔라.”

독정의 명에 살수들이 해독제를 꺼내 삼켰다.

핏핏핏!

그러나 기다려 주지 않겠다는 듯, 어둠 속에서 독침이 쏟아졌다.

“커억.”

“으악!”

수하들의 비명이 다시 터져 나왔다.

적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살수를 상대로, 오히려 살수를 펼치고 있었다.

독정은 덫에 걸린 것이 자신들임을 알았다.

‘저둔지에서 있다고 할 때부터 주의했어야 했다.’

사방 하늘 끝까지 솟구친 나무들과 그것에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가려, 주위는 항상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적의 함정에 빠졌다.

어둠 속에서 유리한 쪽은 그들이어야 했건만!

스걱-

주위에서 살기가 움직였다.

“억.”

짧은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손 한 번 섞어보지 못하고 당한다.

남하림과 성철각, 팽유도가 내력을 끌어 올린 채 기를 내뿜었다.

“……후개, 우린 개방과는 원한 관계가 없소.”

“당신이 방금 한 말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해야 할 말이었어.”

“그건…….”

“좋소. 그럼 한 가지 물어보지.”

“…….”

“공녀를 쫓는 이유가 뭐요?”

독정은 멈칫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남하림은 빠르게 결론을 냈다.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알겠소.”

“후개, 겨우 신려세가 여식 하나 때문에 살천성과 원한을 만들 생각인가? 더구나 신려세가는 정파도 아닌 사파이거늘, 본성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살천성과 척을 진다면 죽기 전에는 밥도 함부로 먹지 못할 것이며, 두려움에 볼일조차 볼 수 없을 터.”

“……살천성이 굉장히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유도야. 아는 곳이냐?”

팽유도가 나섰다.

“요즘 들어 이름 꽤나 알린 탓이죠. 호북성 감녕에 위치한 천사혈천십이문 중 한 곳입니다. 살각, 살연방, 살명곡, 살주세가로 이루어진 연합문이고, 사파 세계에선 제법 인지도가 높다고 하네요.”

“제법 자부심이 있나 본데.”

“무림대사전에 적혀 있기로는 상급 을조에 해당하는 문파입니다.”

“그렇군. 혹시 우리는?”

“본 방은 상급의 갑조인데요? 오 년 전에 만들어진 등급이긴 하지만.”

“누가 이런 걸 만드는 거야?”

“워낙 말이 많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제가 하나로 대충 묶어놓은 거죠.”

“어쨌든 살천성이 방금 우릴 협박했네?”

“본 방을 무시하는 거죠. 지금까지 부딪친 일이 없었거든요.”

“그럼 이번 기회에 본 방의 무서움을 보여주면 되겠군. 다음에 본 방의 제자들을 만나더라도 헛소리하지 못하게.”

휙!

남하림은 타구봉을 치켜들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무림의 협의를 지키기 위한 협의타구봉이다. 오늘 이 시간부로 네놈들이 평화로운 무림을 더 이상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혼을 내주도록 하겠다!”

독정은 갑자기 연설을 하는 남하림을 보며 어이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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