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결전 준비
숲속에 잠긴 하북소가의 가주전.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이 백의 자락 끝을 잡으며 찻잔에 차를 따랐다.
스윽.
하연은 찻잔을 들어 소융의 앞에 내려놓았다.
“고맙네.”
최적의 온도를 유지한 차의 향은 달콤했다.
“역시 차를 우려내는 솜씨는 세가에서 하연을 따라갈 사람이 없는 듯하군.”
“감사합니다.”
스윽.
소융이 빈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요즘 후개에 대한 소문이 많이 올라오더구나.”
“개방에서 제대로 된 인물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걸협오성의 위명이 점점 커지고 있더군요.”
“허허허, 개방의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반갑게 생각하지는 않을 듯하군.”
소융은 무림의 심리를 잘 알았다.
“그들의 활약에 다른 문파들은 부담감이 클 것입니다. 물론 본 세가도 마찬가지겠지요. 개방이 커지길 바라지 않는 문파가 있다면 더 크기 전에 곧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이야 무림사에서는 늘 있는 일이 아니더냐. 어쩔 수 없겠지.”
“우리도 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연은 산동악가와 일어난 일들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걸협오성의 존재에 주목했다.
그들과 천괴성이 움직이는 방향이 비슷해 보였기 때문.
‘느낌이 이상해. 무언가 숨겨져 있는 기분. 꼭 밝혀내야 한다.’
스윽.
소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연아, 결전의 시간이구나. 이제 가야 하지 않겠느냐.”
“가주님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할 뿐입니다.”
“후후후, 괜찮다. 그들 앞에 머리만 한 번 숙이면 되지 않는가. 그게 무어가 어렵다고.”
“소녀는 가주님께서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사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더냐. 괜찮구나.”
“가주님…….”
하연은 소융과 함께 착잡한 마음으로 대전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 * *
하북소가의 대전은 정적에 잠겼다.
중대한 발표가 있으니 각 당의 당주급 인물들은 전부 모이라는 명이 내려졌기 때문.
“가주님께서 드시오.”
대전의 문이 열리며 가주 소융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륵.
그의 뒤를 하연이 그림자처럼 함께 들어섰다.
소융은 가주좌에 오르기 전, 첫 번째 계단 앞에서 좌중을 향해 돌아섰다.
“본인이 오늘 존경하는 여러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릴 것이 있어 이 자리에 모이도록 했소이다.”
척.
그는 상의 자락을 두 손으로 잡으며 부복했다.
“가주!”
“아니, 무슨 일로……!”
세가의 주요 인물들이 모인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은 가주.
대전이 순간 웅성거렸다.
이내 소융의 목소리가 대전을 감쌌다.
“철이 없던 시절, 본인의 한때 욕심에 의해 본 가에 씻을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가주께서 무슨 실수를 했단 말이오. 사실대로 말을 해보시오.”
일장로 소양구가 재촉했다.
소융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오래전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살인 청부.
가주에 오르기 위한 욕심으로 악군악에게 소숭을 죽여달라는 청부를 했다는 말에,
대전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허허…… 가주…… 왜 그런 짓을 했소?”
“모든 것이 못난 제 탓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가문에 죄를 지은 죄인이 가주직을 내려놓고자 함입니다. 원하신다면 목숨까지도 내어놓겠소이다.”
대전에 모인 각 당의 당주들과 장로들, 그리고 주요 인물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을 현재 위치까지 올려준 인물이 바로 가주 소융이었기 때문.
이미 소숭의 세력은 하북소가의 권력판에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삼장로 소추의 시선은 가주 소융이 아닌 건너편에 선 하연과 마주쳤다.
‘설마…… 이것 때문에…….’
가주 소융은 평소 독단적으로 세가의 일을 처리했다.
소추는 그런 부분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호법장로였기에 가주와 많이 부딪치기도 했다.
‘받은 게 있다면…… 갚아야겠지.’
한 달에 한 번 여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일을 덮었고, 한음고까지 챙겼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 셈.
게다가 현 세가에서 소융보다 나은 인물은 없었다.
“본인이 한마디 해도 되겠소이까?”
삼장로 소추가 앞으로 나서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가주께서 한 행동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정정당당하게 가주위에 도전하지 않고 외부의 인물에게 청부했다는 사실은 호법장로인 본인의 생각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소이다.”
웅성웅성.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가주의 편에 선 인물들은 소추의 말에 인상을 썼다.
만일 가주가 실각된다면 그들 또한 현재의 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조용히들 하시오. 본인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소.”
소추는 웅성거리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가주는 분명 죄를 지었소이다. 벌을 받아야 함에 마땅한 일이오. 하지만…… 이십 년이란 시간이 지났소. 본인은 가주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소. 다만 소숭이 죽은 뒤, 전대 가주를 얼마나 최선을 다해 모셨는지 보았소. 물론, 그것이 죄책감인지 아닌지는 가주 외에는 모를 것이오.”
소추는 가주의 앞에 다가섰다.
“가주, 하나만 묻겠소. 그 일을 정말로 후회하시오?”
“그날 이후 이십 년 동안 후회하며 지내왔소. 나의 죄업을 씻기 위해 세가에 최선을 다했소이다.”
“……가주의 진심을 믿겠소이다.”
소추는 대전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결정은 여러분이 하시오. 본인은 여러분들의 결정에 따라 호법장로의 임무를 할 것이외다.”
소추는 결정을 그들에게 미루며 원래의 자리로 들어섰다.
척.
“삼장로 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감영국주 소진화가 이어 나섰다.
세가 감찰 임무의 수장.
가주가 직접 임명이 아닌 세가인들의 추천에 의해 정해지는 자리기에, 가주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
“현재 무림은 격동의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본 가가 한 단계 올라설지, 아니면 퇴보를 할지 결정될 시기이죠.”
대전은 다시 웅성거렸다.
매번 가주와 반대편에 있는 그녀까지 소추의 뜻과 같았다.
“가주께선 스스로 죄를 밝혔소이다. 본인은 가주의 죄에 대해서 벌하는 것보다,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어떠한지 제안드리고 싶군요.”
세가에서 늘 가주의 반대편에 서 있던 두 사람의 의견에, 대전의 분위기는 용서를 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두 분의 말씀을 잘 들었소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소이까?”
한 걸음 나온 내당주 소묵이 돌아서서 대전의 주요 인물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가주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소이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으로 하시지요.”
“맞습니다. 여기에 계시는 모든 이들이 잘 알고 있소이다. 가주께서는 하북소가를 하북최고세가로 키운 분이십니다.”
“그렇지요, 흠흠.”
고개를 숙인 소융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후후후, 하연의 생각대로 흘러가는구나.’
* * *
풍천분타에서 맞이한 저녁.
‘에고…….’
신소소는 눈만 말똥말똥 뜬 상태로 독방에 누워 있었다.
분타라고 해도 개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것이란 생각조차 못했는데.
수십 가지의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엉켰다.
‘일단, 살각이 왜 나를 죽이려고 하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벌떡!
“으악! 잠도 안 오네.”
잠시 시원한 공기를 쐬면 싱숭생숭한 기분이 사라질까.
스윽.
신소소는 밖으로 나온 뒤 팔을 벌려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잠이 안 오는 모양이지?”
사내의 목소리.
어둠 속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진한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뭐……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후개께서는 안 주무세요?”
“잠을 많이 자는 편이 아니라서. 근데 애들은 많이 자야 키도 자라고…….”
“흥.”
“여하튼 일찍 자야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걱정 마시죠.”
“흠…….”
남하림은 얼굴을 불쑥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섰는지 남하림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왜, 왜…… 그러세요?”
“한 가지 물어보자. 유도는 오빠라고 하면서 난 왜 그렇게 안 불러?”
“그냥…… 후개님은 후개님이고…… 아, 그건 부르는 사람 마음이죠.”
척.
남하림은 손가락으로 신소소의 이마를 짚었다.
“내가 이상형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는데 기억할지 모르겠네.”
“한두 살 차이에 단아하고 조신한 여인요?”
“잘 기억하고 있네. 맞아.”
“난 그중 하나는 아니라고 봐요. 이왕이면 나이 차는 다섯 살 정도가 가장 이상적이죠. 그리고 소녀는 원래 단아하고 조신하고요.”
“흐음.”
남하림은 한 손으로 턱을 받치며 신소소를 보았다.
“뭘 그런 표정으로 봐요?”
“내가 잘못 들었는가 싶어서. 아니면 어디가 조신하고 단아한지 다시 보는 중이지.”
“진짜 못됐다. 세상에서 후개가 제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소소는 입을 삐죽였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사내 중 남하림이 가장 멋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저…… 진짜…… 안 되는 건가요?”
“당연히 안 되지.”
“…….”
“물론 사람 일을 알 순 없지만……. 지금은 어려서 안 돼.”
신소소는 슬그머니 뒤로 몸을 빼면서 미소를 지었다.
“잠깐,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다.”
“알았어요. 시간은 제 편이라는 거.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요.”
“…….”
드물게 말문이 막힌 남하림은 신소소를 주시했다.
“뭐 보세요?”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서. 살각인지 살천성인지 그곳에서 너를 잡으려고 이유. 안 그래?”
“그러게요. 지금까지 집에서만 살다가 집 나온 것밖에 없어요.”
“신려세가와 살천성이 원수지간이었어?”
“전혀 연관 없어요.”
“그럼, 너한테 장가간다는 인물이 살천성인가?”
“사음문인데요?”
“그것도 아니면…… 혹시 세가에서 가출할 때 가보라도 몰래 가지고 나온 건 아니겠지?”
“제가 무슨 가출을 했다고 그러세요? 그냥…… 잠시 나온 거죠. 그리고 가지고 나온 거 없어요.”
“그래? 그것도 아니라면…….”
신소소는 주섬주섬 자신의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금전과 은전을 담은 돈주머니와 신패, 작은 붉은색 노리개.
“봐요. 이것밖에 없어요.”
“그렇군. 그럼 대체…….”
남하림은 대수롭지 않게 신소소가 꺼낸 물건들을 보았다.
‘어?’
남하림은 노리개를 들어 올렸다.
붉은색의 옥을 조각해 만든 노리개.
조각 사이에서 작게 새겨놓은 구천마제의 핏빛 문양이 빛났다.
“……넣어둬.”
신소소는 남하림의 표정을 바로 읽었다.
“이것 때문인가요? 생일 선물로 아버지에게 졸라서 받은 거예요.”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신 모양이다.”
“……이게 뭔가요?”
“구천신품.”
“헉?!”
신소소는 정말 놀랐는지 온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이, 이걸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잘 가지고 있다가 아버지께 돌려줘야지. 괜히 몸에 지니고 있다가 화 당하지 말고.”
“살천성이 이미 알고 있잖아요. 소문이 나면 여기저기서 몰려올 수 있고…….”
“탐욕의 결정체가 구천신품이지.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거든.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데.”
신소소는 순간 움찔하고는 남하림의 눈치를 보았다.
“후개께선 이걸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됐다. 그런 물건은 피곤해. 난 편안하게 살고 싶다.”
“…….”
“상당히 귀찮게 됐어. 안에 들어가서 의논을 해야겠다.”
신소소는 노리개를 품속 깊숙이 넣고는 남하림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이분은…… 정말로 욕심이 없으신 것 같아.’
* * *
중원 제일의 살수.
무림인들에게 살왕(殺王)이라 불리는 자.
살천성의 성주 지무린에게 호북성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살각주 독정의 죽음, 그리고 살각의 초토화.
지무린의 앞으로 세 명의 인물이 마주 앉았다.
살연방 방주 고적삼.
살명곡 곡주 순규찬.
살주세가 가주 안본강.
전멸을 당한 살각과 더불어 살천성을 이룬 사대가문이었다.
“성주님,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고 방주의 말이 맞습니다. 이건 살천성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살명곡에서 맡아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살명곡주 순규찬의 말에 곧바로 살연방주 고적삼이 말했다.
“아닙니다. 이 일은 살연방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척.
지무린은 손을 들어 그들을 멈췄다.
“이 일에 살천성 전체가 나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주님, 그건 개방과 전면전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고적삼의 대답에 살주세가주 안본강이 화를 냈다.
“이보시오. 고 방주! 개방이 두렵다는 것인가?”
휙.
고적삼은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안 가주.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네.”
“그까짓 거지 놈들이 뭐가 두렵다고 몸을 사린다는 것인가?”
“내 뜻은 생각 없이 행동하지 말자는 걸세. 후개를 치는 것과 개방과 전면전을 펼치는 것은 다르니까. 게다가 걸협오성은 겨우 다섯 놈이었네. 다섯 놈에게 살각이 거의 전멸당했는데 아무 생각도 안 드는가?”
“흥. 그게 두렵다는 게 아니면 뭐지? 당연히 본 가는 그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이번 일은 본 살주세가에서 맡는 것이 좋겠군.”
지무린은 안본강의 뜻을 받아들였다.
“안 가주, 이번 일은 그대가 맡아 진행하도록.”
“소신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살각의 복수를 하겠습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의 목적은 걸협오성이 아니라 신려세가의 그 아이를 잡아오는 것. 이를 방해하는 벌레들을 정리할 뿐이지.”
‘우욱.’
지무린의 살기에 살주세가의 가주인 그조차도 몸이 떨렸다.
“알겠습니다.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다른 이들도 곧 불길한 붉은 노리개의 존재에 대해 알았다.
당무독이 신소소를 보았다.
“그래도 이유를 알았으니 다행이네. 아주 나아쁜 짓을 한 줄 알았더니.”
“무독 형 말이 맞아요. 그나저나 신려세가의 가주도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런 물건을 달란다고 그냥 주시다니. 안 그래요?”
방에 모인 이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이휘연이 말을 꺼냈다.
“부장, 구천신품이 소소에게 있다면 이대로 갈 수 없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소소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신려세가 가주에게 직접 인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신려세가까지 가서?”
“아뇨, 살천성이 따라붙지 않는다면 모를까. 우리가 살각을 건드린 이상 살천성이 나설 게 분명해요. 그렇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부장 생각은?”
“신려세가를 이곳으로 부르는 게 좋겠어요.”
“……좋은 생각이지만 신려세가에서 살천성으로 정보가 샐 거다.”
“하하,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쪽이 위험도가 낮고, 우리 다섯 명만 있는 것보단 풍천분타로 끌어들이는 것이 훨씬 좋잖아요.”
이휘연은 남하림의 미소를 보았다.
살천성이 어떠한 곳인가.
살수의 왕이라 불리는 살왕이 있다.
“정말로 살천성을 상대할 생각인가 보군.”
“살수라고 하지 않았나요? 숨어 있는 놈들을 외부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더 유리할 거예요.”
남하림의 말에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었다.
살수가 두려운 이유는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역시 형의 배짱 하나는 알아준다니깐. 하림 형이 아니면 누가 살천성을 상대하겠다고 하겠어. 안 그래요?”
“응, 맞아. 부장이 최고야.”
성철각도 덩달아 엄지손가락을 폈다.
절레절레.
당무독은 고개를 저으면서 헛웃음을 뱉었다.
그나마 자신이 다섯 명 중 가장 이성적인 성격인 게 분명하다.
“아, 진짜…… 이런 녀석들과 함께 있으니 내가 안 미칠 수 있어? 할 수 없군. 이번 기회에 살수 놈들에게 독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무독 형, 내가 보기에 우리들 중 가장 미친 사람은 형이야. 형은 완전히 독에 미쳤잖아.”
“그건 유도 말이 맞아. 미친 것을 굳이 단계로 나타내면 우린 구단공이지만, 무독은 십단공 수준이지.”
“아하하하!”
무엇이 재밌는지 서로 마주 보며 웃는 다섯 사람.
‘……뭐지? 다 똑같이 미친 거 같은데? 어떻게 다섯 명으로 살천성을 상대하겠단 거지?’
신소소는 혼자 뚝 떨어진 채, 한참 동안 어이없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