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검해 (1)
한 달 뒤.
모든 은원을 정리한 백무량은 다시 곤륜산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공기가 만연한 봄이다.
다시 돌아온 산에는 꽃 향이 어우러져 있었다.
“뭐 이렇게 늦었습니까?”
그렇게 투정을 부리는 철유에게 백무량은 천천히 다가가 웃었다.
“……하늘과 싸우기 전에 잠시 천하를 돌아보고 왔지.”
“사조님이 무슨 하늘과 싸워요? 그런 말씀 말고, 대답을 확실하게 해 주셔야죠!”
얼핏 보았을 때 토라진 것 같아도, 철유는 불그스름한 낯으로 백무량을 환영하고 있었다.
그 온기.
미소와 훈훈함이 백무량에게 잦아들었다.
‘따뜻하다.’
백무량은 한때 폐허만 있던 터를 보았다.
불타 버려 더 이상 쓰지 못할 목재는 어딘가로 치워졌고, 기둥조차 세우지 못할 흙 대신 단단하고 점성이 좋은 토지로 채워져 있었다.
단단하게 보이는 자재 또한 겹겹이 쌓여 있다.
백무량은 철유에게 물었다.
“이건 관에서 가져다준 거냐?”
“네.”
“그러면 일꾼도 같이 오지 않았어? 왜 자재들만…….”
철유가 입술을 삐쭉였다.
“재미없잖아요.”
“……뭐?”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만든 건물에 무슨 추억이 있어요. 직접 지어야 제맛이죠.”
그 터무니없는 말에 백무량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여태껏 자신이 살아옴에 있어 이토록 비효율적인 일이 있었던가?
추억 또한 희끄무레하기 그지없는 애매한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직접 건물을 지어서 얻을 만큼 값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백무량은 철유를 다그치지 않았다.
‘이 또한 인생이라.’
사람이기에 감정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도경에 적혀 있는 세속적인 삶 그대로였다. 어쩌면 이런 삶을 기대했을는지도 모른다.
효율적인 것만 찾으며 살아온, 지친 삶을 마치고 이제는 조금 천천히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것이 비록 남이 보기에 미련하고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일찌감치 해 볼 생각이 가득했던 것인지 소매를 걷어 놓고 있었다.
“그럴까.”
철유는 대답 대신 하얗게 웃었다.
“그래요.”
이로써 백무량은 철유를 비롯한 곤륜파의 도사들과 건물을 세우기로 정했다.
뚝, 딱.
처음에는 망치질이 어색했다. 중간에 실수가 잦아 관을 통해 기술자를 불러 가르침을 받았다.
“제가…… 정말 대협을 가르쳐도 될지.”
그는 기름때 묻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일개 장인에 불과한 자신이 영웅을 가르친다니, 참으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다.
반나절이 지나고, 만 하루가 지나자 그는 장인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게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거뭇거뭇한 수염이 무성한 장인이 보내는 꾸지람에 현종휘가 쿡 웃었다. 톱밥 같은 것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웃지 마. 저분께서 가르쳐 주시잖아.”
“그래도 얼굴이…….”
“나?”
백무량은 저도 모르고 손등으로 얼굴을 훔쳤다. 현종휘의 얼굴에 묻은 톱밥을 보고 웃었는데, 정작 자신의 얼굴에 한가득이었다.
그걸 보고 괜히 머쓱해져 백무량이 피식 웃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때, 기술자가 백무량의 등 뒤로 다가섰다.
“지금 이게 농담으로…… 헉!”
순간적이었지만 백무량이 휘두른 손날이 기술자의 목에 맞닿아 있었다.
기술자는 머릿속이 녹아내리는 듯한 살기를 느끼고, 목을 어루만졌다.
피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백무량은 서둘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크흠, 흠.”
헛기침을 연거푸 하며 마음을 다스린 기술자는 자신이 받기로 한 은전을 떠올렸다.
그리고 저자가 일반적인 무인도 아니고, 영웅임을 떠올렸다.
그에게는 자신보다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있었다.
지금은 다시 북벌을 위해 떠났지만, 그 전에 집안에서 벌였던 행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되었소. 험한 일을 겪은 사람은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하곤 하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목에 손톱으로 상처를 내면 어떡하오. 차라리 도구 손잡이로 때리지, 집에 가면 마누라가 어디서 놀았냐고 욕하겠구먼.”
그 말에 현종휘가 피식 웃었다.
이윽고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동안에 백무량은 생각했다.
‘아직 몸이 평화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야.’
뚜둑, 뚝.
백무량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재를 잘라 내고, 일정한 길이에 따라 흑연으로 표식을 남겼다.
공사가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방금 전 등 뒤에 있던 기술자를 공격했던 것처럼,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끔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괜찮아요.”
현종휘가 넌지시 던진 말에 백무량은 고개를 돌렸다.
“또 그럴 거 같으면, 내가 말릴 테니까. 그럴 만한 힘은 있어요.”
백무량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삶인가.’
백무량은 망치를 두드리며 다음에 할 일을 떠올렸다.
‘검해를 해체할 준비가 끝나기 전에…… 곤륜의 사람들과 잠시 호흡하다가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백무량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뭐야, 이거 짓는다고 지금까지 두문불출했던 게냐?”
송우현의 괜한 타박에 백무량은 건네려던 술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송우현이 식겁하여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흠, 자세히 보니 장인의 솜씨가 느껴진 달까? 제대로 배우긴 했구만!”
“그렇죠? 저와 제자들이 만들었습니다.”
송우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네가 왜 만들어? 에잉, 쯧! 못 봐주겠구만.”
그 말에 술을 등 뒤로 숨기니, 상도덕이니 뭐니 하며 송우현이 열변을 토했다.
백무량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잘 안 들리는데요?”
“네가 별의별 사람을 다 불러서 그러지!!”
저 말대로.
백무량은 강호를 주유하면서 그동안에 만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무림맹부터 시작하여,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까지 곤륜산을 왕래했다.
개중에는 가면을 쓴 자까지 있어 신비감이 더해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에게 다가서질 못했다.
“……싸구려군.”
툭.
잔을 내려놓은 황제는 열의 금의위를 대동한 채 축하연을 감상했다.
가면을 쓴 탓에 조금 갑갑하긴 했으나, 세속에서 신분을 밝힐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만일 곤륜파의 잔치에 황제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불만을 야기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황제의 집요한 시선이 백무량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느낀 백무량이 황제에게 다가섰다.
“술은…… 당연히 마음에 안 드시겠지?”
“본인이 만족할 술이 있었다면, 술도가를 내 집으로 불렀을 거다.”
입에서 찔끔찔끔 나오려는 본 좌니 천자니 하는 단어를 막으니 자연스레 말이 짧아졌다.
전쟁 이후로 황권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어법(語法)을 교정했더니 일상 대화를 잘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심 씁쓸해진 황제는 백무량에게 잔을 들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서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지.”
“그러게 말이야.”
그 말이 끝나고 백무량은 입을 닫았다.
분명 과거에는 황제에게 많은 걸 따지고 싶었던 것 같은데.
막상 그런 상황이 되니 말을 꺼내기가 궁벽했다.
여기서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본인은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네.”
“……?”
“악의적인 건 아니고, 단순한 호기심이었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홀로 사교들과 맞서려는지. 본인에게 힘을 빌려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홀짝.
황제의 잔이 비워지고, 그 옆에 있던 금의위가 잔을 다시 채웠다.
“자네는 어떠한가?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나는.”
백무량은 솔직하게 품었던 생각을 토로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사교를 저렇게 방치하나 했지. 능력이 부족한가…… 뭐 그런 생각도 했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에 있던 금의위가 눈길을 돌렸다.
그걸 앎에도 백무량은 하던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많은 걸 경험하고, 지하 석실에 들어가기 전보다 많은 사람을 만남에 따라 알게 되었어.”
“무엇을 말인가?”
황제가 흥미로운 눈으로 경청하자 백무량은 축하연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돌아보았다.
때때로는 미안함에 젖었고, 웃기도 하였으며, 슬퍼했다.
“언젠가는 모든 게 천의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
“당신한테도 뭔가 일이 있었겠지. 그러다가 마지막에 도철을 보내 준 게 최선의 방법이었겠지만, 뭐 어쨌든 나한테 빚진 거야.”
백무량은 자신의 뜻을 밝히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황제에게 고언을 들려주어야 앞으로의 세상이 더 평안해질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앞으론 마교도 없으니 잘해 보쇼. 그것만 잘해도 빚은 갚은 걸로 생각하지.”
백무량의 시선이 곤륜파의 도사들에게로 향했다.
스스로 죽어 사라지려던 자신을 붙잡은 후배.
현씨 조손도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안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다. 백무량은 자신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그들에게 감사했다.
그 시선을 눈치챈 황제가 은근슬쩍 농을 던졌다.
“곤륜파가 무림의 왕이나 마찬가지인데, 국교가 될 생각은 없는가?”
“새삼 느낀 건데 욕심쟁이군.”
황제의 가면 밖으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어, 당신만 한 고수는 이제 없거든. 기왕이면 중화의 미래를 위해 합류해 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
하지만 황제는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백무량에 대한 존중 때문이었다.
오히려 황제가 곤륜파에게 베풀고 싶은 입장이었다.
“이제 공사도 끝났으니, 더 필요한 건 없나?”
“필요?”
백무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고개를 넌지시 저었다.
필요란 곧 목적, 효율을 간접적으로 의미하는 단어였다.
더 이상 백무량은 스스로를 피곤한 환경에 던지고 싶지 않았다.
당장 옆에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곁에 있어줘야 하는 법이었다.
황제도 그 뜻을 용케 알아채고 피식 웃었다.
“본인도 그 때문에 황도에서 안 나가고 있거든. 당신과 본인은 어느 정도 상통하는 바가 있군.”
“규모가 다르지만.”
그 말에 황제가 푸핫, 하고 웃었다.
황실에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았던 웃음인지라 금의위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웃음을 터트렸던 황제는 가면을 슬쩍 들어 흐트러진 가면을 정리했다.
너무나 크게 웃은 탓에 광대 부분에 걸려 가면이 미묘하게 틀어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여기서 살아갈 생각인가?”
“글쎄, 잠시 떠나 있을 생각이기도 한데. 하늘한테 좀 따질 일이 있어서.”
언뜻 선문답같이 들리는 말에 금의위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황제는 즉시 이해했다.
“……어쩐지, 부럽군. 당신처럼 강인한 무인은 그런 것도 할 수 있나?”
황제가 다소 침울해하자 백무량은 그의 등을 탁 두드렸다.
금의위가 기겁하는 와중에 백무량이 웃었다.
“축하연인데 어찌 축 늘어지나. 웃으라고.”
“그건 명령인가?”
“그렇지, 여기선 내가 황제거든.”
백무량은 곤륜산을 보았다.
“여기서는 짐을 내려놓고 즐겨.”
“그러면 확실하게 책임지게.”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자작하던 것을 멈추고 사람들의 틈바구니로 들어갔다.
금의위가 당황하며 그를 쫓아갔다.
‘잠깐만 쉬고 찾아가겠소.’
백무량은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의를 이뤘으니, 그 대가는 받아 갈 작정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