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208화 (208/275)

가르침 (9)

***

쩌억!

무명의 장심이 백무량의 내관혈을 때렸다.

얻어맞은 손목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백무량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진각을 밟았다.

검해의 물결이 갈라지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그런데 마땅히 있어야 할 파문은 없었다.

‘힘을 온전히, 천주에 수습해서.’

진각의 힘을 바깥으로 발출하지 않는다. 수경의 묘리로 용천혈에 모두 수습한다.

그것은 곧 천주로 향하여 무명에게 내질러지니.

꽈광!

내공 한 줌 없는 주먹질이 석파(石破)의 힘을 가진다.

금강불괴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만한 강권(强拳)이었다.

하지만 무명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수련이 부족하다.”

이마저도 아직은 수련이 부족한 것이다.

완성에 이른다면 물결이 갈라지는 소리마저 내비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물며 백무량의 행동에는 사사로운 감정이 가득했다.

“한 대만 맞읍시다!”

여태껏 얻어맞은 장심에 대한 분노와 창피, 혹은 자존심.

백무량의 표정은 그런 것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호칭은 스승이라고 꼬박꼬박 붙이지만, 원수를 보는 듯한 살의였다.

“생자(生者)이기에 보일 수 있는 즐거움이겠지.”

무명은 백무량의 무례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검해에 오랫동안 잔존하면서 짜증이나 실망 같은 감정은 일찍이 버렸다.

따라서 백무량의 자세가 기껍기만 했다.

굴욕에서 이어지는 반성과 향상심.

그것이 백무량을 더욱 강하게 했다. 화기(火氣)가 금기(金氣)를 단단하게 만들 듯,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저 후배가 앞둔 어려움과 고난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로구나.’

무명의 눈가가 잠시 가늘어졌다.

백무량이 지금까지 많은 강자를 이겼으나, 칠성교주는 다른 영역에 있었다.

그를 꺾는다고 한들 만약 고대의 마물이 되살아난다면?

‘상상만 하여도 끔찍하다.’

무명은 백무량과 대련을 이어 가며 많은 고민과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다 백련교주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백련교주는 일반적인 마도 고수와는 다르다. 알고 있느냐?”

“유 선배에게 들었습니다. 마공을 익힌 괴력난신이라고, 제 운명이 칠십여 년 전에서 끝날 뻔했다고요.”

백무량은 무명의 장심을 힘겹게 쳐 내며 대답했다.

백련교주.

그는 칠성교나 천마신교처럼 마물의 부활을 꾀하는 놈이 아니었다.

하늘이 내린 운명마저 어그러뜨리는 존재였다.

이에 대해 백노가 한마디를 툭 내뱉은 게 있었다.

“……어쩌면 마물이 인간의 태(態)로 환생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죠.”

어디까지나 가능성은 열어 두자는 논지였으나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대체 언제 다시 나타나는가?

화산파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두문불출한 시간이 길었다. 그동안 흑도와 결탁했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적은 없었다.

“저와 칠성교주가 싸우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무명이 재차 백무량에게 장심을 휘두르며 물었다.

“네가 목표하는 건 그마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파천황의 경지가 아니더냐?”

“그렇지만.”

“무인이 뜻을 정했으면 남을 떠올리지 마라. 오로지 자신만을 관철하고 나아가라.”

“…….”

백무량은 무명의 숱한 공격을 막아 내며 조금씩 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막지 못한다고 봐줄 선배가 아니야.’

수경을 펼치지 못하면 끊임없이 맞을 뿐이다.

무명의 공세에는 봐준다는 개념이 없었다. 피멍이 들고, 근육이 상해도 걱정하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수경에는 수경.

걸레를 쥐어짜듯이 만든 의념으로 팔뚝을 움직였다.

‘수경을 펼치는 게 느리지만, 막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유성백에게 배운 천주.

삼단전의 조화를 이룬 기둥이 백무량의 신체를 강화했다.

쩌억!

“……음.”

무명의 인상이 찡그러졌다. 먼저 장심을 움직였음에도, 뒤늦게 움직인 백무량의 수도가 도착해 있었다.

“유씨 놈이 너에게 너무 좋은 것을 남겼구나.”

천주부동세의 공능이 백무량의 부족함을 채웠다. 무명보다 수경의 숙련도가 현저히 낮았음에도 막을 정도였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백무량의 수련이 깊어진다면 어떨까?

무명은 그것이 서둘러 보고 싶어졌다.

“그럼 조금 더 빠르게 가도 되겠지?”

“……아니, 그게 무슨!”

백무량은 식겁하며 의념을 끌어올렸다. 정신적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왔지만, 분심조화결의 수련이 그것을 감내하게 했다.

그다음 순간.

무명의 쌍장이 백무량의 요혈을 집요하게 노렸다.

‘나보고 죽으라는 건가?’

내공을 담지 않더라도 강하게 얻어맞으면 혼절하거나 죽을지도 모르거늘.

백무량은 수련이라는 것을 잊었다.

무명이 이빨을 드러냈으니, 백무량이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미친놈 같으니!”

소청권의 이초, 우청격을 자연스레 펼쳤다. 무명의 쌍장을 어떻게든 떨쳐 내기 위한 반격이었다.

한데 그 일 초식 안에 수경의 묘리가 담겼다.

스르륵…….

마땅히 있어야 할 소리가 없었다. 비골근에서 시작한 힘이 온전히 전달되어, 바깥에 발출되지 않았다.

심지어 바람마저도 살짝 밀려 날 뿐이었으니.

쩌적!

백무량의 우청격을 막아 낸 무명이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하, 이제야 수경을 배웠다고 할 수 있겠구나.”

이제야 백무량을 다루는 법을 알 것 같았다.

이후.

무명과 백무량은 수경의 묘리로만 삼 일 밤낮을 다퉜다.

***

“이로써 후배는 나에게 수경과 권장술까지 배운 셈이다.”

“제 의사는 단 한 번도 묻지도 않고요.”

백무량은 오른손으로 전신을 주물렀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고,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았다.

사실상 무명에게 얻어맞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치사하게…… 내가 슬슬 따라잡으니까 그만하는 것 봐.’

백무량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봄에도 무명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으로 이어 갔다.

“하지만 수경을 완전히 익혔다고 할 수는 없다. 익히면서 느꼈겠지만, 탈력이란 힘을 뺀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야.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기 뜻대로 이루는 게 중요하지.”

“……솔직히 너무 힘듭니다.”

“그야 그렇겠지. 외공으로 비유하자면, 전혀 쓰지 않았던 근육을 수련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수련을 멈출 것은 아니지 않느냐.

무명이 그런 시선을 보내니 백무량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 예. 더 합시다.”

“이번에는 내가 손을 휘두르는 일은 없을 거다.”

“정말요?”

백무량은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지금까지 무명에게 맞은 게 몇 번이던가!

심지어 말하기 부끄러운 부분까지 여러 차례, 집요하게 얻어맞으니 자존심이 깎여 나가는 게 상상 이상이었다.

‘한데 다음 수련엔 그런 일이 없다니…….’

백무량은 히죽 웃으며 무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얼른 시작하시죠.”

“이쪽이다.”

무명은 가히 무한하기까지 한 검해를 모두 꿰고 있다는 듯, 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데 그 방향이 어째선지 백무량에게 익숙했다.

‘왜 익숙하지?’

가벼운 의문은 품었지만, 사사로운 위화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시진 정도를 걷자 위화감은 확신으로 굳었다.

“여기는……!”

백무량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바야흐로 칠 년 전.

되살아난 뒤 처음으로 검해에 도달해, 구천화우검으로 잘라 냈던 폭포.

폭포가 허리가 끊긴 채로 물을 끊임없이 쏟아 내고 있는 광경 속에 무명이 천천히 걸어갔다.

찌지직……!

세차게 내리치는 폭포수에 무명의 옷이 찢어졌다.

뒤이어 무명의 상반신도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에 백무량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천중수다. 현세에도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이건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고 있으니…… 훨씬 무겁지.”

과연 그 말에 틀림이 없다는 듯, 무명의 몸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땅바닥에 내딛는 두 발.

직립하고 있는 자세만은 변하지 않았다.

‘천중수는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 뼈와 장기가 상할 정도로 압력이 강한 물이거늘.’

천중수가 무엇이던가?

외공을 극한까지 수련한 무인이 내장을 단련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물이지 않던가!

그것이 검해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자신이 자른 폭포였다는 게 더 경악스러웠다.

하물며 이제는…….

“제가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입니까?”

“수경의 완성을 위해서다.”

이따금 몸을 휘청거리던 무명이 갑자기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현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강한 의념이 주변을 꽉 부여잡는 감각이었다.

“……!”

백무량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무명을 향해서 쏟아져 내리던 천중수가 현저히 느려진 데다 피부에 닿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내공을 일으키지 않고 순수하게 의념만으로? 저게 가능한 건가?’

백무량의 표정을 본 무명이 입술을 뗐다.

“가능하다, 수련하면.”

그 무명마저도 집중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듯 말을 끊어서 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든 백무량은 조심스럽게 폭포 안쪽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순식간에 발톱에 핏물이 맺혔다.

“……큭!”

몸을 담그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천중수가 쏟아져 내리니, 사람의 몸으론 버티는 것이 가히 불가능했다.

그렇게 뒤로 향하던 백무량이었으나.

“어딜 그렇게 빼나.”

백무량의 멱살이 무명에게 잡혔다.

무명은 평소처럼 무덤덤한 표정이었으나, 백무량에게 있어 악귀나 마찬가지였다.

“이, 이거 놔!”

“스승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놓으라고!”

붙잡혀 있는 와중에도 백무량의 발가락에 천중수가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다.

뼈가 우수수 부러지는 통증이 백무량의 시야를 하얗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명의 목소리는 냉정하기만 했다.

“통증은 의념으로 한쪽으로 밀어 넣어라. 네가 할 것은 수경으로 천중수를 흘려 내는 것이다.”

무명의 말은 간단했다.

진각의 모든 힘을 온전히 옮겼던 것처럼, 천중수도 흘리면 된다.

신공절학을 익힌 백무량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 무덤덤한 신뢰가 백무량의 부아를 치밀게 했다.

“아니, 일단은 뭐 연습이라도 하고 시작해야지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네가 소청권을 펼쳤을 때도 갑작스러웠지 않느냐? 이번에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했다.”

“이런 미친……!”

백무량은 고개를 홱 돌리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뒤이어 태청신공의 그윽한 내력이 전신을 휘돌았다.

그러나 무명이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툭.

갑작스레 기해혈을 찔리니 내공의 수발이 막혔다. 백무량의 눈에 한순간 증오가 실렸다.

“돌았소?”

“어차피 이곳에 오랫동안 잔존하는 사람이라면 미치는 거야 당연하지. 유 씨 그놈이 착했던 거다.”

무명은 백무량의 몸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제자야, 나와 잠시 어울리자꾸나.”

빠득.

이를 꽉 앙다문 백무량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열이 잔뜩 올라서 무명을 한 대 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한데, 기이하게도.

주르륵…….

백무량의 발가락을 두들기던 천중수가 점차 옆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역시나, 불합리하다.”

무명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백무량에게 복부를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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