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4)
무극진인의 목소리가 그리도 컸던 걸까?
무당산으로 향하는 곳마다 상인, 호사가, 무인으로 북적였다.
조금만 걸어도 서로의 어깨를 툭툭 건드려, 골목마다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무량은 그것을 구경하는 쪽이었다.
‘아무나 이겨라. 이기는 쪽이 내 편.’
이제는 얼굴이 널리 알려져서 대놓고 응원하지 못하는 게 흠이다.
백무량은 간식거리를 입안에 넣고 씹어 대면서 이곳저곳을 살폈다.
‘보이십니까?’
[네 눈이 곧 내 시야이지 않더냐. 아주 잘 보인다.]
심천검이 심드렁한 음색으로 현 세태를 비꼬았다.
[아주 끈질기게 숨어 있던 흑도 놈들이 이제 기세등등하여 평범한 사람의 지갑을 탐하는구나. 몇몇 의인과 무림맹원이 나서기는 하나, 열 손을 당해 내긴 어려운 법이지.]
무극진인의 병증이 호광성 북쪽에 옮은 것처럼 보일 정도라.
백무량은 무당파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임을 깨달았다.
‘한데 왜 제갈세가는 가만히 있는 겁니까? 자기 앞마당이 저렇게 되었는데.’
[나 때도 말이야, 제갈 놈들은 원래 그랬다.]
‘이득이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
[그렇지. 잘 보아라. 제갈세가의 일원이라는 징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잖느냐!]
심천검의 말에 백무량이 저잣거리를 살피니, 과연.
막나가기 시작한 흑도일지라도 제갈세가의 일원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백무량은 그것을 복잡한 표정으로 보다가, 고개를 무당산 방향으로 돌렸다.
남존무당의 장문인이자 강호십대고수.
무극진인이 과연 어떤 도사일지 궁금했고, 비무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무당의 무학은 과연 어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뭐, 보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네가 지금까지 익힌 경파나 화검, 수경이니 팔첨 같은 것과는 달리 무당의 검은 공방일체, 태극의 묘리를 기본으로 한다.]
무당파가 괜히 남존무당이겠냐며.
심천검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무당파의 무공은 소림사처럼 새로운 무맥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극에 대해 지극한 이해가 없으면 무언가 얻을 수 없을 것이야.]
‘선배가 그리 말할 정도입니까?’
[그야…… 내가 강호를 주유하던 때, 무당파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심천검이 우물쭈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와 오랫동안 동행한 백무량은 곧바로 직감했다.
‘무당파와 직접 싸워 보신 겁니까?’
[싸우기는! 단순히 시비가 붙었을 뿐이지.]
‘결과는 어땠습니까?’
[내가 괜히 그 당시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렸겠느냐? 당연히 승리했지. 하지만…… 그들의 태극을 부수지는 못했다.]
‘……!’
백무량은 순간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심천검이 누구던가?
칠성교주와 여러 번 검을 맞대었을뿐더러, 곤륜파 무공을 대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심천검이 부수지 못하였다니.
백무량의 격동을 느낀 심천검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무극진인이라는 고수와 비무를 하겠다면 한 가지는 기억해라.]
‘그게 뭡니까?’
[억지로 짓누르려고 하지 마라. 그걸 부수는 건 적어도 칠성교주나 백련교주 같은 마도 고수만이 가능할 거다.]
마공을 완성하여 인간의 태를 벗어난 자들.
그 정도가 아니면 태극을 부술 수 없다는 말에, 백무량은 묘한 호승심을 느꼈다.
‘이번에 얻은 깨달음과 묘리를 덧붙인다면 저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심천검이 잠시 고민했다.
염화에게 펼쳤을 때 보았던 여러 무학의 조화.
끊임없이 절초를 쏟아 내던 운해의 기류.
백무량의 절기 또한 한 무맥의 종사와 다를 바 없으니.
[아예 불가능하다고 하진 않으마.]
평소엔 백무량을 어린아이를 놀리듯 대하는 심천검이었지만, 무인으로서는 완벽했다.
남의 무학을 읽어 내는 눈.
자신의 무공에 타문의 무학을 소화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웅심(雄心).
하늘이 부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재능이야말로 대단하다.
‘단 한 번도 검로가 꼬이거나, 구결의 완성도가 뒤떨어진 적이 없으니…….’
심천검은 이러한 내심을 꼭꼭 숨겼다.
백무량이 듣는다면 앞으로 사나흘 동안은 잘난 척할 게 뻔했으니까.
[크흠, 흠. 뭐 직접 대보란 뜻이다.]
‘그게 뭡니까? 뭔가 대단한 말을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친구처럼 대하는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백무량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무당산을 향해 걸었다.
심천검과의 대화로 인해 한 가지 목표가 늘었다.
사형이 남긴 안배를 취하고, 무극진인에게 비무를 청한다.
‘소문처럼 중태가 아니었으면 좋겠군.’
무당산으로 향하는 백무량의 발걸음이 경쾌했다.
***
죽립을 깊게 눌러쓴 도사가 백무량보다 먼저 무당산에 도착했다.
한데 그의 행적이 무척이나 기이했다.
진무대제가 멋스럽게 그려진 해검지.
황군마저도 검을 내려놓고 예를 표하는 자리임에도 도사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당파 도사가 도사에게 극진한 예를 표했다.
“고맙네.”
도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로 향했다.
무공이라곤 전혀 익히지 않은 몸이지만, 등산로를 오르는 걸음에 힘이 가득했다.
이미 여러 차례 다녀 보았다는 듯이, 거의 길 위를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중간에 한 샛길로 빠졌다.
“무당의 정취는 자연(自然)히 존재하는 것을 느껴야만 느낄 수 있다고 하지.”
도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향했다.
피부를 스치는 침엽수, 더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녹음.
잔잔한 파문이 흐르는 호수의 소리가 귓전을 자극했다.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제자리에 멈춰 선 도사가 호수를 보았다.
“오래 기다렸나?”
낚싯대를 쥔 노도사.
무당파의 장문인, 무극진인이 도사를 반겼다.
“나이를 먹으니 기다리는 것도 제법 적응이 되더군.”
“예전에는 언제 오느냐고 칭얼거렸었지.”
“내가 언제 그랬나? 태극의 순행처럼 언젠가 제자리에 되돌아오리라고 말했지.”
“……클클.”
탁한 웃음소리를 흘린 도사가 죽립을 벗었다.
심각한 화상 자국이 가득한 정수리.
백련교의 난 때 입은 상처는 여전히 열기를 머금고 있었고, 주기적으로 영기와 접촉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했다.
그렇기에.
곤륜파의 옛 도사, 주연호는 평생 강호를 떠돌고 있었다.
무극진인은 그 여정 중에 만났던 친우 중 하나였다.
“소문처럼 그렇게까지 맛이 간 건 아니군.”
“맛이 가? 도사가 할 언동인가?”
“우리가 언제 말조심하는 사이였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주연호는 무극진인 옆에 걸터앉고는 호수를 망연히 보았다.
그러다 문득, 한마디를 툭 던졌다.
“여로(旅路)의 끝이 다가오고 있어.”
“……자네.”
무극진인의 표정이 굳었다.
말이야 가볍게 던졌으되, 주연호의 성격상 며칠 동안 고민했을 터였다.
그 모습을 본 주연호가 끌끌 웃었다.
“뭘 그런 눈으로 보나. 평생 사문에 돌아가지 않은 업보가 이제 온 셈이지.”
“그게 어찌 업보인가? 자네는…….”
“입에 담지 말게. 누설했다가는 천벌을 받게 될 터이니.”
그렇게 말하는 주연호야말로 평생 천벌을 달고 살던 도사가 아니던가!
무극진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졌다.
주연호가 말한 여로란 분명, 지금까지 준비해 온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는 뜻.
무극진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인가?”
“이곳일세. 며칠 지나지 않아 도착하겠지.”
주연호가 흰 김을 내뿜었다.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한숨이었다.
“드디어 마주할 수 있다네. 정말이지, 길었어. 천명을 이은 도사가 천하에 도래한 뜻을 밝히고…… 마지막 안배를 찾아온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자네라면 알겠지.”
“…….”
무극진인은 낚싯대를 쥔 채 침묵했다.
주연호의 눈치를 살피기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도리어 축하해 줘야 할 자리였다.
“자네랑 긴밀한 사이라고?”
“그럼, 거의 팔십 년 만의 해후니까.”
“자네를 한눈에 알아볼 것 같나?”
“그럴 리가 있겠나! 머리가 이렇게 타 버렸는데, 알아볼 수가 없겠지.”
후련하다는 듯이 말하는 주연호였지만, 속에 감춰진 감정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은 조금 무섭긴 해.”
“뭐가?”
“나를 마주한 사숙께서 물어 올 것들이…….”
“그…… 주백천이라는 도사 말인가?”
“그렇지.”
주연호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회상했다.
백무량이 되살아난 이래로 줄곧, 남겨진 안배를 정돈하고 안위를 걱정했다.
한번은 그 주변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하늘이 점지한 때가 아니었기에, 그 정도가 한계였다.
“단 한 번도 자길 찾아오지 않은 걸 원망하지는 않을까?”
“그럴 리가 있겠나. 천명을 이은 도사인데.”
무극진인의 말에 주연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내가 기억하는 사숙은 농담으로라도 원망을 할 사람이야.”
“농담이 과하군.”
“농담이 아니야. 과거 구천검이 어떠했는지, 실제로 본 사람은 다 알아.”
“……허.”
무극진인이 혀를 가볍게 찼다.
그 말을 듣자니, 주연호가 늙었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늙은 게 자랑인가?”
“그러는 자네는 젊어서 골골거리고?”
서로 한마디를 주고받은 두 노도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클클.”
“흐흐.”
한번 터진 웃음은 무당산 기슭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웃은 두 노도사는 말없이 호수를 보았다.
잔잔히 흐르던 파문은 어느새 멈추고, 날은 어두워진다.
석양이 다가옴에 두 노도사는 왠지 모를 무정함을 느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무극진인이었다.
“나나 자네나 돌아갈 때가 된 거겠지?”
“하면 마공이라도 배워서 수명을 늘려 보랴?”
“……내가 정말 맛이 간 상태였다면 자네를 베었을 걸세.”
“허, 무공 배운 놈이 도학자를 친다?”
“못하지는 않지. 하지 않을 뿐이지.”
그렇게 두 노도사는 밤이 깊을 때까지 대화를 나눴다.
***
무당산의 입구에 도착한 백무량은 가장 큰 명패를 바라보았다.
해검지.
그 아래로 북방을 수호하는 신이자, 전신(戰神)인 진무대제의 목상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저것 때문에 무당파가 관과 친하다고 했던가?’
백무량은 철골개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면 개방에 가지 않은 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들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정보란…….]
‘압니다.’
[…….]
백무량은 심천검의 침묵을 뒤로하고 해검지로 발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대제자로 보이는 도사가 낯빛을 굳히고 있었다.
“본산의 도사와 맺은 약조가 있으신지요?”
“화산파에서 보낸 전서구가 있을 것이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방문첩을 뒤적거리던 도사가 순간 눈을 부릅뜨고는 백무량의 얼굴을 살폈다.
“저…… 그…….”
“맞습니다.”
“아!”
도사의 표정이 별안간 밝아짐에 백무량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무리는 아니었다.
화산파의 매화비원을 복원시키고, 마도 고수를 격퇴한 고수.
유명한 호사가가 강호십대고수에 자신을 기재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쯧.]
심천검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백무량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도사에게 물었다.
“문제는 없겠지요?”
“아, 예! 검만 맡기고 가 주시면…….”
그 말에 백무량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꾸몄다.
“비무를 약조한지라.”
“그렇다면 본산까지 가져가셔도 됩니다.”
[……에잉, 쯧.]
다시 한번,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