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 (6)
균천관일이라는 초식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염화의 얼굴이 화기(火氣)로 인해 일그러졌다.
[……나를, 얕보느냐?]
성신의 진체에서 분연히 피어오르는 성화.
그 안쪽에서 노여움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언뜻 들으면 전음 같았지만, 육성과 비슷하기도 했다.
[그깟 찌르기가 나에게 통할 성싶더냐!]
대기가 떨린다. 염화가 내뿜는 노성에 깔린 영기와 마기. 극에 이른 마도 고수의 진노란 자연을 억누르고도 남았다.
하지만 백무량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을 때, 염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가슴.”
균천관일이란, 일 점으로 반듯하게 찌르는 초식.
경로를 읽히면 막힐 수밖에 없다. 하물며 백무량과 염화의 힘 차이는 현격했다.
역으로 반격하면 손쉽게 죽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염화가 한쪽 입술을 씰룩였다.
[오만이 과했도다!]
승리를 확신하는 목소리에 백무량이 씩 웃었다. 염화를 가소롭게 여기는 듯하면서도, 호기심이 번뜩이는 웃음이었다.
……그제야 염화는 깨닫는다.
‘다르다.’
일 점으로 반듯하게 찌르는 경로에 한두 마디로 형용하기 힘든 교묘함이 있다.
언뜻 보면 아미파의 무학과 비슷했다.
수경과 팔첨, 그 뒤를 따르는 예기(銳氣).
백무량의 검에 아지랑이가 피는 듯하다. 실제로 청운은 스스로 분화하여 안개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진무월이 손수 펼쳤던 화검.
그 가르침이 백무량에게 전수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염화가 공력을 모았다.
[통째로 날려지고 나면, 자기 그릇을 깨달을 터.]
진무월이 잠시 나타나, 사라지기까지 겨우 일다경.
그동안 백무량은 그의 무학을 눈에 담았을 뿐이다.
그깟 것으로 무공을 배울 수 있었다면, 무림인 대부분이 호수 물에 코를 박고 죽어야 할 것이다.
‘보이는 것만 비슷할 테지.’
확신을 품은 염화가 삼단전을 뜨겁게 다스렸다. 기경팔맥에서 십이정경, 일천세맥까지 화기로 가득해졌다.
머리에 차가운 물을 끼얹으면 곧바로 기화할 지경이라.
백무량이 자아낸 안개마저 염화에게 닿지 못했다.
[이것이, 염신(炎神) 극소(極燒)의 영역이다.]
치르르륵…….
대기의 수분이 스스로 불타오른다.
저 한 몸으로 자연을 희롱하고, 마땅히 지켜져야 할 법식을 어그러뜨리는 힘.
마도의 극에 이른 염화의 모습에 백무량은 잠시 전율했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완성에 이르렀을지언정, 종사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목도하고 나서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는 없었다.
다만, 자그마한 분노가 내심에 꽃피니.
“그것을 이루려고 수백 년을 살아서 천하를 어지럽히었다.”
문어(文語)에 가까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백무량의 삼단전이 크게 맥동했다.
거악(巨惡)을 앞에 두고서 운룡의 문양이 세찬 빛을 내뿜었다.
의지는 더욱 강건해지고, 시야가 명멸한다.
그때마다 안개는 더욱 짙어져 종래엔 한 치 앞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의념으로 이루어진 칼.
백무량은 심상을 머릿속에 그리고서 다시 한번 되뇌었다.
“기해혈.”
“……!”
염화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가슴을 노리던 균천관일이 조금 더 예리하게 변했다.
그것이 향하는 곳은 백무량이 말한 그대로다. 염화의 기해혈. 하단전을 부수고자 하는 의지가 곧 의념이 되었다.
[이깟……!]
염화의 숨이 크게 내뱉어졌다. 전신의 모든 경락을 뜨겁게 달군 신체의 한숨은 용광로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숨과 기백, 열기로 이루어진 호신강기가 균천관일을 짓누르려고 하나.
[……!]
칼날이 점차 팽창한다. 한 줄기 실낱같던 검강이 대검처럼 변하더니, 스스로 몸을 쪼갰다.
그 모습이 마치 작약(炸藥)과 같았다.
수십, 수백으로 이루어진 구름의 조각들.
칼날의 형태로 빚어진 조각들이 백무량의 의념에 따라 움직였다.
염화의 열기를 마주하고도 날은 쇠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단단하게 연단되었다.
이때, 평소 수련하던 분심조화결이 껍질을 부순다.
한계를 부순 백무량의 상단전이 백열(白熱)의 태양처럼 최고조에 이르러.
“균천관일.”
다시 한번, 펼치려는 초식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백무량의 백선신검이 앞으로 겨누어졌다. 목표는 두 사내 모두 알고 있다.
염화의 가슴 안쪽의 기해혈.
삼단전의 조화를 부수어 성신의 진체를 부수겠다는 술수라.
[크으, 이놈!]
염화가 백무량을 상대로 처음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것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염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백무량은 알았다.
“그 정도로 부끄러워할 것이라면, 삼 초식 안에 땅바닥을 뒹굴 것이다.”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백무량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벽을 넘어서 하늘.
천애(天涯)의 경지에 손을 대고 점차 올라서고 있음에 백무량은 육신의 고통이나 상단전의 균열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그저, 염화의 기해혈을 부순다는 말을 지킨다.
그 의지를 청운에 쏟아붓자, 염화가 발한 열기가 안개에 삼켜지기 시작했다.
까드득……!
염화의 호신강기에 일어나는 균열. 성신을 이루던 균형이 점차 무너지는 감각.
칼날처럼 빚어낸 조각들이 염화의 기해혈에 점차 가까워지니.
[닿기 전에, 죽여 주마……!]
염화의 목소리에 더는 고고함이나 전능감 따위는 없었다. 평범한 무인처럼 죽을 위기를 느끼고,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백무량은 끅끅 웃었다.
“말로는 신이 되었다 칭하더니, 결국 별다른 것 없는 놈이었어.”
뒷골목의 왈패도 농사꾼을 보면 고고한 척, 전능한 척 굴곤 한다. 그러다 고수를 보면 땅바닥을 기며 목숨을 구걸한다.
그런 놈들과 성신을 이룬 염화가 다를 바가 뭐겠는가?
자기한테 대업이 있다, 뜻이 있다고 중얼거리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면 가면은 벗겨지기 마련.
염화 또한 마찬가지로, 추한 민낯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백무량은 유쾌하게 웃고는 백선신검을 쥐었다.
[갈!]
웃는 동안, 염화가 코앞에 치달아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불을 온몸에 두른 원숭이처럼 보였다.
심지어 한쪽 팔은 진무월에게 베여서, 볼썽사나웠다.
‘기해혈을 당하기 전에, 나를 제압하겠단 게지.’
염화의 생각이 뻔히 보였다. 백무량은 순식간에 검을 휘두르며 진무월이 펼쳤던 초식을 떠올렸다.
“매영조하(梅影造河).”
청운이 만든 그림자가 강을 만든다. 진무월의 것보다는 변화가 부족하지만, 공동파의 경파를 덧댄다.
꽈르릉……!
청운에서 발해진 검경이 염화의 상반신을 베어 넘긴다. 성신의 진체이기에 상처투성이로 끝난다.
그러나 백무량의 초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향성류(梅香成流).”
경파에서 발해진 파동이 서로 공명한다. 하나하나가 백무량이 만들어 낸 파동, 서로를 맞무는 조화.
백무량의 검이 크게 솟구친다.
염화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전신을 화기로 다스리던 기경팔맥에 손상이 일어난 것이다.
백무량이 그것을 보고 빙긋 웃으니.
“매인설한(梅忍雪寒).”
검경과 파동이 서로 얽혀 일대 장관을 이루고, 눈의 차가움마저 견딜 만큼 단단해진다.
여기에 보타문의 금강을 덧댄다. 진무월의 것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저 백무량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기량껏 펼쳐서 다스린다.
‘여기서 진무월은 저놈의 팔뚝을 베었지만…….’
평생 화검을 수련하고,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던 진무월만이 가능한 영역.
백무량의 검기는 그만한 예기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
백무량의 기량은 화검이나 예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염화의 입가에서 비통한 음색이 새었다.
[……크으윽.]
진무월에게 잘린 한쪽 팔, 거듭된 공세에 균형을 잃은 성신.
그런 와중에도 백무량의 의념은 쇠하지 않은 채 존재하여, 기해혈과 운해의 조각은 한 치를 앞두고 있었다.
염화가 낮은 목소리로 진언했다.
[내가 졌다.]
“뭐 그리 당연한 소리를.”
[여기서 물러나게 해 준다면, 매화비원을 수복하게 해 주겠다. 포기하겠다.]
그렇게 말하는 염화의 눈동자에 패색은 없었다.
그것이 백무량으로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랄하지 마라.”
[……이대로라면 매화비원의 지맥은 끊어진 채 방치될 테지. 그것을 원하느냐?]
쩌저적.
염화의 목에 실금이 갔다.
성신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방증이자, 영기가 새어 나오는 과정이라.
백무량은 그것을 묵묵히 보았다.
“이제 다스리는 것조차 안 되는 모양이지?”
[…….]
염화가 부정하지 않음에 백무량은 오른 손등을 보았다.
운룡의 문양.
자그마치 칠 년 전, 사형이 남긴 안배로 인해 얻은 기연.
그것이 무언가 의지를 담아서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심천검에 비해 희박하고, 언어의 형태를 갖추진 못했지만…… 오직 백무량만이 들을 수 있었다.
-……가능하다.
겨우 네 음절.
앞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사형이 남긴 안배보다도 불친절하고, 이해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백무량은 직감했다.
‘지금까지, 나한테 단 한 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
청성의 사대사행을 돌파하던 시절에도 운룡의 문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보타문 땐 어떠하던가?
해안가에 숨겨진 성지를 알려 준 것도 이 문양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가능하다면, 뭐라도 가능하다는 뜻.
백무량은 염화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도사는 마인과 거래하지 않는다.”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가게 되는구나.]
염화가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끌끌 웃었다. 고아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처량함만이 가득 남았다.
이에 백무량은 염화에게 물었다.
“네놈들이 말하는 대업은 뭐냐? 무엇이기에 마교가 서로 도우냔 말이냐?”
[말할 의리가 있던가?]
“알려 준다면 살려 주마.”
[거래하지 않는다고 말한 놈이 이제 와서? 거짓말도 뻔뻔하도다.]
후두둑.
이쯤부터 염화의 피부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붙잡아 두었던 영기가 허공으로 새었다.
무너지는 성신.
점차 식어 가는 신체.
염화의 눈동자가 천천히 빛을 잃어 갔다. 그러나 한 광경을 보고 고개를 불쑥 쳐들었다.
[……!]
허공에서 사라져야 할 영기가 백무량의 오른 손등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화가 입을 쩍 벌리고는 백무량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래, 그랬구나, 네놈이……!”
하늘의 뜻. 천명을 이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백무량의 운명에 더 많은 것들이 연관되어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하늘이 간섭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성지의 지맥이 무엇이던가!
“하늘이 천하에 부여한 기적을 몸에 담는다…… 너야말로 인간이 맞느냐?”
“…….”
백무량은 말없이 오른 손등을 보았다.
염화가 흘리고 있는 영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문양을 보자니, 떨떠름하고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가능하단 건 이 말이었나.’
“허, 이건…… 이런…….”
허탈한 소리를 중얼거리던 염화는 끝내 옆으로 스러졌다.
영기를 남김없이 흩뿌린 신체는 곧 먼지가 되었다.
홀로 남은 백무량은 폐허가 된 매화비원을 보고는 손등의 문양을 매만졌다.
……스르륵.
그러자 운룡의 문양이 점차 영기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