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141화 (141/275)

발전 (2)

부상자 서넛.

사망자 전무.

보타문이 소수 정예의 문파이기는 하나, 칠성교의 위세를 고려하면 가히 기적에 가까운 결과였다.

이런 결과는 사실 백무량의 놀라운 무위 덕이었다.

그렇기에 목락윤은 백무량에게 극찬을 보냈지만, 백무량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이번 일은 묻어 주십시오.”

“왜지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목락윤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최근 곤륜파의 명성을 드높인다는 백무량과 현종휘.

특히 백무량이라면 마인과의 생사투로 유명해지지 않았던가?

목락윤의 의문을 알아차린 백무량이 뒷말을 덧붙였다.

“호사가들은 저를 두고 많은 금칠을 하지만, 정작 저는 그걸 벗겨 내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영웅의 그릇이군요.”

저 나이대의 무인이라면 보통 더 높은 명성과 강함을 탐하기 마련이거늘!

백무량의 태도에는 거짓이 없었다. 아니, 도리어 초연하기까지 했다.

목락윤은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백무량의 생각은 달랐다.

‘마인의 눈에 띄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아.’

한창 경험을 키우고 있는 현종휘.

솔직하게 말하면 백무량 자신에 비하면 아직 부족함이 많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 년은 더 필요했다.

하물며 이번에 입문시킬 유성한은 어떠한가.

재목은 현종휘 못지않으나 마음에 묻은 때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신체를 닦을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유성한이 대성하기 이전에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백무량의 목표는 마교와의 싸움이 전부가 아니다.

평화롭게 대를 이어 나가는 곤륜파.

자신은 쉼 없이 싸우기 바쁘지만, 후대는 평화롭길 바랐다.

짐이 무거울지언정, 백련교의 난과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됐다.

그 감정은 집착에 가까웠다.

그것을 백무량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선배, 정말로 사실이지요?’

[내가 뭐 하러 검해를 이어받은 적통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보타문의 성지를 빠져나오면서 들었던 한마디.

심천검은 백무량에게 그 사실을 또다시 되새기게 해 줬다.

[네가 되살아난 까닭은 나도 정확히 모르나, 검해는 마가 천하에 창궐할 때에 곤륜의 후인에게 스며든다. 마교가 살아남는다면 빠르든 늦든 검해는 이어질 것이다.]

도사의 심상에 기거하는 영성이자 무학, 검해.

그것은 마가 천하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이어진다.

곤륜파의 역사에 계속해서 찾아왔던 불행처럼.

백무량은 목락윤에게 보이지 않게, 송곳니로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내 대에서 끝낼 겁니다.’

[흥, 그래야지. 어떤 조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곤륜파 무학의 정상에 섰던 노부가 옆에 있지 않느냐!]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며, 말을 덧붙이는 심천검에게 백무량은 피식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을 본 목락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 소협,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닙니다. 잠깐 생각이 깊었습니다.”

“과연…… 소협께서는 뭍으로 금방 돌아가셔야겠지요.”

목락윤이 부드럽게 웃었다.

청가면의 마인과 싸웠음에도 눈동자에 드러난 정기는 쇠하지 않은 채 여전히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가 소협께 성한이를 부탁드렸을 때, 들어드리기로 했던 청이 하나 있었지요?”

“……지금 하실 생각입니까?”

“소협께서 이번 일을 비밀로 하기로 하신 이상, 금방 보타암을 떠나셔야 할 테니까요.”

“아.”

목락윤의 말에 백무량은 탄성을 흘렸다.

그녀의 말대로, 칠성교가 보타문을 직접 공격한 이상 무림맹이 찾아올 터였다.

최대한 빨리 떠나는 것이 낫다.

백무량의 태도가 자연스레 진중해졌다.

“문주께서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닐까 걱정됩니다.”

“소협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직은 무인이라고 자칭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목락윤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유성한을 숨겨 놓은 암자가 있는 방향이었다.

“짧은 시간이라지만 정이 든 아이를 맡기게 되었으니, 소협께서 어떤 사람인지 검으로 듣고 싶습니다.”

“과연.”

백무량은 짧게 대답하며 숨을 골랐다.

유성한을 도사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목락윤에게 귓속말로 했던 부탁.

그것은 바로 비무였다.

어쩌면 반나절이 걸릴지도 모르는, 아주 긴 비무.

백무량의 의도를 읽은 심천검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운중용형보를 타문의 무학으로 발전시킨 것처럼, 보타문의 무공 또한 곤륜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뜻은 대견하다. 하지만 어찌 순청한 물의 색을 흐린단 말이냐?]

곤륜파의 무학을 다른 색으로 덧칠하는 행위.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인가, 백무량은 심천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하지만 뜻을 꺾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선배가 활동하던 때와, 현 세대는 다릅니다.’

[뭐라?]

‘후인이 어떻게 싸우는지 잠자코 지켜보십시오. 그 후에 부족한 걸 말씀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까마득한 선배에게 올리는 말이라기엔 너무나도 건방지다.

심천검은 그것을 알면서도 껄껄 웃었다.

순한 제자보다는 까칠한 제자가 더욱 크게 발전하는 법이라고, 백무량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그였다.

[좋다! 어디 한번 견식해 보마!]

심천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백무량에겐 신호처럼 들렸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무량의 신형이 앞으로 치솟았다.

시선이 잠시 목락윤의 상처를 훑었다.

스릉!

백선신검의 검명이 목락윤을 압박했다.

이에 목락윤이 불쾌함을 토로했다.

“헛된 배려를!”

목락윤의 검격이 백선신검을 밀쳐 냈다.

그 말대로, 백무량은 자기도 모르게 목락윤의 상처를 파고들면 안 된다고 상정하고 있었다.

비무 이전에 무인으로서 입은 상처다.

잘못을 깨달은 백무량이 고개를 까딱이고는 오른발을 반보 지르밟았다.

내공이 담기지 않은 창천명월.

백무량의 검이 밀물로 인해 자욱해진 안개를 갈랐다.

그야말로 섬광과 같은 기세인지라, 비무를 지켜보던 여승 몇몇이 입을 가늘게 벌렸다.

그러나 보타문의 무학은 결코 가볍지 않다.

크그긍!

목락윤의 검이 섬광을 멈춰 세웠다.

[과연 보타암이로다.]

심천검이 작게 감탄했다.

소림사와 닮은 듯하면서도 더욱 날카롭고 냉엄한 것이 보타문의 무학이다.

백무량이 일수를 휘두를 때마다 목락윤의 검 또한 뒤따랐다.

간혹 날카로운 초식으로 선수를 취하기도 했다.

‘이마저도 보타문 무학의 정수는 아닐 것이다.’

백무량은 분광검과 구천화우검을 연거푸 펼치면서 목락윤의 틈새를 노렸다.

상처를 파고들면 안 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다.

카강! 크그극!

부딪친 두 검을 중심으로 안개가 흩어진다. 칼날에서 튀긴 불똥이 차가운 바람을 밀어 냈다.

백무량의 입가에서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보타문의 검은 정련된 칼날과 같다더니.’

지금도 살을 에는 듯한 검기가 피부를 두드리고 있지 않나.

백무량은 목락윤의 검로를 눈에 담았다.

어떻게 하면 구천화우검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

그 고민이 깊어지던 순간에 심천검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구천화우검과 어울리지 않는 검이다. 어찌 상극을 담으려고 하느냐?]

‘상극이라.’

백무량은 목락윤과 잠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만든 틈 동안 심천검의 말을 떠올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구천화우검은 뭉툭하기보단 화려한 살초로 이루어진 무공이었다.

목락윤의 검로를 담을 순 없단 판단은 실로 정론이었지만, 백무량의 생각은 달랐다.

‘균천관일과 창천명월에 큰 변화는 필요치 않지요.’

심천검이 성지에서 보여 주었던 일초와 이초.

그 초식에 화려함은 존재치 않았다.

단지 심상을 따라 맹신했을 뿐이다.

그것은 심천검의 방식이었다.

‘나는 나대로.’

심천검이 펼쳤던 초식은 확실히 뛰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백무량이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백무량은 찰나 동안 깊게 궁리했다.

그 답은 곧바로 초식으로 이어져서.

쿵!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무거운 일격이 목락윤의 전신을 짓눌렀다.

목락윤이 순간 눈을 부릅뜰 정도였다.

“이건…….”

백무량의 검이 갑자기 달라졌다.

목락윤은 곧바로 역공을 취했다. 보타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금쇄공이 가미된 찌르기였다.

이에 백무량 또한 찌르기로 응수했다.

‘이것이 나의 균천관일입니다.’

심천검에게 선언하듯이 펼친 균천관일은 충격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쩌저적!

목락윤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을 뿐만 아니라, 손아귀에서 핏물이 줄줄 흘렀다.

목락윤은 두 눈을 부릅뜬 채 파편들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소협이 펼친 것은 본 문의 금쇄공이 아닙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백무량은 진심으로 답했다.

처음에는 목락윤의 검로를 초식에 담았고, 뒤이은 찌르기엔 무의식적으로 최선의 검로를 펼쳤다.

목락윤이 펼친 금쇄공을 보고 펼칠 여유까지는 없었으니까.

백무량의 태도에서 진심을 느낀 목락윤이 진정으로 감탄했다.

“허어, 갑자기 도둑맞은 기분이군요. 참으로 소협의 재능은…….”

“하하.”

백무량이 헛웃음을 터트리는 사이.

[……음.]

심천검은 침음성을 흘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백무량에겐 꾸짖고 싶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

곤륜파의 종사를 두고서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심천검의 입가에 수많은 욕이 올라왔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적어도 마지막 찌르기를 보기 전까지는.

[인정하마.]

심천검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무량은 그것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선배께서 인정하지 않으셔도 제 균천관일은 완벽했습니다.’

[놈!]

짐짓 화난 척, 소리를 버럭 내지른 심천검이었지만 속으로는 흐뭇한 마음이었다.

백무량이라면 자기처럼 잘못된 결과를 부르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이었다.

잠시 후.

잠깐 휴식을 취한 목락윤이 백무량을 불러 세웠다.

“아미파와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백무량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인연이라고 칭하기엔 너무 민망합니다만.”

문을 사이에 두고 잠깐 대화를 나눈 게 인연이라면, 세상 천지에 인연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백무량의 말에 목락윤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정혜 신니에게 받은 전서에 따르면 그렇게 가볍지는 않더군요.”

‘설마 나에 대한 험담은 아니겠지?’

백무량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락윤이 품에서 작은 혁낭을 꺼냈다.

“이걸 가져다주셨으면 합니다.”

“……?”

“이거라면 아미파가 봉문을 풀고 다시 나타날 겁니다.”

“보타문주께선 뭔가 아시는 겁니까?”

무림맹주조차도 단지 마교에게 아미파가 공격당했다고 여기지 않았나.

백무량의 물음에 목락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혜 신니도 성한이처럼 칠성교에 의해 술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세상에 알려지면 치명적인 것이기에 숨기고 있었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말에 목락윤이 처음으로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아미파 장문인에게 직접 물어보시는 것이 낫겠지요.”

‘……가다가 확 혁낭 안을 확인해 버릴까?’

백무량이 속으로 불만을 품기가 무섭게, 심천검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곤륜도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느냐!]

‘머리가 울립니다.’

이제는 사소한 불만조차 품을 수가 없는 건가.

백무량은 언젠가 심천검을 순순히 만들 방법을 찾아야겠노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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