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102화 (102/275)

교단 (3)

따르릉, 따르릉.

사자탈이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백무량의 귓전을 때렸다.

균형과 평형을 잃게 만드는 음공의 묘리가 담겨 있다.

백무량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창술과 음공, 거기에 보법까지?’

사자탈의 아래쪽에 있는 놈.

그놈의 보법이 꽤나 까다로웠다. 위의 놈이 재주가 상당하기는 하나 아래의 보법이 아니었다면 아예 불가능했을 사자탈의 급습이었다.

백무량은 칼을 비스듬히 세웠다. 아무리 발재간이 뛰어나다고 한들 결국 이인일체의 사자탈이었다.

‘갑자기 몸을 틀어내는 짓 따위는 불가능.’

호흡을 가다듬은 백무량이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자탈의 입에서 삼지창이 튀어나왔다.

까드득!

삼지창의 끝, 세 가지로 갈라진 창날이 백선신검을 붙잡고는 비튼다. 힘으로 승부를 해 보자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백무량의 신체는 다시 깨어났을 때부터 완성되어 있었다.

“흐읍!”

백무량의 팔뚝에 힘줄이 불거진다. 태청신공의 내력을 나눌 필요도 없었다.

쑤욱!

삼지창의 자루가 사자탈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백무량에게 그대로 끌어당겨지려는 것을, 아래에 위치한 놈이 재빠르게 발을 놀렸다.

타닥, 탁. 따르르릉!

발소리와 뒤섞이는 방울 소리.

백무량은 한쪽 눈살을 찌푸리고는 앞으로 성큼 내디뎠다. 허와 실을 구별하기가 어렵다면 확실하게 일검을 먹이면 될 일이었다.

“어디 한번 이것까지 피해 봐라.”

백무량이 손목을 비틀었다. 삼지창의 방향이 순간 오른쪽으로 꺾이며 사자탈의 동체가 흔들렸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기회임을 직감한 백무량은 보다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검을 휘둘렀다.

구천화우검의 이 초, 창천명월.

백선신검이 좌에서 우로 베어 나간다. 분광뇌운결을 익힌 뒤로 전보다 더 섬뜩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따르륵!

사자탈 또한 위기인 걸 알았는지, 서둘러 삼지창을 놓았다. 그러고는 뒤로 몸을 뉘었다.

‘무슨 움직임이……!’

백무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창천명월은 사자탈의 배를 베어 냈을 뿐. 핏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자탈의 발아래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스르릉……!

날붙이의 한기.

백무량은 반사적으로 사자탈에게서 멀어졌다. 회전하는 칼날이 백무량의 발목을 향해 쇄도했다.

“귀찮게!”

운중용형보를 이용한 백무량의 진각이 칼날을 떨쳐 냈다.

그사이 몸을 수습한 사자탈이 백무량에게 달려들었다. 시장 거리에서 춤을 추던 때처럼, 아주 화려한 돌진이었다.

카르르릉!

방울이 쉼 없이 울린다. 소리에 담긴 내공이 주변의 양초를 꺼뜨렸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달밤 아래의 사자탈이 그 지랄을 떨어 대니, 모습이 퍽 기괴하다.

‘여기서 양단한다.’

백무량이 칼날을 뉘었다. 사자탈의 두 놈을 죽이는 건 간단하지만, 포박해서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면 사자탈을 베어서 무력화시키는 게 우선.

백무량의 내력이 바깥으로 줄줄 새었다. 강적과 마주할 때마다 펼쳤던 청운이 백무량의 칼날을 감쌌다.

쉼 없이 고개를 까딱거리던 사자탈의 머리가 순간 멈춘다. 청운에 담긴 내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궤에엑, 켁!

사자탈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사람의 목소리라기엔 너무나도 탁하고, 낮았다.

‘뭐야?’

적으로 마주한 백무량마저도 순간 당황할 정도다.

그 뒤에 사자탈의 입에서 튀어나온 물건은 아주 터무니없었다.

쇠사슬.

그것도 고수를 붙잡기 위해 고안된 쇠사슬 그물이라.

‘그리운 물건이군.’

백무량은 과거 포쾌에게 쫓기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저 마구잡이로 베었다간 몸을 엉망으로 묶어 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한곳만 집중적으로 베어서는 안 된다.

백무량의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사자탈이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저대로 움직인다면 다른 쪽 그물이 전신을 묶어 버릴 터였다.

그러나 백무량이 택한 무공은 분광검결.

팔(八) 자의 형태이되 상황에 따라 무형으로 펼칠 수 있는 무공.

파지직!

허공을 수놓은 뇌화가 쇠를 단숨에 부순다.

백무량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쇠사슬의 파편이 몸을 두드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디 한번 면상 좀 보자.”

케륵!

사자탈이 기괴한 울음을 토했다. 허공을 지르밟아서 시장에서 이탈하려는 것 같았다.

백무량의 얼굴에 조소가 맺혔다.

“네 신법이 뛰어나기는 하나, 곤륜의 것보다는 아니야.”

운중용형보의 공타식에서 이어지는 공정식.

허공을 때린 백무량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그러고는 잠시 공중에 맴돈다. 발아래에 있는 청운이 그 기예를 가능하게 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사자탈이 머리에 달린 연등을 꺼트렸다.

스걱!

백선신검이 사자탈의 중심을 갈랐다. 그러자 뱃가죽이 찢어지며 두 남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가면?’

코 위를 완전히 가려 버리는 가면이라.

저런 형태의 가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저걸 썼다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백무량이 인상을 찡그리는 순간, 두 남자가 병장기를 꺼냈다.

단창과 장창, 그리고 단검을 비롯한 쇠붙이.

사자탈 안에 있을 때도 선보였던 무기였다. 백무량은 백선신검을 부여잡았다.

카가강!

창날과 칼날이 부딪친다. 뒤이어서 단검이 백무량의 기해혈을 향해 날았다.

“이까짓.”

백무량은 단검을 가볍게 쳐 내고는 두 남자를 노려보았다.

사자탈에 있을 때보다 뛰어난 합격이었지만, 사자탈처럼 기괴한 움직임이 아니었기에 피하기가 수월했다.

“사람의 말은 할 줄 모르느냐?”

“…….”

두 남자가 말없이 백무량을 노려보다가, 보법이 뛰어난 놈이 순간적으로 현종휘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백무량이 그놈을 따라가려던 찰나에 창을 든 남자가 히죽거렸다.

“나랑 놀아.”

“갈!”

노호성을 터트린 백무량이 남자의 가슴팍을 깊게 베었다.

생포가 중요하다고 해도 현종휘의 목숨을 두고 도박을 벌일 이유는 없었다.

한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가슴팍을 깊게 베인 놈이 현종휘에게 달려들던 동료에게 한마디를 외쳤다.

“형님께서 잡히지 말라고 했어!”

“정말? 그럼 어떡해?”

“죽이고 도망칠 자신이 없으면 죽어야지.”

“……음.”

현종휘에게 달려들다가 중간에 멈춘 놈이 백무량을 곁눈질했다.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백련교를 위하여!”

“위하여!”

고함을 내지른 두 괴한은 각자 자기 천령개를 내리치고, 가슴을 파헤쳤다.

무척 고통스러운 자진임에도 신음 하나 없었다.

그걸 본 현종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백무량도 다를 건 없었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이상하다곤 생각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이해할 수가 없는 적이었다.

백무량은 곧바로 두 시신을 수습했다. 그들이 감추려고 했던 게 있다면 몸에 남아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의를 입은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자탈 또한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그들의 옷을 벗겨 냈을 때.

백무량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건……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아니, 들었던가?”

오른쪽 목덜미에 찍힌 일곱 개의 검은 반점.

손가락으로 비벼 봐도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었다. 자국을 보면 약재로 물들인 바늘 따위로 수십 번은 찌른 것 같았다.

백무량은 차분히 기억을 되짚었다.

현재부터 시작해 삼 년 전, 칠십여 년 전까지.

그렇게 일다경이 흘렀을 때, 제정신을 차린 현종휘가 시신으로 다가갔다.

“사,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있어요, 현사조님.”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 봐.”

백무량의 말에 현종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버둥거렸다.

그러다 문득 그들의 목덜미를 보고 외마디를 중얼거렸다.

“북두칠성?”

“점의 위치를 봐라. 이게 어찌 북두칠성이겠…… 음?”

백무량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아주 먼 옛날, 곤륜파에서 쉬이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린 시절.

주백천이 들려주었던 영웅담에 해답이 있었다.

“칠성교……!”

“예?”

현종휘의 표정이 전보다 더 새하얗게 질렸다.

칠성교라면 백련교 이전에 강호를 공격했던 마교가 아니던가!

‘그것도 곤륜파를 몇 번이나 무너뜨렸던 고대의 마교라니.’

백무량은 그들이 쓴 가면을 억지로 벗겨 내고는 눈을 살폈다.

초점이 흐릿하고 눈동자가 회색으로 물들어 있다. 백무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야 확신이 들었다.

칠성교에 입교하면서 행하는 의식.

‘정신의 벽을 무너뜨리고 신을 심상에 들이는 주술.’

백무량이 두 남자의 시신에서 손을 떼었다.

그저 영웅담으로 들었을 뿐, 칠성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오는 공포와 섬뜩함이 있었다.

‘사자탈에서 이상한 소리를 냈던 게 그런 이유였나?’

영웅담에서 들었던 칠성교의 특징을 억지로 떠올렸다.

도교와 불교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신을 믿던 시대.

그때의 토속신앙을 광신에 가깝게 발전시킨 게 바로 칠성교였다.

‘교인 하나마다 잡신을 심상에 부여하고, 가면으로 붙잡는다.’

사자탈을 쓴 두 남자도 그런 식으로 잡신에게 잡아먹혔을 터.

가끔씩 기괴한 행동이나 울음소리를 보였던 게 이해가 됐다.

백무량은 주백천의 표현을 떠올렸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만드는 마교.’

그것이 바로 칠성교.

백무량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나니 유언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다.

“왜 백련교를 위하여라고 했을까?”

“치, 칠성교가 백련교에 합류한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어. 칠성교는 교리가 독자적인 마교거든.”

백련교가 그나마 인간적이라면 칠성교는 과거의 신에게 굴복하는 형태.

차라리 무당파와 소림사가 합쳐지는 게 더욱 말이 되었다.

백련교와 칠성교는 융화될 수가 없는 마교였다.

백무량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세상이 대체 얼마나 혼란해졌단 말인가.”

백련교에 이어 칠성교까지 나타나다니.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 칠성교 또한 백무량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단 뜻이었다.

백무량은 속으로 자문했다.

‘왜 나지?’

주백천이 서신으로 남겼던 천명.

설마 그 천명이 마교와 싸워야 한다는 게 아닐까?

백무량은 자신이 살아난 의미를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다.

***

“칠성교라, 그런 마교는 난생처음 듣네.”

남궁진의 대답에 백무량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모를 만도 했다.

칠성교가 한창 강성했던 때는 가히 수백 년 전.

무림맹이 발족하기 이전의 고대였다. 하물며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믿어 주셔야 합니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호광성에서 행패를 부린 마인이야. 무림맹이 직접 나서서 행적을 찾아볼 걸세.”

답답함을 느낀 남궁진이 탁자에서 호두를 꺼내 매만졌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그만큼 그가 품고 있는 분노가 상당했다.

“이번 흉수를 찾지 못하면 구파의 장로가 좋다고 달려들겠군.”

남궁진의 혼잣말에 백무량은 감이 왔다.

‘알아서 도와주길 바라는 건가?’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한숨을 내쉰 남궁진이 백무량에게 부탁했다.

“도와주겠나?”

“어렵습니다.”

“보상은 넉넉지 않게 주겠네.”

“사문으로 돌아가서 칠성교에 대한 기록을 찾아야 합니다.”

“으음…….”

남궁진이 침음을 흘렸다.

구파일방 중 가장 역사가 깊은 소림사라면 칠성교를 알겠지만, 직접 그들과 싸웠던 곤륜파는 무언가 다를지도 몰랐다.

그러니 말리기가 어렵다.

판단을 내린 남궁진이 백무량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또다시 습격할지도 모르니 물자와 마차 모두 무림맹에서 빌려 가게.”

“고맙습니다, 맹주님.”

두 손을 모아 올린 백무량의 머리에 온갖 상념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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