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2)
과거, 백련교 좌호법 이화겸이 고성진의 말을 듣고 분노했던 적이 있다.
백련교를 자칭하는 자.
칠십여 년 전, 백련교주가 행방불명되고 백련교의 난이 청해성에서 끝난 이유.
세간에서는 곤륜파가 백련교과 동귀어진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진실은 달랐다.
“곤륜신성 때문에 하수인이 적어지고 있다. 곤란해.”
피골이 상접한 노인, 청노(靑老).
그는 과거 곤륜파에게 패한 천마신교의 후예였으며.
“뭐 어때, 금방 구할 수 있잖아? 우리라면 금방 고수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그것만 잘 이용하면 되지.”
가면을 쓰고 있는 청년, 괴성(怪星).
어린아이와 같은 정신을 가진 것에 비해 칠성교의 교주로서 강호에 암약하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어둠 속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는 염화.
과거 곤륜파와 동귀어진한 성화교의 장로였다.
그 외에는 성화교도가 아무도 남지 않아, 청노와 괴성조차 성화교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세 마교가 모여서 만마교단.
백련교의 껍데기를 빌린 채 강호를 집어삼킬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이후가 핵심이지만, 지금은 계획대로 이어 나가기가 곤란했다.
“곤륜파를 확실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거늘.”
청노가 신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이번 거사를 꾸림에 있어 가장 거슬렸던 문파가 바로 곤륜파였다.
만마교단에 속한 모두를 이겼거나, 동귀어진했던 유일한 문파였으니까.
백련교주가 곤륜파를 멸문시켰다는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특히 태청선 주자령은 다른 강호십대고수보다 월등하게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발목을 가장 많이 잡은 자는 구천검 백무량.
칠십여 년 전, 강호를 주유하면서 처리했던 무인 중에 만마교단에 속한 마인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는데.
“또 그 이름이란 말이지.”
가면 아래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괴성이 탁자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다가 청노에게 물었다.
“다 함께 가서 죽이면 안 되나?”
“안 돼.”
“왜? 거슬리면 죽이는 게 편하잖아. 지금이라면 약해.”
“안 된다니까! 교단을 외부에 노출시킬 생각이더냐!”
청노가 소리를 버럭 내지르자 괴성은 ‘안 되면 말고.’라고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어린아이와 같은 작태였다.
하지만 청노는 내심 알고 있었다.
‘저 고집을 어떻게 말릴꼬.’
말은 저렇게 하지만 분명히 백무량을 기습할 것이다.
괴성 휘하에 있는 칠성교도는 어떤 마교보다도 더욱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괴성이 명한다면 무림맹 뇌옥에도 뛰어들 충정을 가지고 있었다.
백무량과 동귀어진할 마인이 적어도 수십은 될 터.
청노는 그것을 알면서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성공한다면 이득이고, 아니면 괴성이 손해였다.
“속이 검기는.”
괴성이 청노에게 이죽거리고는 염화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어때? 잘되어 가고 있어?”
“…….”
“사람이 말을 걸었으면 대답은 해 줘야지.”
“……그래.”
“난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거든.”
괴성이 팔짱을 끼고는 염화를 쏘아보았다.
“청노는 제자도 기르고 하수인도 만들지, 나는 원체 가지고 있는 세력이 있다지만 당신은 뭔데? 강호에 있는 자리가 전부잖아.”
“…….”
“어디다가 성화교도를 숨겨 두고 있는 거 아니야?”
“그만.”
거적때기 아래에서 시뻘건 광망이 번뜩였다.
평소 볼 수 없는 염화의 격동에 청노가 호기심을 품었다.
하물며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괴성은 어떠하랴.
“이야, 치게?”
괴성은 잔뜩 신이 난 모습으로 염화에게 다가갔다.
깐족거리는 모습에서 품위는 좀체 없었지만,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그래, 어디 실력 좀 보자. 언제까지 무게만 잡을 거야?”
“가면이 부서지고 싶다면, 일 보면 된다.”
“뭐?”
“거기서 한 걸음만 내디디면 보여 주겠다.”
염화의 위협에 괴성이 헤벌쭉 웃었다. 가면 아래의 표정이기에 누구도 볼 수 없었지만, 청노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괴성에게 저런 언사는 오히려 들어오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과연 그 생각대로 괴성이 왼발을 떼었다.
“어디 한번 들어가 볼까-?”
괴성이 깐족거리는 음성과 함께 염화의 간격 안으로 들어갔을 때.
붉은색 일륜(一輪).
뜨거운 열기가 어둠을 밝히고, 한기를 밑바닥에서부터 날렸다. 먼 북쪽에 있다던 빙궁의 무공조차 염화가 펼친 일초반식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그 일륜이 괴성의 발가락을 잘라 냈다.
“아?”
투둑.
엄지부터 네 번째 발가락까지 한 마디씩 잘렸다. 무엇으로 공격했는지 당하는 괴성조차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내공의 운용부터 의지의 발현이 물 흐르듯이, 아주 빠르게.
괴성은 헤실헤실 웃었다. 발가락이 잘린 고통은 그의 정신을 흩뜨리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
“뭐야, 싸울 줄 알잖아. 하긴 그러니까 강호에서 강하기로 유명하겠지?”
“…….”
“뭐라도 말을 해 봐.”
“더 할 텐가?”
“아이- 참, 사람이 뭐가 그리 재미가 없어.”
괴성은 고개를 숙여 잘린 발가락들을 챙겼다. 붙이는 거야 하루 이틀이면 충분했다.
다만 염화가 가진 무공의 연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괴성이 아쉽다는 듯 쩝쩝거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심으로 싸울까?”
“그만해라. 서로 의가 상했다가는 대의가 어그러질지도 모르니.”
청노의 말에 괴성이 토라졌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청노, 저놈 편드는 거야?”
“칠성교 놈들은 나사가 하나씩 빠졌다니까.”
그들 중에서 괴성이 가장 특이하다.
청노는 괴성의 나이가 수백이 넘었음을 떠올리고는 수염을 매만졌다.
‘그 나이를 먹고도 어떻게 젊은 육신과 정신을 유지하는 거지?’
심지어 어린아이의 정신이 아니던가.
호기심이 든 청노가 괴성에게 농담을 던졌다.
“근데 나이가 제일 많은 주제에 애처럼 구는 이유가 뭐냐?”
“어떤 대답을 원하는데?”
괴성이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가면으로 인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즐거운 대답, 더러운 대답?”
“즐거운 쪽이 좋겠지.”
청노의 눈이 저도 모르게 가늘어졌다. 괴성답지 않게 진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무색하게도.
“그건 내가 즐겁기 때문이야!”
괴성이 켈켈대며 대답했다.
하지만 가면의 안쪽은 무표정했다.
***
“으아, 잘 먹었어요.”
현노윤이 배를 두들겼다.
어찌나 많은 고기를 집어먹었는지 배가 빵빵하게 부풀었다.
그걸 본 백무량은 현노윤에게 농담을 던졌다.
“지금부터 내가 가르쳐도 되겠지?”
“물론이지요. 먹은 만큼 소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좀 봐줘요! 많이 먹었잖아…… 몸을 움직이면 더부룩해져요…….”
백무량은 피식 웃었다.
삼 년 전이었다면 군말 하나 없었을 텐데, 열세 살이 되니 반항기가 온 것 같았다.
“약관 전에 고수가 되겠다면서?”
“그, 그거야 제가 어릴 때 철없이 한 말이고…….”
“지금도 충분히 어려.”
“으으.”
할 말을 잃은 현종휘가 두 손을 늘어뜨렸다. 마음대로 할 테면 하라는 듯했다.
그 모습에 백무량이 현종휘의 뺨을 죽 잡아당겼다.
“농담이야. 오늘은 충분히 쉬고, 곤륜산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역시!”
현종휘가 신이 나서 객잔 쪽으로 달려갔다. 백무량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가서 몸을 뉘어야겠단 생각이 뻔히 보였다.
백무량의 시선이 옆에 있는 현노윤에게 향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불편한 건 없었느냐?”
“송 노야가 편의를 잘 봐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지요.”
현노윤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백무량이 펼친 검무가 흐르고 있었다.
구파일방의 고수가 놀랐다는 건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곤륜파의 무공이 유실되지 않고 계승된 것으로 모자라, 잃었던 것을 되찾았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있겠습니까?”
“분광뇌운결은 천천히 보여 주려고 했는데…….”
“아무리 사조님이어도 장문인에게 숨기면 안 되지요.”
“그건, 그렇지.”
“하하하.”
현노윤과 백무량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웃고, 떠들고, 심각해졌다가 다시 웃고.
누군가에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난이 둘에게는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사건에 불과했다.
백련교의 난, 수십 년 동안의 멸시.
그 경험이 있는 한 백무량과 현노윤이 정신적으로 꺾일 일은 없었다.
유일하게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오직 하나.
“종휘는 잘 지냈나?”
“사람을 가르치고 다루는 일이 어색하긴 하지만…… 힘내고 있습니다. 잘 도와주고 있고요.”
마음이 바르고 여린 현종휘.
세상의 풍파를 겪지 않은 아이였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백무량에게는 원석이기도 했다.
‘나야 구천검으로 살아온 경험이 있다지만, 종휘는 순수하게 재능이 있어.’
깎고 나면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원석.
현종휘의 성취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지켜보는 맛이 쏠쏠했다.
때문에 백무량은 현노윤에게 간식거리를 들려 주었다.
“보나 마나 입이 심심하다고 칭얼댈 것 같은데, 가져가거라.”
“이런 걸 자꾸 챙겨 주니 이가 썩지요.”
“썩어 봐야 덜 먹지 않겠어?”
“흘흘.”
현노윤의 너털웃음에 백무량은 평화를 느꼈다.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다. 새로운 인연을 쌓아 가는 나날이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백무량은 저도 모르게 칠십여 년 전에 잃었던 평안을 꿈꿨다. 백련교나 무림맹, 구파일방을 잊고 곤륜산에서 은둔하고 싶은 마음이 순간 솟았다.
‘그럴 순 없겠지.’
백무량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건에서 눈을 돌려서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법이었다.
“먼저 가게.”
“예, 그럼…….”
현노윤이 백무량에게서 멀어지던 그때.
“와, 여기 봐요! 사자탈춤이에요!”
멀리서 현종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무량과 현노윤이 어색하게 웃었다.
누가 현종휘 아니랄까 봐 그새 다른 곳으로 샌 모양이다.
백무량은 사자탈춤이 벌어지고 있는 거리로 향했다.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어깨가 툭툭 부딪쳤다.
그러는 동안 백무량의 눈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호오.”
사자탈을 쓴 두 인영(人影).
그 둘은 아주 완벽하게 서로의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저녁의 시장바닥에서 화려한 춤을 선보이기란 아주 어려울 터였다.
심지어 사자탈 머리 부분에 연등과 방울이 달려 있지 않나.
저걸 꺼트리지 않는 재주가 몹시 신기하다.
백무량이 현종휘와 사자탈에 다가가던 순간이었다.
콰과곽!
괴상한 소리가 사자탈에서 울렸다. 뒤이어 장창이 사자탈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
그 창은 명명백백, 백무량과 현종휘를 동시에 겨누고 있었다.
찰나 동안 백무량의 시야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대로 피했다가는 현종휘의 어깨가 꿰뚫릴 판국이었다.
‘당장은 검을 뽑지 못해.’
백무량은 이를 악물고는 우수를 움직였다.
운룡비뢰장을 펼쳐서 창을 쳐 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자탈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쩌억!
운룡비뢰장을 쉬이 피해 낸 사자탈이 백무량의 가슴팍을 발로 찼다.
뒤로 한두 바퀴 구르고 나서야 백무량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사람이 아니라 사자탈을 상대하는 거였어.’
위의 놈이 장창을 회수한 직후, 아래의 놈이 순식간에 날아 찬다.
가히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
따르릉!
사자탈이 고개를 흔들자 방울 소리가 시장거리를 울렸다.
“물러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고수다!”
백무량의 외침에 갑작스러운 싸움으로 현실감을 잃었던 사람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현종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에 사자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력이 겨우 그 정도냐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백무량이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