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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옷이나 물건들을 살 때 가장 많이 고르는 색은 검정색이다.
딱히 검정색을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다른 색깔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검정색이 좋아서 그걸 고른다기 보다는 다른 색깔들을 좋아하지 않기에 검정색을 고르는 것이다.
다른 색깔을 고르면 내가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빠랑 나랑 똑같은 색깔이야!”
나랑 다연이는 빗속을 걷고 있다.
똑같은 노란색 우산을 쓰고.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절하기엔 다연이가 너무 귀여웠다.
이런 감정은 정말 처음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어차피 원래 우산은 버릴 때가 다 됐으니 새 걸로 바꿔도 상관은 없었지만 노란색이라니.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걸어서 집에 도착했을 땐 빗줄기가 조금 약해져 있었다.
“다 왔다.”
다연이가 작게 속삭이며 우산을 접는다.
아직 우산을 접는 것도 어색하지만 그 모습마저 귀엽다.
우리는 익숙하게 3층의 내 집으로 향한다.
초봄의 날은 해가 금방 저문다. 금세 어두운 복도.
우리가 지나온 길에서부터 불이 하나, 둘 켜진다.
“우와.”
다연이는 그것마저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늘 그렇듯 집은 조용했다.
불을 켜지 않아서 어두웠고 안에는 아무도 없다.
원래라면 평소처럼 대충 저녁을 때우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잠들었을 것이다.
그게 내 일상이었고 삶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다연아, 우산은 나한테 줘.”
다연이가 있으니까.
“응.”
다연이는 우산이 마음에 든 것 같다.
색깔뿐 아니라 자신만의 우산이 생겼다는 게 좋아 보인다.
한 번 쓴 우산은 다시 말려 놓아야 녹슬지 않는 법.
나와 다연이의 우산을 신발장에 널어놓는다.
베란다가 있다면 거기에 놓아두는 게 좋겠지만 우리 집은 좁은 원룸이었기에 베란다가 없다. 그렇기에 신발장에 놓기로 한다.
칙칙한 집 안과 어울리지 않게 신발장에 놓아둔 우산은 화사했다.
그 모습을 본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산은 왜 저기에 있어?”
“말려놔야 오래 쓸 수 있거든.”
“아.. 그렇구나.”
뭔가 엄청난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해가 졌으니 빨리 저녁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마트에서 사 온 것들을 꺼낸다.
소시지와 햄, 만두까지. 이렇게 보니 정말 아무거나 골라 담았구나.
다연이가 좋아할 것 같은 건 구분도 없이 담았다.
오늘은 어떤 것들을 먹일까 잠시 생각하다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만두우.”
옆에 있던 다연이가 어설프게 말했다.
“그래, 만두.”
글을 읽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다연이는 글을 읽을 줄 모르니까.
단지 내가 마트에서 했던 말을 따라한 것뿐이었다.
내가 오늘 저녁으로 만두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만두가 맛있기 때문이다.
소시지나 햄도 물론 맛있긴 마찬가지지만 그 중에서는 단연 만두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만두피와 속 재료의 조화, 그 특유의 냄새, 그리고 프라이팬에 구울 때 들리는 빗소리를 닮은 소리까지.
내 취향이 가득 담겨있는 메뉴 선택이지만 이 정도면 다연이도 좋아할 거다.
“오늘 만두 먹어?”
“응, 만두 먹을 거야.”
“그럼 이거는?”
다연이는 옆에 있던 소시지와 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내일이나 모레쯤.”
“음...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다연이는 아직까지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불편하진 않은가.
“모자 벗어도 돼.”
“알겠어.”
다연이는 소매를 길게 늘어뜨린 채 겨우 모자를 벗었다.
정말 작은 강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뭔가를 집어 든다.
“이거는 어떻게 해?”
다연이가 들어 보인 것은 막대 사탕이 가득 찬 봉지였다.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좀 있다가 밥 먹을 거니까 나중에 먹자.”
“응.”
앞으로 부모 노릇을 하려면 혼내는 것도 익숙해져야 할 텐데 잘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연이는 말을 잘 들으니 다행이다.
사탕을 내려놓은 다연이는 다시 창가로 간다.
집에는 티비도 없었으니 심심해 할만하다.
다연이가 창가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먹을거리는 만두나 소시지 말고도 몇 개 사오긴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이와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반찬을 구성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일단 간단하게.’
만두와 남은 반찬들로 하자. 다음에는 야채도 사 와야겠다.
이런 것들만 먹는 건 아이에게 좋진 않을 테니까.
나는 집에선 요리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이번에 할 것도 요리라고 하기엔 굽는 것 밖에 없다.
가게에서 하루 종일 요리를 하다보면 집에서는 간단하게 먹고 싶어지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내가 생활하던 대로 다연이도 맞추게 할 수는 없다.
나는 만두라는 음식을 19살 때 처음 먹어봤다.
학교에서는 급식을 먹지 않았으니 그럴만한 기회가 없기도 했다.
내 생의 첫 만두는 할머니의 가게에서였다.
‘먹어.’
머릿속에서 그 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처음 가게에서 알바를 끝낸 날, 지금처럼 날은 어두웠다.
더 추웠고, 더 외로웠다.
그 때 할머니가 건네준 건 가게에서 파는 김밥도, 떡볶이도 아니라 마트에서 사온 냉동 만두였다.
프라이팬에 천천히 굴리면서 구워낸 만두.
왜 그랬는진 아직도 모르겠다.
굳이 만두를 구워주다니. 사실 할머니의 그런 행동들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늘 그 때 그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식들을 종종 주곤 했으니까.
어찌됐든 그 날 할머니가 주신 만두는 내가 여태까지 먹어본 것들 중에 가장 맛있었다.
날도 추웠기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그리고 연한 녹색 빛을 띠는 만두피에 잘 구워졌음을 나타내는 갈색의 그을림까지.
보기에도 맛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맛있었다.
‘뭐해? 먹으라고.’
가만히 앉아있는 나에게 그 때의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그 때의 내가 만두를 집어서 준비한 간장에 만두를 찍어 먹는다.
‘후...’
갓 만들어서 뜨거운 만두 사이로 선명한 김이 피어오른다.
생각지도 못한 열기 때문에 숨을 흘렸지만 만두를 먹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만큼 맛있었고, 또 새로웠다.
‘맛있냐?’
‘네.’
맛있었다. 정말로.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런 맛을 다연이도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 다연이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애써 버티고 있지만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때의 나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프라이팬에 넓게 식용유를 뿌리고 프라이팬을 달구기 시작한다.
냉동 만두는 적당히 먹을 만큼 꺼내 놓는다.
다연이는 아직도 창가에서 밖을 보고 있었다.
입고 있었던 후드는 예쁘게 정리해 놓았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고 그래서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저 나이에는 조금 더 어리광을 부려도 될 텐데.
나는 적당히 달궈진 팬 위에 만두를 올린다.
치이이.
바깥의 빗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종종 기름이 튀는 소리도 들려서 마치 집 안에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우와.”
창가에 있던 다연이는 어느 새 내 옆에 있었다.
옆에 얌전히 서서 구워지는 만두를 보고 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연이가 살짝 놀란다.
“어.. 여기서 봐도 돼?”
“응, 봐도 돼.”
워낙 작아서 잘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천천히 뒤집으면서 골고루 구워준다.
“이게 만두구나.”
“그래, 만두. 만두가 뭔지 알고 있어?”
“음... 아니, 몰라.”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다.
모른 다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
다연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기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몰라도 돼. 이제 먹어보면 되니까.”
“응!”
그렇게 대답한 다연이는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본다.
만두는 자주 굴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쪽이 탈 수도 있으니까.
한 쪽이 탄 만두도 그리 실패작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보기에도 좋은 편이 먹기도 좋은 법이니까.
쓴 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비를 닮은 소리가 끝날 때쯤, 만두가 다 구워졌다.
겨울날의 만두처럼 김이 뿜어져 나오진 않았다. 집 안은 따뜻했으니까.
그래도 그 날처럼 맛있을 거다.
“다 됐다.”
“우와!”
다연이의 반응을 보고 괜스레 우쭐해진다.
물론 표정으로 드러나진 않았겠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적당하게 밥을 퍼고 다른 반찬들을 준비한다.
그리고 식탁에 세팅까지 끝내면 오늘 저녁 준비는 끝났다.
“맛있게 먹어.”
“응! 오빠도 맛있게 먹어!”
나는 만두 하나를 집어서 다연이의 그릇 위에 올려준다.
다연이는 젓가락질이 처음이어서 서툴렀다. 그래도 젓가락 교정기를 쓰니 만두를 먹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작은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내가 놓아준 만두를 제대로 집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다연이. 곧바로 만두를 입에 가져간다.
와삭.
적당히 잘 구운 만두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고기의 맛.
“우오...아....”
다연이가 처음 듣는 소리를 흘린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맛있어!”
맛있다니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고선 와구와구 만두를 먹기 시작한다.
나는 옆에 앉아있는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도 먹어 봐. 맛있어.”
“응.”
다연이의 재촉에 나도 만두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고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음...”
맛있다.
회사에서 파는 제품이라 웬만하면 맛있겠지만.
만두는 나도 오랜만에 먹는다. 가게에서 하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다보니 메뉴에 없는 음식은 꽤 오래간만이었다.
거기다 밥 한 술까지.
군만두라고 하면 짜장면의 서비스나 맥주와 곁들인 술안주가 생각나지만 이렇게 밥과 같이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솔직히 나쁘지 않다기 보단 좋다.
“우와.. 맛있었어...”
식사를 끝낸 다연이가 말했다.
동그란 눈이 더 초롱초롱해진 것 같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다연이도 19살의 나처럼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즐거웠던 것 같아 다행이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걸 해 줄게.”
“응!”
앞으로 남은 시간이 훨씬 많으니 더 좋은,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 주고 싶다.
“오빠가 해주는 건 다 좋아.”
그렇게 말 하는 다연이가 귀여웠다.
“그럼 이제 정리해야겠다.”
“나도 같이 할래.”
그릇을 치우는 내 모습을 다연이가 서툴게 따라했다.
어디 안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