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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하고 자자.”
“응.”
어느 새 9시가 됐다.
한 거라곤 밥을 먹고 다연이와 대화를 한 게 다인데 이렇게나 시간이 빨리 흘렀다.
그래도 얻은 것은 꽤 많았다.
다연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 집에서 살게 된 것이 다연이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다연이는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먹을 것들은 엄마가 저녁 몫까지 차려놓고 갈 때도 있었지만 아닐 때는 빵을 먹었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부터라도 다연이가 나를 의지할 수 있도록 든든한 오빠가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는진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아아.....”
다연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양치를 하고 있다.
양치가 많이 서툴다. 하긴 그건 어린 아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양치하는 거 도와줘도 될까?”
“에에...”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혼자 양치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내가 도와줘야겠다.
마트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가 썩으면 안 되니까.
거울 앞에 서서 다연이와 나를 보고 있으니 묘하게 다른 것 같다.
눈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남매라고 하기엔 조금 다르다.
아직 다연이가 너무 어려서 그런가.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닮지 않은 형제 자매도 많으니까. 그런 가족들에 비하면 나와 다연이는 닮은 편이다.
“자, 다 됐다.”
“푸에..”
짧은 하루였지만 다연이는 뭐든 잘한다.
시키는 것도 잘했고 적응도 잘한다.
처음에는 나랑 같이 있는 것이 부담 될 거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은 다연이와의 대화에서 모두 사라졌다.
“다연이 칫솔은 여기에 있어.”
“응, 거기에 있어.”
나는 내 칫솔 옆에 다연이의 칫솔을 걸어둔다.
항상 나 혼자 있었지만 오늘부터 점점 변해갈 것이다.
작은 칫솔에서부터 천천히.
그리고 내 잠자리 옆에 다연이가 잘 곳을 마련한다.
이렇게 두고 보니 이불도 있어야겠구나. 베개도 마찬가지고.
“오빠는 이불 없어?”
뭔가 부족한 이부자리를 보고 다연이가 물었다.
그럴 만도 하다. 베개도, 이불도 전부 다연이에게로 몰아가 있으니까.
“응, 없어도 괜찮아.”
정말 괜찮다.
불편하기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이 정도는 그냥 참아도 상관없다.
그 때 다연이가 말했다.
추욱 쳐진 눈가를 하고선.
“오빠, 추우면 어떡해? 그러면 안 되잖아."
“여기는 따뜻해서 진짜 괜찮아.”
보일러도 돌려놨으니 추울 걱정은 없다.
나는 이불 밑에 손을 집어넣고 말했다.
“따뜻해.”
다연이는 나를 따라 손을 넣었다.
살짝 풀리는 얼굴.
“따뜻해.”
다연이가 내 말을 따라했다.
“이제 괜찮지? 그럼 자자.”
“응.."
그래도 다연이는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탁.
불이 꺼지고 집은 다시 조용해진다.
평소엔 이렇게 일찍 잠에 드는 일이 없었다.
일찍 졸리지도 않았고.
나는 불면을 느끼는 와중에 휴대폰을 켰다.
그러고 보니 다연이를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어린이집을 보내던지 유치원을 보내던지 해야 한다.
식당에 하루 종일 둘 수도 없고 친구도 필요했기 때문에.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던 와중에 뭔가가 내 무릎을 덮는 감촉이 느껴진다.
‘이불?’
분명 이불을 덮는 감촉이다.
잠에 든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깨어있나.
그런 생각에 고개를 돌리니 다연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안 자?”
“오빠가 추워.”
다연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괜찮은데.
다연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왜인지 그 눈빛이 마치 자기를 버리지 말라는 것 같았다.
불편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 같이 있어달라고.
나만의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괜찮다고 다시 말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고마워."
그제야 다연이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결국 우리는 반씩 나눠서 이불을 덮었다. 이렇게 있다가 다연이가 완전히 잠들면 다시 덮어줘야겠다.
"안 졸려?"
어둠 속에서 내가 물었다.
“응.”
“왜?”
내 말에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말했다.
“오빠가 갈까 봐..”
“....”
“내가 자는 사이에 갈까 봐.”
“안 가.”
가지 않을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다연이가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할까.”
“응?”
나답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왜인지 지금은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다연이가 베고 있던 베개를 들어냈다.
“...?”
달빛으로 간신히 비치는 다연이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
베개는 내가 베고 다연이에게는 내 팔을 준다.
팔베개.
나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지만 내가 해 줄 수는 있다.
“아...”
“이러면 못 가겠지? 다연이가 깰 거니까.”
“응.”
정말 나답지 않은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친절해 본 적이 있었나.
잠시 생각해봤지만 없었다.
전혀. 심지어는 할머니에게도.
우리는 늘 말없이 지냈으니까.
다연이의 작은 머리가 느껴진다.
푹신하고 작아서 가벼웠다. 밤새도록 이러고 있어도 될 것 같이.
이대로 잘까 생각했지만 잠들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켜고 이것저것 찾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냥 근처 유치원에 전화해서 자리를 구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입소대기.’
입소를 희망하는 어린이집이 있으면 입소대기를 해서 순서대로 들어가야 하고 유치원은 또 모집하는 때가 따로 있다고 한다.
다른 점이라면 어린이집은 항시 입소대기 신청이 가능하고 유치원은 그렇지 않다는 것.
조금 살펴보니 유치원 모집 기간은 이미 지났다.
그렇기에 만약 보내려면 유치원보다는 어린이집이 더 나을 것 같다.
민간 어린이집에서도 다연이 정도면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일단 유치원에 입학 신청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니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래도 방법은 알았으니까 내일 차근차근해야겠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분식집을 하고 있다는 거다.
분식집을 하면서 다연이를 돌보는 건 그래도 가능할 테니까.
그러고 조금씩 해야겠다.
나는 그제야 휴대폰을 껐다.
잠자리에 눕고 한 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그나저나 다연이는 잘 자고 있을까.
“....?”
고개를 돌리자 다연이는 나를 보고 있었다.
자는 게 아니라.
졸릴 텐데 여태까지 깨어있었던 건가?
“다연아, 안 자?”
“안 졸려.”
정말 잠이 안 와서 그런 걸까.
“오빠는 뭐 하고 있었어?”
“음.... 그냥. 내일 해야 할 거 확인하고 있었어.”
다연이가 자기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생각할까 봐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오빠는 일이 엄청 많아.”
실제로 해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 맞는 말이긴 하다.
“응, 그렇지. 그래도 이제는 잘 거야.”
“응.”
다연이가 눈을 감는 것을 보고난 뒤, 나도 눈을 감았다.
내 옆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다연이 생각처럼 나도 내일 일어나면 다연이가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생각은 사라지지는 않았다.
꾸욱.
다연이가 내 옷자락을 꾹 쥐었다.
아무데도 가지 말라는 것처럼.
나는 한 쪽 팔에 온기를 느끼면서 잠에 들었다.
.
.
.
알람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잠에서 깬다.
바깥은 아직까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처럼 쏟아 내리진 않았지만 비가 내리긴 마찬가지였다.
이번 비는 꽤 오래가구나.
그러다 문득 다연이의 숨소리가 들린다.
훅, 하며 작게 숨을 내쉰다.
팔베개를 한 팔은 저리지 않았다. 너무 가벼워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다연이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흐음....”
그런데 다연이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얼굴빛도 묘하게 붉다.
뭐야. 왜 그런 거지?
분명 어딘가가 불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잘 누워있었고 한 쪽 손으로는 내 옷자락을 꼭 쥐고 있다.
“콜록.”
그 때 다연이가 기침을 했다.
설마.
감기에 걸린 건가?
어제 비를 조금 맞긴 했어도 깨끗하게 씻겼고 따뜻하게 입혔다. 게다가 집 온도도 올려놨다.
그런데도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오빠..”
다연이가 눈을 떴다. 하얗던 얼굴이 붉다.
“응.”
“기침이 나와..”
“그래, 괜찮아.”
덤덤하게 말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따뜻하게 했는데 왜 감기에 걸린 걸까.
집 안에서도 계속 후드를 입혔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약이라도 먹였어야 했나.
모르겠다.
어제 내가 어떻게 했어야 다연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제 내가 조금 더 일찍 왔었다면. 그 여자를 더 빨리 집으로 들였다면.
그렇게 했다면 괜찮았을까.
“세수하고 같이 병원가자.”
“응..”
어찌됐든 지금은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
나는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한다.
‘07:28’
어떡하지. 동네 병원은 빨라야 9시에 문을 연다.
빨리 가야하는데.
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괜찮아. 많이 안 아파.”
다연이의 말에 조금 숨을 돌렸다.
이렇게 급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서 바뀌는 건 없다.
게다가.
“진짜야.”
정신을 차리고 다연이의 상태를 보니 그리 위험한 건 아니다.
그냥 감기 일뿐.
정말 단순한 감기다.
내가 걸렸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을 감기.
“알겠어.”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건가.
“일단 씻고 병원 가 보자. 그러면 금방 괜찮아 질 거야.”
“응...”
다연이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내 옷자락을 꾹 쥐고 있었다.
“괜찮아, 어디 안 갈게.”
그런 대답을 바랐던 것처럼 다연이의 손이 스르르 풀어진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