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29화 (629/653)

629화 (외전) 그녀의 이야기(2)

― 띠리리링

자명종 소리와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본래라면 제아무리 근면성실한 예진이라도 한참동안 침대에서 눌어붙어 밍기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침에 약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냐.’

예진의 머리가 갑자기 각성했다.

그녀는 서둘러 씻고 유학원에 갈 준비를 마쳤다.

아직은 쌀쌀한 3월달의 아침 대중승합차는 아슬아슬하게 출근 시간을 피했는지 썩 붐비지는 않았다. 그녀는 대중승합차에서 내린 뒤 지하철로 환승을 했다. 한양은 반도의 창양이라고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도 지하철이 잘되어 있는 도시로 꼽혔다.

지하철 안에서도 예진은 전화기 연결망에 접속해 신문 기사를 보았다.

틈틈이 이런 공부를 해야 시사를 파악하고, 시사를 파악해야 논술 감각을 기를 수 있었다.

그녀를 힐끔거리는 사방의 눈은 이미 너무 익숙해 무시할 수 있었다.

예진은 마침내 종로역에 내렸다. 3번 출구로 나오자 큰 건물이 보였다. 목표했던 유학원이었다.

“안녕하세요.”

건물에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많았다. 예진은 그들을 흘깃 둘러보다, 안내받은 문자에 따라 올라갔다.

작은 방 안에는 예진의 교육상담사가 있었다.

그녀가 친절하게 웃으며 예진을 반겼다.

“커피 줄까요?”

“네. 감사합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오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교육상담사가 운을 떼었다

“제대로 잘 나올 거예요. 걱정하지 마요. 특히 왕예진 학생 같은 경우엔 다른 선택지가 있잖아요? 우리나라 대학은 골라 가는 입장이니까.”

허나 예진은 단호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국 대학에 입학할 거라서요.”

“호호, 매번 느끼는 바지만 예진 학생의 의지는 대단하네요. 그러니까 본국수능을 만점을 받았지. 그리고 가채점대로라면….”

어쩌면 유학원, 아니 조선에서 아주 희귀한 경우가 탄생할지 모른다.

교육상담사가 말끝을 흐렸다. 괜히 결과 발표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싶진 않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속칭 수능의 결과가 곧 발표된다.

그녀가 말한 수능이라 함은, 제국수능을 의미했다.

조선의 수능과는 달랐다. 똑같은 명칭이라 사람들은 제국수능, 본국수능으로 따로 불렀다.

조선의 본국수능은 작년 11월에 이미 수능 일정이 끝이 났다. 일 년에 한 번 보았다.

반면 고려는 1년에 제국수능을 3번 치렀다. 수능 한 번이 가혹하다는 의견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온갖 학생들이 몰려오니 배려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4월과 8월, 12월에 치르는 수능 시험은 여러 번 보는 시험임에도 굉장히 안정적인 점수분포를 보여주었다.

절대평가였으며 객관적이었다. 수많은 천재적 교수들이 이 시험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괜한 말은 아니었다.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고 해서 제국 입시가 만만하다는 건 또 절대 아니었다.

고려는 학창 시절의 성적과 근면성실함도 굉장히 높게 쳤고, 다양한 경험을 요구하기도 했다. 내신 성적이 대학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컸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 내내 놀다가 정신을 고쳐먹은 사람들에게도 두 번째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성적을 만회할 또 다른 시험, 표준화진학시험에서 성적을 잘 받아야 했다. 그것도 만만한 시험은 아니었다.

전반적 난이도는 살짝 더 쉬웠지만, 내신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시험인 만큼 준비하기 까다로웠다.

사실 제국수능도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을 봤지만, 지문 안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표준화진학시험은 그런 배려보다는 암기적 요소가 좀 더 많았다. 과목도 훨씬 세분화되어 있었다.

예진은 표준화진학시험 대신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제출했으니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모든 영역에서 가급을 받은 그녀의 성적표는 실로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노원여고 시절, 그녀는 단 한 번도 전체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의 수험생활은 이제 곧 발표될 제국수능의 성적표에 따라 결정된다. 가채점은 이미 끝냈다. 생각대로라면 그녀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었다.

“열 시…!”

교육상담사도, 예진도 침을 꿀꺽 삼키곤, 연방교육평가원 누리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제국 학생들은 제국표준시에 따라 어제 성적표를 받아들었겠지만, 유학생들은 지역에 따라 다른 시간대에 성적이 조회 가능했다. 예맥한 및 태평양 일대 나라들의 유학생들은 오늘 아침 열 시에 성적이 발표되었다.

― 딸깍

불러오는 속도가 느렸다. 아마 동시에 접속한 인원들이 하도 많아서 그럴 터다. 매번 이렇게 누리집이 터져나가곤 했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결국 나온다.

예진도, 상담사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

[이름 : 왕예진

나이 : 19(559.03.17 생)

성별 : 여

학교 및 학적 상태 : 노원여자고등학교(졸)

시험일자 : 577.12.12.

발표일자 : 578.03.14 개성표준시(10:00)]

[종합 점수 : 1000/1000]

[언어 : 200/300]

[수학 : 200/300]

[역사 : 100/100]

[인문학 : 200/200]

[자연과학 : 200/200]

“와! 축하해요!”

만점.

몇 명이 만점인진 모르겠지만 세계석차 1위.

가채점 결과와 완벽히 동일했다.

예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신음과 같은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하지만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을 참지는 못했다.

기쁨의 눈물이다. 얼마나 고생했던가. 교육상담사도 이를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상담사가 진정할 시간을 주었다. 예진은 그사이 솔빈에 있는 부모님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착신음이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 엄마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한창 바쁠 시기라 두 분 다 회사 업무 중이실 텐데도 분명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 틀림없었다.

― 잘했어! 우리 딸!

아버지도 난리법석이셨다. 어머니한테 돌아갈 때 뭘 사갈까 그렇게 질문을 하시는 소리도 들렸다.

“아무거나 사주세요. 저 일단 지금 상담 중이라….”

― 응, 알았어! 저녁에 다시 전화해!

어딘가에 갔다 온 상담사도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그녀도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본국, 제국수능 양 시험 만점자였다. 물수능이었다는 이번 본국수능도 만점자는 51명이었고 제국수능 만점자는 전체 기준 0.007 백분율에 불과했다.

심지어 왕예진 학생은 내신 점수까지 최고 등급이었으니.

그야말로 학생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도달한 것이 아니던가.

“왕예진 학생, 혹시 예진 학생의 이번 경우를 유학원 홍보로 써도 될까요? 대신 이번에 등록하신 모든 금액은 환급해 드릴게요.”

유학원은 꽤 비싸다. 괜찮은 조건이다. 예진도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만 안 찍어주시면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요? 예진 학생 얼굴이 정말 아까운데.”

“제가 낯을 좀 가려서….”

상담사가 살짝 실망하다가 금세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기회를 잡은 것으로 만족했다.

“자 그럼, 이제 578년도 예상 입시도예요.”

상담사는 들고 들어온 긴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 크기가 탁자를 다 뒤덮을 정도였다.

“왕예진 학생이 특별하게 원하는 대학은 제국대학들이죠? 개성대학은 별로라고 하셨구요.”

“네 맞아요.”

사실 다른 학생었다면 굳이 제국수능을 안 봐도 되었다.

조선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한양에 있는 한양대는 굉장히 좋은 대학이고, 국제적으로도 알아주었다.

그게 부족하다면, 고려령 개성에 있는 개성시립대학교에 가도 되었다. 개성대는 세계 삼십 위권의 엄청난 명문대학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꼭 제국의 대학에 가길 원했다.

특히 어느 한 곳에.

제국수능 만점의 성적표는 그 미래에 확신을 불어넣었다. 이제 가능할 것이다.

“어디 보자….”

상담사가 다른 자료들을 가져왔다.

“이제 수능성적이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었으니까 대학들을 제대로 겨냥하고 입시를 준비해야 해요. 예진 학생은 제국에 대학이 몇 종류가 있는지 알고 있어요?”

“네, 황왕립, 국립, 공립, 사립으로 분류된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똑똑하네요. 맞아요. 그중에 공립은 주립대, 시립대 등으로 나뉘죠.”

장학금이나 등록금, 학교 수준을 판별할 때 좋은 척도가 되곤 했다.

보통은 후원의 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대학이 유명했다. 황립, 왕립 대학은 그 수가 별로 없지만 굉장한 수준의 재정지원을 받아 교육의 질이 높았다. 국립도 마찬가지였다.

공립으로 분류되는 주립, 시립 등은 개별적 경우를 따지고 봐야 했다. 중려, 북려는 국립대학보다 주립대학이 훨씬 더 많았다. 주들 간의 경쟁이 붙은 주립대학은 황립이나 국립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을 자랑했다.

시립은 아무래도 후원의 규모가 작은 덕에 경쟁에서 뒤처지곤 했다. 다만 개성시립대와 같은 이상점(아웃라이어)이 존재했다.

사립은 그 경우가 너무 천차만별이라 규정짓기 애매했다. 세계 최고 대학인 청해대도 사립이고 동네 대학도 사립일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녀는 지금 목표가 확실했다. 다만 당장 상담사에게 그 목표를 제시하기보다는, 다른 것들도 들어보고 싶었다.

“575년 대학종합평가에 따르면 예진 학생이 지망하는 정치외교학과의 경쟁력 순위는 이래요.”

1. 창양황립대학교

2. 청해대학교

3. 동래미왕립대학교

4. 진주왕립대학교

5. 미네소타주립대학교

6. 칵틀루임신성황립대학교

7. 건양국립대학교

8. 미원주립대학교

9. 파남국립대학교

10. 화성주립대학교

이 순위는 어디까지나 정치외교학과만의 순위라고, 상담사는 그렇게 덧붙였다. 경제학이나 자연과학으로 돌려보면 다르게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초일류명문대도 있긴 했지만.

그리고 사실 이렇게 줄 세우는 것도 대단히 큰 의미는 없었다.

입시경쟁이 치열한 예맥한 국가들의 기풍은 서열을 확고히 세우는 것을 즐길지 몰라도 정작 제국에서는 1급 대학들, 즉 20~30위권까지의 대학들은 전부 우열을 따지는 의미가 없는 명문대로 쳤다.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대학들이 즐비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예진 학생은 아무래도 청해대를 노리겠죠?”

사실 예진은 이전부터 청해대 청해대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기에, 상담사도 알고 있긴 했다. 예진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네.”

“완벽한 제국수능점수 덕에 그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어요. 팔 할?”

하지만 여전히 이 할은 불투명하다고, 그렇게 상담사가 덧붙였다.

“논술을 잘 봐야죠. 그리고 자기소개서도 여전히 중요해요. 예진 학생의 경쟁자들은 모두 백분율 기준 0.01 안에 드는 괴물들이에요. 마음 놓고 풀어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청해대, 창양대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대학으로 꼽히는 곳. 수많은 천재들이 거쳐 갔던 곳, 영실상이나 기타 여러 가지 저명한 상의 수상자들이 즐비한 곳.

온갖 공부 괴물들이 그곳을 노리고 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와 중동, 대양주들에게서까지 공부 좀 잘한다 하는 사람들 중 이곳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다른 대학들이 유명하고 좋다고 해도, 청―창의 유구한 역사는 넘보기가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다.

“열심히 할게요.”

예진은 결의를 다졌다.

* * *

유학원에서의 상담이 끝나고, 추가 논술 공부를 좀 한 예진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집이 북적거렸다.

솔빈에 계셔야 할 부모님이 와 계셨다. 갑자기 깜짝 잔치가 벌어졌다.

“내일 오신다면서요!”

아버지 왕온규가 딸을 꼭 끌어안았다. 곧이어 어머니, 유미희도 그녀를 끌어안았다.

“오늘 급히 비행기 탔지. 딸이 만점을 받았는데, 뭐 회의가 대수야?”

‘대수 아닌가?’

부모님은 그새 솔빈산 대게를 사 오셨다. 저 큰 대게가 공항을 통과하진 못했을 테니, 아마 도착하시자마자 동네 근처 수산시장에서 사 오신 모양이다.

“언니! 소식 들었어, 축하해!”

“누나 축하해!”

동생들도 케이크를 사 놨다. 화해를 한 것인지, 휴전을 한 것인지 몰라도 오랜만에 보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예진은 동생들이 기특해서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

―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개사하여 불렀다.

이렇게 화목한 가정이 따로 있을까.

예진은 지금 이 순간에 실로 감사함을 느꼈다.

케이크를 자른 가족들은 케이크를 먹는 대신 일단 둘러앉아 찐 대게를 먹었다. 다른 반찬도 있었다. 불고기도 있었고 잡채도 있었다. 생일상 같았다. 생각해보니 사흘 뒤면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은 생일이고 오늘은 오늘이니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오랜만의 평화롭고 맛있는 식사였다.

예진은 애틋한 눈으로 가족을 바라봤다. 그녀는 유난히 가족을 사랑했다. 또래보다 조숙했기에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득히 먼 옛날, 이런 평화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 언니, 오빠 모두 행복했었을 삶.

‘아득히 먼 옛날? 오빠? 언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언니나 오빠는 또 뭐고.

예진은 머리를 흔들고 다시 현재에 집중했다. 문득 입꼬리가 올라갔다.

‘유학을 간다면 자주 보긴 힘들겠지만, 오래도록 사랑할 거예요, 우리 가족.’

[작가의 말]

외전 연재 시작입니닷.

외전 일정은 부정기적입니다. 될 수 있으면 이전처럼 월화목금으로 올릴 생각입니다만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어요.

분량이 얼마나 될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쓰고 싶은 것, 약속드린 건 다 써야 하니… 적어도 20편은 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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