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화 우주로
전쟁이 막 끝났을 때의 일이었다.
“이 애를 잘 보살펴주게.”
하와이의 한 황립보육원 앞에서, 상민이 어린 소녀의 손을 놓았다.
소녀는 자꾸 상민을 돌아보며 주춤거리면서도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이 처한 운명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민은 황립보육원을 천천히 바라봤다. 황실에서 운영하는 만큼 보육원의 관리는 참 잘되어 있었다. 먹을 것이며, 자는 것이며, 교육 같은 것도.
이런 것 하나하나가 국가의 품격이라는 걸, 자신 또한 옛 삶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다 하긴 했구나.’
그제서야 말 못 할 피로가 엄습하는 느낌이 들었다. 육체적인 피로는 아니었다. 그저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상태를 알아차렸을까.
“용태(龍態)는 괜찮으십니까?”
보그다노프를 비롯한 파견자들이 복귀하며 전부 모인 사도들은 하나같이 용의 신체를 걱정했다. 지금은 무주지로 변한 곳에서 그동안 대체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었다.
용이 인간의 범주 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은 여의국 모두가 알았다.
하지만 방사능은 아직까지 비밀에 싸여 있는 힘이었다. 상민이 단단히 교육했기에 모두가 그 파괴적인 힘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다. 하지만 정작 교육자 자신은 고개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사도들로선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음? 괜찮다. 전혀 문제없단다.”
허나 상민으로선 그저 돌아와서 좀 씻고 휴식을 취하면 끝이었다. 정말이었다.
아무리 위험천만한 행위에 중독되어 있었던 그라도 핵 같은 것을 맨몸으로 맞아보는 건 미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직접적인 폭발을 겪어보진 않았다.
적어도 중화의 끝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전에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것은 안 될 말일 터.
나중은 모르겠지만.
다만 상민은 탄저나 폭발 직후의 방사능 오염 정도로는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거침없이 행동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주사전자현미경이니, 투과전자현미경이니 하는 전자 현미경들이 개발된 지도 벌써 좀 되었다.
기술선도국의 학자들을 시켜 자신의 세포를 관찰한 결과, 그의 세포는 손상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재생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방사능 피폭과 관련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방사능이 그의 몸의 세포와 핵산을 손상시키는 것보다 그의 재생능력이 월등했다.
신경만 쓴다면 무주지 안에서도 운신은 자유로웠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안토니아가 화가 잔뜩 나 있을 게 문제지.”
“…곧 풀어지실 겁니다.”
하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느라, 같이 새벽호를 타고 다녔던 안토니아만 고생했다.
더 이상은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용이 또 빈말을 던지면, 이제 믿을 것 같아요? 하고 안토니아는 짜증을 내겠지.
그녀를 달래려면 상혁이라도 같이 와야 했는데. 이젠 걔도 어엿한 가장에 군인이다 보니 매번 애처럼 행동할 순 없는 노릇이다.
듣기로는 상혁인 정령에 진급했다 한다. 자신의 아들이라서 특혜 같은 것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동기인 나폴레오네와 비교하면 한참 초라한 진급이었다. 인원이 적은 특수부대의 특수성을 감안해봐도.
‘그래도 그 아이가 스스로 만족하면 되었지.’
고려의 치세가 완전히 열렸다 하더라도, 지구상에서 소규모의 분쟁이 영원히 사라지기란 힘든 법이다. 특수부대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다.
물론 이젠 현장에 갈 계급은 아니긴 했지만, 설령 가더라도 걱정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 똑똑
“뭘 쓰고 계시오?”
“…어머.”
하지만 안토니아는 딱히 그에게 짜증을 품고 있지도, 잔뜩 화가 나 있지도 않았다. 다만 열심히 무언가를 작성 중이었다.
많은 책과 지도가 책상에 쌓여 있었다.
안토니아는 그녀의 어머니 여대공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왕족이었고 상민에게 온 뒤에도 꾸준히 책을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았으니, 시대상을 고려해봐도 굉장한 엘리트에 속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집중했는지 안토니아는 상민이 들어오니 화들짝 놀라 책을 덮고 치웠다. 예전 같았으면 만년필 유먹이 죄다 번졌겠지만, 원추필(볼펜)은 저런 면에서 좋았다.
안토니아는 들어온 사람을 인지하자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녀는 머뭇거리다 치운 책을 주섬주섬 다시 책상에 올려놓았다.
용의 그림자.
아주 예전, 그야말로 안토니아를 자신의 개인 사관으로 삼았을 적부터 기록한 자신의 ‘실록’이다.
둘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그 애들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볼 때까지의 기나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안토니아는 여전히 그의 행적을 기록 중이었나 보다.
사실 이 책은 작성을 부탁한 상민조차 잊어버렸던 책이다.
그는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그녀가 자신을, 자신의 행동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느꼈는지 안토니아가 주저하며 말했다.
“볼 거예요?”
“아니… 괜찮소.”
하지만 그는 굳이 그 내용을 보지 않았다.
상민은 이 책을 그토록 열심히 쓴 안토니아의 안목을 믿었다. 실록과 같은 책의 객관성은, 기록된 인물의 주관을 제거해야 성립되었다. 저자와 기록 당사자와의 객관성이 확보될수록 좋았다.
물론 안토니아는 그와 내밀히 살을 대고 살아가는 사람인 만큼 완전히 객관적이라 평가할 순 없을 터.
그럼에도 이민 1세이자 타국의 왕족으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구석이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 중에선 가장 객관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의국 놈들은 전부 자신을 숭앙해 마지않으니.
하지만 상민은 책을 보지 않겠다는 말에 안토니아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쉰 것까지 눈치채진 못했다.
“우리 이제 어디 가나요?”
안토니아가 그렇게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적도로 갈 거요.”
마지막 일을 끝마치러. 상민의 입이 흐릿한 호선을 그렸다.
* * *
와야킬(과야킬) 북쪽 해안가.
코아케(Coaque).
정확히 적도지방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이곳에 살아가던 선사시대 코아케 문명의 이름을 딴 어촌이었다.
딱히 대단한 건 없었다. 특별한 것이라면, 아마 지구과학적인 요소가 결부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 적도가 지나간다는.
과거 몇 명의 지질학자들이 이곳에 작은 적도기념비를 세웠고, 유난히 그런 걸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이 비석에 들러 사진을 찍고 가는 정도가 전부인 한적한 마을에 불과했다.
철도역이 있긴 했는데, 황철을 빼곤 잘 멈춰 서진 않았다.
허나 전쟁이 끝나고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 개천 534년 1월, 이곳에는 갑자기 여러 건물들이 빠르게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개발의 속도는 지금은 사라진 전려국토개발국의 행보와 견줄 만큼 전격적이고 빨랐다.
눈 떠보니 이 어촌마을은 하루아침에 소도시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젠 기차역도 번쩍번쩍해졌다.
코아케가 급속도로 성장한 이유는, 아니나 다를까 도시가 적도를 지나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갑자기 적도에 관심을 가지는 관광객들이 대폭 증가했을 리는 만무했으니, 이 과학적 사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틀림없었다.
해밀턴 정부가 코아케에 우주기지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박용찬의 전시내각이 종료된 이후, 경당의 당수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고려제국 42번째 시중이 되었다.
그는 전후 고려의 단극체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오죽했으면 정치적 경쟁자이자 친우였던 박용찬이 그의 앞에서 휘파람을 불며 인수인계를 했을까.
박용찬도 세계대전 승리 시중이라는 영예로 연임을 시도해볼 만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을 보면 확실히 전후 국제질서 개편은 전쟁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자명해 보였다.
사실 평시의 고려는 외교적으론 경당이 어울렸다. 시중직에도 용찬보다는 해밀턴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해밀턴은 고려 주도의 평화가 계속 지속되기 위해선, 비단 핵확산금지조약의 체결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미 약속한 토량소 원전 개발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상징적이고, 더 피부에 와닿는 사건이 필요했다.
오층관(五層冠) 같은 것 말고 조금 더 대중적인 무언가가.
전쟁이 끝난 이후, 그리스는 일을 하나 저질렀다. 이건 핵확산금지조약을 위한 국제연합 회의에서의 망언과는 격이 다른 행동이었다.
그리스는 전국 각지에서 후원금을 모아 하나의 관을 제작했다. 당대 최고의 명인들을 긁어모아 만든 오층관(혹은오중관이라고도 불렀다)은 곧바로 세계 2차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들의 정당하고 적법하며 영광된 승리제(勝利帝) 바실레우스 해안에게 바쳐졌다.
원래는 사층관을 의도했지만, 아직까지도 4자금기가 아주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문화를 고려하여 하나를 더 더했단다.
어마어마한 양의 최고 등급 보석과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이 거대하고 무거운 제관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싸다는 말이 전혀 과장되어 보이지가 않았다.
모양과 크기, 의미는 가톨릭 수장, 교황의 삼층관(Triregnum)에서 따온 것이 명백했다.
삼층관의 각 층은 신품권, 교도권, 사목권의 3권이나, 혹은 군주들의 아버지, 세계의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의미를 내포했다.
거기에 두 층이 더해진 오층관은 일설에 따르면 ‘군주들의 군주’, ‘세계의 통치자’, ‘법과 종교의 수호자’에 더해 ‘항상 승리하는 자’, 그리고 ‘악을 심판하는 자’의 뜻을 더했다 한다.
대외로 포장하기는, 오대양(태평양, 대동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 및 오대주(고려대륙, 아시아, 유럽, 대양주(오세아니아), 아프리카)의 적법한 수호자를 의미한다고도 했다.
물론 제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가톨릭 교도들에겐 상당히 굴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아마 이 또한 정교회 국가인 그리스가 의도했을지도 몰랐지만.
고려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오중관을 받은 당사자인 해안은 제관을 쓰다 그 무게에 목이 꺾여버릴 것 같아 실제 착용을 꺼렸다. 거참 독특하고 참신한 암살 시도가 아니냐고까지 정도였다.
정부로서도 아무리 쇠락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세계적 종교인 가톨릭과 굳이 마찰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고, 가뜩이나 그리스의 행동이 부담스러웠으니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관 하나로 전 세계인들이 고려를 중심으로 단합될 것 같은가? 해안이나 해밀턴이 생각하기엔 단연코 아니었다.
다만 그래도 버리긴 너무 아까워서 대충 보물창고에 넣고 치웠다. 이 아름답게 세공된 제관을 녹여 보석과 금속으로 환원하는 건 동원된 명장들의 노고, 아니 전 인류적 측면으로 볼 때 굉장한 손실이었다.
다만 해안은 황실 사비를 털어 그리스에 오층관의 가치만큼 돈을 주었다. 제발 이런 돈 함부로 쓰지 말고 민생이나 챙기라고.
그리스도 황제가 선물을 받았단 사실만으로 만족한 듯 보였으니 괜찮을 것이다.
허나 오층관이든 오중관이든 저건 그저 황실의 일에 불과했다. 호사가들이나 혹은 입주책동을 펼치는 그리스인, 조선인들이나 관심 가질 만한 사항이었다.
해밀턴은 그보다 더 대중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때마침 황상이 직접 넌지시 우주개발의 운을 띄워주니, 해밀턴은 바야흐로 자신의 치세에서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인지했다.
우주개발은 명백히 오중관 따위보다는 더 인상적이고, 더 역사적일 사건일 터였다.
더 나아가 이것이야말로 전 인류를 하나로 묶을 유일한 기회였다.
* * *
그리하여 고려 항공우주국이 세워졌다.
고려 항공우주국은 설립되자마자 코아케 우주기지를 세웠다.
코아케 우주기지는 발사체 회수가 쉬운 해안가에다가 완벽한 적도에 위치해 있어 우주기지의 입지론 더없이 적절한 곳이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지진을 대비한 내진설계를 꼼꼼히 해야 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적도는 지구 자전에 따른 원운동을 이용해 신기전을 쏘아 올리기 가장 쉬운 곳이다.
남려 반대편 해안도 있긴 했지만, 태수 열대우림인 그곳은 기후 자체가 굉장히 습하다 보니 금속들이 녹이 잘 슬고 근무자들의 생활 여건이 좋지 않아 코아케가 우주기지로 낙점되었다.
많은 과학자들, 공학자들, 군인들이 코아케에 자리를 잡고 우주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정부와 황실도 엄청난 자금을 투자했다.
그렇게 개천 534년 5월, 고려는 용염을 실어 중화를 박살 냈던 그 탄도신기전 벼락을 이용해 인류 첫 우주발사체, ‘희망 1호’를 쏘아 올렸다.
사실 탄도신기전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려가 예전부터 우주개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폭탄을 탑재해 땅에 내리꽂으면 그게 탄도신기전이고, 탐사와 같은 목적으로 하늘 높이 쏘아 올리면 그것이 탐사신기전이니.
희망 1호는 지구 저궤도에 무사히 안착하고는 표준전보부호로 이루어진 신호를 전 세계의 무전송신기에 뿌렸다.
― 우리는 비로소 껍질을 부수어 밖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문구는 모든 인류의 가슴을 울렸다.
밤하늘은 여전히 조용하고 적막했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더 이상 밤은 무섭고 두려운 시간이 아니었다. 희망의 빛을 품은 아름다운 천체들이 그 수줍은 표정을 비로소 인간에게 솔직히 전하는 황홀한 순간이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밤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희망 1호를 찾아보려고 하기 바빴다.
둘만 모이면 우주개발 이야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토론하기 바빴다.
전쟁은 더 이상 진지하고 위대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저 파괴만을 일삼는 행동은 유치하고 이기적인 일이 되었다.
우주를 개발하고 밖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지하고 위대하며 영화로운 행동이었다.
민중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국제정치도 많이 바뀌었다.
비로소 모든 국가가 고려의 패권을 인정했다. 고려의 패권이 인류의 번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런 분위기 속, 고려는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아들들에게 과학교육을 시켜주고 싶어 하는 아버지처럼, 과학자들은 거듭하여 밤늦게까지 일하며 탐사신기전을 만들었다.
536년 3월 17일, 고려는 최초의 우주비행생명체, 복돌이(개, 2살)를 쏘아 올렸다. 복돌이는 무사히 귀환에 성공했다.
537년, 9월 2일, 고려는 희망 2호를 쏘아 올렸다.
538년, 10월 30일, 고려는 최초의 기상위성 청명 1호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540년 8월 4일, 고려는 최초의 유인우주선, 약속 1호를 통해 최초의 우주비행사, 정영준을 우주공간에 보내는 것에 성공했다.
[지구는 푸르고 창백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워요.]
― 와아아!
무전 통신을 통해 전해 들은 소식에 코아케 우주기지가 달아올랐다.
기지에서 참관자 자격으로 그 광경을 생생히 바라보고 있던 상민은 비로소 힘껏 움켜쥔 주먹을 풀었다.
반면 상민은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세포에 혈액이 맥동하며 퍼졌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몸의 신호.
알겠다, 알겠으니 진정하거라. 그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더없이 익숙한 느낌이다. 마치 예전 사막을, 고산을, 극지방을 가기 전에 느꼈던 그 느낌과 비슷했다.
아니 사실 그보다 훨씬 더 심했다. 몇 곱절은 심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열망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갈망이었다.
그는 명백히 저 너머의 세상을 갈구하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여정 또한 갈구했다.
심지어 그 위험한 여정 속에서 얻을 마지막 안식까지도 갈구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원하는 바일 테다.
상민은 코아케 우주기지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끝났다.
더 이상 제국은 그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도 안 되었다.
그는 이제 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저 멀리 나아갈 것이었다. 그의 몸을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늙은 용은 창공을,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숙명처럼.
하지만 안토니아의 생각은 달랐다.
같이 이곳에 참관하러 온 안토니아는 역사적인 순간에서 실로 침착했다. 그녀는 전대의 ‘성녀들’이 수집한 자료들을 떠올렸다.
아이샤, 그녀는 이미 알았던 것 같았다. 남편의 성격을, 용의 본질을.
몇몇 쿠쿨칸 총대주교도 알았던 것 같았다. 그들은 자꾸만 안토니아를 만나 무언가 말을 전했다. 무언가 굉장히 비밀스러운 말을, 어쩌면 불충할 수도 있는 말을.
어째서인지 지금 황제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우주국을 세우면서도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체 남편을 무엇으로 붙잡아야 할까.
세속은 더 이상 그의 미련거리가 아닐 테니 대체 무엇으로 용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녀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종교계, 여의국, 제국의 힘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용을 거역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한 가지 작은 기회가 있다 하나, 그것조차도 용서를 구할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가능할까, 그녀는 고민에 잠겼다.
용의 그림자를 기록한 안토니아는 역으로 그 그림자가 따가운 태양의 빛을 막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은 상태였다.
그녀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다행히 뜻을 함께할 이들은 적지 않을 테다.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본편 완결
[작가의 말]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본편이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물론 상민의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는 외전―에필로그―을 통해 계속 이어집니다.
외전은 조만간 연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작가의 인사는 모든 서사가 종료된 이후에 정식으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