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화 핵확산방지조약(2)
[핵확산방지조약이 너희에게 해가 되느냐?]
― 그래, 조약에 들지 않으면 해가 될 것이다.
고려는 그렇게 천명했다.
곧 다가오는 개천 535년, 고려 주도로 ‘국제원자력기구’가 발족할 예정이었다.
고려는 의장으로서 국제연합의 구성원 전부에게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하라 명했다.
명백한 명령이었다.
물론 이 비핵화 질서에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개별 국가가 내릴 선택이었다. 표면적인 자유였으며 고려가 존중하는 국가 주권일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주류 질서에 가입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국제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것 또한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선택일 테니까.
먼저 이 ‘평화 훼손자’들은 원―석유결제체제, 그리고 금융망과 범세계 무역망에서 제외될 것이었다.
금융을 비롯한 식량과 연료에서 한없는 손해를 볼 것이다.
이렇게 범세계망에서 제외된다면, 당사국은 실로 재앙적 손해를 볼 것이었다.
세계는 이미 고려 중심의 촘촘한 거미줄 위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현대 국가가 만약 이 거미줄에서 떨어진다면, 단번에 현대에서 낙후된 근대 국가로 추락할 것이었다.
현대 프랑스 공화국이, 부르봉 말기 프랑스가 될 것이란 뜻이었다.
군사적 보호도 받지 못할 것이다.
고려는 아직 완전히 군축하지 않았다. 천 개의 사단을 운용했던 고려는, 전쟁이 끝난 뒤 그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그래도 여전히 전시 상황에 준하는 수준의 군대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모든 나라가 이를 의식했다.
물론 고려는 쪼개진 중화와 소련의 나라들에 몇 년간 군정을 실시해야 했기에 군대를 유지시켜야 하는 당위성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수백 개의 사단이 현역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바다에는 대양함대가 있었다.
전함과 항공모함, 합동화력함이 있었다. 일개 나라가 아니라 대륙을 상대할 수 있는.
현존하는 모든 열강의 군대를 합쳐도 지금 제국의 군대를 능가하지 못했다.
모든 나라의 군대를 합쳐도 그러했다. 설령 어떻게 긁어모아 만든다 쳐도, 무장상태는 비할 수 없을 테다.
이런 보호망에서 벗어난다는 건 각국으로선 생각도 하기 싫은 선택지였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선, 그 군대가 어쩌면 질서에 벗어난 불충한 평화 훼손자들에게도 대포를 돌릴 수 있을 터.
어쩌면 그 평화 훼손자들은 ‘새로운 중화’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중화 정도의 미치광이가 되지 않고서야 고려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할 것이니까.
뿐만 아니라 평화 훼손자들은 외교적 관계에서 손해를 볼 것이었다. 심지어 재난 시 구호망에서도 손해를 볼 테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손해였다.
반면 이와 대비되는 중대한 물음이 또 있었다.
[핵확산방지조약이 너희에게 득이 되느냐?]
그래 조약에 들면 너희들한테 이득이 되리라.
고려는 또한 그렇게 천명했다.
기존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자들은 국제화가 주는 혜택을 누릴 것이다. 비교우위를 점하는 재화를 수출하여 돈을 벌 것이고, 반대로 삶의 질을 윤택하게 만드는 재화들을 수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본적 이득 외에도 객관적 이득도 챙겨줄 예정이었다.
고려는 평화적 핵개발, 즉 원자로의 건설과 기술 지원을 약속했다.
현재 고려가 개발하는 원자로는 기존의 명왕소나 중회소 기반의 핵분열로가 아니었다.
토량소를 이용한 원자로가 중심이었다.
명왕소와 중회소 기반의 원자로는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어떻게든 두 물질을 다루게 된다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증폭되었으니까.
국제원자력기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가입국들의 핵무장을 감시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꼼수를 부릴 나라들이 없다곤 장담하지 못했다.
적석계획에 참여한 고려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시간이 충분하고 중회소만 어떻게 구할 수 있다면 작은 크기의 핵폭탄 정도는 다른 열강들도 능히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원천적으로 위험요소를 배제해야 했다. 최대한 물질 자체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고려는 다국적 광산기업들을 통해 중회소 산지의 광산개발권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엔 아직 발견되지 않는 중회소 산지들이 많았다. 아예 중회소를 채굴할 이유가 없게 만들고, 채굴 자체가 핵무장을 의미하도록 만드는 것이 감시에 용이했다.
그런 면에서 토량소(토륨)는 중회소보다 더욱 효과적인 물질이었다.
토량소는 대지에서 중회소보다도 더 흔하게 발견되었다.
또, 초창기 분열 목적으로 쓰일 중회소를 제외하고는 중회소를 이용하지 않았다.
명왕소를 생성하지도 않았다. 핵무기 확산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소리였다.
토량소 원자로가 중회소 원자로보다 예상 기술이 더 높을 거라는 사실이 단점으로 꼽혔지만, 애초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공돌이를 투자하여 기술개발노선을 집중한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어차피 고려는 지금 열강들의 기술상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십 년은 넘어야 원자폭탄 비스무리한 것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권우일이 핵심 핵개발 비밀을 유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기간은 급격히 단축되어 골치가 아팠겠지만, 다행히 막았으니.
여담으로 권우일, 그자의 죗값은 토량소 원자로 개발에 일평생 헌신하는 것으로 치러야 할 터였다.
고려에서 제일가는 천재 중 하나이니 골방에 합법적으로 처박아놓고 그렇게 좋아하는 평화로운 핵개발을 시키면 개인도 좋고 국가도 좋지 아니할까.
그렇게 십 년이면 토량소 원자로 개발은 충분히 가시화될 터였다. 고려는 자국의 두뇌들과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믿었다.
* * *
그렇게 핵확산금지조약,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하면 얻을 건 많았다. 반대로 가입하지 않으면 잃을 게 많았다.
절묘한 당근과 채찍이다. 채찍은 굉장히 아팠고, 당근은 신선하고 맛이 있었다. 말들이 명령에 순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도 핵무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으면 굳이 개발할 이유는 없었다.
비핵화 정책이 일관되고, 또한 정의롭다면.
고려의 핵확산조약은 내열남불이었지만, 그럼에도 고려를 제외한 국가들에겐 단 한 개국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확실한 일관성이 있었다. 옆 나라 이웃도 가지지 못하고 나도 가지지 못하는 일관성이었다.
어디 한번 걸리면 두고 보자는 본보기적 측면에서도, 그러한 예외 없는 엄격한 규정은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프랑스를 포함한 그 어떤 나라도 감히 첫 번째 본보기가 되어 전 국토가 바스러지고 싶지 않았다. 핵개발에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땅덩어리 차이가 대체 얼마인가. 항거는 불가능했다.
또 국민들 스스로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았다.
국민들은 누구보다 생계에 민감했다.
뜬구름 잡는 핵무장보단, 내일 연료값 걱정부터 하는 것이 순리였다. 고려의 경제 제재가 끼칠 파급력은 그들을 단번에 거리에 내몰 수 있을 정도였다. 내몰린 이들은 당연히 현수막과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설 것이 분명했고.
물론 민족주의가 횡행할 땐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길바닥에 나앉아도 아무 의미 없는 식민지에 집착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두 차례의 대전쟁 이후 사람들은 분쟁이라는 분쟁엔 염증이 나 있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평화를 바랐다.
그리고 평화를 갈구하는 지금의 분위기에 결정타를 가한 나라가 있었다.
국제연합회의 휴회시간, 그리스 대사가 갑자기 불쑥 입을 열었다.
“프랑스 대사는 어찌 보면 참 바보 같단 말입니다.”
“……?”
외교관이란 예의가 숙명일지언대, 어찌 저런 말을 하느냐고 몇 명은 눈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스 대사는 뻔뻔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 뭐, 적법한 임페라토르이자 바실레우스의 통치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미련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그래요.”
“좀…!”
크로아티아 대사가 팔꿈치로 그를 쳤다. 하지만 그리스 대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국은 이미 방위비를 한껏 줄였습니다. 왜 국가안보를 그리 걱정하십니까?
우리나라와 프랑스, 아니 당신들 모두가 근심해야 할 건, 당신 나라의 군사력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걸 왜 근심합니까? 그저 고려 함대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런 걸 근심해야죠.”
저건 또 무슨 논리인가.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스 대사는 그 시선을 즐기며 해괴한 망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도적을 잡고자 집에 몽둥이를 쌓아놓는다고 해결이 됩니까? 당신들 몽둥이로 도적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쳐가면서 싸울 의미가 있습니까? 중화 같은 미친 범죄자들 상대로?
아니지요. 당신들에게 중요한 건 몽둥이의 수량이 아니라 파출소가 얼마나 가까우냐 이거예요.”
“…….”
“제국함대는 이동식 파출소, 이동식 경찰청이잖습니까! 모르겠어요? 경찰청이 물 위에 떠다닌다구요. 왜 굳이 몽둥이를 비싼 값 들여서 사려고 합니까? 미련한 사람들.”
대사들 대부분은 도저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리스 대사를 바라봤다. 그리스가 그리스 했다며 헛웃음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려 대사도 뒷목을 잡으며 혈압약을 찾았다.
허나 모두가 그런 건 또 아니었다.
갑자기 몇 명의 대사들의 얼굴에 진지한 고뇌가 떠올랐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섬나란데….’
‘우리나라는 징집할 인구도 없는데 그냥 핵우산도 받고, 군대도 해체하고 주고려군이나 유치하는 게 더 이득일지도….’
그렇게 국가안보 자체를 타국에 떠넘기는 방안이 화두에 오르자, 몇몇 사람들을 중심으로 열띤 토론이 일어났다.
사실 군대도 다 돈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돈이었다. 그 돈으로 교육에 투자하거나 문화, 경제에 투자하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타국에 방위비를 전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만 보면 더없이 훌륭한 선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국가가 굳이 군대를 운용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불신 때문이었다. 타국에서 언제 자신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신. 마치 정글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고, 어차피 싸워도 도저히 답 안 나오는 한 절대패권국이 모두의 안보를 책임진다면?
그때도 군대가 필요할까?
어차피 고려가 핵우산도 씌워주고, 군대도 운용해 주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냥 바실렙스께서 선물해주신 평화를 즐기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리스의 그러한 주장은 진심을 담고 울렸다.
그리고 그렇게 화두 자체가 바뀌어버린 순간, 프랑스는 갑자기 바보 같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 세상에 알거지가 돼서라도 핵무장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있대.
― 다른 나라는 아예 이제 군대조차 고려한테 떠넘기며 국부를 쌓으려는데 뭐? 그런 멍청이가 여기 진짜 있다고?
프랑스 국제연합 대사는 국제연합 회의 전, 나름대로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던 열강들이 갑자기 어색한 얼굴로 그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 이사국들이 함께 고려를 압박해 들어가면 핵무장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잖아! 왜 우리만 갑자기 악인이 되어서…!’
프랑스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갑자기 도이치 대사를 바라봤다.
프랑스의 영원한 경쟁자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사태를 조용하게 관망하고 있었다.
대체 왜? 너희들도 야심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며 프랑스는 도이치를 책동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대독일을 이룬 뒤 배가 불러 나른해졌다 하나, 도이치의 본질은 사자였다. 영토욕 많은 사자. 고려의 영향력을 일부라도 견제하기 위해 유럽연합 창설을 준비하고 있는 주요 나라였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견제와 대립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도이치는 절대로 고려와 대립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가의 치세하에 있어 마리아 테레지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여대공의 유언이 계승되는 한.
― 너희 후대의 도이치의 왕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이여,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려와 대적하지 말라.
* * *
결국 핵확산금지조약의 가장 큰 반대자인 프랑스마저도 굴복하여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했으며, 이에 자동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지구상에서 유의미한 주권을 지닌 국가는 전부 다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프랑스는 대선 기간도 겹쳤었다.
탈레랑과 로베스피에르의 대결이었다.
민족주의적 좌익 노선 후보인 로베스피에르는 공화국의 영광과 존망을 위해선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반대로 보수주의적 후보인 탈레랑은 평화와 안정이 전후 프랑스의 발전을 이끌리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론 탈레랑이 이겼다.
로베스피에르의 본질을 꿰뚫는 그의 표어가 적중했던 모양이다.
‘붉은 외젠!’
사실 로베스피에르는 공산주의적 사상가와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낙인을 찍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소비에트 연방, 이베리아 인민전선 및 발칸의 공산화를 물리쳐야만 했던 프랑스는 아직도 빨갱이 소리엔 경기를 일으켰다. 빨갱이 원조 수출국이라는 오명은 여전히 큰 흑역사와 다름없었다.
빨갱이도 모자라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넣은 외젠을 가져다 붙이니, 로베스피에르가 도저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평소 그의 외교관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는 것을 즐기는 탈레랑은 이번 핵확산금지조약의 체결을 자축했다.
반대파들이 굴욕적 조약이라고 여기는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번 조약의 소감을 묻는 말에 대답한 탈레랑의 말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했다는 말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랐다.
[좋은 외교란, 고려란 이름을 가진 말 꼬리에 붙은 파리처럼 천 리, 만 리를 같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