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화 문 앞의 적(3)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청와대.
전 주인은 감옥에 가 있었다.
대신 전임자를 대리하여 새롭게 이곳에 오게 된 정민시 조선 수상은 청와대의 접견실에서 고려 황립보안국장을 접견하며 지금까지의 노고에 감사를 표명했다.
“여러분들의 공로를 겉으로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보안국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저희와 귀국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디 언급에 조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렴요.”
정민시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보안국장이 그 손을 맞잡았다.
“제국은 언제나 3원칙에 의거, 혈맹을 수호할 것입니다.”
정민시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 폐하 만세.”
입헌군주국(혹은 공화국), 자유선거, 자유시장경제. 3원칙 수호의 조건에 따라 고려는 조선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었다.
이것은 하늘눈 조약을 체결하며 모두가 동의한 사항 중 하나였다. 해안은 이 중요한 시기에 하늘눈 구성원을 허무하게 잃어버릴 수 없다 판단하여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객관적으로 김조순의 능력은 좋았다.
그리고 그의 치하에서 김조순계 안동 김가의 세력 또한 대단히 흥성했다. 그들과 협력하는 홍국영계 풍산 홍씨 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가문의 흥성과 국가의 흥성은 완전히 달랐다. 시간을 더 준다면 아예 조선이 정말로 특정 가문이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라가 제 몫을 해줄 리가 만무했다. 대화 꼴이 딱 그런 꼴이 아니던가. 국가의 이득보다는 국가를 다스리는 자들의 이득이 최우선시되는.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안국이 본격적으로 개입되자, 제아무리 조선 내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끝내 몰락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개성공습 이후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 끝까지 닿아 있었다. 지식인들과 다른 정치인들도 격렬히 저항했다.
김조순은 중화제국이 국방을 위협하는 백척간두의 상황 속에서도 위기 상황 타파를 이유로 다른 정치 세력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않게 만들려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제국의 개입 앞에 모든 시도는 무력화되었다.
하지 않았을 뿐이지, 고려는 조선을 이미 몇 번 무너뜨리고 세울 수 있었다.
그동안 김조순에게 저항하지 못해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은, 제국이라는 아주 든든한 뒷배가 생기자 곧바로 등을 돌렸다.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으며, 비리가 하루가 멀다고 터졌다. 군부와 경찰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리고 보안국은 조선의 국가정보원을 움직여 김조순을 강제적으로 실각시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립은 죄가 되었다. 김조순의 행위는 외환죄라 봐도 무방했다.
왕국 내에서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던 세력은 곧바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 조선은 야권조차도 단결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채제공, 심환지, 서명선 등은 원로 정치인이긴 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던 사이였다.
김조순이라는 희대의 악적이 있었기에 협력했던 것이지 정계에 셋만 있었다면 서로 물어뜯느라 국난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제국에서 보기에 가장 적임자라 여겼던 인물은 옛 조선 수상 채제공이었지만, 채제공은 자신의 재집권이 조선에 썩 좋은 결과를 불러다 주지 못할 것이라며 다른 자를 추천했다.
적당히 능력이 있어 김조순 휘하에서 정부의 중책을 역임하다 적절한 순간에 김조순을 비판하며 야권과 합류한 내무부대신 정민시가 수상에 오르면서 지금까지의 추태가 종결되었다.
그는 원로 세 명과 고루 인연이 있어 중도를 지킬 줄 알았다. 또한 정도와 분수를 알았기에 김조순 휘하에서 부정부패가 거의 없었고, 현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알았으며 행정적으로도 유능했다.
정민시는 곧바로 거국전시내각을 꾸린 뒤, 국난 시기에 출항한 조선호의 선장으로서 항해를 시작했다.
제일 처음 수상이 된 그가 한 일은 조선군의 지휘체계를 다듬는 일이었다. 그는 합동참모본부의 조언에 따라 후퇴를 지시했으며, 김조순에게 협력해 쿠데타를 꿈꾸던 장군들이 파직되고 체포당하며 뒤숭숭한 시기의 각 군 수장을 새로 가다듬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인선은 신의주 전선이었다. 정민시는 박기풍 대장을 필두로 허항 정장, 유효원 정장 등의 장군에게 신의주 방어선 사수를 명령했다. 박기풍 대장은 덕장으로 유명하니 휘하의 장교들을 다독여 군을 재정비하긴 안성맞춤이었다.
사람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긴 어렵다.
더군다나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 갓 정권을 잡은 정민시 수상은 더더욱 그랬다. 나름대로 군에서 유능했던 장군들이 내란죄로 잡혀들어가 있었기에 그는 공을 세우는 대가로 역적들에게 사면령을 내려야 하는지까지 고민해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역적들이 왜 역적이겠는가. 한 번 배신한 자들은 다시 배신할 수 있는 자들이다. 이런 때일수록 믿을 만한 사람을 써야 했다.
그리고 박기풍 사령관은 훌륭히 일을 수행해냈다.
몇 주째, 몇 달째 신의주 방면의 방어선은 굳건했다.
조선군과 중화군의 교환비는 압도적인 차이로 불어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철벽의 요새가 되고 있는 셈이었다.
자신들이 임명해 놓고도 박기풍 사령관에 대한 기대가 딱히 없었던 조선 정부로서는 실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장점만 있지는 않았다.
박기풍은 전세를 읽는 데 재능이 있어 군을 잘 후퇴하며 손실을 최소화했지만, 성정이 유약하여 온갖 악조건 속에서 버텨야 하는 방어전의 사령부로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맹장으로 유명한 허항과 같은 다른 군단장들을 임명한 것이지만 그들조차도 믿음직스럽지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허나 정작 지금의 전쟁은 박기풍이 지휘하지 않았다.
* * *
영관의 계급을 단 한 남자가 작전지도를 펼쳤다.
주변 장성들의 눈은 정신없이 그의 손길에 따라 지도 위를 누볐다.
수많은 사단들의 부대 기호가 지도에 있었다. 국제연합 표준 합동 군사 기호였다.
조선은 신의주를 방어하기 위해 이 전선에만 자그마치 스무 사단이 훨씬 넘는 병력을 배치했다.
인원수로 따지면 거의 이십만 명, 예비대와 기타 부대를 합치면 거의 삼십만 명이 넘는 병력이었다. 당연히 이 병력은 실시간으로 계속 증원되고 있었다.
허나 적은 이보다 세 배, 아니 네 배가 더 많았다. 자그마치 백만 이상의 병력이 있었다. 사단의 개수론 거의 백에 달하는 사단이 신의주 공세에 투입되었다.
심지어 그 숫자도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조선군 지휘관들은 대체 중화가 어떻게 이 많은 숫자의 병력을 보급하는지 신기해하고 있었다.
‘정말로 중화군은 초식동물이 맞아 풀뿌리로 연명하는 것인가?’ 이런 물음부터 ‘심양을 약탈한 덕인가?’ ‘심양을 사수했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제아무리 빙독이 배가 안 고프게 만들어주는 마약이라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중화군은 국공내전에서도 기기묘묘한 보급을 해냈고,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맞서 싸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삭주와 창성. 저들이 노릴 곳입니다.”
나폴레오네는 말을 너무 많이 했는지 목이 쉰 채로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위화도와 구의주를 제외하고는 압록강의 폭이 좁아지는 곳입니다. 보병 위주 전력이 기습적으로 도하할 가능성이 높지요. 우리 방어시설도 철저하지 않으며, 현재의 병력도 많지 않습니다.”
“흐음….”
“특히 여기 지형을 보십시오. 물길이 한 번 크게 굽이치는 곳이 있습니다. 도하하지 않고도 적 포병대나 박격포반이 활약하기 좋은 곳입니다.”
신의주 방어사령관 박기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숫제 ‘확실한가?’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개성주둔군은 고려군에선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그들은 못 미덥지만 개성의 방위를 조선군 예비군에게 맡기고 최전선으로 떠났다. 어차피 아국에 의해 적 폭격기 공장이 무력화되었다는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나폴레오네도 그의 의형과 의동생을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개성주둔군이 정예한 병력이라 하나, 숫자상으로 준군단급에 불과했다.
중화와 조선의 전쟁은 겨우 석 달이 흐른 시점이지만 어마어마한 숫자가 동원되고 있었다.
중화야 인해가 주 전술이었으니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집어넣는다지만, 조선도 원체부터 인구에는 그리 꿇리진 않는 나라였다. 루손과 심양의 평야는 단군 이래 한반도 국가가 인구적으로는 가장 크게 흥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수상의 교체 전까지 온갖 정치싸움에 졸전에 졸전을 거듭한 조선도 동원한 군 규모만 따지면 수십만은 훌쩍 넘었으니, 준군단급의 전력은 이 거대한 전선에서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성주둔군은 그 와중에도 어마어마한 활약을 해냈다.
개성주둔군은 현재 본래의 병력 외에도 외인부대가 합세해 있었다. 개성주둔군은 개성공습 이후 어딘가에 분노를 풀기 위해 몸이 달아 있을 정도로 사기가 높았고, 외인부대는 고려의 특수전전단 몇 개를 뺀다면 이 곤여에서 가장 정예한 병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인간 병기들인 셈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전체적인 전황을 뒤집진 못했지만, 중화군의 핵심 촉수들을 모조리 잘라내었다. 덕분에 조선군은 일사불란한 후퇴가 가능했고, 심양 주민들의 피난도 잘 해낼 수 있었다. 호원민도 그 전략에 찬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 찬탄이 찬탄으로 끝나지 못할 것임을 알지 못했지만.
개성주둔군은 이상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나폴레오네는 전후 작전장교에서 작전보좌관으로, 공석이었던 작전참모로 빠르게 진급했다.
거기까지는 일반적인 고려군 지휘체계 속에서의 진급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군축과 군증을 수시로 하는 고려군은 현장지휘관이나 참모의 빠른 진급에 몹시 관대했다. 전시에는 현장의 일을 아는 자가 계속 일을 맡는 것이 옳았다. 나폴레오네는 참령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령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작전참모를 넘어 참모장급 일을 하는 중이었다.
개성사령관은 지금 의무대와 지휘부를 왔다 갔다 하며 골골대고 있었다. 부대 전체가 기동타격대화된 이후에는 후방의 지휘부에만 있고 현장을 이끌지 못했다. 아무리 일선 부대는 직접지휘관―연대장―들이 이끈다 하더라도 사령관도 어느 정도는 전선 환경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개성주둔군 사령관은 그러지 못했다.
겨자독소로 인해 피부병이 생긴 모양이었다. 제독을 하고도 그랬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기체가 늙은 노구의 군인에게는 치명타로 작용했단다. 실제로 비슷하게 피부에 겨자독소가 노출되었던 부관은 제독 이후 1도 화상을 입고 빠르게 회복했지만, 장군의 증상은 그보다 심했고 감염 증상까지 나타났다.
노장은 절박하게 싸우고 싶어 했다.
어떻게든 자신이 본 그 처참한 광경을 복수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폴레오네도 그 감정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장군은 피부가 뒤집어진 자신 대신 유능함을 증명해 보인 나폴레오네에게 임시로 정령 계급을 달아주었다. 자신의 상황이 나빠진다면 다른 인물과 교체되겠지만, 이 친구는 계속 이곳에 남겨두고 싶었다.
― 난 자넬 믿어. 군사대학에서의 성적과 전생전훈에서의 그 명성을 증명해 보이게.
불과 영관급에 불과했지만 이미 나폴레오네는 주둔군 소속 연대장들이나 장교단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모든 장교들은 예전에 생도였었으니 꼴찌 학교로 우승한 나폴레오네의 업적을 잘 알았다.
그런 것들만 믿고 자기 계발을 소홀히 했다면 모를까, 임관 이후 나폴레오네의 지금까지의 행동과 성적, 업적을 고려해보면 그야말로 천부적인 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령관 덕분에 나폴레오네는 정령(임)의 계급을 달았다. 그리고는 개성주둔군의 참모장으로서 개성주둔군과 외인부대의 모든 작전을 다루게 되었다.
그러므로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의 고려군의 맹활약에는 나폴레오네의 공로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폴레오네는 고려군뿐만 아니라 아예 조선군의 지휘체계에도 간섭 중이었다.
본래 고려군은 조선군의 지휘체계를 존중해 그들이 독자적인 작전을 이끌고 자신들이 조선군을 보조하게끔 운용했다.
물론 고려가 군증이 끝나 수백 개의 사단을 투입하게 된다면 그 작전권이 역으로 고려에게 넘어오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조선군의 국토방위는 조선군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초기 조선군은 후퇴 전까지 졸전에 졸전을 거듭했었다. 아무리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따져보면 초반의 전투는 졸전이 맞았다.
당시 기동타격대를 이끌던 나폴레오네는 이 광경을 답답하게 여겼다.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천재는 범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윽고 나폴레오네는 자신들이 구원한 와해된 조선 사단들의 작전권까지 흡수하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고 조선이 안정된 시점이 되자, 이 사단의 개수는 무려 열한 개가 되어 있었다. 명백한 월권이 맞았다.
하지만 이후 부임한 박기풍 사령관은 이 해괴한 지휘체계를 수습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들의 전과를 유심히 보고 이를 이용했다.
자기객관화가 너무 잘되어서 그랬는지, 혹은 그냥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박 사령관은 제국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젊은 장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존했다.
세상만사의 일은 성공하면 현명한 선택이고, 실패하면 멍청한 선택이다. 전쟁은 더더욱 그랬다. 전쟁만큼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기풍 사령관은 희대의 결정을 내린 명장이라는 칭호를 날로 먹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그렇다면 도하하지 못하게 사단을 빼 막아야 한다는 거요?”
삭주와 창성을 노린다는 나폴레오네의 말에 박기풍이 반문했다.
나폴레오네는 눈을 감고 고심했다. 그러더니 엉뚱한 제안을 했다.
“도하하게 내버려 두시지요.”
이번에는 박기풍조차 눈을 크게 떴다. 나폴레오네가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일정 병력이 도하하면, 우리가 타격대로 곧바로 다―3 지역 동쪽 측면을 들이쳐 도하 장비를 파괴할 것입니다. 그 이후 본대는 돌출부를 가두어 섬멸합시다. 물론 그때 동안 삭주 방면의 본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합니다.”
“돌출부를 닫는 그대들도 역포위에 버텨야 하는데… 할 수 있겠소? 기갑을 쓴다 하더라도 지형이 좋지 않을 거요.”
“기갑에 포병지원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령관께선 아주 간단한 원칙을 수행하시면 됩니다. 작전 후에 펼쳐질 일시적 전황의 국면에서 아군 병력의 우세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약속된 사단들은 제시간에 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 빠르다면 저들이 오히려 아군의 전력 공백을 틈타 다른 빈 곳에 공세를 할 것이고, 너무 늦는다면 적의 인해가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겁니다.”
전쟁은 수학이다. 나폴레오네는 자신만이 보고 있는 이 수많은 계산들을 사람들에게 납득시켜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스럽게도 박기풍 사령관은 이런 면에서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알겠소. 우리는 귀하의 전략에 따르지.”
언제는 안 그랬었나. 나폴레오네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마움을 표시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도 알았다.
지금의 작전들은 무모해 보이는 전략이었다. 인력이 남아도는 중화군의 특성상, 한번 그렇게 돌출부가 생겨난다면 끝도 없이 인해를 밀어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돌출부는 돌파구로 바뀌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돌파구가 생겨나면 신의주가 거꾸로 위험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야금야금 인력을 갉아먹지 않는 이상 저들은 계속 모호한 가능성으로 다른 돌출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철저히 통제된 상황 아래에서 변수를 만들도록 유도한다면, 오히려 이 덫을 이용해 적을 잡을 수 있었다.
엿같은 것은 전력 차이로 인해 이런 작전을 몇 차례나 더 성공시켜야 신의주 방어에 성공한다는 점이겠지만.
그럼에도 나폴레오네는 웃고 있었다.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나폴레오네의 눈에 서린 확신을 본 박기풍 또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유약한 그에게도 몇 가지 안 되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자는 전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