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81화 (581/653)

581화 문 앞의 적(2)

조선군은 결단을 내렸다.

그들의 참담한 상태를 미루어 볼 때, 심양에서 어거지로 계속 싸우는 것은 하책이었다. 총폭탄이 꽤 있다고 하나, 저들의 인해는 그보다 더 많았다. 피해가 같이 누적된다면, 불리한 것은 인구가 적은 조선이었다. 조선군의 사기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심양은 거대한 대도시였지만 군사도시는 아닌 까닭에 방어시설은 크지 않았다. 사방이 뚫린 구조에 어디서든 공세를 받았으며, 외부로부터의 보급선을 차단당하기 너무 쉬웠다.

심양의 앞을 흐르는 심수는 겨울과 봄을 지나며 꽤 많이 말라 있었고, 도하하기 크게 어려운 구조도 아니었다.

게다가 조선군은 한 번 개성에서 크게 당한 적이 있으니, 적의 독소공격이 심양시민에게도 무차별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근심하는 상태였다. 군국주의 국가와는 달리, 자유주의 국가인 조선은 신경 쓸 것이 많았다.

현재까지 조선군의 주요 목표는 심양 주민들을 최대한 후방에 보내는 것이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연전이 핵심이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 민간의 대피가 완료되자, 조선군은 군대를 물리고 방어선을 재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심양 북부에 있는 군대는 아예 옥저 회령부(하얼빈) 쪽으로 넘어가 옥저―조선 연합군을 구축하도록 했다. 가끔 티격대던 두 국가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뒤엔, 형제처럼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중화의 위협은 두 나라가 느낄 수 있는 최대의 끔찍한 상황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옥저는 몽골령을 팔아먹은 뒤, 중화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심양 남부에 있는 조선군은 요동반도 끝자락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항구도시인 비사포(비사성, 다롄)를 거점으로 참호를 구축하고 반도 사수에 나섰다.

비사포는 핵심 군사지역이라 군수물자가 풍부했고 방어시설도 상당했다.

또한 지리적으로는 포위된 것처럼 보였지만, 제해권을 조선 해군이 잡고 있는 이상,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선해군도 적 어뢰가 날아올 수 있는 만 지형의 위험한 곳에서 작전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땅에서 작전하는 것이 더 쉬웠다.

해군으로부터 든든한 지원을 얻을 수 있고, 또 바다 수송선으로부터의 보급이 가능했기에 퇴각한 군대가 재정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여차하면 이곳의 군대를 본국으로 돌려 전선에 재투입도 가능할 것이고 역공세에 나설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병력을 일단 온존시킨 조선 군부의 판단은 오로지 하나의 가정을 전제로 했다.

신의주가 뚫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그저 포위된 채 항거하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불과했다. 반도가 공격당할 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반면에 조선군의 일사불란한 후퇴 덕에 병력의 우위로 포위 섬멸하지 못한 중화로서는 본래 목적에 따라 신의주를 무너뜨려야 했다. 신의주를 무너뜨리고, 평양을 공격한 다음 개성과 한양을 뚫어야 했다.

* * *

개천 530년 6월 1일.(개전 67일 차)

조선 신의주시 서안평구

[사랑하는 어머니께.]

젊은 조선군 청년은 돌 부스러기가 잔뜩 널리는 건물 안에서 연필로 편지를 적었다.

[벌써 봄이 지나 여름이에요. 고향은 모내기로 한창 바쁠 시기죠?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잘 계시죠? 영이는 어떤가요? 독감에 걸려서 아팠다는데. 별 탈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잠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내리던 청년은 문득 가족의 사진을 꺼내 바라봤다.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머금어졌다. 주변이 얼마나 끔찍하건 간에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희망의 수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우리 사단은 신의주를 방어하고 있어요. 적들이 얼마나 왔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곳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놈들이 우리의 고향에 발을 디밀 테니까. 그렇게는 절대 안 돼죠.]

“홍 참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기필코 방어해낼 테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경래야! 이리 와!”

중대장이 다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홍경래는 쓰던 편지를 가슴팍의 주머니에 접어 넣고 소총을 들고 건물의 저층부로 뛰어갔다.

“네!”

“뭘 그렇게 얼이 빠져서 있어?”

“죄송합네다. 그거이 유서를 적었디요.”

편지에 적은 표준말과는 다르게 서북방언이 다소 남아있는 홍경래는 머리를 긁었다. 중대장도 다른 말을 하진 않고 손가락을 뻗어 한쪽을 가리켰다.

“공군정찰기가 보고한 바로는 곧 강한 공세가 예상된단다. 준비 단디 해라.”

“얼마나요?”

“연대규모는 넘는 것 같다.”

중대장이 건넨 정보에 홍경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조 미친것들 아입네까? 밭에서 사람을 뽑아내는 것두 아니구.”

“미친 새끼들이지. 진짜 쉬지도 않는 모양이야. 강시(僵尸)같은 새끼들.”

강시란, 일반적으로 뻣뻣한 시신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빙독에 취한 중화인 그 자체를 강시라 불렀다. 확실히 급소를 쏘아 사살하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서도 끈질기게 지랄을 해 대어 마치 시체가 전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때문일 터다.

“준비하자.”

청년장교는 후다닥 자신의 소대로 복귀해 지시사항을 전파했다. 곧 조선군들은 긴장한 얼굴로 소총과 기관총을 잡았다.

― 콰앙

“독소 공격! 날래날래 방독면 쓰라우!”

조선군이 일사불란하게 방독면을 썼다. 이제는 하도 당해서 몹시 익숙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신의주 방어선에 공급되는 군수물자는 하자가 없었다. 전후 각종 군수공장과 기업들은 총감사에 들어갔고, 비상식이 바로잡혔다. 그 물자들은 신의주에 빠르게 공급되었고, 조선군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그들의 무기를 잡아 조준했다.

― 쏴!

독소가 걷히고 중화군이 달려왔다.

신의주시 서안평구는 다른 신의주 도심과 달리 압록강 건너 북서쪽(대륙쪽)에 있었다. 그런 고로 가장 맹렬한 공격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이 함락당하면 압록강으로 신의주 시내가 보였다.

조선군은 이곳에서 항거했다. 버려진 철근강회 연립주택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요새화했다.

중화군이 달려오다 픽픽 쓰러졌다. 멍청한 강시 새끼들, 전부 다 쏴 죽여! 조선군 병사들이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홍경래도 소총을 거치해 사격했다. 탕, 탕. 이미 숱한 전투를 치른 탓에, 탄을 재장전하는 손길도 능숙하고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저들은 끝이 없었다. 이 작디작은 구역을 공격하기 위한 공세 한 번에 수천 명을 밀어넣는 놈들이다. 그 압도적인 인해에 모두가 서서히 질려갔다.

도시는 엄폐물이 많았다. 이는 조선군에게 아주 큰 호재였지만, 적들도 싸울 여지가 있기 마련이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났다. 이런 지형에선 어디서 누가 어떻게 싸우는지 한 번에 파악하기란 어려웠다. 그 와중 중화군은 기어코 홍경래가 있는 건물 가까이 다가왔다.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 머저리같은 조선 새끼들, 전부 죽여(杀光你们这些白痴朝鲜混蛋)!

홍경래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자욱한 연기 속, 여전히 적군의 함성이 들렸다.

누군가 건물과 건물의 틈 사이 좆같은 중화제국의 국기를 꼬나쥐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홍경래는 그놈의 가슴을 쏴 보기 싫은 깃발을 치웠지만 금방 빗발치는 총탄의 반격을 받아 숨었다.

홍경래는 수류탄의 안전바늘을 뽑았다. 그리곤 접근하는 자들에게 던지고 몸을 숙였다.

― 쾅

호흡을 맞춘 소대원들이 사격을 실시했다. 조선군 제식소총인 11식 보총이 불을 뿜었다. 지근거리까지 다가오지 말게 해야 했다.

백병전용 총검을 꺼내야 되는 순간이면 지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백병전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그렇게 엉겨붙는 싸움은 중화군에 극도로 유리했다.

안 그래도 내전으로 참호전 파괴 및 시가전 경험이 축적된 중화군은 기존의 긴 소총 말고도 병진단총이라는 희대의 저렴한 기관단총을 만들어냈는데, 무시하기에는 너무 값이 싸 효율적이고 연사력이 좋았다. 그저 쇠로 된 배관과 공업 용수철을 이리저리 붙여 만들면 끝이었다.

물론 너무 질이 조악해 관리하기 힘들었고, 내구력과 안전성이 약했다. 심지어 비싼 황동 탄피 대신 철제 탄피를 쓰는 탓에 총의 손상이 커지면 금방금방 버려지는 무기였지만, 애초에 중화제국군 인력 자체도 그렇게 소모되는 자원이었으니 상관없었다.

오히려 녹슬면 조선군이 노획해 쓰지 못하게 되는 셈이니 뭐가 되었든 좋은 모양이다.

― 콰앙

정체절명의 순간, 다행스럽게 포탄지원이 떨어졌다.

아까 중대장이 화력지원을 요구한 모양이었다. 강 너머에서 아군의 포탄이 날아왔다. 일반적인 보병지원용 박격포가 아니었다. 대포 사격이었다. 그토록 악독하고 악랄해보이던 중화군들도 포병사격에는 힘없이 찢겨 나갔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육군포병대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 할 일을 잘해주고 있었다.

“허억, 허억!”

하지만 이렇게 승리로 돌아간 전투에서도 부상자는 끊임없이 나왔다. 홍경래는 자신의 소대에서 두 명의 사망자와 세 명의 부상자가 나오자 입술을 깨물었다. 안 그래도 손실이 컸는데.

게다가 그 중 중상을 입은 한 명은 부소대장으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소,…소대장님. 아, …앞이 안 보입니다.”

“김 참교. 괜찮을 거이야. 응? 눈 좀 떠보라. 강 건너만 가면 괜찮을 거이야.”

“제 사…상의 주머니에… 꼭 좀…부탁….”

부소대장은 할 말을 마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홍경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주머니에서 피 묻은 유서를 빼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의 유서가 있는 주머니에 잘 넣어 간직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도 누군가 자신의 유서를 챙겨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 * *

“토악질이 나오는군.”

시가전을 지휘하는 중화군 상장, 호원민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도시를 바라봤다.

작전명 굴기 이후, 중화의 공세를 사실상 설계했던 호원민 상장은 단번에 중화 4대 명장으로 떠올랐다.

중화군이 그동안 형펀 없는 졸전을 치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전술적 측면이라기보다는 덜떨어진 전차와 쓰레기 같은 기술력, 남의 영토에서 치르는 원정이라는 점 등에 기원했다.

오히려 전술은 아주 좋았다. 중화 지휘부는 인해전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의 선전에는 호원민, 장온계, 이견휘, 양송락 등으로 대표되는 일선 장군들의 몫이 컸다.

이들은 국공내전에서의 국민당 장군들로 그야말로 잔뼈가 굵은 자들이었다. 습진균도 수많은 국민당 인사를 숙청했지만 이 장군들은 그러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너무 아까운 인물들임이 틀림없었으니 중화에의 충성을 맹세받은 뒤엔 오히려 은혜를 두텁게 내렸다. 물론 그의 심복인 낭화신을 원수로 올려 이들을 통제하도록 했지만.

호원민의 능력은 객관적으로 볼 때 대단히 훌륭했다. 중화에선 옛 한신의 재림이니 뭐니 하는 과분한 칭송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도 이곳에서는 심각하게 답답함을 느꼈다.

중화군의 거침없는 진격은 이곳에서 완전히 정체되었다. 그들도 조선군이 병력 수습의 차원에서 대국적 후퇴를 했다는 판단을 알았다.

상부에서는 그 판단이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영토를 허투루 내주다니, 조국 수호에 대한 의지가 없는 놈들이 아니던가 이런 선전을 했다.

반면 호원민의 내심은 달랐다. 조선군은 초반부의 무력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큰 결단을 한 것이다. 계속 중화군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휘둘리면 병력과 준비상황에서 열악한 조선군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호원민은 차라리 조선군이 국토를 사수하며 용감하게 싸우길 원했다. 마치 내전처럼.

그러면 중화는 승기를 잡은 뒤에 넓은 지역에 인해를 밀어 돌출부(Salient)를 만들고, 그 돌출부들로 조선을 천천히 포위해 고립부(Pocket)로 가둔 뒤 눌러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군은 후퇴해 신의주에 방어선을 견고히 구축했다. 그리고 중화군은 신의주를 단번에 뚫어버리지 못했다.

웃기는 것이, 봉명관도 돌파해낸 자신들이었다. 아무리 신의주가 유명한 공업도시가 되었다 하나, 그래도 요새가 아닌 도시기에 수월하게 점령할 줄 알았던 중화군 수뇌부들은 모두 당황한 상태였다.

신의주는 그야말로 돌로 지은 현대식 요새였다.

전통에 따라 지은 저층 목조건물이 교외지역에 넓게 펼쳐져 도시의 방어력이 현저히 낮은 심양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곳은 철근강회 건물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철근강회건물은 포격에도 잘 버텼다. 조선 포병은 중화포병보다 더 숙달되어 있었기에 일반 사격으로 적을 죽이면서도 대포병사격으로 적 포병을 견제키도 했다.

압록강 도하가 쉬운 일도 아니었다. 압록강 하류는 심수보다 훨씬 더 넓었다.

심지어 요하보다도 넓었다. 요하는 유역면적이 압록강은커녕 한강에 비해 훨씬 넓고, 길이도 더 길었지만, 강폭은 넓지 않았다. 특히나 주변의 농경지에서 농업용수를 하도 많이 빨아가 하천유지용수가 간당간당하기도 했다.

압록강만이 난관은 아니었다. 심양 서쪽부터 시작하여 반도 북부에 도달해 더더욱 악랄해지는 지형은 압록강과 같이 조합한다면 공격자에게 상당히 짜증 나는 지리였다.

냉병기 시절에야, 한 번의 회전으로 뚫고 내려갈 수 있지만 이젠 그러다간 참호와 기관총에 다 피곤죽이 될 터였다. 아무리 중화라도 그런 식으로 전쟁하진 못했다.

특히나, 신의주는 조선의 배후지역과 가까웠다. 물론 봉명관이 본토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나, 여전히 조선의 최대 잠재력은 평안과 경기, 삼남지방에 존재했다. 반도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반도에서 훨씬 가까운 신의주는 일격을 얻어맞다가 드디어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경제대국의 보급을 받기엔 전혀 무리가 없었다.

- 더 밀어넣어! 총통께서 저 도시를 뚫길 원하신다! 저곳만 뚫어내면 평양이야! 개성과 한성은 아니더라도 겨울이 오기 전 평양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낭화신의 요구와는 별개로 호원민이 생각하기엔 차라리 중화의 공세를 옥저에게 전면적으로 바꾸고 점령 지역을 차근차근 평정해 나가며, 회령부를 통해 용천부와 솔빈을 위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랴, 그는 군인이었고 명령받은 대로 실행할 뿐이었다.

그는 그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중화군을 믿었다. 계속 공세를 이어나가다 보면 언젠가 뚫릴 것으로 믿었다. 그것이 인해전술의 본질이다.

그러나 명장은 중화에만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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