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62화 (562/653)

562화 거인의 기상(2)

전려국토개발국의 행보가 본격화되자, 남파주열대습지를 위아래로 둔 중려 대도시 파주 파남과, 남려 중소도시 상춘(메데인)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상춘은 도시 이름과 같이 적도 부근임에도 태동산맥 북부 끝자락에 자리 잡은 덕에 고도가 조금 높아(1,500m) 항상 봄과 같았다.

강수량도 풍부하고 온화한 덕분에 살기도 꽤 괜찮았다.

또한 상춘은 남려 철도 노선의 북서부 종착역이자, 거대한 삼각형의 남려 대륙을 순환하는 철도의 새로운 출발지였다.

그리고 이제 파남과 상춘이 이어진다면 범려철도의 남려 관문이라는 명실공히 최고의 지리적 이점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연코 북으로 뻗어나가는 남려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드디어 시작되었구나.”

저 멀리 워싱턴이 직접 행차하여 시공식의 첫 삽을 뜨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엔 시중과 관계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기자들과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렇게 근처에서 지켜만 보겠다는 듯한 말.

상민의 그런 말에 제가가 여쭈었다.

“왜 이번 대 시중에게는 그렇게 많은 호의를 베푸시면서도 모습은 드러내지 않으려 하십니까?”

“내 마음이다.”

“…예.”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제가는 입을 꾹 다물어야 했지만, 상민도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시중에게 자신의 진실을 밝히든 밝히지 않든 크게 의미 있진 않았다. 도리어 그 당사자가 몇 번이고 자신의 실존을 신경 쓰다 정치를 말아먹는 것만 봐 왔을 뿐.

그는 워싱턴을 믿었고, 지금 조정에 있는 정치인들을 믿었다. 손원호야 애초에 상민의 방조하에 자라난 실험적 암세포였으니 차치한다면, 권남도의 일을 잘 끝내는 것을 보고 한시름을 놓기도 했다. 비록 처음엔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나는 이것이 내 공이 아니라 너희의 공이 되길 원한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스스로 과거의 침체를 딛고 일어났다고 생각하길 원한다.’

자식이 두발자전거를 처음 탈 때, 처음에는 인도하다가도 마지막에 가선 결국 두 손을 떼고 자식이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전려국토개발국의 자금 조달에 황금산의 금괴들이 막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또한 상민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회사들이 충직한 개들처럼 꼬리를 흔들며 ‘회주’의 숙원 사업에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는 것들도 구안 회의 참석자들이라면 전부 알 것이다.

그래도 상민은 여전히 이것이 정말로 순수히 고려의 기업가 정신과 정부의 노력이 합치된 결과로 보이길 원했다.

이런 미덕이 쌓인다면 후대에도 좋았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선의가 빚어낸 하나의 추억처럼.

이들 중 자신의 몫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상관없었다.

이미 상민은 고려의 경제 그 자체였으니.

정작 명령에 따라 황금산에서 그토록 많은 금괴를 빼내고 정리하고 분배하고 나눠주느라 퀭해진 제가가 용의 명성이 더 울려 퍼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것들이 인간과 용의 차이점 중 하나였다.

굳이 속세의 위명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또한 자신의 개입이 아니더라도, 고려는 이제 충분히 재도약할 시기를 맞이했다. 침체는 영원히 가지 않았다. 지금도 이미 경제는 회복세였고,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었으며 주식시장도 반등 중이었다.

신경제정책은 이 상승장의 흐름을 빠르게 채찍질할 것이다. 중화제국과 소비에트가 십여 년 전의 고려의 모습을 보고 비웃고 있을 즈음, 웅크렸던 고려는 이미 대퇴부에 힘을 잔뜩 주고 튀어 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상민의 행동은 신경제정책이라 불리는 뉴딜의 한계를 보완하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제국의 진정한 저력은 아직 아무도 몰랐다. 이 거인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거대한지, 얼마나 강한지, 그 아버지인 상민 자신조차도 아직 몰랐다.

그리고 그 거인이 깨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마저도.

― 우르릉

마치 프랑스 평원을 뒤집어놓았던 강철 전차의 물결처럼, 이곳에도 엄청난 숫자의 견인기들이 오고 갔다.

진보된 경유 굴착기와 천공기들이 오갔고, 공사와 동시에 철도를 깔아 보급하는지 철도 관계자들도 이 자리에 나와 있었다.

대륙의 둘을 육지로도 잇는 거대한 숙원 사업에, 노동자들의 사기도 충천해 있었다.

임금도 평소보다 2할은 더 많았다.

근로환경도 규모의 경제를 따르는지 대대적일수록 나쁘지 않았고, 안전 감시단에 의해 감찰되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공사 전에 온갖 주사를 다 맞아야 했기에 그건 좀 짜증 났지만, 황열 예방과 기타 여러 가지 면역 활성화라니 참을 수 있었다.

어차피 경제침체기에 일거리를 찾아 헤맸던 자들이다. 이 광대한 작업에 좋아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별로 없었다.

상민은 뒷짐을 풀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여론을 들어보았다. 탁월한 청력으로 들떠있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파남에서도 이렇게 내려오겠죠?”

“실로 문명이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현지 주민들은 더욱 감개무량해했다.

“이제 철도만으로 전려를 다 돌아볼 수 있게 된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고향 철도역에서 표를 구매한다면 미주나 진주, 혹은 그 위의 서한주나 니타시난주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무더운 지역에서 눈이 사람 키보다 더 많은 곳을 갈 수 있었다.

물론, 항구편은 지금도 있었지만 철도가 사람들의 삶에 와닿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직주근접성이라고 해야 할까.

“허허, 손자야 보려무나. 우리 고향 상춘은 앞으로 발전할 일만 남았다.”

이곳엔 이전 삶의 단어로 소위 철덕들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지 주민이 아님에도 머나먼 이곳까지 와서 시공식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단히 철도에 열정적인 사람들이라 봐도 무방했으니 좋은 식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6복선이라… 폭이 엄청나네.”

범려철도는 막대한 수요를 예상하기에, 처음부터 엄청난 규모의 선로를 만들었다. 양옆의 역청 고속도로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공사 규모를 자랑하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야생동물 침입 방지를 위한 벽, 통행로, 군데군데 험지를 돌파하기 위한 교각과 굴도 필수적이었다. 선로 정비소와 열차 순찰대를 위한 기지도 마련해야 했으니 실로 건국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그 와중 누군가 안경을 치켜들며 물었다. 눈빛이 예리한 것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모양이다.

“저 선로는 뭐지? 조금 달라 보이는데.”

“화물 선로와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여객선로인 것 같아. 열차선이 아닌 전차선(전기 선로)이기도 하고.”

“황철은 금색, 국철은 붉은색, 사철은 푸른색, 하지만 저 선로에 칠해진 초록색 도장은 또 처음 보네.”

“전차선이란 말은 경유나 석탄 열차가 아니라 지하철 방식의 철도란 거지? 이제 열차에 쓴다는 건가?”

아마 상민만이 이 철덕들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그들에게서 물러났다. 어차피 그들에게 ‘고속철도’의 개념을 지금 당장 설명해주기란 좀 어려웠다.

고속철도체계는 지하철로 전차선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졌고 일전의 정밀기계부품과 기타 여러 가지 철도 회사들의 기술력을 충분히 쌓아 올린 고려로서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목표였다.

등장만 한다면, 항공여객의 시대와 더불어 고려인들의 삶의 환경을 막대하게 바꿀 예정이었다.

남북려 고속철도 노선을 위해서라면 상민은 기존 계획에서 복복선 증설 정도야 충분히 계획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물러난 줄만 알았던 제가가 여전히 옆에 서 있자 궁금해진 상민이 그에게 용무를 물어보았다.

“뭐 달리 질문할 것이라도 있느냐?”

제가가 기다렸다는 듯 의문 보따리를 풀었다.

“아, 혹시 현 정부의 문화예술진흥안에 대해 지원 같은 것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음… 있던가? 없었던 것 같은데.”

워낙 많은 돈을 쓰는 바람에, 상민도 자신이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잘 몰랐다. 이건 사도가 알아야지.

상민이 오히려 제가를 바라보자, 그가 당혹스럽게 변명했다.

“재보에서 나간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돈이 모이는 것이 심상치 않아 여쭈어보았습니다. 특히 이 사람에게 상당한 후원이 몰리는 듯하여… 혹시 이자를 아십니까?”

“모른다.”

상민은 제가가 넘긴 서류를 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아이소포스, 이솝이 고려의 디즈니가 될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포부 하나는 기똥차 보였다.

예술에 대한 수상한 민간 수요가 증가할 정도로 경제가 회복된 청신호라 읽는 편이 좋겠다.

사실 상민도 대중문화에는 큰 관심이 있었다. 따로 후원하는 영화사도 있고. 그러나 이건 일개 개인의 후원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큰 청사진의 일환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어차피 들러야 할 곳을 조금 더 빠르게 들러보지. 영서로 가자.”

* * *

남려 전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날씨가 좋고 비가 잘 오지 않아 연중 상당히 화창한 영서는 단연코 서해안 최대의 도시였다.

농업생산량은 창강대평원에 비하면 썩 좋진 않았지만, 식량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는 기후 자체가 온화하다 보니 살기가 참으로 좋았다.

바로 옆 서산에는 그 유명한 서산곡창이 있었고, 서산에는 또 ‘잉카(타완틴수유의 군주를 일컬었다)의 다리’라는 자연명물이 유명한 서산회랑(중부회랑)이 있었다.

제도와의 접근성도 서해안 도시들 중에서는 탁월했으니, 이곳이 지금까지도 대도시로 이어져 내려온 것은 당연했을 일이다.

다만 원래 이곳은 내륙이라 항구의 기능을 하는 영서항을 외곽에 따로 만들어 놓았었다.

처음엔 영서항이라고 다소 무미건조하게 이름이 지어졌지만, 이 항구는 영서와의 거리도 조금 있었고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항구 자체의 크기가 급속도로 커지다 보니 기존의 이름 대신 효평항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새벽이 시작되는 평온한 항구라는 뜻이었다.

서해안의 항구 경쟁자라면 이보다 더 북에 위치한 사곡이나 홍진을 들 수 있겠지만, 애초에 홍진은 염료공단을 제외하면 사람이 별로 없었고, 사곡은 초석의 시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쓸쓸히 역사의 후면으로 퇴장하고 있었다.

애초에 기후도 대도시화가 되기엔 너무 건조했으니 예견된 운명이었을 것이다.

효평도 건조했지만 위도가 높은 덕에 다른 도시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도리어 그 건조함이 득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비는 6~8월 겨울에 집중적으로 내렸으나, 그 외에는 비가 잘 오지 않았다. 식수는 상류의 둑으로 해결 가능했다.

그 말인즉 여름과 봄, 초가을에는 항상 따듯하고 건조한 기후였으니 영화를 찍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굳이 건기니 우기니 하는 귀찮음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곳이기도 했다.

사진과 영화 촬영에 가장 좋은 광원은 태양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전구로 태양만큼의 광원을 주긴 힘들었다. 또한 사진과 사진기, 영사기 등 영화에 쓰이는 온갖 부품들은 습기에 취약했으니, 그야말로 효평의 기후는 영화인들에게 실로 축복받은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입지도 좋았다. 항구도시였으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것도 좋았고, 인근 대도시 영서와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는 것도 좋았다. 제도와도 통행이 좋으니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영화인들은 효평시에서도 특히 남쪽 푸야 언덕이라고 불리는 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약간 언덕이라 땅값도 싸면서 도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푸야라는 뜻은 자퇴꽃의 루나 시미 단어에서 따왔다. 보라색 철퇴라는 말을 굳이 아름다운 꽃에 붙일 이유가 없었는지는 몰라도, 자퇴꽃보다는 푸야가 사람들 입에 더 맞았나 보다.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꽃은, 이곳 근방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꽃 중 하나였다. 예술인들이 이 꽃을 그네들 동네의 이름으로 삼은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푸야 언덕에서 고려의 7대 문화기업이라는 회사들이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소포스 사, 류씨 형제들, 천감영화사, 6세기 촬영실, 꿈나라 사진관, 정수와 명수 작업실, 프라이클라루스 픽투라.

이 7개 회사는 고려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들이었다.

각기 특출나고 재능있는 주인들에 의해 세워진 영화사들은, 효평시 푸야 언덕이 영화의 대명사로 불릴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일등 공신이자 전려와 전 세계의 영화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개척자들이기도 했다.

효평엔 확실히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도 활기찬 것이, 고려가 그늘을 떨쳐버리고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아 상민도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는 번듯하고 큰 건물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작업실의 구닥다리 문을 두드렸다.

[류씨 형제들]

분명히 지금 상업적으로 꽤 큰 성공을 거두고, 투자자들에게 돈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옆의 건물을 올렸을 테고.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직도 자신들의 작업실만큼은 여전히 낡은 옛 건물을 고수하고 있는 세 명의 젊은 형제 감독이 밖으로 나왔다.

“아, 오셨습니까.”

류정철, 류정호, 류정태, 세 명은 어느덧 익숙해진 후원자 앞에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상민은 가타부타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본론을 말했다.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습니까.”

제일 연장자인 류정철 감독이 침을 꿀꺽 삼켰다. 류씨 형제들 영화사는 지금 사상 최대의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본은 없었고, 줄거리도 없었다. 배우도 아직 모른다.

다만 그들이 무엇을 다룰지만 정해져 있었다.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속의 영웅들.

[작가의 말]

상춘 = 메데인(Medellín)

효평 = 발파라이소(Valparaíso) 혹은 비냐델마르(Viña del Mar)

푸야 = 푸야속(puüya) 작중 등장하는 식물의 정식 명칭은 puya venust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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