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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13화 (513/653)

513화 선의 안배(3)

코르시카의 작은 꼬마 아이가 그물망에 걸려들었단다.

소식을 들은 상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잘했다.”

아들 입학식에 참석한 뒤엔 빽빽한 내륙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식을 즐기기 위해선 먼저 그의 안배를 다시금 확인할 시기였다.

안토니아는 낮인데도 피곤한지 맞은편의 넓고 푹신한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악의 탄생은 이미 전부 집필했으니, 이제는 뭘 하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아주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입장이다. 가끔은 저 처지가 부러웠다.

상민은 소식을 전달해준 수화기를 내려놓고 열차 안에서 긴 생각에 잠겼다.

이미 그는 넬슨을 비롯한 미래의 인재들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떳떳하게 밝히긴 힘들지만 다소 불법적인 일도 저질렀다.

물론 해당 인물이나 가족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은 없었지만, 그러한 상황을 방관하거나 일부러 유도한 적은 있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오네의 아버지 카를로가 이미 마작을 비롯한 도박에 중독되었을 때, 노름에 통달한 고수들을 보내 그를 완전히 몰락시킨 것도 그였다.

당연히 나폴레오네가 이 사실을 안다면 상민을 증오하겠지만, 그 아이가 이것을 알 리가 만무했다.

사실 이미 카를로는 마피아의 표적이었고, 상민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한낱 조직 따위가 자신이 찜해놓은 부오나파르트 가문에 손을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지만, 그것은 배려라기보단 그저 탐욕에 불과했다.

물론 상민은 나중에 나폴레오네와 그 형제들, 어미에게 잃어버렸던 것보다 더 큰 보상을 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어릴 적의 황폐한 기억은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미래를 위해선 여의국은 모든 행동이 허락되었다. 당연히 모든 책임은 상민이 지고 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지금 고려의 품속에 있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뀐 만큼 그들이 지금 이 미래의 전장에서 얼마나 활약할지는 몰랐다.

그들의 인생뿐이랴, 아예 인류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는데.

넬슨은 전열함 대신 전함을 타야 했다. 아직은 참위로 나이가 젊으니 어쩌면 고속전함을 탈지도 몰랐다. 항모를 탈 수도 있었다.

나폴레오네는 그보다도 어린 관계로 어떤 미래를 살아갈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전차를 탈 수도, 보병전투차나 병력수송장갑차를 탈 수도 있었다. 어쩌면 포병 지휘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급변한 전장에서 그들이 얼마나 제 역량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였다.

또 고려는 누구보다 많은 인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국가였다. 이 땅에 태어나 정규 군사교육을 받은 고려의 김 아무개나 박 아무개가 그들보다 더 훌륭한 재능을 뽐내는 당대 최고의 지휘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 속에서도 상민은 이런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예전 뉴턴의 시절부터도 그의 인재욕은 굉장히 탐욕스러웠다.

역사가 검증한 위인을 자신 혹은 고려가 ‘소유’한다는 그 욕망의 충족이 몹시 기분이 좋았던 것은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닥쳐올 미래가 어린아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일 터다.

안 그래도 전쟁은 참혹하고 불분명했다. 구태여 여러 가능성을 일부러 열어둘 필요는 전혀 없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야만 한다면 고려가 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미 자신의 행동의 죗값은 크고 깊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피해를 줄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직무유기였다.

상민의 행동은 자신이 이 역사가 검증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잠재적인 적성국이 이런 인재들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적 의미가 더 컸다.

물론 상민은 이탈리아가 고려에게 반기를 들 것 같지는 않았다.

이탈리아반도 사람들의 느긋하고 어딘가 얼빠진 성정으로 미루어 볼 때 설령 적국이 되어도 큰 근심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나폴레오네가 갑자기 파시즘을 만들어 내어 이탈리아의 두체가 되고, 마침내 유능하고 무시무시한 무솔리니의 또다른 버전이 되는 미래를 굳이 감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트와 호레이쇼 넬슨은 운이 좋았다.

상민이 준 정보가 꽤 구체적이었다. 해당 인물과 가문의 이름, 출생 시기, 고향 같은 정보가 굉장히 명료한 축에 속했다. 또 해당 인물과 그 조상들은 이 미친 듯이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도 그리 큰 풍파에 휘말리지는 않은 상태였다.

또한 고려에 딱히 악감정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설득과 지원만 하면 이민이 충분히 가능했다.

반면 상민이 손에서 완전히 놓친 인물들도 있었다.

‘수보로프와 쿠투조프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그들의 정보를 잘 모르기도 하고, 그들이 원래 역사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갔기도 했고.’

상민은 불현듯 무언가 떠올라 수화기를 집어 들어 5사도를 다시 호출했다.

“아서 웰즐리에 대한 정보는?”

― …송구하옵니다. 아직 소식이 들어온 것이 없습니다.

“알았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게야?’

이미 확보한 인재들은 잡힌 물고기인 양 상민은 아직 잡히지 않은 물고기에 탐욕을 부리고 있었다.

* * *

열차는 쿠스코에서 멈추었다.

옛 쿠스코 잉카들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한 이 고도는 몇백 년 동안 고려 황제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사파 잉카(Sapa Inka)의 칭호는 여전히 고려 황제의 별칭으로 이어져 내려오기도 했다. 이제는 역사에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이 사실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완전히 도시화가 되어버린 창양은 자연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진 속세 중의 속세였다. 노인들은 자연을 좋아했으니 아무리 창천궁의 정원이 보기 좋다 한들, 그 인공적 자연이 정말로 높은 산과 숲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절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니 황제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 별궁을 사랑했다.

노인 황제 해청도 그랬다.

“황상. 참으로 정정하시어 보기 좋소.”

“할아버님. 실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창천궁에는 너무 오지 않으셔서 서운했습니다.”

“난 이제 사람 많은 곳에 나다니기 힘들대도.”

개천 421년생이니 벌써 해청의 나이도 여든이 넘었다. 상민은 해원을 떠나보낸 지가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그 아들도 이렇게 늙으니 착잡했다.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막내 세희도 벌써 은퇴를 앞두고 있더랬다.

하지만 해청은 아직 정정했다.

실로 노인답지가 않았다. 그의 뇌전병 증상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음에도 해청은 가끔씩만 아팠을 뿐 평소에는 멀쩡했다.

오히려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병이 있었기에 해청은 젊었을 적부터 자기관리에 무척이나 철저했다. 그는 술과 담배를 안 했고, 커피와 단 것을 절제하고 고기와 채소를 균형 잡히게 먹었으며 자신처럼 운동을 꾸준히 했다. 그 결과로 지금 이렇게 보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양위하지 않았다. 적당한 때 후계에게 물려주고 상황으로 가는 것은 해씨 황조의 미덕이었다.

역대 황제들은 양위에 큰 미련이 없었다. 죽지 않는 선조가 옆에서 평생 잔소리했고, 후계에게도 그럴 것이 분명한데 후계가 크게 엇나가는 경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노년에 접어든 군주들은 그저 빨리 짐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한 노년을 영위하는 생각만 꿈꿨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양위하기에는 해청이 처한 상황이 공교로웠다.

그는 강화 출신의 소명황후 덕천씨에게서 총 일남 이녀를 낳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두 부부의 사이는 꽤 소원해졌다. 해청이 아내를 처음부터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모의 좋은 금슬 아래에서 태어났기에 좋은 부부관계가 자식과 국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았다.

다만 해청은 강화 조정이 황후를 통해 이런저런 영향을 끼치려는 행동을 불쾌하게 여겼다.

물론, 제국의 황후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외국인으로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국모로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황후를 불러 고려의 법도와 예절을 설명하며 제국을 위해 살아갈 것을 주문했다. 소명황후는 그의 앞에서 그렇게 맹세했다.

하지만, 이 여인의 친정 사랑은 유난했던 모양이다. 황후는 몇 번 더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

황제도 정계와 거리를 두는데, 황후는 그보다 더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정론이다. 그러나 황후는 몇 번 아내들의 인맥을 동원하여 정계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를 했고, 그때마다 해청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연방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미주에서 친강화계 주지사 후보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사실은 도무지 묵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황후를 불러다 크게 질책했다.

― 당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분명히 내 신신당부하지 않았소? 우리는 정치적 중립을 기해야 하오. 그것이 선대로부터 내려온 원칙이자, 황실의 의무요. 정궁인 당신은 더더욱!

― 죄송합니다, 폐하.

하지만 그녀는 또 금방 다른 행동을 꾸몄다. 두 번째로 황제가 황후를 꾸짖을 때는, 이전과 달리 해청은 분노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실망감 가득한 표정으로 황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앞에 꿇어엎드린 황후는 그저 앵무새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 신첩의 행동을 용서하여 주소서. 강화는 지금 도움이 필요합니다. 조정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불량한 무리들이 도쿄에서 뻔뻔히 검을 차고 활보하고 있습니다. 덕천이 기댈 곳은 오로지 상국 고려뿐이옵니다.

― 황후, 나도 알고 있소. 그리하여 조정에서도 몇 번 그대의 아비에게 지원을 보냈지요. 하지만 그것은 제국의 문제일 뿐, 당신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고려 사람이고, 고려의 국모요. 그렇기에 당신은 이 나라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오. 선대 황후들의 행동에서 배운 것이 없소?

해청은 자신의 아내가 고려를 위해 행동하는지, 혹은 강화를 위해 행동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제아무리 강화가 그들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념 싸움에서 고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건 황실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일을 통해 부부 사이는 완벽하게 멀어졌다.

―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강화는 이리 음험하게 행동합니까? 제국은 항상 베풀어주는데도, 그들은 앞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며 뒤로는 다른 생각을 꿈꿉니다. 바로 옆의 조선이나 백제와는 너무 다릅니다.

― 미안하오, 황상. 더 좋은 여인을 찾아주었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결국 제가 스스로 선택한 여인이지 않습니까? 제가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해청은 당시 세상을 아직 떠나지 않았던 상황 해원에게 몇 번 푸념을 했을 정도로 짜증이 쌓여 있었다.

덕천씨에게서 낳은 아들, 해완도 그러했다. 해청은 아내의 교육이 그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짐작했다.

해청은 해완에게 제위를 물려주길 꺼렸다.

둘의 사이가 얼마나 단절되었느냐면, 심지어 덕천씨와 해완은 상민의 존재를 아직 알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황후와 황태자는 때가 되면 ‘엄중히 수호해야 할 비밀’을 공유하는 대표적인 황실 최고위 인물이었지만 해청은 이들이 그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해청은 부부 갈등이 표면화된 이후, 백제 출신의 원비 부여씨를 들였다.

누가 봐도 명백한 부여 가문의 정치적 노림수였다. 하지만 해청은 당시 아내에 대한 실망과 후계에 대한 문제, 그리고 여러 이유 등으로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일반인과의 결혼도 상관없었지만, 해청은 지금 당장 몇 가지 국제문제에 있어서 백제의 협조적 태도를 얻어내기로 했다.

나이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는 원비 부여씨는 황제와 황후의 불화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친정과는 완벽히 단절된, 오로지 고려 황비로서의 삶을 살았다.

백제 왕실도 그것을 노렸다. 강화 놈들의 수작질을 끊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과였다.

해청은 이 모습을 굉장히 좋게 바라보았으며, 많은 애정을 베풀었다. 황비와의 사이에서 무려 네 명의 딸을 보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득남은 굉장히 힘들었고, 다섯 번째 아이에서야 해청은 비로소 차남 해안을 가졌다.

하지만 이미 그때가 돼선 해청은 노년이었고, 해안은 어린 꼬맹이였으니, 지금 해청은 당장 물러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였던 것이다.

상민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해청의 양위를 말렸다.

“조금만 더 버티시오. 찬이 이후로 방계를 좀 정리했더니 이렇게 되었소.”

승계 구도를 직접적으로 주물럭거린 과거와 달리, 상민도 지금은 다소 난색을 표했다. 당대 후계자들이 일단 숫자가 많아야 상민의 선택과 지지도 효과를 발휘했다.

지금 해청과 해원의 대에선 후계가 귀했다. 상민은 어차피 민선시중의 시대가 된 지금은 굳이 한참 먼 친척을 끌어와 양자로 앉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게다가 지금 황실은 대중매체와 언론의 발달로 전 국가적인 관심을 받는 상태였다.

예전 삶의 21세기, 황금기가 한참 지난 영국의 여왕조차도 뭘 했다 하면 셀럽이니, 유명인이니, 연예인들이 전부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해씨 황조의 영향력은 그보다 족히 수십 배, 백 배는 더 클 것이 분명했다.

상민이 이리저리 열심히 노력을 기울인다면 양자 입적은 충분히 해낼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해안을 얻었으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예….”

그래서 황제는 지금 자신의 일을 완전히 놓지도, 그렇다고 너무 업무만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물 좋고 공기 좋은 별궁에 눌러앉아 있었다.

* * *

“보시오 황상. 지금 그것보다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하오. 황상이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다섯 개 핵심 산업에 대해 말하려고 왔소. 나도 신경을 쓰긴 하겠지만, 황상은 보안국을 움직일 수 있으니 방첩에 관심을 가져야 하오.”

“소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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