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보아 대지진
개천 480년(CE 1755).
상황 해원이 붕어하였다.
그는 이 년 전 태후 루이제가 안장된 능에 묻혔으니, 여든여덟의 나이였다.
나이로 볼 때 천수를 누리고 간 부부였다.
입관되기 전 그의 관에 엎드려 절하는 수많은 후손은 과장스럽게 슬퍼하지 않았다. 해원이 그것을 원했다. 울음 속에서 떠나가기보다는 그저 순리대로 편안함과 그리움 속에서 보내주길 원했다.
성년이 된 손주들도, 아직 나이 어린 손주들도 의젓하게 절을 했다.
떠나갈 준비를 하는 해원도 알았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아도, 제국은 영원할 것이다. 제국의 군주들은 죽기 직전에야 자신들이 분에 넘치는 복을 얻었다는 것을 알았다. 믿을 만한 누군가가 자신의 나라를 계속 지켜봐 줄 수 있다는 것, 군주로서 비할 수 없는 축복이다. 그러니 그는 조용히 잠을 자다 숨을 거두면서 문득 웃음을 띠었을 것이다.
그들이 다 떠나간 방, 상민은 혼자 남아 후손에게 절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뭐가 있을까. 그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매번 힘들었다.
“…고마웠다.”
위대한 선황 부부가 모두 떠나자 황실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슬퍼하며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국기가 계양된 곳은 전부 조기의 형식을 따랐으며, 공직자들은 두루마리의 가슴팍에 한 달 동안 흰 천을 매달았다.
해청은 상황을 기려 렬(烈)의 묘호를 지어 [태조께 바치니, 그가 허락하였고] 상황을 열종이라 하였다.
위대한 별이 졌지만, 그럼에도 제국은 순탄히 흘러갔다.
홍진사건이니, 명성사건이니 하는 것들은 일부 당사자들이 큰 곤욕을 치르게 했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제국의 구성원들은 나라가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와중에도 그 나아가는 방향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 가늠하게 되었다.
* * *
제국 밖의 상황도 무난했다.
유럽과 동아시아에도 보기 드문 평화가 내려앉았다.
다만, 상황 해원이 붕어한 지 4개월이 지난 480년의 11월 1일, 전대미문의 큰 사건이 일어났다.
환태평양 조산대를 끼고 있는 고려에게는 몇 번 경험해본 일이었지만, 포르투갈에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비극이자 대재앙이었다.
훗날 리스보아 대지진이라 불리게 된 이 대지진은 말 그대로 리스보아 남서쪽 근해에서 일어났으며, 가장 가까운 포르투갈의 수도와 영토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다.
또한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모로코, 카스티야, 고려령 카나리, 아조르스, 마데이라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심지어는 지진해일이 에이레와 북려의 일부 지역에도 퍼져나갈 정도였다.
진도는 개천 425년 미주 대지진과 살짝 작거나 비슷했다. 고려 역사서에 기록된 가장 강한 지진과 맞먹을 정도라는 것은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일으켰다.
지진해일과 지진충격이 직격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보아에는 인세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요한 묵시록에 묘사된 최후의 날이라는 표현이 제일 그 광경에 근접했다.
리스보아는 상당히 발전된 도시였는데, 그중 절반 이상인 오만 채의 건물들이 처음 닥쳐온 지진에 박살이 났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의 잔해에 깔려 죽었다.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도망친 사람들은 뒤이어 거대한 높이의 지진해일에 휩쓸렸다. 두 차례의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로지 소수였다.
심지어 포르투갈의 왕과 왕비도, 많은 귀족들과 대사관에 있던 외교관들도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당시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를 갔던 왕자밖에 없었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여진과 여진에 따른 지진해일이 몇 번 거듭해 리스보아를 강타했다.
한때는 아름다웠던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화재가 뒤이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했다. 끔찍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질서는 사라졌고, 신음 소리와 비명 소리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 퍼졌다.
서둘러 순례에서 돌아온 왕자 주제는 언덕 위에서 하염없이 오열했다.
뭘 어찌해야 하는지 머리가 완전히 비었다. 가족은 전부 죽었고 귀족도 다 죽었다. 성직자들도 죽었다. 백성들도 죽었다. 아니, 죽지 않은 자가 거의 없었다.
자신이 포르투갈의 왕, 주제 2세가 된 것은 지금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국왕의 자리가 무슨 상관인가.
그래도 어찌어찌 그는 슬픔을 극복했다. 그리고는 펜을 잡았다.
하지만 슬픔을 이겨냈더라도 주제 2세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제왕교육은 받긴 했지만, 정치나 행정의 경험이 없는 초짜 왕자가 전대미문의 비극의 후속 처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도저히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수도가 저렇게 되었으니, 수도에 있던 많은 귀족들과 공무원들도 전부 죽었다. 정말로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왕자는 지방에 서신을 보내 사람들을 모았지만, 지진해일이 리스보아만 박살 낸 것은 아니었다. 리스보아는 큰 도시였기에 재앙의 규모도 컸지만, 알부페이라와 라고스 같은 남쪽의 해안가 도시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그나마 성한 곳이라면 중부의 코임브라와 북부의 포르토, 브라가 정도가 다였다. 이들도 지진피해를 입긴 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는 대자연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 내몰린 것이다.
하지만 481년 1월 2일, 리스보아 서쪽의 해안가에 엄청난 수의 함대가 접근했다.
당시 주제 2세는 수만 가지 난관에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언덕에 지은 천막 안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함대도 반쯤 박살이 나 있는 상태. 심지어 그 안에 탈 사람도 없었다.
누군지 몰라도 저들이 함포를 소면, 쏘는 대로 맞을 것이다. 뭘 어쩌겠는가. 하느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으니, 이 천한 목숨을 끝내는 것도 오히려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들이 달고 있는 두 개의 깃발 중 하나는 고려 해군기다. 어차피 반항해도 박살이 날 운명일 터였다.
하지만 함대들은 딱히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다가온 배들에도 수송선이 주일 뿐 군함도 별로 없었다.
함대는 먼저 사절을 보냈다.
작은 소선이 해안가에 정박하더니 사람 하나와 말 하나를 내려주었다. 사람은 말을 타고 주제 2세가 있는 언덕 위로 쏜살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주고려 외교관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였다.
“전하, 전하! 희망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주제 2세는 그의 말에 대답 대신 우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소?”
돈도, 사람도, 축복도 없다. 비극에 절망하고 몸부림치는 무능하고 한심한 철부지만 남았을 뿐.
하지만 세바스티앙은 그의 새로운 왕의 물음에 손바닥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저들이 있습니다.”
고려는 이미 항구를 수리하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리스보아 수비군은 멍청한 얼굴로 총을 내려놓더니, 이제는 오히려 고려를 도와 이런저런 식료품을 나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리스보아 시민들은 무엇에 홀린 듯 항구 구역으로 걸어갔다. 고려군은 일단 번쩍거리는 총기를 이용해 질서를 확보한 뒤, 인당 음식을 정확히 배분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음식을 빼앗으려 들자, 총탄이 위협적으로 허공을 날았다.
사람들은 움츠러들면서도 도망가 흩어지지 않았다. 일평생 반쯤 적국의 국기로 생각했던 깃발은 오히려 그들에게 이상한 안심이 되었다. 지옥 속에 한 줄기 희망이라고 해야 할까.
약탈과 살인 등의 범죄는 대부분 멈추었다. 그것이 이 인세의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지른 죄악이라면, 살아남는다는 확신이 있을 땐 누가 죄악을 저지르고 싶어 하겠는가.
대체 왜?
주제 2세는 물었다. 세바스티앙이 조용히 문서를 건네며 대답했다.
“그것이 국제협력의 존재 의의입니다.”
주제 2세는 고개를 떨구며 문서를 보았다.
[북대동양조약기구 11/56 결의안에 의거, 소속 국가들은 군사적 공동대응 외에도 비상계획분야를 포함한 제3활동영역을 구축하여 조약국들과 협력국들 간의 총체적 재난 대응을 지원하고, 민간과 환경 분야에서 서로 협력한다.]
“우리는 조약국이 아니잖은가.”
“협력국이긴 하지요. 대전에서 그랬습니다.”
“그런… 명목으로?”
세바스티앙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주제 2세가 진정하길 기다린 다음 품속에서 서신을 한 장 꺼내 전달했다.
“고려의 황제께서 보낸 서신입니다.”
공문서가 아니라 사문서라, 편지의 어조는 제법 정갈하면서도 사적인 어조를 유지했다.
[이 편지가 닿을 때쯤엔, 그대의 슬픔이 조금은 가셨길 바라오.
돌이켜보면, 아국과 귀국은 참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소. 그대들이 아프리카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도 북려를 향해 나아갔으니.
그렇게 우리는 바다를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찬 상태로 서로 마주 보았고, 우정을 나누었소.
귀국은 아국의 신 제독에게 프리머스 서컴데디스티메의 영광을 수여했고, 우리도 귀국과 통교하며 서로 번영을 꿈꾸었지.
허나 서로가 처한 상황이 우리의 우정을 저해했지요. 세계를 양분하려는 욕심이 가장 기본적이고 마땅한 것조차 잊게 만들었으니 애석한 일이오.
하지만 짐은 지금 과거의 일을 자세히 들먹이고 싶지 않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또한 현재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니까.
우리가 과거의 과오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앞으로 그러지 아니하면 되지 않겠소?
슬픔을 공유하시오. 비극을 혼자 감내할 필요는 없소.
만약 그대가 이에 마음의 빚을 얻는다 느낀다면, 그대 또한 훗날 누군가를 위해 지금 이때를 떠올려주면 그것으로 족하오.
그것이 짐이 지금껏 말한 것들의 처음이자, 끝이니까.]
주제 2세는 편지를 접었다. 그리고는 항구를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저 배들이 왔던 방향으로.
어둠이 드리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어둠과는 달랐다.
고려군은 항구를 수리한 뒤에는 보급소와 의무소, 행정소를 나누어 지었다.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간이 발전소를 항구 사무소 폐허에 짓더니, 전선을 끌어오고 전등을 설치해 곧이어 찾아올 야간의 범죄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다른 군함들도 불을 켜며 도시에 환한 빛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비참한 도시는 더 이상 비명 소리도,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 밤은 무사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들이 이전에 그러했듯.
주제 2세는 의자 앞으로 털썩 주저앉더니 무릎을 꿇었다. 세바스티앙과 다른 수행원들이 그의 모습에 놀랐지만 엄숙한 분위기에 저지하지 않았다.
주제 2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은 왕자로서는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주제 2세는 주님께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을 것이다.
그는 기도를 끝마친 뒤,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만 서쪽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두 손을 떠받들 듯 펼쳤다.
‘군주 중의 군주여, 제국 밖의 세상에도 대리석을 깔며 홀로 오롯이 존재하는 아우구스투스여. 마땅한 찬미를 받으시오.’
* * *
고려는 포르투갈 말고도 마라케시와 자국령 섬들에 빠르게 구호물자와 인원을 파견한 상태였다.
자국령 대동양 섬들은 다행스럽게도 이미 예전부터 많은 시설들을 투자해 놓았다.
이 시설들이 지진과 해일을 완벽히 대비하진 못했다.
하지만 섬의 사람들도 기초적인 교육을 받았다. 지진 시 대처 요령과 갑작스럽게 빠진 해수면이 해일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재빨리 내륙으로 도망가라는 교육까지.
원체 인구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받은 피해는 경미했다.
조약에 따라 다른 나라들도 도와줄 의무가 있었지만, 그들의 행정 처리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재난대비체계가 잘 정착되어 있는 것은 오직 고려뿐이었다. 그나마 강화와 백제가 두 번째 순위로 꼽힐 정도였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다른 나라도 구호물자를 편성해 보냈다. 유럽의 맹주로 등극한 도이치부터, 이탈리아, 알비온, 심지어 프랑스까지. 많은 구원의 손길이 잇따랐다.
이런 도움 덕에 포르투갈은 폐허 속에서 천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세바스티앙은 고려 대사에서 물러난 뒤, 주제 2세 밑에서 국정을 총괄했다. 그는 폐허가 된 리스보아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다.
고려의 많은 도시공학자들을 초빙하여 내진 시설과 해일 대비 시설은 물론이고 상하수도와 전선, 다른 체계까지 전부 다 고려한 도시를 구상했다. 위기가 영웅을 만든다고, 세바스티앙은 그가 가진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리스보아 대지진은 끔찍한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냥 끔찍하지만은 않았다.
리스보아 대지진에서 유럽은 처음으로 순수한 인본주의적 지원을 통해 그들이 사랑하는 기독교적 문명이 완전히 어그러지지 않았다 확신했다.
비록 대전쟁으로 그들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극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름이 아닌, 고려가 먼저 그 길을 제시했다.
비록 베네치아의 말도 안 되는 행동 덕에 대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초창기를 제외하고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고려―포르투갈의 외교관계를 고려해보면 각국은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었다.
팽배해지는 민족주의적 갈등 속에서, 그들은 어쩌면 이 일화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해청은 그의 이름 앞에 따라오는 수많은 수식어와 찬사와 더불어, 고려가 앞장서서 말하는 조약과 국제기구들의 명분을 증명했다. 그동안 그가 추진하고 있었던 정책들도 탄력을 얻었다.
심지어 그동안 여러모로 한계에 봉착해 있던 올림픽 같은 민간의 교류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