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44화 (444/653)

몰락(2)

불가리아는 한숨 돌렸다.

러시아군은 완전히 패퇴했다.

고려의 함대는 부르가스 축선의 보급선을 포격한 뒤 이내 러시아 흑해 제일의 군사항구인 테오도로를 박살 내러 떠났다.

1729년이 되자 불가리아군은 슈멘을 탈환했고, 2월이 되니 심지어 러시아 영토인 부르가스와 바르나도 점령할 수 있었다.

물론 불가리아인들에게 이곳의 점령은 ‘고토 수복’이었지만.

오스만에 독립한 이후, 졸지에 내륙국이 되어버린 불가리아는 마침내 항구를 얻은 것이다.

많은 피가 흘렀지만, 그렇기에 과실은 달콤했다.

일리안은 가브로보 요새에서 수도로 돌아온 옐레나와 감격스러운 해후를 마친 뒤 대공 부부의 이름으로 폐허가 된 터르노보의 궁전을 대충 수습한 뒤 조그마한 축하연을 열었다.

지금도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긴 했지만, 외국의 귀빈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대접을 해주어야 했다.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야 했다.

보름달이 밝은 밤, 이런저런 폭격으로 휑하니 뚫린 터르노보 궁전은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다.

그는 먼저 온 순서대로 귀빈을 접견했다.

오스만에선 알리 파샤가 직접 왔다.

“이렇게 우리가 마주 보게 되었으니 역사와 현재란 참 오묘합니다.”

일리안도 쓴웃음을 지었다.

오스만과 콘스탄티노플 서쪽 나라들의 악연은 깊었다.

불가리아도, 그리스도, 왈라키아도 사실상 그동안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으니 오스만과의 관계가 몹시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번 전쟁에 한해선 그들은 같은 편에서 싸웠다.

러시아라는 악몽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니자므 제디드들의 공세가 몹시 큰 도움이 되었다.

반대로 오스만은 불가리아의 위대한 항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결국 그들이 훨씬 더 큰 피해를 입고 멸망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일리안은 아직 완전히 불가리아인이 아니라 반러시아 감정만큼 반오스만감정은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만큼 오스만 사람들을 혐오하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엔 아국과 귀국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대해서 논의해봅시다.”

“물론입니다, 파샤.”

오스만의 팽창 욕구는 여전하겠지만 일리안은 전쟁이 끝나면 지금의 오스만 왕조가 결국은 교체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 해묵은 갈등의 매듭도 풀릴 수 있을지 몰랐다.

그다음 일리안이 마주한 사람들은 왈라키아의 대표단이었다.

그들과도 악수를 하려던 일리안은 갑자기 무릎을 꿇는 대표단의 행동에 크게 놀랐다.

“대공이시여, 우리의 군주가 되어 주십시오!”

그들은 실로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괜스레 그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그리스가 화들짝 놀랐을 정도였다.

왈라키아는 오랫동안 바사랍, 다네슈티와 드라큘레스티라는 위대한 가문들의 치세 아래 있었다.

하지만 왈라키아 최후의 명군이라 불리는 바사랍 왕가의 대왕 미하이 2세 이후, 이들은 거진 백여 년 동안 수많은 왕들이 난립하여 혼란스러운 치세를 보냈다.

그다음에는 왈라키아의 군주 가문이 사라지기까지 했다.

이후엔 오스만 총독들의 파견이 있었고 최근에는 러시아의 가혹한 지배도 있었으니 이들의 국내정치는 불가리아보다도 훨씬 더 혼란스러웠다.

그런 이들이 자애공을 동경하는 것은 당연했다.

외국 출신이지만, 분명히 옛 불가리아 왕국의 대왕 이반 아센 2세의 피가 흐르는 그는 임명된 지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는데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위업을 써 내려가는 중이었다.

또한 일신의 능력만큼 고려와도 관계가 좋아 전후의 번영도 약속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아주 먼 옛날, 불가리아와 당시 불가리아의 영토였던 왈라키아, 심지어 저 멀리 몰다비아까지 지배하던 불가리아 왕국의 찬란한 전성기를 연상케 했다.

왈라키아는 민족적으로는 불가리아와 약간 이질적이었지만, 역사의 한 면을 공유했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에게 다른 나라의 귀족을 자신의 군주로 올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해당 귀족이 증명된 군주의 자질을 뽐내고 있으면 더더욱.

이는 그리스도 동의할 것이다.

일리안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땅에 관심이 없었지만, 이들의 의지가 실로 굳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하지만 고려가 골칫덩어리인 그리스를 죽어도 떼어놓고 싶어 하는 것과 별개로, 불가리아와 왈라키아의 동군연합은 양국 모두에게 득이면 득이 되었지 실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작은 나라는 뭉쳐야 강해질 수 있다.

“불가리아―왈라키아 동군연합은 양국의 아름다운 번영을 상징할 것입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고려에선 계급상으론 참령, 심지어 임명되지도 얼마 되지 않지만 해세희가 고려의 대표로 참석했다.

세희는 어느새 그녀의 상징이 된 붉은 색의 려복을 입고 그 위에 조종사용으로 쓰이지만 색깔과 재질만큼은 비교할 수 없이 우아한 목도리를 걸쳤다.

이 연회에 참석한 조종사들도, 사절들도 모두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해원은 결국 딸을 이기지 못해 아예 그녀를 고려 공군 참령으로 임명했다.

그녀도 정복이 있었지만, 고려를 대표한 지금의 자리에선 군 계급보다는 종통의 권위를 빌려 일리안을 격려하는 것이 맞았다.

상현은 빳빳이 다린 정복을 입고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고맙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천권(天眷)에 어찌 보답할 수 있을지… 또한 앙왕가의 후손께서도 이렇게 직접 나오셨으니 지금 이 사람의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가 않는 심정입니다.”

일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아니에요, 대공 전하.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어 기뻐요. 대공께서 이 땅에 오롯이 서 폭압자들에 대항해 굳건히 버티신 일화는 고려에도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지요. 전하를 시대의 영웅이라 하지 않으면, 대체 누구를 감히 그리 청할 수 있겠어요?”

해세희의 말에 일리안이 어딘가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저 영웅들과 같이 싸웠을 뿐이지요.”

그 말의 무게감에, 일순간 세희도 상현도 침묵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것을 느낀 옐레나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여튼 공주 전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와도 어울려 주시겠나요?”

옐레나가 세희를 보더니 자못 친근하게 굴었다.

나이로 따지면 옐레나가 언니였고, 세희도 언니들이 많았기에 둘은 금방 친해졌다.

옐레나도 일리안과 살면서 고려어로 간단히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 세희는 오랜만에 조종사 겸 군인이 아니라 여자로서 격이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두 명이 한쪽에서 조잘대는 광경을 바라보던 일리안이 상현을 바라보며 웃었다.

“잘 어울리시더군요.”

“크흠, 흠. 감사합니다 전하.”

상현과 일리안도 같은 고려인에, 비슷한 처지의 동질감을 느꼈다.

상현도 다르크 가문의 먼 방계였고, 일리안은 그렇게까지 멀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곳에 와서 고생을 할 만큼은 멀었기에.

둘 모두 제국의 공주와 인연이 닿아 있는 것도 묘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후, 그랬지요. 그랬어요.”

일리안은 오랜만에 아센재웅으로 돌아와 그의 뺨에 난 흉터를 쓸었다.

“이제 이곳에 정이 들 만큼 들 만한 시간이 지났는데 사실 아직도 하루에도 몇 번씩 고려가 그립습니다. 그곳의 햇살과 해변, 도시의 풍경들. 신문과 극장, 연주회와 같은 여러 문화들까지요. 심지어 즐겨 먹던 겹빵과 콜라 생각도 나곤 합니다.”

“아하하하! 전후에 아이작 겹빵에 문의해 터르노보에 지점을 열라 하시지요.”

“하하, 그랬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농담을 주고받았다.

일리안이 문득 물었다.

“고려도 서쪽에서 당장 러시아와의 결전을 하진 않겠지요?”

“예, 대공. 우리 비행단에도 철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고려는 계속 불가리아에 있지 않을 예정이었다.

공군과 함대를 동원해 불가리아에 도움을 주긴 했지만, 고려군 수뇌부들은 러시아에 지금 공세를 펼치는 것에 회의감을 품었다.

회의감을 품지 않았다면, 어떤 누군가가 회의감을 주었을 것이다.

고려는 불가리아와 오스만에게도 당장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는 것을 권유했다.

물론 두 나라는 제각기 내전과 자국 내에서 벌어진 혈전에 큰 피해를 입은 상태라 몸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 공세는 꿈도 꾸지 않겠지만, 고려 군부는 행여나 이들이 지나친 보복심리와 자기과대평가에 지배당해 최악의 수를 두지 않을까 염려했다.

러시아의 공세를 방어하는 것과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곧 봄이 오면, 저들의 지랄 맞은 땅은 지옥 같은 진흙 늪으로 바뀔 테니.

당장 허약해진 러시아를 공격하겠다고 그 광대한 땅에 뛰어든다면 그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번 대반격으로 한동안 러시아는 공세에 나오지 못할 터.

그리고 고려로서는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오직 유럽만 신경 쓰고 있는 러시아의 지금 생각은 오만과 다름없다.

동방에서 러시아의 대적자로 길러진 고려의 사냥개가 마침내 그 이빨을 드러내니 광대한 영토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베리아의 황야가 위험에 처할 것이다.

“옥저가 참전한다면 러시아도 크게 힘들어할 겁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일리안은 한시름을 놓았다.

“전하와 정위께선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 비행단은 아마 남부 도이칠란트 전선에 참여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귀하와 전하께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공의 곁에서 빠져나온 상현은 마침내 진작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던 세희와 마주했다.

상현은 포도주잔을 들고 있던 세희의 다른 팔을 잡아 입을 맞추었다.

“전하, 저와 한번 춤을 추시겠습니까?”

세희는 입술을 비뚜름하게 올렸다.

자신은 적당히 옐레나와 어울리다 헤어지고 왔는데, 그는 일리안과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었으니.

“흐음, 너무 오래 기다려 화나기 직전인데요.”

“부디 그 노여움을 풀어드릴 기회를 주실 것을 간청하나이다.”

“그 정도쯤이야.”

폭격 맞은 왕궁에는 잔디밭에 야외 무도회장이 있었다.

불탄 흔적이 드문드문 보이는 잔디 위에, 두 명의 연인은 한동안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달밤 아래에서 춤을 추었다.

“전쟁이 끝나면 뭘 하실 겁니까?”

세희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동양 횡단에 도전해보려고. 대동양 횡단 이후에는 태평양 횡단도. 태평양 횡단 이후에는 세계 일주까지. 신원길 제독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거야.”

하늘과 사랑에 빠진 공주는 가끔 남자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하늘 말고 자신이 첫 번째가 될 수는 없는지.

“위험할 텐데.”

상현은 걱정이라는 포장에 그 감정을 집어넣고는 말을 흘렸다.

세희가 그의 표정을 바라보더니 나지막이 웃었다.

“그럼 같이 가자.”

“같이?”

“응. 같이 가면 설령 무인도에 추락해도 어떻게든 살아남지 않겠어?”

상현도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고가 나더라도 그녀와 함께 아름다운 태평양의 무인도에서 표류하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가 않았다.

당장 그의 머릿속을 수놓는 온갖 음흉한 상상의 그림들을 일단 지워야 했지만.

“그래, 같이 가자.”

* * *

개천 454(CE 1729)

남부 도이칠란트 전선.

절망스러운 참호전의 일상 한가운데.

도이치군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병사들이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온 비행기의 기총소사를 맞고 쓰러졌다.

― 타타타타

적에게는 한없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지만, 아군에게는 그것만큼 든든한 것이 없었다.

특히나 해당 비행기가 일반적인 비행기보다 훨씬 더 우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적들은 저것을 ‘제국의 창녀’라 속되게 부르며 욕을 했다.

두려워해야 할 적을 일부러 속되게 부름으로써 그 공포심을 누그러뜨려야 했을 것이다.

아군에게도 붉은 전투기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각별했다.

“붉은 공주다, 공주 전하가 우리의 전장에 오셨다!”

“승리의 여신이다!”

해세희의 예상대로, 고려의 병사들은 그녀가 출몰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러대었다.

일반적인 비행기의 지원도 고맙지만, 특히 자국의 종통이 직접 전쟁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듣고 목격하기까지 한다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기가 진작되는 것이다.

애국심 고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종통에 대한 지지도 한없이 올라갔고, 황제와 황태자, 공주에게 만세를 연호하는 목소리도 우렁찼다.

도이치군도 환호했다.

현 공주가 호엔촐레른 핏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든 병사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 절대 남 일이 아니었다.

붉은 복엽기 동체를 자랑하는 비행기가 조약국 군인들의 함성에 응답하듯 솟구쳤다.

전쟁이 일어나면, 다른 건 몰라도 군사기술은 비전시보다 훨씬 빠르게 진보했다.

부익사는 전쟁 3년 차가 되자 맨 처음 배치된 복엽전투기 까치를 거듭 개량했다.

마침내 이들은 그동안 조종사들을 짜증 나게 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바람개비 동조장치는 전투기의 기관총이 기체 앞에 달린 바람개비를 스스로 쏘지 않게끔 바람개비가 총구 앞을 지날 때만 사격을 멈추는 장치였다.

해당 장치를 부착한 덕에 조종사들은 발을 들지 않아도 조종하는 자세 그대로 총탄을 적에게 퍼부을 수 있게 되었다.

연사력이 살짝 낮아진 것은 별 체감도 되지 않았다.

바람개비 동조장치가 설치되고서야 복엽전투기는 비로소 제 잠재력을 다 보일 수 있었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기관총 포탑은 적들의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날이 도이치에 항복하는 오스트리아군이 늘어났다.

피골이 상접해 있는 포로들은, 한때 도이치가 그러했던 것처럼 호밀빵에 톱밥을 넣어 양을 부풀린 것들을 먹고 다녔던 것 같았다.

“후후 불어 먹으라고.”

도이치군이 무장해제된 오스트리아 병사에게 군용 반합을 건넸다.

― 훌쩍

포로로 항복한 오스트리아군이 눈물과 코를 훔치곤 입을 열었다.

“…젓가락 쓸 줄 모르는데.”

“여깄다, 포크.”

“고마워.”

― 후루룩

포로는 열심히 라면을 먹었다.

도이치 병사는 [오양라면 제조년월 453 0625. 건양시 동안구 성표로 151 오양공장]이라는 고려어 문구가 적힌 유산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유산지는 방수기능이 있으니 쓸모가 제법 많았다.

이런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가끔은 신기한 일이 일어나곤 했다.

사람은 파괴와 투쟁의 동물이라 하나, 한편으로는 연대와 협력의 동물이기도 했다.

1728년의 크리스마스에는 프랑스, 도이치, 오스트리아의 몇몇 군인들이 서로 소강상태의 전선에서 전사자의 장례를 치르자고 합의하고, 그동안 정전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전선 한두 곳이 아닌 전반에 확대되었다.

조약국은 그들의 관용을 보여주기 위해, 동맹국들은 한 숨을 돌리기 위해 이를 묵인했다.

심지어 그동안은 전쟁터에서도 축구를 했고 노래를 불러대었으니 가장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가냘픈 희망은 보이곤 했다.

이 크리스마스 정전을 기점으로 전투의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물론 이후에는 전쟁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정전 이후 큰 전투피로감을 호소했다.

조약국이 노린 대로, 동맹국의 병사들은 자신과는 형편이 나아 보이는 조약국의 병사들을 보고 심각하게 동요했다.

그들은 먹어도 먹어도 양만 많지 실제적인 열량은 거의 없는 묽은 순무죽과 톱밥 넣은 빵, 심각한 악취가 나는 고기 등을 배급받는 것에 비해 조약국의 병사들은 얼굴에 기름때가 번질거렸다.

오스트리아는 도이치보다도 농업 경쟁력이 약했다.

프랑스는 전통적인 서유럽의 곡창지대라 도이치보다 농업의 세가 강했지만, 동원령을 선포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내몬 이후부터는 프랑스조차도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 현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고려는 선전전에도 능했다.

“그거 아냐? 북려 앙주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양이 프랑스 전체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양보다 많대. 북려는 유럽 대륙 전체보다 부유하다고 하고.”

“정말로?”

“그래, 고려군 놈들은 이곳까지 와서 칠면조라는 것도 먹는다더라.”

“칠면조가 뭔데?”

“엄청나게 거대한 닭이래. 맛은 엄청나게 맛있고.”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은 소문들이 동맹국 사이로 퍼져나갔다.

소문뿐만이 아니었다.

아덴 해전, 베네치아의 전투, 터르노보의 항공전 등의 결과가 오스트리아어와 프랑스어로 적혀 하늘에서 펄럭거리며 떨어졌다.

빌어먹을 비행기는 총탄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인 선전지를 이곳저곳에 뿌려대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지휘관들이 이것들을 발견 즉시 보고한 뒤 수집하고 불태워버리라 명령했지만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군들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자들 옆에 모여 이것들을 듣는 것을 일상의 낙으로 삼았다.

동맹국의 병사들이 연이어 항복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조약국은 동맹국의 포로들에게 출신을 가리지 않고 적절한 대우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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