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45화 (445/653)

몰락(3)

1729년 5월.

오스트리아 전선은 프랑스보다도 훨씬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이치는 다시금 레겐스부르크와 잉골슈타트를 점령해 뮌헨 수복을 노렸다.

프리드리히 2세는 아버지의 예전 대전략이 옳았다고 생각했고, 고려에서 베를린까지 따라온 숭무감 교수들도 이에 동의했다.

잘즈부르크만 자른다면 저들은 무너졌다.

하지만 군대를 통해 점령해 나가는 것은 지금 현 전선의 상태에선 아무래도 무리였다.

“인스부르크를 빨리 점령하도록 이탈리아와 조율을 해야겠습니다.”

그러니 프리드리히는 군사적 자산 이외에도 외교적 통로를 통해 오스트리아를 압박했다.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은 체코, 즉 보헤미아였다.

원체 나라가 작고 사면이 전부 국경선인 내륙국은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길 희망했었다.

작은 나라의 애달픔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보헤미아는 후스파의 득세 이후 같은 개신교 계열인 프로이센과 더 가까웠다.

현시점 보헤미아는 포데브라트 왕조가 다스렸고, 이들은 예전의 우정을 나눈 호엔촐레른을 합스부르크보다 더 가까이 여겼다.

개신교 주요 교파인 후스파 또한 과거 고려와 인연이 있었다.

아버지 군인왕은 외교적으론 썩 특출나지 못했기에 보헤미아를 전쟁에 참여시키지 못했지만, 아들 프리드리히는 고려가 본격적으로 개입한 뒤 조약국들의 상황이 개선되며 어떻게 설득해 볼 여지가 생겼다 느꼈다.

보헤미아는 나라의 영토가 작은 것에 비해 나라의 국력은 그렇게까지 약하지 않았다.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는 신성로마제국 때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들을 꼽으라면 항상 한 손에 꼽히는 곳이었다.

소년왕은 직접 프라하까지 이동해 보헤미아 왕 베로슬라브 3세를 대면했다.

“중립은 허상입니다. 전쟁이 끝난다면, 유럽은 두 부류로 남을 것입니다. 조약국과 조약국에 속하지 않은 자들. 이렇게 말입니다.”

“우리는 단결해 있고 강하오. 어떤 자들이 쳐들어와도 우린 외침에 끝까지 저항할 것이오. 불가리아의 자애공이 유명하다지만, 우리도 얀 후스의 정신을 이어받았소!”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포데브라트 가문은 호엔촐레른과 손을 잡았기에 합스부르크의 야욕에서 건재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때의 역사를 다시금 들추어 보시지요. 지금의 전쟁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수십만은 우습고 수백만이 격돌하는 끔찍한 전쟁 속에서 믿을 만한 이웃 없이는 국난을 해결해 나가기 힘듭니다. 지금 편을 들어두지 않는다면 위기가 닥쳤을 때 그대들을 보호할 이웃들은 없을 겁니다.”

“…도이치는 우리를 보호할 것이오?”

베로슬라브의 물음에 젊은 도이치 국왕이 즉답했다.

“기필코.”

만약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저런 말을 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두 나라가 어느 순간부터 약간 멀어진 것에는 프로이센의 태생적인 군국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베로슬라브는 이 청년을 믿어보기로 했다.

보여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진실성을 담은 눈동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하지만 이자가 소문대로 황제 해원의 밑에서 잘 교육받았다면… 적어도 약속을 어길 일은 없겠지.’

전후 유럽에는 도이치의 세상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베로슬라브는 부디 그 치세가 예전의 신성로마제국보다 더 건전하기를 기원하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 * *

직접 참전하지는 않더라도 보헤미아가 오스트리아의 국경에 병력을 증강하자, 오스트리아는 큰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제는 빈이 위험했다.

보헤미아의 남모라바 지역의 주요 도시, 브르노(Brno)부터 빈까지의 거리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고려의 수도 창양과, 수도의 항구로 기능하는 해문의 거리보다도 더 짧았다.

브르노가 아니라 최전방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거리는 이분의 일이 되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아지는 전황에 당혹스러워하던 오스트리아의 여론은 크게 갈리기 시작했다.

우군들은 힘을 못 쓰고 있다.

프랑스는 기세등등했던 전쟁 초중반기와는 다르게 유의미한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다.

러시아는 아예 그들이 쉽게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불가리아에게 반격받았고 발칸반도 이북의 세 공국이 모두 돌아서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했다.

오스트리아의 현실도 암담했다.

지금까지 점령한 지역은 확연히 밀려나고 있었으며, 이제는 심지어 본토가 직접 위험에 처했다.

그리스와의 명목적인 불가침조약도 이제는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아드리아해는 적의 바다다.

― 카이저를 위해! 제국을 위해!

전쟁 초반, 오스트리아의 장교들은 이런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이제 이 말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카이저를 위해는 무슨… 씨발 좆같은 새끼들.”

병사들이 노골적으로 욕설을 내뱉을 만큼 상황이 나빠지자, 처음 애국심과 카이저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했던 문구도 서서히 바뀌었다.

숫제 명령조였던 장교들은 이제 병사들에게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너희들이 제국과 카이저, 귀족들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겠다. 하지만 너희들이 지금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오스트리아는 끝장이다. 너희들의 고향도 끝장이다. 저들은 너희들을 죽이고 너희들의 가족을 강간하고 재물을 강탈해갈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지금 그 참호에 서서 적에게 총을 쏴라! 달려 나가지 않아도 되니, 그 자리를 지켜라!”

의외로 효과적인 말이었다.

오스트리아 병사들 대부분은 애국심은 없어도 애향심은 있었다.

침략자들이 고향을 황폐화시킬 거란 위협은 설득력 있었고, 이들은 가족과 친지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아있을 것이었다.

이를 파훼하기 위해선 오직 한 가지가 필요했다.

저들이 주입시키는 ‘공포’는 조약국의 잔혹함에서 기원했다.

그러니 그 실체 없는 잔혹함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 조약국은 테르샤로마 선언에 따라 항복하는 포로들과 전쟁에 참여치 않는 자들에게 관대하고 자비로운 대우를 약속한다.

국민개병제라 함은, 사실상 국가의 전 구성원을 동원해 총력전을 벌이는 전투였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난다면 국민들도 자신들의 국가가 벌이는 전쟁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18세기의 중반.

절대왕정과 국민국가, 국가 총력전의 태동기에 있는 이 애매한 시절은 백성들의 명칭이 아직까지 국민이나 인민이 아닌 신민이었다.

정부가 신민들의 의사를 온전히 대변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조약국은 정부와 신민의 책임을 분리시켰다.

테르샤로마에서 북대동양조약기구를 만들 당시, 참석한 조약국들은 고려의 설득에 제각기 선언했다.

흔히 테르샤로마 선언이라고 하는 이 선언은 국제법적 연원의 성격이 조약이나 협정, 협약보다는 약하지만 최초로 전쟁포로 및 민간인에 대한 인도적 처우의 공론화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전례 없이 중요했다.

이 약속은 전후에 동맹국의 질서가 무너진 뒤에야 전 지구적이고 구체적인 협약으로 나갈 수 있겠지만 일단은 문제의식을 가진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테르샤로마 선언에 따라, 조약국들은 전쟁 중에도 포로 처형은 물론이고 민간 약탈이니 살인, 강간과 방화 등을 최대한 지양하기로 했다.

법적인 효력은 없었지만, 그들 모두가 고려에 의해 지원을 받는 처지란 것 자체가 효력의 근거였다.

또한 각국의 양심 있는 식자들은 거의 하나같이 이 선언에 찬성했다.

제국교와 쿠쿨칸교, 고려 천태종과 조계종 같은 제국 내의 주요 종교 교단은 물론이고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내의 주요 종파, 만종 등의 종교계도 지지했다.

민간에 대한 부수적 피해의 끔찍함은 사진기의 발명 이후 전 사회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태평천국을 토벌하기 위해 명나라로 파병한 프, 오, 포의 병사들이 저지른 전쟁범죄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는 유명한 일이었다.

물론 그 뒤 명나라의 식인 사건이 벌어지며 희석되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 전쟁범죄는 문명인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한 찰나였다.

미덕은 언뜻 보기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미련스러워 보일 터다.

당장 도이치만 하더라도 우리가 당했으니 저들에게 똑같이 갚아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명분이 모든 전쟁의 시작과 끝인 것처럼, 도덕과 윤리, 인본주의는 가장 미약해 보이면서도 때로는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스트리아군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전지를 통해 조약국의 약속을 접했다.

항복한다면 무기를 압수한 뒤 먹을 것을 주고 수용소에 수용한 뒤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놀랍도록 설득력 있었다.

하다못해 동맹국의 일개 병사조차도 고려의 편집증적인 준법의식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나둘씩 동맹국의 병사들은 선전지를 남몰래 챙겼다.

그들은 북대동양 조약국 총사령관 손규호의 이름으로 쓰인 이 종이가 마치 목숨의 보증서처럼 기능하길 염원했다.

최후의 순간에 그들의 참호나 진지로 온 고려군이나 도이치군에게 들이밀 수 있는.

남몰래 군복 깊은 곳에 선전지를 끼워 넣는 행태에 오스트리아 장교들은 거품을 물었지만 모든 병사를 알몸으로 검사할 수는 없었다.

* * *

프랑크푸르트에 세워진 조약국 총사령부에서 총사령관 손규호와 세희는 차 한잔을 하며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고려의 계급은 전통적인 정부참의 체계를 따랐다.

다만 장군은 위에 한 계급이 더 있었는데, 최고 계급의 사성장군은 대장군에서 유래한 대장이 삼성장군인 정장의 위에 있었다.

물론 군대의 규모가 있다 보니 대장의 숫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고려 육군 역사상 가장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손규호는 같은 대장이라도 북아프리카 사령관이자 베네치아 군정사령관 표창진 같은 인물보다도 선임이었고 사실상 유럽 전역을 통솔하고 있었다.

물론 그라도 눈앞의 참령에겐 존댓말을 꼬박꼬박 써야 했다.

“공군의 역할이 대단합니다. 전하께서 전선에 나서실 때마다 눈에 띄게 사기가 오른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다행이군요.”

말치레는 아니다. 그녀의 전과는 명백했다.

조종과 사격이 한층 수월해진 동조장치 이후엔 더욱 그랬다.

그러나 한동안 붉은 공주의 공을 치하한 규호는 이제부턴 자신의 딸뻘인 공주에게 썩 반갑지 않을 말을 해야만 했다.

“하오나 전하. 그… 너무 자주 전장에 나가시는 것은 자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1729년의 중반에 들어서자 동맹국들도 어찌어찌 비행기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했다.

하도 심하게 당한 탓에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판플루트(Panflöte)라고 불리는 대공포를 만들었다.

당연히 자우어 기관총 기반의 최신 속사 무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예전, 아주 구닥다리 제사총에서 다시금 개념을 빌려와 말 그대로 판플루트처럼 생긴 대구경 제사총을 하늘에 겨눈 것이었다.

대놓고 소 뒷걸음질에 쥐 잡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겉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실질적 효능이 좋지 않더라도 판플루트는 동맹국이 가진 무기 중 유일하게 고려의 비행기들에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였다.

실제로 판플루트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고려 공군의 사상자들도 꽤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의 사상자들이 필연적인 기계적 결함 혹은 난기류나 번개 같은 자연, 심지어 새와의 충돌 등의 기타 불운한 사건으로 생겨났다면 이제는 정말로 총탄을 맞고 사망하기 시작했다.

복엽기가 직관적인 면으로 꽤 다루기 쉬운 병기임은 맞다.

하지만 조종사는 여전히 많은 교육이 필요했다.

조금씩 가랑비에 비 젖듯이 피해가 누적되면 남은 인원들에게 그만큼 과부하가 걸렸다.

“곧 증원이 도착할 겁니다. 이번 증원에는 조종사들도 배치된다 하니 전하께서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조금 뒤에 계시지요.”

하지만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태만히 구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불가해요. 절대로.”

세희는 출격하지 않는 날마다 전선을 시찰하며 아군을 다독였다.

군인왕의 일화도 있었으니 최전방에 가진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전선 가까이에 있는 의무대 같은 곳을 방문해 병상에 누운 자들의 손을 잡아주길 꺼리지 않았다.

후방에 보내지기 전의 환자들은 땟국물과 피, 오물들이 묻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희는 단 한 번도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얼굴에 붕대를 감은 이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았던 것 같았다.

그녀가 즐겨보던 옛날 서사시나 소설에서는 영웅들이 얼마나 전쟁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는지 서술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었다.

단지 소설에 불과했다.

시인들이 영웅들의 영광과 업적을 노래하더라도, 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자들은 어디까지나 무명의 일인이다.

스스로 가진 가장 숭고한 것, 그들의 목숨을 바쳐가면서. 이 먼 곳에 와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자들.

그 순간만큼은 세희의 눈에는 조약국이니 제국의 이익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회의적으로 보였다.

정치인들, 심지어 자신 같은 황족들이 신민을 단지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희는 정치에 관여치 않더라도 평소 성품상 경당을 지지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귀당의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절실히 공감했다.

이유를 어찌 들든 간에 전쟁은 비극이다.

그러니 그녀는 이 비극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다행인 일이다.

“모든 조종사도 그러하겠지만 나도 직접 싸우러 온 겁니다. 하늘을 날고 있다고 우리가 이 전장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내 의무를 다하도록 해주세요. 지금 이 순간 저는 군인이에요.”

하지만 손규호는 총지휘관의 입장에서 그녀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것만큼이나 그녀가 행여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의 여파를 생각해야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녀의 불운은 개인의 불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 테니까.

“전하, 전하의 뜻이 정말로 숭고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대장은 이미 군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었다.

그의 눈에 이 젊은 여인은 그 혈기와 영웅심리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숭고함을 자처하고 죽는 것은 의외로 쉬운 일이다.

중년의 장군도 만약 자신의 목숨 하나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복잡했고, 참혹함은 희생을 너무 빨리 망각하도록 만들었다.

망각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높이 상승한 비행기는 떨어질 때도 가파르게 떨어지지 않습니까? 사기도 마찬가집니다.”

“…….”

“병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뺏지 마시지요. 공주님께선 스스로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전하의 행동 뒤에 닥쳐올 여파까지 모두 고려하셨습니까?”

엄격한 규호의 얼굴에 세희가 무어라 대꾸를 하려고 했지만, 규호는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군인으로서의 대접을 원하신다고 하셨지요. 그럼 상관의 합리적인 명령에 복종하세요.”

“…알아들었습니다.”

“이만 들어가 보세요. 해 참령.”

* * *

고려의 비행기 조종사들의 임무는 셋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정찰에 주력해 아군에게 첩보를 제공했다.

두 번째 부류는 기총소사로 아군에게 근접지원을 했다.

세 번째 부류는 선전지를 잔뜩 싣고 오스트리아 후방의 대도시들에 향했다.

이렇게 선전물을 뿌려대면 후방의 도시들도 전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것이다.

생각이 있는 자라면 전쟁을 지지하지 않을 터, 이들이 돌아선다면 국가의 행정은 조금씩 조금씩 그 효율이 떨어졌다.

심지어 고려는 선전전을 위해 비행기 기체를 새로 도입하기도 했다.

까치에 이어 만들어진 부익사 비행기 ‘기러기’는 다소 속력과 기동성에 중점을 준 까치와는 달리 항속거리에 유난히 많은 투자를 한 폭격기였다.

날개의 크기도 굉장히 컸고, 기관의 크기도 적재 연료통도 훨씬 컸다.

심지어 탑승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았다.

한계가 명확해 보였지만 일단은 폭격기였기에 폭장량도 많아 선전지 대신 항공폭탄을 적재할 가능성도 생겼다.

고려는 이 복엽 폭격기가 오스트리아의 주요한 대도시들 위에 무언가를 투하하고 다시금 귀환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보헤미아가 반쯤 우방국이 된 이상 가능성은 더더욱 커졌다.

보통 위험하기로는 두 번째 임무, 즉 기총소사로 항공지원을 하는 것이 제일 위험했다.

가장 안전해 보이는 것은 첫 번째 일로, 정찰 첩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아군 참호의 위에서 적 참호를 바라보며 적의 준비태세나 공격 징후 등을 수집하는 것은 그저 비행만 하고 있으면 되었으니.

그러니 상현은 차라리 세희가 첫 번째 임무를 맡기를 원했다.

전선에 배치된 판플루트가 그녀를 노리고 발사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밤중에도 몇 번씩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상부는 알아서 그녀의 임무를 바꾸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상현은 작전표를 위조하거나 혹은 세희의 기체를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직접 망가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해원이나 해청의 입김이든, 혹은 손규호 사령관의 판단이든 그게 옳았다.

“다행이야, 다행이다.”

비행계획표를 보던 상현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세희가 정찰비행편대에 배속되고 그가 폭격비행편대에 배속된 관계로 이제 그와 그녀는 같이 비행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 빌어먹을 ‘붉은 공주’는 상징성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애인을 태워서 보내기엔 정말 끔찍할 정도로 가시성이 높아 볼 때마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곤 했었으니까.

정찰에 주력한다면 아군의 눈에 보이기도 쉽고, 적의 화력에도 비교적 안전할 것이다.

상현은 기러기에 탑승했다.

“목표는 부다페스트. 출격 준비하자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불운은 특정한 사람도, 신분도 가리지 않았다.

정찰비행을 마치고 내려온 세희는 어수선한 비행단 막사의 분위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

“참령님, 그게….”

평소 다르크 상현과 잘 어울리던 장교 하나가 얼굴이 회색빛이 된 채로 그녀의 앞에서 우물거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애써 참던 세희는 마침내 그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나오자 온몸의 힘이 탁 풀린 듯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르크 정위가 속한 편대가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말]

까치가 뉴포르나 에어코처럼 일반적인 복엽 전투기라면 기러기는 암스트롱 휘트워스나 카프로니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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