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03화 (403/653)

백일의 꿈

그러나 고려가 명을 끝장내기 전, 먼저 그들의 입에서 먼저 항복의 소리가 나왔다.

내부의 분열이 터져 나온 것이다.

틈을 살피던 기회주의자가 마침내 움직였다.

양계는 하루아침에 고려 공군에 의해 팔괘주도가 불타오르고 그들이 자금성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채로 무언의 협박을 가하는 지경이 되자 기존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바꿔먹었다.

“고려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다!”

팔괘주도에서 벌어진 지옥도는 그의 악몽과 너무나 흡사했다.

지금 재빨리 편을 갈아타지 않는다면 자신이 잡으려는 줄은 하늘로 올라갈 것이고, 자신은 대신 저 겁화에 휩싸여 새카맣게 탈 것이 분명했다.

발등 정도가 아니라 무릎, 혹은 복부에 떨어진 불이 된 셈이라 양계는 필사적으로 인맥을 그러모았다.

이젠 동황비가 부리는 동창이건 나발이건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그 내시들은 지금 자금성에 그림자를 드리운 용을 보며 오줌을 질질 싸고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간 보고 있었다지만 양계는 그동안 꾸준히 인물들을 추리고 있었다.

자신이 추린 사람들도 경사에 있었으니만큼 팔괘주도에서 벌어진 일을 두 눈 똑똑히 보았으니, 서황비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마침내 첨도어사 양계는 개천력 445년이자 서기 1720년, 경사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경자정변(庚子政變)이었다.

척화파 신중론자들과 자강론자들이 벌인 이 정변은 동황비 정권을 무너뜨리고 서황비와 주문호를 다시금 명의 지배자로 올리게 되는 사건이었다.

서황비는 외세와 결탁한 후로 명의 신민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경사가 외세에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 지금 이 순간, 반대로 관리들과 사대부들에게는 서황비의 연줄이야말로 그들의 목숨을 구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일 터였다.

동황비는 거세게 저항했지만, 정변군을 이겨낼 수 없었다.

명의 군대는 자신의 총기는 닿지도 않는데, 반대로 저 하늘에서는 언제고 그 흉악한 화염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비행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정변군이 이리저리 들쑤시니, 이들은 무력하게 맡은 바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가는 것을 택했다.

기껏 손을 잡은 태평천국의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경사 밖으로 도망을 친 상태였다.

갈팡질팡하던 동황비는 마침내 태자를 데리고 제남으로 도망가 신정권을 수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는 늦었다.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자 빠르게 판단해 옥저의 대사관으로 도망친 서황비와는 다르게 동황비는 간발의 차로 경사를 탈출하지 못했다.

이미 경사의 정문들은 전부 폐쇄되었으며, 다른 탈출구조차 정변군이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동황비 모자를 찾아다니는 상황.

그녀는 마침내 태자를 데리고 선대의 능이 있는 자금산에 도착했다.

이곳은 고도가 높아 경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동황비가 가끔 바람을 쐬고 싶을 때 오던 곳이기도 했다.

또한 언제든지 적도들이 찾아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모자의 선택은 오직 하나를 의미했다.

‘붙잡아 욕보이려 해 보거라. 자결하면 그만이니.’

그곳에는 밧줄 두 개가 커다란 나무의 두꺼운 가지에 묶여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주문용이 발버둥을 쳤다.

“비참한 꼴로 죽길 원하지 않는다면, 태자와 나 모두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어머니, 저는 죽기 싫습니다. 저는 그냥 문호 형님과 영귀비 전하 아래에서 범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동황비의 손짓에 내시들이 태자의 목에 밧줄을 감았다.

― 어머니, 소자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들의 애절한 호소에도 동황비는 망설임 없이 태자가 디디고 선 의자를 발로 차 버렸다.

볼썽사납게 매달린 대명의 태자는 몸을 꿈틀거리고 손을 휘적이며 목에 걸린 밧줄을 긁어내리다 이윽고 눈을 까뒤집고 죽었다.

“나도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황비가 이내 자신의 목에 밧줄을 메었다.

그녀 모자가 잡힌다면, 줄곧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서황비가 그들에게 얼마나 잔혹하게 복수할지는 너무 명백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들의 뒤를 이어 목을 매단 채 스스로 의자를 걷어차기 직전, 동황비의 흔적을 찾아 산을 타고 오르던 정변군이 그 광경을 목도했다.

“저년을 살려라! 살려서 압송해야 한다!”

동황비가 재빨리 의자를 걷어찼지만, 정변군 중 그래도 사격 솜씨가 좋은 사수들이 밧줄을 쏘아 끊어버리니, 그녀는 죽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바로 옆 줄에 매달려 마냥 흔들거리던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동황비는 정변군에 의해 우악스럽게 포박당하고는 이내 어두컴컴한 감옥으로 감금되었다.

북왕의 회유를 시도했던 그 자리로.

* * *

옥저 대사관에 있던 서황비는 명나라 신조정의 추대를 받고는 주문호의 손을 잡고 다시금 환궁했다.

마침내 그녀는 명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주문용도 그러했지만, 태자가 된 주문호도 어미의 치마폭 속에서 자라 제대로 정치를 하긴 아직 어리숙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몇 년만 지난다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서황비의 수렴청정에 반대하는 신하는 아무도 없었다.

서황비는 즉시 외세에 대한 명군의 적대적 행위를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사관 거리는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다.

며칠 뒤 장강으로는 제국해군의 함선들이, 육지로는 이윤진의 군대들이 입성하자 경사의 나머지 구역 또한 평온을 되찾았다.

태평천국도 명과 손을 잡기 이전에 거의 끝났고, 근심거리였던 정치적 경쟁자도 제거한 그녀는 이전보다는 확실히 내부가 정돈된 채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외세도 그녀의 즉위를 반겼다.

그들은 서황비가 이 명에게 다시금 질서와 순응을 불러올 것이라 기대했다.

“다시금 복위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전하. 허나 이 외신의 눈에 이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보입니다만….”

물론 서황비 앞에 나아간 이윤진은 떨떠름한 얼굴로 황비의 곁에 서 있는 자신의 옛 부하를 바라봐야만 했다.

나라동훈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정작 황비는 몹시 태연하게 답했다.

“신(新)명의 외교 기조는 개화(開化)입니다. 나라 공은 비록 그대와 같이 명인이 아니라 옥저의 신하이나, 여러 가지 재주가 능히 있고 충성심도 강하여 내 특별히 앞으로 대명이 만들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의 업무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옥저 조정도 허락한 상황이니, 걱정 마세요.”

한순간에 명나라라는 거대한 나라의 몇 안 되는 실권자가 되어버렸다지만 여전히 자신을 어려워하는 옛 부하를 바라보던 이윤진이 내심 한숨을 내뱉었다.

‘동훈아. 저런 여자와 엮인다면 어차피 그 끝은 비극이 분명할 텐데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하지만 제아무리 열강들이 서황비의 조정을 환영했다더라도, 각국은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이제 이들은 사건의 뒤처리를 요구했다.

“대사관 공격은 천인공노할 만행입니다. 만약 명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여겨지길 원한다면, 이번 공격에 대해 큰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대사관 공격에 관해선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명나라 신조정은 마침내 외세들이 제시한 대부분의 요구사항을 수용했다.

경자년이 지난 이듬해, 명은 열강들과 조약을 체결했다.

이름하여 신축조약(辛丑條約)이었다.

이 굴욕적 조약으로 큰 배상금은 물론이고 광산채굴권과 산림채취권, 철도부설권과 같은 여러 이권이 외세로 넘어갔다.

명인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은 대체로 이 조약을 명의 업보라 여겼다.

하지만 과욕은 부리지 않았던 동아시아의 나라들과 다르게, 장사에서의 수모를 당한 프, 오, 포 3개국은 훨씬 더 많은 배상금을 요구했다.

누가 봐도 지나칠 정도였다.

3개국들의 입장에선 오스트리아를 제외하면 아예 군대가 전멸하다시피 했으니 당연히 자신들의 배상금을 더 요구한 상황이었다.

군대를 이끌던 알부케르크 후작과 같은 고위급 귀족들도 비참하게 목이 잘려 태평천국군의 장대에 올라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주장은 어쩌면 합리적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이 상황은 고려에 의해 훼방되었다.

개성신보 소속의 기자 박대기가 찍은 사진에는, 소위 말해 유럽의 문명국이라 주장하는 3개국인들이 명에 어떠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장사의 참사 이전에 무창의 대학살이 있었다.]

[3개국인들은 문명인을 자처하던 자들이 맞는가?]

[명실공히 지구상 최악의 식민국가인 포르투갈, 바스쿠 다 가마 이후로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을 운운하나 표리부동한 프랑스, 통령 외젠의 악마 같은 본성.]

[한때 로마라 불렸던 제국, 하지만 지금은 체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스트리아의 추악한 진면목.]

고려에선 노골적인 머리기사들로 가득한 신문들이 잔뜩 만들어졌다.

제아무리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시절이라 하나 유럽도 눈치라는 것이 있었다.

사진 신문이라는 것은 너무 확실한 증거자료가 되었기에 이들 나라는 내부에서조차 이 학살에 대해 부끄러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고려의 훼방 덕에 명은 3개국에게 그들이 요구한 과도한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적당한 양의 고기로 맹수들을 달랜 뒤 심신을 가다듬을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명의 심신을 새롭게 다듬기 위해 신설된 총리각국사무아문에서는 제대로 된 자강운동, 이제는 변법자강운동이라고 불릴 개혁을 주도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명도 다른 열강들처럼 철도를 깔고, 전신을 들여오고, 제대로 된 제철소를 짓기 시작하려 한 것이다.

후발주자인 만큼 그 속도는 매우 느릿느릿하겠지만 명에서 개혁의 성과가 이토록 괄목할 만큼 두드러진 것은 역사에 지금이 처음이었다.

서황비가 진정성을 보이자, 해외에서도 많은 투자금이 몰려들어 왔다.

옥저와 조선, 백제와 강화 등의 나라들은 지나를 하찮게 여기고 때로는 견제하긴 했다.

그러나 지나의 덩치―인구―가 원체 크다 보니 이 시장에 대한 욕망 또한 항상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여러 이권도 그들이 사이좋게 나누어 가진 상황이니 이 덩치 큰 소가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된다면 두고두고 우유를 뽑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반면 고려의 자본가들은 지나에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의외의 사건이 투자에 대한 국내 여론의 발목을 잡았다.

개성신보 기자 박대기는 사진뿐만 아니라 기고문을 통해 열강들의 대사관 방어전을 몇 화에 걸쳐 연재했다.

기자정신의 화신인 그는 사건을 제멋대로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그의 기고문에는 충격적인 사건도 가감 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 명인들이 식인을 저질렀다.

고려인들 사이에서 명인들의 인식을 최악으로 떨어뜨리게 된 박대기의 기고문은 고려가 왜 그 부도덕하고 야만적인 땅에 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반대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지나의 땅에 투자하는 자들은, 우리 선주에는 발도 못 붙일 줄 아쇼!”

“아즈텍의 교훈을 잊었는가? 식인종들과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

가뜩이나 명은 국제법을 완벽하게 무시한 전적이 있는 터라 사해 신용평가보고서는 명이라는 국가의 신뢰성이나 체제의 안전성을 거의 최하로 매기고 있었다.

서황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적어도 몇십 년간은 안정적으로 국가를 다스려야 할 터.

그때까진 고려는 직접적으로 명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려가 비록 단일한 국가연방이라 하나, 그 경제적 체급은 예맥한계 번국들이나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명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다만 고려는 여전히 명과 많은 무역을 유지했고, 심지어는 더 나아가 유럽인들이 뿌린 아편의 퇴치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러다간 반도를 통해 마약이 고려에 넘어오니 애초에 명에서도 아편의 세력을 줄여나가는 것이 맞겠다.”

고려의 철저한 반마약정책을 받아들인 명 조정은, 지금까지 했던 수십 년 동안의 반아편정책의 성과보다 훨씬 더 두드러진 최근의 몇 달의 성과를 받아들 수 있었다.

* * *

서황비의 치세는 개화의 측면으로 볼 때, 아마 명의 역사에서 가장 희망찬 시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외세는 여전히 그들의 땅에 빨대를 꽂아 꿀물을 마시고 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이대로 무사히 변법자강운동을 완수한다면, 명 또한 당당히 열강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시간이 한참 흘러야 하겠고 그녀 이후 비슷한 개화를 의지 있게 추진하는 지도자가 명에 계속 나와주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서황비의 치세는 너무나 위태로웠다.

그녀 자신의 도덕적 흠결도 많았다.

집권하자마자 그녀는 아주 잔혹하게 자신의 정적을 숙청했다.

그동안 시달린 것에 대한 복수인지, 반역자에 대해선 일고의 자비 없는 형벌을 집행했던 지나의 군주들의 선례를 좇은 그녀는 이윤진이 붙잡아 온 관수경 같은 태평천국의 수괴들은 물론이고, 한때는 같은 지아비를 함께 섬겼던 동황비에게도 책형을 집행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이미 목매달아 죽은 주문용의 시신 또한 관에서 꺼내져 시신이 여러 토막으로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이때에는 동훈의 만류조차 소용없었다.

태평천국교도들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교 잔당들에 대한 학살도 그녀의 지시가 있어 벌어진 일이었다.

마침내 학살이 자행되었을 때, 나라동훈은 길게 탄식했다.

‘대체 필요 이상으로 잔혹해질 이유가 있단 말인가?’

정치적 걸음도 살얼음판이었다.

나라동훈은 서황비의 총애를 업고 총리아문에서 외교적, 군사적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군대의 현대식 훈련과 옛 악폐습의 폐지 등은 그의 확연한 성과였다.

하지만 정변의 일등공신이 된 이후 명나라 최고 실권자가 된 양계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척화론자들은 사사건건 그와 총리아문의 행태에 대해 딴지를 걸어댔다.

서황비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마냥 동훈을 감싸주지 않았다.

동훈이 정말로 명나라를 위해 제대로 된 개혁을 요구하면, 양계와 같은 이들은 그보다는 더욱 온건한, 너무 온건해서 이게 과연 개혁은 맞는지 의심스러운 조항을 내밀었고, 서황비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런 것이 반복되자 동훈은 다소 지치는 것을 느꼈다.

둘은 자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전하께서 소신을… 마치 이용하고 계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고? 신분의 차이를 생각해 봐. 그게 설득력 있긴 해? 당신이 날 이용했으면 몰라도.”

불과 몇 달 전 저관파천을 했던 직후 축 처졌을 때와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동훈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서황비도 그런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어느 날은 그와 함께 경사의 대극장에 가서 연주회를 감상하기로 했다.

둘만 가기엔 눈치가 보이니, 태자까지 대동한 제대로 된 행렬이었다.

예산 하나는 정말 엄청나게 쓰던 주동휘가 고려의 예술의 전당마저도 모방하고 말 것이라며 야심 차게 만든 이 경사의 대극장은, 예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에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에서도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본래 이곳에서는 명이 후원하는 경극이나 가극(고려가극) 등이 공연되지만, 서황비는 동훈과의 추억은 물론이고 그녀 자신의 관심으로 직접 고려의 유명한 연주자들을 거금을 들여 초청해 놓은 상태였다.

대극장의 가운데 있는 황실석에서 가만히 손을 마주 잡고 지난날을 떠올리던 연인은 그동안의 갈등이 다소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고함을 쳤다.

“민족의 반역자! 거짓된 천자! 명의 달기!”

그리고 그 고함과 거의 동시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 탕 탕

황실석 앞의 좌석에서 벌떡 일어난 의문의 남자가 등을 돌려 권총을 발사했다.

쌍열총, 총열이 2개인 권총을 이르는 말이었다.

단 두 발밖에 쏠 수 없지만, 다혈총이 아닌 이상에야 여러 발을 쏠 수 있는 권총은 없었다.

그마저도 두 발에 한해선 쌍열총은 그 어떤 총기보다도 빠르게 발사할 수 있었다.

명의 태자를 향해 발사한 초탄은 정확히 주문호의 눈을 꿰뚫어 머리를 헤집고 뒤통수로 터져 나왔다.

명의 황비를 향해 발사한 두 번째 탄은 놀라 일어나려는 그녀의 갈비뼈를 부수고 오른쪽 폐를 관통했다.

놀라운 사격 실력을 자랑한 암살자는 곧바로 금군에 의해 사살되었지만, 이미 발사한 총탄을 되돌릴 수 있는 자는 그 아무도 없었다.

서황비가 변법자강운동을 벌인 지 불과 백오 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연인을 잃은 동훈의 비애감은 역사의 흐름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다만, 주문호와 서황비의 죽음으로 인해 명은 마침내 그 운명을 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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