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충의군 운동(4)
고려의 태평양함대는 현재 모항을 하와이로 두고 있었다.
아주 먼 예전에는 보급 및 바람 방향, 그리고 수송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사정상 미주에 그 사령부를 두었지만, 기술의 발전 이후에는 전 태평양을 전부 다 관할할 수 있는 최고의 요지인 하와이로 이전했다.
하지만 미주에서 하와이로 모항을 옮겼더라도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동아시아의 사정에 빠르게 대응하진 못했다.
여전히 지리적 제약은 심대했다.
그래서 고려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항구에 각기 소규모의 분함대를 파견해 놓아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고려가 직접 다스리는 곳도 있었고, 보호국이, 동맹국이 다스리는 곳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곳은 서귀포였다.
마긴다나오의 수도이자 항구도시인 다바오는 기후가 마냥 살기 좋다고는 말하지 못했고 거리가 주요한 세력들과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유구의 나하항은 꽤 괜찮았지만, 보호국도 아닌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있는 번국의 수도에 주둔군이나 함대를 파견해 놓는 것은 언제나 갈등 요소를 불어넣을 수 있기에 고려는 이를 최대한 지양했다.
물론 강력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개성의 경우야 조금 독특했다.
그래도 개성 항구인 신벽란도는 제아무리 공사를 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수심이 얕아 대규모 군항이 들어서기 힘들었다.
그러니 탐라의 서귀포 군항이 동아시아에 위치한 고려 군항 중 제일의 크기와 가장 큰 전단급 편제를 가지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부대 규모만큼이나 책임도 막중해, 탐라 전단장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지원할 의무도 가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혼란한 명나라 문제 때문에 경사의 대사관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던 서귀포 군항은 그 연락이 끊기자 곧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물론 제대로 된 보고가 아닌 정기 연락이 두절되는 것으로 전단 전체를 움직이기엔 약간 무리수가 있었다.
급한 일의 경우 초동 조치를 할 수 있었지만, 급하지 않은 상황, 예를 들면 그저 영파와 제주 간의 항로 날씨 악화가 그 문제라면 어쩔까.
평상시 같았으면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터.
게다가 지금은 이 반도의 고질적인 골칫거리, 태풍철이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이제는 괜찮았다.
이것을 통신 혁신이라 불러야 할까.
이제 탐라의 우려는 하와이에 빠르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고, 그곳의 명령도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전해져 내려올 수 있을 것이다.
작전의 융통성이 훨씬 늘어났다.
“하와이에 전신을 보내라.”
전단장의 말에 부관이 서둘러 통신실로 향했다.
탐라는 섬.
당연히 사면이 바다였다.
전신은 그곳을 건너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서귀포항에서 보낸 전신은 마치 검은 구렁이처럼 생긴 두꺼운 전신선으로 흘러들었다.
그 두꺼운 전신선은 분명히 바닷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신도 결국은 전기 신호라 당연히 바다에 들어가면 사라져버리는 것이 당연했지만, 전단장의 보고를 담은 전기적 신호는 완벽하게 절연이 된 전신선을 타고 대륙붕은 물론이고 그 아래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심해조차 빠르게 가로질렀다.
북태평양 해저전신선.
고려가 이제 육지를 넘어 세계의 바다조차 극복하겠다며 깔기 시작한 전신선이 비로소 완공된 것이었다.
이 전신선은 그저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해저전신선은 미주에서 하와이, 하와이에서 대곡도로 이어졌다.
통신 중심지로 활약하는 대곡은 대양을 건너온 신호들을 분석하여 다바오나 유구, 백제나 강화, 제주, 그리고 조선 등지로 보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는 자연적인 재난에도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해저전신선이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바다 건너의 상황을 훨씬 빠르게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개천 425년에 미주를 강타했던 대지진 이후 고려와 강화, 그리고 백제는 그들의 주요한 근심거리인 지진에 대한 공동연구와 공동대응체계를 구축했다.
그 선례를 바탕으로 이젠 삼국과 조선, 유구, 그리고 주가 참여한 태풍에 대한 대응체계가 비로소 코앞에 다가올 수 있었다.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곳은 대체로 서태평양 적도 부근 열대 수렴대.
다바오와 대곡도를 포함한 고려령 태평양제도에서 심상치 않은 징조가 나타난다면, 이 알림은 북방에 있는 나라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사실 백제와 조선, 강화의 경우엔 대체로 주와 유구를 덮친 태풍이 마지막으로 종착역으로 삼는 곳이었기에 아래의 나라들보단 사정이 좋았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종착역까지 도달하는 태풍은 그 규모가 상당히 강하다는 말이기도 하여 충분히 대비를 해 놓지 않으면 정말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아직 이 대응체계는 상당히 허술했고, 또한 모든 태풍을 전부 다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런 체계라도 당연히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월등히 안전했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국가의 품격이라는 것이지.’
전단장은 유구와 주, 그리고 다바오 등지에 보낸 날씨 확인 요청에서 어떠한 위험 조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고를 전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고려는 함대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이렇게 많은 자금을 투자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상국답게, 순전히 번국들의 안전을 위해 체계를 구축한 것이었다.
고려도 예로부터 마야만과 칼리나 해의 태풍이 얼마나 북려에 큰 고민거리인지 잘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고려 본토는 이제 고려인 특유의 촘촘한 행정을 위해 전 국토는 물론이고 전 도서에도 전신선을 깔려 시도하는 중이었다.
* * *
이렇게 상부의 승낙과 날씨의 위험 요소가 없다는 것을 파악하면, 곧바로 대응이 가능해진다.
전단장은 답변을 받자마자 함대를 장강의 하류, 상해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탐라에 있는 다른 부대, 공군에도 이를 알린 것은 당연했다.
“그대들도 준비하시오.”
“알겠습니다.”
아직은 군의 규모가 작아 장성급 지휘관도 거의 없다지만 공군은 상당히 중요했다.
앞으로는 더 중요해질 것이 분명했다.
고려는 잠재적 적국들도 이제 이 비행선을 어찌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비행선에 대한 공략법(너무나 쉬운)을 파악하고 있었다.
비행선의 시대는 저물 것이 확실했다.
공중에 체공하는 데 힘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탁월한 이점으로 그 항속거리는 대단했지만, 사실상 움직이는 과녁이라고밖에 말을 할 수 없는 그 우둔한 덩치는 포의 기술이 향상된다면 필연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 앞에서 고꾸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할 터.
하늘은 바다에 이어 새로운 전장이 될 것이었다.
이곳을 지배하지 못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었고.
지금도 그랬다.
“지나가 제아무리 추태를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강대한 나라임은 틀림없다.”
특히나, 명인들이 경사의 안전에 대한 집착은 상당했다.
바다로부터 끊임없이 몰려드는 위협을 상대하기 위해, 명나라는 장강의 가장 하구인 숭명도(崇明島)를 요새화하여 해안포를 즐비하게 깔아두었다.
장강 하류의 도시, 남통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아예 명의 함대가 주둔한 곳이었는데, 외국에서 사 온 군함들도 있었다.
고려는 제국해군의 함선이 노후화되면 일차로 해안경비대에 양도했다.
유지비가 막대하게 들지만 사용처는 마땅치 않은 전함처럼 해안경비대가 쓰기 어려운 함선이라 할지라도 어중이떠중이에게 그냥 판매하지 않았다.
판매하더라도 차라리 동맹국에게 파는 것을 선호했다.
동맹국이 사질 않거나 동맹국에게 팔 수조차 없는 경우라면 차라리 폐기처분하여 금속 자재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솔직한 말로 고려니까 가능한 부분이었다.
지금은 폐기처분된 금속 자재들을 잘 재사용할 방법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무기는 타국에 덤터기를 씌워 판매하는 것이 가장 이득이었다.
남통은 온갖 열강들의 철 지난 함선들이 즐비하게 많았다.
심지어 철 지난 목제 전열함까지 볼 수 있었다.
한때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프랑스와 조선 그리고 백제나 강화 등의 깃발이 달렸을 이 함선들은 이제 다른 나라에서 군사적 의미는 사격표적함 정도에 불과했지만, 명에서는 아직 현역으로 쓰였다.
그래서 전단장이 우려하는 것은 명에게 그의 전단이 패배할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숭명, 남통(南通), 진강(鎮江), 그리고 팔괘주도까지. 이 해안포가 깔린 곳 전부를 돌파하면 당연스레 시간이 지체된다는 거지. 게다가 장강은 명이 제대로 치수하지 않아 그 하류의 흐름이 복잡하다. 강폭 또한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도 강폭이 좁은 곳이 있어 방호순양함도 운용하기 까다로울 것이다.”
반면, 임무는 까다로웠다.
“조우한 백제 소속 상선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경사에 큰일이 났다는 것이 확실하다. 대사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면 일 분 일 초도 늦으면 안 돼.”
탐라전단장이 비행전대장을 바라보았고,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린 비행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 대응은 우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래야 할 것 같네.”
유럽과는 다르게, 명인들은 하늘을 상대하는 것이 지금 처음일 것이다.
비행선이라는 존재는 대비가 없다면, 정말 절대 막을 수 없는 종류의 공격이었다.
비행전대장도 자신이 있었다.
“자, 이참에 본국에서 가져온 신형 추진기관의 실전 성능을 한번 느껴보자고.”
기존의 석탄 추진 증기기관은 상당히 신뢰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 덩치로 너무나 많은 제약 요소가 있었다.
최소화를 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컸으며, 잡아먹는 석탄의 부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지금 이들은 새로운 추진기관, 즉 휘발유 기반의 내연기관이 마침내 비행선에 제대로 도입되자 이의 효용성을 하루빨리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압원통―충배 왕복행정 내연기관의 첫 특허는 개천 412년, 박효성 외 2명의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상업적 기관은 최근 일전 소속의 공학자 전용주와 백창욱이 440년에 들어서 2행정 및 4행정이라는 기관의 왕복운동을 정립하며 만들어졌다.
비행전대장은 공학자와는 거리가 멀어 내연기관의 자세한 사항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 거대한 증기기관이 빠지고 준수한 크기의 내연기관이 들어와 가용한 면적이 넓어졌다는 것은 몹시 환영했다.
부피가 커다란 석탄 대신 휘발유를 싣는 것도 좋은 일이었고.
물론 이 휘발유라는 것이 까닥 잘못하면 발화하는 무서운 물건이라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지만, 애초에 제작비 문제로 기낭에 부소 대신 수소가 들어차 있는 군용 비행선은 원래부터 극도로 민감하게 화기에 대해 주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자들이 이 공군이라는 자들이었다.
‘휘발유와 수소로 가득 찬 비행선에서 소이탄을 사용하다니,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간 종자들이다.’
온갖 종류의 고생을 다 하는 해군들과 해병대조차 지금 공군의 눈동자에 보이는 광기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믿어도 되겠지.’
* * *
전단장의 말대로, 고려는 일단 상해의 앞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저지당했다.
외국 함대가 자국의 최중요 강을 침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숭명도 요새의 명나라 장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미 백제 상선으로부터 개전 소식을 들은 고려 함대는 화기에 대한 제한 없이 명을 상대했다.
엄청난 양의 포탄이 숭명도 요새에 퍼부어졌고 장강에서 어물쩍거리던 명나라 배들도 가차 없이 불타 가라앉았다.
“상선이라도 방심하지 마라! 행여 저들도 활대기뢰 같은 흉악한 것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더라도, 고려는 함대를 신중히 움직였다.
고려 함대가 어차피 시간이 끌리니 일부러 이목을 집중시키고 요란하게 작전할 때, 약속한 대로 네 척의 비행선은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움직였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로 빠르게 경사에 도달했다.
그리고 해군에게 선물도 해줄 겸, 팔괘주도에 소이탄을 떨어뜨려 완벽히 기능하지 못하도록 불태운 다음 경사에 올라 대사관의 인물들과 통신했다.
― 번쩍 번쩍
거리가 있어 음성이 서로 오가진 못했다.
설령 비행정에서 확성기를 쓴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비밀로 하기 힘들었으며 대답도 듣지 못했기에 이들은 번쩍이는 빛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육지에 있던 고려 대사가 그들의 신호를 받고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오. 일단 비행선이 온 덕에 폭도들도 도망쳤으니 한시름 놓게 되었소.”
다른 대사들이 황급히 물었다.
“완전히 구출된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공군이 엄호가 가능하다지만, 진정 우리가 안심하려면 제국해군이 경사까지 도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오.”
포르투갈 대사가 물었다.
“저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밧줄이든 사다리든 뭐건 간에 우리를 싣고 올라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사, 포르투갈의 사람들도 지금 이 거리에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소?”
“…….”
대사란 자는 모름지기 자국민의 안전부터 챙겨야 한다는 기본적인 수칙을 이 귀족들은 거의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
‘하여간 포적 놈들이란.’
하지만 포르투갈 대사의 말도 아주 살짝은 일리가 있었기에, 고려 대사는 아녀자들이나 어린아이, 혹은 부상병들을 먼저 후송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공군은 난색을 표했다.
일단 이곳엔 계류탑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수송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득히 높이 있는 비행선에서 줄사다리를 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타고 오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게다가 가뜩이나 싣고 온 폭탄과 연료를 꽤 많이 소비한 비행선은 그 반작용으로 고도가 평시보다 위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비행선은 고도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사의 자금성에 대고 협박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 알겠습니다.
대사들은 사실 공군이 와 준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마웠다.
고려 대사는 폭도들이 물러난 틈을 타 빠르게 도심에서 물자를 확보하고 방어선을 재정비한 다음, 추후 제국해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원역사에서의 해저 케이블도 의외로 이른 시간에 성공했습니다.
1851년에 영국해협을, 1858년에 대서양에 깔렸습니다.
당시 해저케이블의 절연성과 내구도는 썩 좋지 않아서 얼마 못 가 통신이 실패했고 나중에 다시금 부설해야 했지만, 그래도 1866년에 깔린 대서양 해저 케이블(캐나다―아일랜드)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