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01화 (401/653)

척사충의군 운동(3)

본래 형주라 하면, 강릉을 포함하여 그 주변의 광대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크기는 호북과 호남, 하남의 일부까지 포함했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며 행정구역이 세분화함에 따라 여러 지역이 나뉘니, 이제는 하나의 도시에 불과했던 강릉이 형주라 불리게 되었다.

이곳도 태평천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곳이라, 무창에서 3개국군과 헤어진 예맥한계 및 강화군은 이곳을 노리고 진군하고 있었던 터였다.

“명군에게 졌다고?”

앞서 신나게 장사를 공격하러 간 3개국군은 이윤진에게 승전소식 대신 한 줌의 오스트리아 패잔병을 남겨주었다.

그 많던 군대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패잔병들은 이제 눈대중으로도 인원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 쫓기며 계속 추격대나 주민들의 공격을 받아 점차 수가 줄어들어 이 지경까지 와 있으렷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몹시 좋은 경우일 터다.

프랑스군이나 포르투갈군은 아예 정말 싸그리 몰살을 당한 모양.

그들이 포로로 있을지, 혹은 처형당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윤진은 구출작전을 펼칠 의지는 한 줌도 없었다.

패잔병들이 훌쩍이며 말하는 것들을 들은 이윤진이 인상을 쓰며 말머리를 돌렸다.

“전군! 회군한다!”

명과 태평천국이 손을 잡았다면 더 이상 진군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윤진의 부대도 회군하는 길도 녹록지 않았다.

태평천국 잔당들이 급습을 하는 정도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인지라 소소한 전투를 하고 난 뒤 알게 모르게 피로감은 계속 쌓여 갔고 이동속도는 계속 지체되었다.

무창을 박살 낸 까닭에 약탈에 참여하지 않았던 예맥한계 군대는 현지 보급이 어려웠고 보급선도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경사에 뭔 난리가 난 모양이구나.’

장강을 통해 듣는 소식도 썩 좋지 않아 군의 사기도 낮아졌다.

‘위험을 배제하고 마냥 신속하게 이동하기엔 우리 사정도 좋지 못하다, 그들이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바랄 수밖에.’

경사의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윤진은 자신의 군대가 그 기대에 부응할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 * *

옥저 대사관.

3층 귀빈실.

― 와아아

함성 소리가 가까웠다.

서황비는 그녀답지 않게 체면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 없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방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문득 내려다보니 손과 발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와 소자는 어떻게 되옵니까,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사옵니까?”

의자에 앉아있는 황자가 울먹였다.

열네 살이면 이제 의젓해도 될 나이, 도리어 어미를 안심시킬 수도 있으련만.

그녀는 한숨을 쉬며 주문호를 달랬다.

“괜찮아요. 이 어미가 태자는 꼭 보호할 테니까.”

하지만 아들을 토닥이는 와중에도 서황비는 자꾸만 누구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만류했지만, 전우들을 버릴 수 없다던 동훈은 기어코 총을 잡고 밖으로 나가 저들과 싸우고 있을 터였다.

속이 타들어 갔다.

물론 서황비가 아들과 연인의 안전을 걱정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명조정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들이 정말로 대사관 병력을 몰아쳐 마침내 이곳에서 학살을 벌이게 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물어뜯던 손톱에서 마침내 붉은 피가 새어 나오자, 서황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가락의 고통 때문은 아니었다

“어머니?”

“태자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 만년필을 들고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그리고는 그 서신을 들고 직접 옥저 대사관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그녀의 수발을 들어주어야 할 명나라 고용인들도 자리에 없었다.

기독교나 외래 종교를 믿는 명인들은 물론이고 외세에 고용된 명인들도 간적들이라 여겨지며 저 태평천국군의 복수 대상이었으니, 그들도 살기 위해 이 전투에서 외국인들을 도와주어야 했다.

싸우지 않는 비전투 인원들도 전투 인원에게 물자를 공급하랴 부상자를 후송하랴 혼잡한 이 상황 속에서, 그녀는 계속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거기 너, 대명의 사람이냐?”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한 사람을 발견하고 외쳤다.

후줄근한 것이 경사 명인들의 복식이 틀림없었고, 어리숙해 보이는 것과 많이 먹지 못해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작은 것이 명인이 확실했다.

“예, 예?”

“이리 와 보거라.”

한낱 명인이 서황비를 알아먹지는 못했지만, 왜인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명인 청년은 그녀에게 달려갔다.

같이 온 기자는 진작에 헤어졌지만, 청년은 이곳이 봉쇄되어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너는 지금 이 길로 여길 빠져나가 양 첨도어사에게 이 서신을 전하라.”

“예?”

“어서!”

이 아이가 적에게 붙잡혀 편지의 내용을 누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일부러 인장도 찍지 않았으니, 그녀는 자신이 이런 편지를 썼다는 증거조차 사실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받는 사람은 편지의 내용으로 충분히 발신인을 확신할 수 있으리라.

“어… 어떻게 나가옵니까?”

첨도어사라 하면 정4품의 높은 고관일진대, 그러한 자의 관직을 거리낌 없이 부르는 그녀의 신분을 눈치챈 청년이 무릎을 꿇었지만, 명은 받은 것은 둘째 치고 그가 대체 어떻게 나간다는 말인가?

서황비는 그 청년을 잡아끌었다.

“경사 대사관 거리와 황성엔 새로이 신식 하수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마 중단되었겠지만, 몇 달 전만 해도 자그마한 예산을 배정하여 계속 공사하고 있었지.”

이는 당시 자강파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한때라도 명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라 있었던 서황비는 만약 불의한 일이 생긴다면 자신과 태자가 빠져나갈 출구 정도는 생각해두고 있었다.

“완공되지 않았고 시공된 곳도 한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몹시 비좁고 열악하겠지만, 너는 체구가 작으니 능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서황비는 그의 등을 떠밀었다.

“가거라, 어서! 너에게 대명의 운명이 달려있다!”

* * *

경사의 거리가 혼란스러운 것은 비단 외국인 거리와 대사관 거리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관대작들이 사는 곳에서도 불길한 기운이 팽배했다.

폭도들이 경사를 휘젓고 다니는 지금, 명의 관리나 지식인들도 행여나 그들의 무도한 손길이 그들의 가택을 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장정들을 동원해놓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엔 적어도 출입은 삼가고 있었다.

도찰원의 첨도어사 양계도 마찬가지였다.

고급스러운 차를 달여놓고 가만히 붓을 놀려 답답한 마음을 시구(詩句)로 해소하려던 양계는 대문이 시끄러워지자 아랫것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떤 비천하고 어린 놈이 스스로 어사께 드릴 중요한 편지가 있다 하였습니다.”

“이리 들여보내거라.”

“허나…….”

아랫것이 머뭇거렸다.

명의 권력다툼은 몹시 혼탁하여, 편지지에 극독을 발라 정적을 암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네가 보기에도 수상한 그런 아이가 무슨 흉계 같은 것을 지니고 있겠는가. 어서!”

이런 혼란한 시대에는 그런 밀서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었다.

도찰원의 핵심 인물인 그는 더더욱.

똥물인지 흙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되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어린 청년은 덜덜 떨면서 자신의 품에서 밀서를 꺼내었다.

종이조차도 축축해져 냄새가 좋지 않았지만, 양계는 내색 않고 그것을 받아 들어 펼쳤다.

‘고려산 종이다. 유먹을 담은 만년필로 쓴 모양이구나.’

눈치채지 못하기엔, 종이의 질이 너무 차이가 났다.

바로 괴청년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 판단한 그는 서신을 가지고 곧장 내실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내용을 파악했다.

[당금 명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에게 이 서신을 보내오.]

화자와 청자를 비롯해 수많은 말들을 애매모호하게 쓴 서신.

하지만 양계는 빠르게 서신을 쓴 사람의 정체를 파악했다.

‘서황비가?’

도장이 없어도 그 정도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척화를 주장했음에도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까닭이 무엇인가?’

물론 이해는 갔다.

명 조정에, 아니 경사에 이제 서황비 파벌은 거의 존재치 않았다.

자강론자들은 숙청되었거나 떠났거나, 삼엄히 감시를 받거나 혹은 그녀를 배신했다.

그렇기에 서황비의 밀서가 도리어 자신에게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그도 알고 있었다.

대외 신중론에 속했지만, 양계는 엄연히 척화의 기치를 내건 사람 중 하나였다.

심지어 그는 지금 이 편지를 들고 곧바로 동황비에게 찾아가 득의한 웃음을 지으며 넘겨줄 수 있었다.

‘이 청년을 고신하면 어떻게 포위된 대사관 거리를 빠져나왔는지 알 수 있겠지. 그 경로를 우리가 역이용할 수도 있다.’

양계는 거기까지 생각을 굴렸다.

그러나 언제든지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었을 그는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서 편지의 내용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어내렸다.

서황비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양계라는 사람은 상당히 보신주의적이며 또한 기회주의적이라 애초에 척화니 뭐니 하는 것들은 별 상관 없이 여기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살기 위해선 양계는 재빨리 편을 갈아탈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빠른 촉으로.

그리고 그의 그런 촉은 지금 동황비의 조정도 썩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지금은 완만하지만,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비탈길에 굴러 내려가는 느낌이라 할까.

심지어 엊그제는 자다가 경사에 떨어지는 포탄의 비를 맞고 그 자신이 육편 조각이 되어 흩날리는 악몽을 꾸었기도 했다.

일단 양계는 아직도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는 서신을 촛불에 태웠다.

동황비에게 건네줄 수도 있었지만, 그 선택은 배제했다.

만약 명 조정이 썩은 줄이라면 서황비의 줄이라도 잡아야 하는 것이 맞았다.

저관파천과 같은 것을 보면, 서황비의 줄을 택한다면 외세에게선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흠, 그래도 바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 될 일이야.’

동황비의 눈을 피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구해본다는 명목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몸값을 조금 더 올려 보도록 하자.

* * *

이윤진도 제시간에 오긴 요원해 보였고, 서황비의 회유정책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는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대사관 거리는 여전히 굳은 의지로 항거하고 있었다.

구역 하나가 붕괴되어 방어선 전체가 흔들릴 뻔한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야음을 틈타 공격해와 긴장이 다소 풀어진 방어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꿋꿋이 맞서 계속 시간을 끌었다.

결국 누군가는 와 주리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결국 그들도 한계에 다다랐다.

음식과 물의 부족도 필연적이었지만 가장 절실한 것은 화약이었다.

정말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지닌 폭도들에 맞서러면, 그만큼의 화력이 필요한 법.

그렇기에 이들이 가진 군수품은 빠르게 동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각국 군대가 죄다 모여 있다 보니, 화약 자체 성분을 제외하고는 혼용되는 탄약도 각양각색이었다.

심지어 나중엔 혼자 무연화약을 쓰던 고려군도 다른 나라에서 받아온 흑색화약과 뇌홍으로 종이탄피를 만들어 써야 하는 퇴보를 겪기도 했다.

비교할 수 없는 그을음에 총이 기능고장을 자주 일으킨 것은 덤이었고.

게다가 폭도들도 학습 능력이라는 것이 있는지, 자기들도 총탄이 쉽사리 관통하지 못하는 장애물들을 쌓아가며 전진하자 방어군은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들이 마침내 원시적이지만 아주 효과적인 공격, 즉 불이 붙은 물체를 집어 던지며 화공을 실시하자, 대사관의 방어군은 크게 기세를 잃었다.

소방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녔지만, 피해는 계속 누적되었다.

“가뜩이나 마실 물도 모자란데…….”

번지는 불에 오줌을 싸느니 뭐니 지시해도 마시는 물이 있어야 오줌을 쌀 수 있지 않은가.

“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화약이 다 젖어버리길 원하는 거야?”

“죽더라도 물은 마시고 죽는 게 낫지.”

마침내 절망이 피어올랐다.

어차피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병사들을 휩쓸자, 방어군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방어선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고, 이제는 정말 몇 개 되지 않는 건물에 오로지 소수의 인원만이 헉헉대며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정예한 고려군조차도 흐트러진 심신을 수습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거 알아? 저 인간들, 외국인 거리의 사람들 시신을 먹었다더군.”

먼 동이 트는 이른 아침.

저항과 저항 사이, 그 찰나에 겨우 장애물 어딘가에 몸을 숙이고 쉬고 있는 방어군들 사이로 경계를 서던 몇 명의 병사들이 잡담했다.

고려인 기자 한 명이 알게 된 사실은 병사들에게도 퍼져 나간 모양이었다.

설마 자신의 시신도 저들의 배 속에 들어갈까 끔찍한 생각을 하며 안 그래도 더욱 사기가 떨어지던 병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격렬히 욕설을 내뱉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

“식인을 하는 인간 말종 놈들은 전부 다 죽여버려야 해.”

그는 비틀거리며 총을 짚고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의 병사들은 차마 그보고 네 고향이 선주가 아니었냐고 질문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병사의 결의와 분노가 전황을 바꾸지는 못한다.

전황을 바꾸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었다.

정말로.

― 웨에에엥

“이게 무슨 소리야!”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사람들이 깨어나 수군거렸다.

하지만 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 아니 너무나 이 소리에 익숙해져 있던 고려인들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보았다.

어슴푸레한 동 사이로, 반가운 것들이 보였다.

지금 들리는 것은 익숙한 경보기 소리.

분명히 손으로 회전시켜 경보음을 발생시키는 기구가 틀림없었다.

훈련 때마다 저 소리를 듣는데 모를 리가.

비행선 밑에는 사람보다 더 큰 거대한 원뿔 모양 황동 확성기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지면을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마침 이곳을 향해 있는 모양이다.

그토록 먼 거리에서도 목소리는 선명했다.

― 후, 후

확성기에 바람을 불어보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선량한 명인들이여 들으시오.]

확성기에서는 명나라 말이 들렸다.

네 척의 비행선들이 다가오니, 그 목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고려의 행사에 개입하지 마시오.]

폭도들도 멍청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의도는 정의로우니, 이에 반하지 않는다면 안전할 것이오.]

“…….”

[우리는 제국 공군이오.]

“날아다니는 고려인이다!”

누군가 해석을 해주기도 전에 양이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기낭에 대문짝만하게 그려져 있는 것은 고려 제국기 그리고 제국 공군의 깃발인 관모수리기였다.

적일 때는 그렇게 끔찍했던 것들이, 아군이 되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사람은 말만으로 설득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고려도 먼저 당한 것이 있으니, 한바탕 어딘가 무력시위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높은 하늘에선 민간과 태평천국을 자세히 구분하지는 못했으니, 태평천국과 손을 잡았다는 명군을 혼쭐내는 게 맞았다.

그리고 고려는 그동안 수집한 첩보를 통해 명의 군사시설 위치 정도야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었다.

민간인들에게 한차례 군사시설에서 떠나라 경고한 비행선은, 경사로 오기 전 꼭 거쳐야 하는 꽤 커다란 하중도, 팔괘주도(八卦洲島)에서 멈춰 섰다.

이곳은 명이 의도적으로 개발한 장강의 군사요충지로, 해안포를 들여와 꽤나 견고하게 요새화되어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장강과 상당히 가까이 있는 대사관 거리에서도 앞으로의 광경이 잘 보일 것이다.

대사들은 삼삼오오 가장 높은 고려 대사관의 건물로 향했다.

그동안의 방어자가 구경꾼으로 바뀔 때, 그동안의 구경꾼은 졸지에 방어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해 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고… 공습이다!”

밑에 있는 명군들이 혼비백산하며 어찌 총을 위로 쏘거나 하려 했지만, 이미 몇 년도 전에 콘스탄티니예를 공격하던 러시아군들이 시도하다 실패했던 것을 이들이 성공할 리가 만무했다.

― 투하하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항공폭탄이란, 명중률이 형편없어 본래는 큰 정확도를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항공폭탄과 달리, 고려가 지금 쏟아내는 폭탄이 지면에 닿자 실로 어마어마한 화염이 피어올랐다.

착탄된 지역에 있는 명군들은 지독한 화염에 숯덩어리가 되었다.

살아남은 명군들도 사방으로 번지는 불길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을 부었지만,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고 도리어 가열차게 생존자들에게 향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대사들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꺼지지 않는 불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송나라 시절에 맹화유궤가 있었다지만, 유럽인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단어를 먼저 내뱉었다.

“그리스의 불…?”

하지만 분명히 저 화염폭탄은 역사에 적힌 규모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화재의 특성상 명중률이 형편없어도 불길이 알아서 번지니 이 어찌 효과적인 무기가 아닐 수 있겠는가.

팔괘주도에 있는 명군이 온몸에 붙은 불길을 끄지 못해 차라리 장강에 투신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비행선은, 솟구치는 뜨거운 열기에 기낭이 영향받지 않기 위해서인지, 혹은 다른 목적이 있는지 이제는 방향을 틀어 경사로 다가왔다.

명인들의 눈엔, 정말로 불길을 내뿜는 용이 그들 수도의 하늘에서 진노를 토해내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경사를 탈출하기 위해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불길은 제어할 수 없으니 그들이 대사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폭탄을 투하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건만, 명인들은 서로 성문을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다 압사당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화의 대사가 옛날 옛적 불타올랐던 도쿄의 설화를 떠올린 듯 방광에 힘이 풀려 그만 바지에 실례를 해버렸지만, 그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조선 대사가 마찬가지로 혼비백산한 유럽인 대사들을 둘러보다 고려 대사에게 슬쩍 귀엣말을 건넸다.

“저… 저것이 무엇입니까.”

명실공히 군 기밀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쓴다는 말은 상부에서도 이제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터. 고려 대사는 흘러가듯 말했다.

“소이탄일 겁니다.”

그 옆에 있던 백제 대사가 꿀꺽 침을 삼켰다.

“오랑캐(明夷)를 불사르는 탄이라, 과연 그렇군요.”

고려 대사는 무언가 추가적인 설명을 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