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통일 전쟁(4)
그 후 아라비아는 한동안 평화로웠다.
스승께서 약속하신 번영이 이제 곧 아랍의 땅에 찾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사우드가 멸망하고, 다시금 그 부족의 이름이 이전의 알 무크린으로 되돌아간 이후 에미르들은 모두 메디나에 모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아랍 에미르 연방국의 설립을 천명했다.
아랍 연방의 수도는 메카의 샤리프 말대로 메디나로 정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랍 연방의 초대 국가 원수, 즉 아랍 연방의 모든 에미르들의 위에 있을 대에미르(대통령, رئيس)는 하팀으로 결정되었다.
칠 년이라는 긴 임기에다가 지금 이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연임제한이 없어 강력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아랍 연방의 대통령에 하팀이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고려와 샴마르의 우호 관계도 컸겠지만 하팀 자신이 다른 에미르들이 요리할 만큼 나이가 어려서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이 지긋한 에미르들이 대통령에 오르는 건 골치가 아픈 일일 것이 분명하니까.
또한 그가 사우드를 처결하며 보여준 관대함은, 어린 나이임에도 무슬림들의 존경을 받기엔 충분했다.
알 무크린 가문의 에미르가 된 파르한은 하팀의 가장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었으며 둘은 이후에도 우정을 나누었다.
오스만은 너무나 혼란해서 개입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이들은 아마 고려가 앞으로는 오스만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명실공히 오스만의 봉신 제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라비아의 에미르들을 책동하여 독립국을 건설하게 한 것에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사 술탄의 비극들이 시작되는 이 시기,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는 유일한 세력은 고려밖에 없었으니, 어찌 항의를 할 수 있었겠는가.
고려는 아랍 연방에게 한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베네치아와 이탈리아 등 다른 해양 열강들이 어찌 아라비아의 땅에 간섭을 해 보려고 했지만, 약속대로 고려는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이들의 모략을 막았다.
이들의 영토는 알 우르둔(요르단)과 헤자즈를 포함하고, 예멘과 오만을 포함하지 않는 아라비아반도의 전역.
그리고 고려가 99년 동안 조차를 할 예정인 두바이 인근의 조약 해안까지 포함했다.
아랍 연방은 지금 사파비 페르시아가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는 아라비아 동쪽 해안가의 땅들도 수복하길 원했으나, 사파비와 싸우는 것은 아직 원하지 않았다.
사우드 가문의 팽창주의 정책과 카디자델리를 동반한 다소 폭력적인 대외 외교와는 다르게, 아랍 에미르 연방국은 주변국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시도했다.
사우드 같은 중앙집권적인 나라는 영토욕과 정복욕이 발동하겠지만 아랍 에미르 연방국은 남쪽에 있는 에미르가 아니라면 굳이 떡고물도 없는 전쟁을 원하진 않았다.
비교적 수니와 공통점이 많은 마드하브라고는 하더라도 엄연히 시아파의 일파 중 하나인 자이드파가 다스리는 예멘이나, 시아도 수니도 아닌 이바디파가 다스리는 오만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은 아랍 연방의 종교적 관용이 이전의 사우드와는 다르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아랍 연방 북쪽의 땅도 연방 설립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요르단 너머의 땅은 베두인들과 아라비아의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민족적으로는 다소 이질적인 무슬림들이 살았기에, 그들은 아랍 에미르 연방국과는 묶이지 못했다.
아마 그들도 머지않아 자신들만의 나라를 원할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시리아 등과 같이 불릴 나라들을.
그때가 되면 아랍 연방은 스승님께서 입에 달고 다니시는 말씀과도 같이 국제무대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이들의 독립을 지지할 것이다.
마치 고려가 그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 후에는 아라비아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고려와 아랍 연방은 공동의 번영을 위해 일단 고려―아라비아 석유회사를 합작하여 창립했다.
아랍 연방의 주식이 5할 1푼, 고려가 4할 9푼으로, 회사의 소유는 아랍 연방이 가져갔다.
다만, 고려―아라비아 석유회사는 청해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 이후에는 아랍 연방 철도 주식회사니 하는 국가 기간사업 합자회사들이 들어서니, 역사적으로 중요했으나 지금까지 한적하고 낙후되었던 땅은 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국가적인 일 말고도 개인적인 경사도 생겨났다.
스승은 아랍 연방이 설립된 후에도 삼 년은 남아계셨다.
경애하는 스승께선, 일신의 무위와 용맹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도 찬탄을 금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셨다.
실로 국가 운영에 대해 밝으시니, 어린 나이인 하팀은 열네 살의 소년에서 열일곱 살의 청년이 될 때까지 삼 년간 최고의 스승 곁에서 국가 운영의 묘리와 정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에미르들은 제아무리 관대하며 총명하더라도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는 소년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꿈꿨겠지만, 그 뒤에 스승이라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사이, 하팀의 누이 아이샤는 마침내 그녀의 소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아랍 연방은 종교적, 베두인적 금기를 깨고 무슬림 처녀를 비무슬림과 결혼시키기로 했다.
고려와의 약조는, 솔직한 말로 아직 고려의 대외 외교 노선과 고려의 석유에 대한 미래전략을 자세히 모르는 아랍 연방의 수뇌들로서는 허황되기 짝이 없는 약조였다.
그래서 아랍 연방의 수뇌부들은 전통적인 인연도 맺어나가길 원했다.
그토록 신분이 높아 보이며, 무슬림 세계에서 엄청난 위업을 쌓았고 또한 샴마르인들을 포함한 많은 무슬림들에게 존경을 받는 고려인 ‘스승’이 자신들과 결혼동맹을 맺길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히 에미르 중의 에미르이자, 국가수반의 친족이 합당했다.
자신의 나이보다 두 배에서 세 배가 넘는 오만하고 짜증 나는 예니체리 지휘관과 결혼할 뻔한 누이는 지금의 정략혼이 결정된 후에는 그저 하루 종일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어쩔 줄 모른 채 덤벙거리며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 가지 국책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하일 오아시스에 파견된 고려인 관계자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현 고려의 풍습에는 남녀 모두 고려 나이로 열여섯이 넘어야 결혼이 가능하다 했다.
그 이전에 결혼한다면 조혼으로 규정되었고 불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지탄을 받는단다.
사회적으로 불안하거나 낙후되어 있을 때 조혼의 풍습이 성행한다고 들었으니 아마 고려는 이미 예전부터 조혼의 풍습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샤는 이미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고려의 법에도 저촉되지 않았고 하팀은 이를 다행으로 여겼다.
누이가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스승께 매료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이샤의 결혼 날, 남매는 마지막 이별의 대화를 나누었다.
“잘살아야 해.”
사실 이슬람에서의 사촌 결혼은 금기가 아니었고, 또한 베두인 사회에서도 평행 사촌에 대한 결혼은 꽤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마 하팀도 아이샤와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스승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예니체리 지휘관과의 혼례가 무위로 돌아간 이후에 결혼했을 운명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남매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왔기에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았으니 하팀은 순수하게 그녀가 스승의 곁으로 가는 것을 반겼다.
또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누나는 동쪽에 있는 신앙의 형제들을 찾아.”
하팀이 어느 순간 그들, 제국교와 쿠쿨칸교를 인지한 것처럼, 그들도 하팀을 그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고려와 교류가 시작된 이후부터 자신을 같은 ‘형제’라 부르며 접근한 제국교 사제가 있었다.
명백한 이교도.
그것도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교도였다.
분명히 훌륭한 무슬림이라면 크게 화를 내며 쫓아냈어야 했다.
하지만 하팀은 그자를 내치지 않았고 도리어 그자의 무리들을 은밀히 불러 환대했었다.
“나는 아라비아의 대에미르요.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그대들의 말을 들으면 크게 곤욕을 치를 신분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형제여. 그대의 비밀신앙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형제가 스승으로 칭하시는 그분에 대한 사실들을 전해 드리려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세이경청하겠습니다.”
‘직접 보고 들은 자’들은 다른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하팀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스승의 진정한 실체와 해오신 행적들, 그리고 그 비범함에 대해서.
그래서, 하팀은 자신이 자신의 이름에 대한 숙명을 깨달았듯, 누이 또한 누이의 이름에 대한 숙명을 깨닫길 바랐다.
자신이 써가던 기록이 끊기더라도, 누이가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할 수 있게.
그리하여 그분이 거니신 이곳 아라비아의 땅에 살아가는 우리 또한 진정한 신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 * *
상민은 아라비아의 문제도 해결함과 동시에, 뜬금없이 아이샤와 결혼까지 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는 사별할 때마다 매번 후회를 하면서도, 결국에는 남자라는 존재가 여인의 온기가 필요한 생물임을 인정했다.
몸과 마음이 초인과 다름없다 하더라도.
그가 삶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스릴을 즐기는 것처럼, 그가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삶의 안식도 필요했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상민은 진작에 피에 미친 광인이 되거나, 혹은 신민들을 사람이 아닌 그저 부품으로 여기는 소시오패스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면에서 아이샤는 정략결혼도 충족했고, 지적 능력에 따른 부부간의 교류도 충족했으며 상민 개인의 미적 기호도 충족하는 좋은 배우자라고 할 수 있었다.
“…….”
이 빌어먹을 놈들만 아니면, 아이샤는 단지 일개 고려인 아무개 박성민과 결혼했다고 후대에 전해지게 될 텐데.
상민의 분노 섞인 시선을 본 사도가 목을 움츠렸다.
“대체 왜 헤자즈에 대고 포함외교를 했나?”
“송구하옵니다….”
“그대들이 나를 믿지를 못하는데, 내가 그대들을 어찌 믿겠나?”
“송구하옵니다!”
사막 잡것들에 의해 태조의 신변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해원도 여의국도, 모두가 놀라 과잉 대응을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단 한 번도 목숨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상민은 하마터면 대계에 초를 칠 뻔한 이들의 행동을 나무랄 뿐이었다.
‘무선 통신이라도 개발되어야지….’
하지만 그때가 된다고 해도 이들의 과보호가 사라질까.
상민은 하팀에 대한 교육과 뒷정리가 끝난 뒤에는 아이샤와 함께 두바이로 복귀했다.
이곳도 불과 몇 년 만에 천지가 개벽하게 바뀌고 있었다.
처음부터 철저한 계획도시로 만드는 만큼 앞으로도 아라비아의 다른 도시들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성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민은 아마 짧은 시간 내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기에 마지막으로 도시의 광경을 눈에 담고는 아라비아를 떠날 준비를 했다.
다시금 고려로 돌아가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
아라비아는 중요한 땅이었지만, 세상에는 상민의 관리 감독이 필요한 곳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평화도 잠시, 아라비아에는 지금까지 불었던 폭풍보다도 더욱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유럽 세력은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물산도 나지 않는 사막에 집착하는 고려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고려의 행사를 막을 충분한 동기가 없었다.
아직까지 석유라는 것은 아라비아인들도 그 잠재력을 몰랐고, 유럽인들도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유럽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있었다.
페르시아.
이들은 고려조차도 견제하지 못하는 그들의 군주 아래에서 사방으로 야욕의 손아귀를 내밀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는 이웃 오스만보다도 먼저 몰락했다.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왕조가 끝장나고야 말았던 것.
빈 왕좌는 희대의 영웅이자 희대의 전쟁광이 차지했으니.
‘이런, 내가 어찌 이자를 고려하지 못했던 걸까.’
유럽의 역사와 대비해,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상민도 썩 해박하진 않았다.
아라비아까지 직접 와서 역사를 배운 뒤에야 돌아가는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디르 샤’는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자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인물이었다.
미리 생각을 해 놨어야 했다.
물론 살아가는 역사가 너무나도 많이 바뀌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본래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빨리 죽거나, 태어나지 못한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디르 콜리는 역사의 변화에 지워질 정도로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모양.
목동이라는 그리 대단치 않은 출신임에도 타고난 군사적 재능은 정말로 대단하여, 나디르 콜리는 금방 빠르게 성장해 중앙아시아의 유명한 무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711년, 그동안 사파비가 저지른 잔혹한 시아파 강요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수니파 파슈툰계 부족이 그들의 근거지인 아프간에서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페르시아는 크게 흔들렸고 심지어 수도가 함락당하기까지 하는 굴욕을 겪었다.
당대 페르시아의 샤는 몸을 피해 북쪽으로 도망가야 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샤는 그때 러시아와 부하라, 히바 등의 국경선을 오가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군벌 겸 도적 떼의 수장인 나디르 콜리를 만날 수 있었다.
한눈에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샤는 그를 페르시아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나디르 콜리는 샤의 신하이자, 나디르 콜리 벡으로서 파슈툰 반란을 진압해내었고 반란군들을 아프간으로 다시금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군벌의 야심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
이성계가 고려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듯, 나디르 콜리 벡도 마침내 사파비 왕조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는 1715년, 스스로 샤의 자리에 올라 아프사르 왕조를 창건하기에 이르렀다.
한 나라의 왕조가 바뀌는 일은 꽤 흔한 일이었다.
페르시아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제국들의 요람이었지만, 그것도 먼 과거의 일이었지, 지금은 그 위세가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려가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그저 전쟁에 미쳐있는 광인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왕조를 창건하자마자 나디르 콜리는 곧바로 아라비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번 기억해내니, 상민은 금세 이 전쟁광에 대한 다른 일화도 떠올렸다.
나디르 콜리가 한 저명한 이슬람 학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의 일이었다지.
그 성자는 나디르 콜리에게 이슬람의 천국, 잔나(Jannah)를 설명했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영원한 행복의 정원에서 당신은 맛있는 포도주와 고기, 과일을 영원토록 먹을 수 있다고.
또한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당신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그러나 나디르 콜리는 곧바로 그 학자의 말에 반문했다 한다.
― 그곳에는 적이 있소?
당연히 학자가 부정하자, 그는 금세 시큰둥해졌다지.
―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곳에서 어찌 행복을 찾을 수 있겠소?
이 정도면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린 자가 아닌가.
상민은 정보총국 대외부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차근차근 넘겼다.
“러시아가 그들의 배후에 있는 것 같다고?”
“예, 블라디미르의 최측근인 표트르 로마노프가 이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합니다.”
상민도 표트르는 몹시 잘 알고 있었다.
나디르 샤와 표트르의 합작이라.
어울리지 않았다.
제아무리 블라디미르와 표트르가 대단하고, 러시아가 고려에 뒤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하다 해도 나디르 콜리가 누구 밑에서 개처럼 뛰어다닐 인물 같지는 않았기에.
‘강 대 강의 연합이라.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가진 못할 테지.’
하지만 이를 깨트리기 위해선 적어도 저들에게 거대한 균열부터 먼저 선사해야 했다.
고려가 아라비아를 서아시아와 중동 외교의 파트너로 삼았듯, 러시아도 페르시아를 파트너로 삼은 모양.
지금 이 상황은 이슬람 세계의 시아―수니 갈등뿐만 아니라 고려―러시아 간의 패권전쟁의 일환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졸지에 아랍 에미르 연방국은 국가설립 이후에 곧바로 최대의 숙적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어쩔 수 있는가.
그가 해결해야지.
사파비, 그리고 사파비의 후계인 아프사르를 해결해야 시아―수니의 분쟁도 풀어낼 실마리가 보일 터.
그리고 상민이 하팀과 아랍 연방에게 한 약속도 있었다.
“아랍 연방이 위협받을 때, 고려가 응답하겠다 말한 적이 있었지.”
“부디 명을 내리소서.”
상민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도가 명을 받들기에 앞서 무릎을 꿇었다.
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땅이 맞았다.
거대한 제국도 맞았고, 그들의 왕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페르시아라는 제국에게 겁을 먹기에는 고려는 너무나도 강했다.
이곳이 제국의 무덤이라고?
사실 정확한 제국의 무덤은 파슈툰계 페르시아 반란군이 도망간 아프간의 땅이니 엄밀히 따져보면 무덤에 들어갈 자들은 아프사르 왕조가 아닌가.
러시아가 도발한다면, 고려도 이에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페르시아가 아랍 연방을 공격한다면….”
상민은 문명의 요람, 메소포타미아를 가리켰다.
“우리는 그들을 무찌르고 이라크를 정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