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의 은혜
* * *
태동산맥 깊은 곳.
이곳은 본래는 주변의 다른 풍경과 별반 다름없는 황량한 땅이었다.
하늘의 기둥이라는 태동산맥의 이름답게 하늘 끝까지 치솟아 있는 듯한 다른 거산들의 그림자 속에 파묻혀 있었던 고개.
먼 과거에는 아주 가끔씩 리체족 무리가 이곳을 넘어 동쪽으로 오고 갔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고려가 남려의 패권을 주장한 이후에는 중부회랑이라 불리며 창양과 서해안을 잇는 가도가 건설되었지만, 지리가 워낙 험하여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물류는 남부항로를 이용하거나 니카라오 운하의 건설 이후에는 운하를 이용하였으니 오직 고개를 넘는 자들은 말을 탄 여행객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한적한 곳마다 설치된 역원들이 그 흔적을 증명했다.
하지만 창양과 영서를 오가는 철도인 경영선이 깔린 이후에는 달라졌다.
하루에 몇 번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기차와 그것이 내뿜는 매캐한 석탄 연기는 이 지역에 역동성을 불어넣었으며 몇몇 역은 관광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이 부근에 민족의 명산이자 고려인들의 자랑거리인, 남북려를 통틀어 최고봉인 천감산(天瞰山, 아콩카과)를 포함한 여러 명산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천감산은 만년설이 덮인 암석 산이라 하여 설악산이라 붙여졌다.
허나 후대에 이민 온 조선인들은 앞장서서 이것이 반도의 작은 산과 이름이 같으니 제국의 위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장했고, 고려인들의 설득력을 샀는지 이곳은 원주민들이 쓰던 루나 시미의 뜻을 참조해 ‘하늘에서 굽어보는 감시자’라는 멋진 이름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름 하나 바꾼다고 거주 인구가 확 늘어나지는 않았다.
일단 수자원이 변변치 않으니 사람들이 주거하려면 먹고 마실 물을 구하는 것부터 문제일 것이다.
가끔 지질학자니 천문학자니, 혹은 산악가니 하는 사람들이 등산 장비를 갖추고 이런저런 산들을 탐방하는 정도가 끝.
그러나 대략 삼십여 년 전, 이곳에 대대적인 공사가 일어났다.
근방의 황무지에 엄청난 크기의 건물들이 세워지게 된 것.
공장도 아닌 것 같은데, 거대한 굴뚝을 가진 외연기관이 몇 개나 설치되었고 아주 큰 창고 같은 곳들이 차곡차곡 완공되었다.
건물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이것들이 거대한 곡물 창고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기술을 잘 아는 자들이라면, 저 외연기관이 냉장 시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고.
이 거대한 곡물 냉장고 옆에는 당연하게도 옥내화된 저탄장과 이곳에 근무할 사람들의 숙소가 세워졌다.
지금껏 고려는 지방 관청에 속한 곡창에 잉여농산물을 저장해 놓았다.
지역 농민들이 환미소에서 돈과 쌀을 교환하면 그대로 그 환미소 옆의 곡창이 그것의 보관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역적으로 볼 때 편리할지는 몰라도 보관성으로 볼 때는 영 좋지 못했다.
물론 양곡의 본질은 씨앗이니 그 존재 목적 자체가 오랜 시간을 견디게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온에서는 엄연히 곰팡이와 미생물에 의한 변질과 부패 과정을 막지 못했고, 벌레와 쥐, 새 등의 외부적인 적들도 퇴치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화산 폭발 이후 위기의 세기가 찾아오면서 고려는 마냥 그들의 곡물 생산 능력을 자신할 수는 없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곡물 생산 능력은 여전히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지만 곡물 비축 능력만큼은 자신할 수 없었다.
비록 당시의 식량부족사태는 금방 해결이 되었고, 이제는 그때의 증인들도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으니 기록은 역사책에서나 봐야 하겠지만, 고려 조정은 그때 큰 충격을 받았고 여러 시대가 지난 이후에도 인수인계를 통해 이 당시의 일을 계속 곱씹고 있었다.
언제 또 그런 위기가 찾아올지 모른다.
제국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몇 년 동안 버틸 만큼의 식량을 비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거대 곡창을 짓자는 계획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일시적 식량난이라는 것 자체를 제국 역사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한다는 생각.
일교차가 크지만, 그늘 안에 들어가면 항상 서늘한 기후를 자랑하고 사시사철 건조하여 곡물을 저장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태동산맥 부근에 거대한 곡창을 짓자.
그 곡창에는 온도조절시설을 달아, 온도를 저온으로 일정하게 유지시켜 극한의 시간 동안 곡물을 보관하자.
이 일념에 건설된 중부회랑 근처의 서산 곡창은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으니, 계산에 따르면 이곳을 가득 채운다면 남려 전역의 인구를 적어도 몇 개월은 먹일 수 있었다.
이런 곡창이 서산 곡창 한 군데만 지어지는 것은 아니라니 정말로 원대한 계획이 추진 중인 것이다.
도정되지 않은 쌀은 저온, 비동도 기준 약 12도 이하에서 쌀 자체의 수분 함량을 1할 5푼 이하로 건조하여 낮추고, 보관고의 상대습도 또한 7할 이하로 유지할 때 최선의 조건으로 길게 보관할 수 있다.
이런 최상의 환경에서 쌀은 기존보다 훨씬 더 길게 저장 가능하니 농무부에서는 적어도 10년, 길게는 30년까지 식용 가능하다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밥의 맛은 제아무리 좋은 조건에 보관을 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햅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게 변하겠지만, 굶주려 죽어가는 입장에서 과연 밥맛을 느끼겠는가.
어쨌든 완공된 이후부터 서산 곡창은 거대한 양의 쌀을 저장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매년 수확철마다 일정한 양의 가장 오래 묵은 쌀을 햅쌀로 바꾸는 일을 이어가면서.
그리고, 개천 395년의 마지막 달에 이 거대한 창고가 오랜만에 재고관리를 시작했다.
묵은쌀들을 전부 빼내라 명령이 들어온 것.
오지에 근무하는 여건을 고려하여 일은 그리 많지 않으나 나름대로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이곳의 적막함과 경치를 즐기고 있던 서산 곡창의 관리와 노동자들은 갑자기 할당된 끔찍한 양의 업무량에 비명을 질러대었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적재칸을 가진 열차가 여러 곡창들에서 묵은쌀을 싣고 열심히 길을 달려 영서로 향했다.
영서에는 이미 많은 태평양 수송선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거대한 수송용 기범선들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커지는 덩치 덕에 가장 큰 화물선의 총 톤수는 무려 2,000톤이라는 엄청난 적재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순 톤수만 해도 1,400여 톤에 해당하니 무식한 크기만큼이나 무식한 양의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었다.
끝도 없이 적재되어 들어가는 곡물들을 확인하던 영서항의 관리들은 이제는 다른 물건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자 제각기 어딘가에 기대 가쁜 숨을 골랐다.
“뭐가 이리 많아.”
영서항 자체가 과거에는 이런 대규모 물동량과는 좀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하지만 철도가 뚫리자 입지는 완전히 바뀌어 고려의 많은 화물 물동량은 굳이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빙 돌아가지 않았으며 열차를 통해 산맥을 넘는 것을 선호했다.
항구증축을 몇 번이나 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비좁아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며칠에 걸쳐 어찌어찌 곡물들을 전부 적재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상자에 포장된 주석 도금 깡통들이 말 그대로 금속의 해일같이 몰려오고 있었다.
통조림의 역사는 꽤 길다.
함선 안에서 필수적인 영양소를 공급해주었던 병조림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훨씬 전이지만 통조림 자체도 고려에서 화산폭발이 있기 전부터 군 등지에서 필수적인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 만들고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땐 생산단가와 맛 모두 썩 좋지 못했으니 먹는 사람도 고역이요, 깡통을 여는 사람들도 고역이요, 만드는 사람도 고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많이 만들다 보면 생산공정이 개선되어진다.
이제는 예전보다 더욱 견고해진 기계 덕에 훨씬 더 많은 양의 통조림을 훨씬 더 빠르고 견고하게 만들 수 있었으며 맛 또한 개선되었다.
인기가 떨어지는 잡육을 갈아 약간의 전분을 첨가하고 설탕, 소금, 미량의 초석을 넣으면 통조림 가공육이 되는 것이다.
이 통조림 회사 중 가장 크고 유명한 회사의 이름이 ‘수햄’이라, 많은 고려인들은 원래의 긴 이름 대신 대체로 이 사명을 따라 통조림 가공육을 수햄이라 불렀다.
뜻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왜인지 몰라도 어감이 딱 들어맞는 기분이 들었던 것일지도.
어쨌든 군납용으로 쓰일법한 큰 깡통들도 겨우겨우 적재하니, 어느새 서른 척의 거대한 수송선들이 자신들의 물자를 확인하고는 돛을 올리고 배의 굴뚝에서 연기를 피워올리며 속속들이 떠나고 있었다.
영서항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드디어 이 물류 전쟁이 끝나나 하며 숨을 돌리고 있는데, 이번 조선지원계획의 담당 관리 중 하나가 열차 배치표와 항구의 배들 숫자를 확인하더니 항구 관계자에게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조선행 서른두 척, 옥저행 네 척, 백제행 다섯 척…… 아 참, 사나흘 뒤에 열차가 몇 개 더 들어올 게요. 배도 한 척 더 올 것이고.”
그 말을 들은 관리자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툭 튀어 올랐다.
고생을 몰아서 하고 좀 쉬려고 했건만.
“…좀 한꺼번에 오면 안….”
“황실에서 배차를 요구하셨소.”
관리자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상 폐하 만세.”
이튿날 저녁에 도착한 괴상한 기구들마저 실으니 마침내 영서항의 사람들은 지옥 같은 업무를 끝내고 녹초가 되어 서산 곡창의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틀을 내리 숙소에서 잠만 자야 했다.
* * *
가정이 무너졌고 사회가 무너졌다.
도덕적 윤리 또한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으니 정녕 한계를 시험하는 재난의 앞에서 인간은 실로 무력한 것이다.
선화당 내, 전라감사는 철필촉을 쥐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참혹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기에, 감영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조정에 치계(馳啓)하여 올리는 것이 해당 지역의 관찰사로서는 절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최악을 달리고 있으니, 주상과 조정은 이를 알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했다.
[기근이 올해만큼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이 절박함에 못 이겨 서로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백성들도 화를 입으며 심지어 이미 죽은 이들의 묘를 파내어 부장품들을 약탈하는 이도 생길 지경입니다. 어미는 갓난아기를 버리고 도망가고, 자식은 부모를 버리고 도망가니 실로 황망할 따름입니다….]
전라감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봄이 지나면 최악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이번 여름은 지금까지보다도 가장 많은 기아자가 발생할 것이었다.
조선 십일도에서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장계를 둘둘 말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전령이 전라감사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산은 도적 떼들로 위험하니, 자네는 경나선의 공사 현장을 따라서 가는 것이 좋겠네. 그 길들은 지금 총병들이 지키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할 걸세.”
“예, 영감.”
하지만 전령이 떠나기 전, 갑자기 관아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허겁지겁 선화당으로 들어온 또 다른 전령 하나가 황급히 전라감사에게 보고를 올렸다.
“군산항이 가득 찼습니다. 군산군수가 일단 선조치를 하고 보고를 올리라 하였습니다.”
“뭐?”
전라감사는 뚱딴지같은 말에 반문했다.
“상국의 연락선이 왔습니다. 빨리 군산항을 비워달라고 하여 군산군수가 일단 치도곤을 받더라도 나중에 받겠다며 그리 행했습니다.”
군산항은 고려에 입조한 뒤, 상국이 이곳에 몇 가지 공장을 투자한 덕에 한적한 어촌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항구로 변모했다.
이름 또한 예전의 옥구현에서 군산으로 바뀌며 군수가 다스리게 되니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군산군수가 상국이라 하나 엄연히 주권침해행동이라 할 수 있는 행위를 선조치하여 정박하게 했을 것이다.
고려는 신벽란도와 동래는 몰라도 적어도 군산의 정박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전령은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횡설수설하는 감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수의 배에서 어마어마한 수량의 곡식이 끊이지 않고 나왔습니다. 군수는 먹고 배가 터질 정도로 많은 곡량이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라감사는 그저 어렴풋이 보이는 희망에 전령을 닦달할 뿐이었다.
“무슨 소리냐. 대체.”
전령이 숫제 울부짖었다.
“황상의 은혜입니다, 영감!”
무식할 정도로 많은 지원이 조선에 도달했다.
각 배는 군산항뿐만 아니라 동래항과 신벽란도 등지로 이미 분산한 상태였다.
기함하여 그 자리에서 말을 타고 달린 전라감사는 정말로 전령이 말했던 것처럼 군산항에 정박한 여섯 척의 배를 볼 수 있었다.
접안시설에는 일꾼들이 한가득 붙어 있었고, 그들이 쌀 포대를 옮기는 것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일꾼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희망으로 완연히 빛이 나고 있었다.
굶주림은 이제 끝이다.
제국이 과거의 북적들을 물리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기근과 굶주림까지 물리친 것이다.
그리고 서민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다른 어떠한 감정보다도 더욱 강하게 밀려올 것이 분명했다.
전라감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사방에서 벌떼같이 조선 백성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와 피골이 상접한 아비.
비틀비틀, 마치 시체처럼 걸어가다 항구의 풍경을 확인하고 생기가 돌아오는 듯 발놀림을 빠르게 한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이미 줄이 기다랗게 생겨났지만, 군산군수의 능력인지, 아니면 같이 온 고려군의 통제인지 불상사는 생겨나지 않았다.
“흐윽…!”
줄을 지어 선 아낙네들이 쌀을 받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것을 어찌 강탈해 보려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수송선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쌀은 충분해 보였기에 큰 난리는 일어나지 않았고 소수의 총병들에 의해 충분히 진압당했다.
“꼬마야, 이것도 가져가거라.”
지난날의 세월이 야속한 건지, 아니면 드디어 고난이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쁜 건지 그저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미 대신, 열두 살 먹은 꼬마 아이가 고려군 병사에 의해 몇 가지 물건을 더 받았다.
통조림과 그리고….
“이게 뭐지요?”
“쇼콜라라고 한다. 먹어 보거라, 맛이 있을 테니.”
아이는 약간은 의심스러운 얼굴을 한 채 딱딱하고 검은 물건을 깨작거리며 씹어나갔다.
그리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고려인들을 바라보았다.
“녀석, 넋이 나갔군.”
“자, 이제 네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가거라. 갈 때 조심하도록 하고.”
“거기 줄을 서시오!”
개성 주민들도 마찬가지.
이 쌍용지손의 발흥지이자 민족의 성지 중 하나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었다.
일단 사방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밀려들어서 약탈당한 곳도 있었고.
고려에 팔겠답시고 주변에 인삼 농장을 엄청나게 지어대어 곡물의 비축량이 타지방보다 현저하게 낮았던 것도 그 이유가 있었다.
비록 고려인들이 탐라로 떠날 때 개성 주민들을 위하여 많은 물품들을 두고 갔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세월 또한 보상받았다.
신벽란도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작은 철도 노선은 정말로 기차가 끊이지 않았다.
한양으로 가는 노선도 북적였지만, 이곳에는 한 가지 특별한 선물도 동봉되어 있었다.
“황상께서 특별히 개성 시민들을 위해 쇼콜라와 얼음보숭이를 주어 그 시름을 덜게 하라는 명을 내리셨소!”
“쇼콜라를 먹을 자는 저곳으로, 얼음보숭이를 먹을 자는 이곳으로 오시오!”
전설의 황금열차가 도착했다.
“얼음보숭이가 대체 뭐요.”
“빙고의 얼음인가?”
조선시대의 한양에는 서빙고와 동빙고가 있지만, 빙고의 얼음은 엄청난 사치품으로 일반적인 사람은 입도 대지 못했다.
간혹 환자를 구명하기 위해 얼음을 내놓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임금에 따라 달랐으니 평범한 사람은 겨울이 아닌 이상에야 얼음으로 무언가 해 먹을 생각을 잘 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이 얼음보숭이는 기존 사람들의 가치관을 한 차례 더 깨부수는 것과 같았다.
“…흐으음.”
“허어어….”
사방에서 탄식소리인지, 혹은 쾌감에 잠긴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맛은 세 가지가 있었다.
커피맛과 쇼콜라맛, 그리고 알 수 없는 맛 하나.
커피야 조선에서도 유명했고(주로 야근하는 관리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쇼콜라야 지금 얼음보숭이를 주는 곳 바로 옆에서 나누어 주고 있었으니 남은 것은 미지의 새하얀 색 얼음보숭이였다.
고려인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하지만, 조선인들은 상국에 가기 전까지 잘 접하기도 힘든 식물, 백란(바닐라).
중려대륙에 자생하는 이 꽃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난초과에 아름다운 꽃을 자랑했지만 열매 또한 향신료로 쓰였다.
콩은 아니지만 콩처럼 생긴 이 열매는 검게 익으면 특유의 감미로운 향을 내는데, 이것을 우유와 설탕 등과 함께 섞어 얼리면 환상적인 맛을 내는 얼음보숭이가 되는 것이다.
값은 재배지역이 늘어나고 재배 방법이 개선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비싸, 가끔은 동일 무게의 은과 비교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얼음보숭이에 들어가는 향신료의 양이 그리 많지 않더라도, 이는 명백히 황상의 은덕이 틀림없었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군산항과 같이 울음바다가 번졌다.
“따흐흑!”
허나 개성의 시민들은 이 반도에서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강한 사람들.
울음소리는 어느새 만세삼창이 되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황상 폐하 만세!”
“만만세!”
개성 시민들은 남쪽 저편에서 누군가 인자한 미소를 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