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24화 (324/653)

황상의 은혜(2)

* * *

경술년과 신해년의 대기근은 연도를 의미하는 육십갑자의 앞자리를 따 경신대기근이라 불릴 것이다.

마치 메마른 들판에 번지는 불길과 같이 격렬하게 타올라 수많은 민초들을 태워 버렸고 태워 버릴 뻔한.

그러나 그 끝은 불길의 세기보다도 훨씬 더 거대하고 장엄한, 실로 끝도 없을 정도의 구름이 남동쪽에서 다가와 어마어마한 폭우를 내림으로써 종결되었다.

그야말로 쌀의 비.

고려의 입장에서는 사실 몇 년간 저장해온 묵은쌀에 불과할진대, 조선의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삽시간에 사방이 안정되었다.

도적 떼는 자취를 감추었고, 신음 소리와 비명 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역병조차 그 위세를 잃었고 하늘을 빙빙 떠도는 까마귀들 또한 사라졌다.

사람들은 고려 병사들에게 안내받은 대로 처음에는 미음을 먹은 뒤, 그다음에는 죽을 먹고, 마지막에는 흰 쌀밥과 수햄고기, 그리고 조선에서도 유행한 지 한참 된 고려식 매운 김치를 먹어 기운을 차렸다.

개성의 신벽란도에서 분명히 미음과 죽으로 배를 채우고 먹으라 했건만 주린 배에 곧바로 얼음보숭이를 먹다 죽은 안타까운 사람이 세 명 생겨난 것, 그리고 1차 지원이 있은 지 불과 엿새 만에 도착한 고려의 2차 지원선박들에서 엄청난 양의 북려산 밀가루를 하역하다 분진폭발이 일어나 다섯 명이 다친 것 정도 빼고는 모두가 행복을 누렸다.

북려에도 남려의 서산 곡창처럼 모하비 사막에 지어진 모하비 곡창이 존재했고 이곳에서도 밀을 낱알의 형태로 보관하지만 조선에 밀 제분소가 딱히 많지는 않았기에 고려가 묵은 밀들을 제분하여 밀가루의 형태로 전달해 준 것이 사고를 일으킨 것이었다.

어쨌든 기운을 차린 백성들은 수령들의 지시에 따라 산과 들에 널린 시신들을 염한 뒤 부서진 가옥을 수리하고 제방과 저수지, 둑과 철궤, 풍차와 방아, 공장 등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평온이 찾아왔다.

부모를 잃은 자들, 자식을 잃은 자들은 그 슬픔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시작했으며, 아주 조금씩이라도 서서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삶이란 힘들며, 고난의 연속이다.

그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오로지 죽음, 혹은 더없는 은총이 베풀어지는 순간뿐.

그러니 지금 당장은 황상의 은혜에 감복하며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는가.

* * *

조선.

한성부.

경복궁.

조선의 왕과 대소신료들은 근정전 앞에서 남동쪽을 향해 다섯 번 절을 했다.

“황상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영의정부터 당하관까지 모두가 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신하들은 끔찍한 기근이 물러난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당파싸움에 대립하던 자들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고 같이 황상과 제국의 은덕을 칭송했다.

신료들도 배가 고팠었고, 심지어 고관대작들의 집에 있는 종들도 굶어 죽은 자들이 생기는 지경이었으니 고려가 경개선(서울―개성 철도 노선)을 통해 어마어마한 식량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오늘은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지 괴로움 속에서 보내야 했을 것이다.

내시들과 궁녀들도.

교태전에 있는 왕비와 후궁들도.

동궁전의 어린 국본도.

모두가 간만에 시름을 거두고 웃음꽃이 피었다.

[짐과 그대의 관계는 아비와 아들과 같다. 짐이 그대와 그대의 백성의 괴로움에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에 몇 가지 좋은 것들을 딸려 보내니 그대는 부디 좋은 것을 취하여 마음을 가다듬고는 사직을 정돈토록 하라.]

황제는 제후국의 왕을 위해 포도주와 소주, 온갖 향신료들, 왕비를 위해 향기로운 비누와 화장품들을, 세자를 위해 몇 가지 장난감들을 보냈다.

선물을 받은 세자는 기쁨을 숨기지도 못하는 듯 보였다.

중전 또한 비슷했다.

“어머나, 이거, 이거 피어나다사의 화장품이지요? 상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래요.”

아무리 상국이 곡식을 하사하였다 하나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이 굶어 죽었는데 선물 하나 받았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중전은 그 정도의 생각은 있었고 그렇기에 선물함을 은근히 밀어 옆으로 놔두었으나, 눈치 없는 숙빈은 계속 그것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피어나다]

꽃망울이 피어난다는 뜻을 가진 동사 자체를 회사명으로 삼은 회사는 현 세계 3대 화장품 제조기업이며 전 세계에 엄청난 명망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경쟁자인 ‘수려’나, ‘고운’사 또한 엄청난 사세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피어나다를 제일 으뜸으로 쳤다.

수은이니, 납이니, 벨라돈나(Atropa belladonna)니, 당대 유럽의 어설픈 화장품 기업들이 효능만을 중시해 그 재료의 무서움을 모르고 이런저런 끔찍한 원료로 만든 화장품을 팔아대는 것에 비해 고려의 화장품 회사들은 의무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꼼꼼한 허가를 받아야 했다.

‘피어나다’사는 그 와중에도 원료에 대한 엄격함이 유달리 대단해서 화장품의 구성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지 몇백 번이고 몇천 번이고 재검토를 할 정도로 장인정신이 가득하다지.

그러면서도 품질 또한 빼어나니 그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야말로 없어서 못 구하는 화장품.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동시대 화장품의 수요자들은 죄다 그 사회에서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화장품을 구하기 위해서는 웃돈을 주는 것도 꺼려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위세일 터.

화학공업이 발달하며 시대가 지날수록 제품군이 바뀌는 일이 빈번하니 올해―개천 396년―초에 나왔다는 따끈따끈한 화장품 신제품을 받아보는 경우는 고려 창양 내에 사는 상류층의 안주인들이나 혹은 정말 사치스럽기 그지없다는 부르봉가의 왕비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허나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이욱만큼은 이 거대한 은혜에 마냥 즐거워할 수 없었다.

황상께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의 예법이 끝나고 개성에서 온 고려의 사절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그 감정은 이제는 아예 두려움으로 바뀌었던 것 같았다.

“황상께서 하사하신 품목들은….”

사절은 낭랑한 목소리로 어전에서 상국의 물자 품목들을 읊었다.

[1차 조선구호품목

남려산 쌀(도정됨) 40,000여 톤

‘수햄’사의 통조림 9,000여 톤

쇼콜라 및 과자류 40여 톤

땅콩청 30여 톤

면실유 30여 톤]

[2차 조선구호품목

북려산 밀가루(제분됨) 30,000여 톤

소 500마리

돼지 300마리]

“가 되겠습니다.”

사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전에 도열하여 있던 신료들의 턱은 쩍 벌어져 있었다.

몇몇은 서로 그 수량을 잘못 들었나 하여 옆 사람을 쳐다보기에 바빴다.

대다수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그저 순수한 경악.

제국의 도량형과 조선의 도량형은 다르다.

이 양을 조선의 섬으로 계산해보면, 얼추 이십팔만 섬에 달한다.

“……이… 이십팔만… 섬….”

쌀 한 섬이 일 년간 한 사람이 먹는 쌀의 양이라 가정한다면, 정말로 이십팔만 명이 일 년 동안 먹을 분량인 것이다.

지금 당장은 수확기인 가을까지만 버티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니 이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러니 한 달간 먹을 분량으로만 나눈다면 자그마치 삼백삼십만 명이 넘는 자들이 버텨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밀가루 또한 무지막지한 양이 들어왔으니, 이는 거의 쌀에 비견했다.

가루의 형태로 수송되었으니 그 열량은 동일한 부피의 쌀보다도 높을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통조림이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지원이었고 받아놓고도 믿기지도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고기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자들은 고귀하거나 부유한 사람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서민이라면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

그러니 제아무리 잡육을 갈아 만들어 질이 떨어지는 통조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혀에 수식어가 따로 필요 없는 황홀경을 선사해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맛도 맛이지만 열량 또한 상당할 것이다.

어쩌면 쌀과 밀에 버금갈지도 몰랐다.

단백질, 그리고 지방이 풍부하니.

고려에서는 이미 생물학, 더 좁게는 영양학이라는 분야 또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은 과거 태조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집착한 단백질, 그리고 나머지 두 개(탄수화물, 지방)의 3대 주영양소 및 섬유질을 구분할 수 있었으며 필수 무기염류와 활생소(Vitamin)의 존재도 조금씩 발견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열량 높은 지방과 필수 단백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고려의 통조림 지원은 끔찍할 정도의 자비로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례가 아닐까.

더군다나 그 귀한 기름까지.

엄청난 양의 목화를 재배하는 고려에선 면실유의 가격이 꽤 저렴했다지만, 본래 기름은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이를 단지 번국의 신민들이 요기할 때 튀겨 먹으라 준 것인가.

그것이 가능한 일이던가.

게다가 조선의 풍습에는 영 익숙하지 않지만 빵에 발라먹으면 맛있다는 땅콩청(피넛 버터)까지.

‘이는 어떠한 선왕들께서도 이룩하지 못하셨던 업적이 아닌가.’

따뜻한 흰 쌀밥에 고깃국.

푹신한 빵에 튀김.

그것이 한낱 농민들에게도 이루어지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그 충격적인 광경이 과연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단 한 번.

단 한 번 다른 세상의 편린을 겪어 본 자들이, 대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알음알음 떠나가는 이민자의 수준이 아니라, 전 국토의 전 백성이 이 사실을 하루아침에 느끼게 된다면.

“…황상께… 정말로….”

이욱의 목소리는 이미 쩍쩍 갈라져 있었고, 떨리기도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어떠한 언어를 입 밖으로 내뱉어야 지금 받은 은혜를 수식할 수 있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욱은 그저 앵무새처럼 황상을 읊조릴 뿐이었다.

하지만 사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전하, 송구하오나 3차 구호품목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군가 다리의 힘이 풀리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임금과 상국 사절의 앞에서 할 행동이 아니라는 질책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위압당했다.

조선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자들이 모인 조정이니, 그들은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로 제국의 덩치를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상국에 유학을 갔다 온 자들도, 사절로서 창양에 갔다 온 사람들도 조금은 있었다.

허나 그들마저도, 자신들이 본 것은 오로지 빙산의 일각이요 화려한 궁궐의 방 중 몇 칸에 불과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야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압도적이고 압도적인 재물.

그뿐만이 아니다.

황상이 사륜을 하신 날짜가 작년 11월이라 하셨으니, 제아무리 고려의 기범선이 빠르다 하더라도 이곳까지의 수송 시간을 고려해보면 고려는 구호물품들을 불과 3개월 만에 준비해버린 것이다.

제국의 역량은 실로 하늘에 닿아 있다.

‘우리, 조선은 지금껏 그저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어찌 이러한 시련을 내리냐고.

신민들이 무슨 죄라고, 이토록 비참한 운명을 선사해 주느냐고.

허나 그 시간 동안 상국은 무엇을 했는가?

예전 그 끔찍한 화산이 터져 거대한 재앙과 암운을 제국에 드리울 적에도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상국의 조정과 신민들은 땅과 바다, 하늘과 구름들마저 정복하겠다며 주먹을 쥐고 을러대었고, 기어코 이 수모를 잊지 않겠다며 문명의 발전이라는 탑을 계속 건설해나가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저 양이(혹은 회회인)들이 먼 과거에 건설했다는 탑―바벨탑―은 그들의 오만과 야망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지.

그러나 제국이 쌓아 올리는 탑은 신의와 정의, 그리고 공동의 번영과 같은 가치에 기대어 있으니.

[삼위태백(三危太伯)을 굽어보니 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弘益人間, 홍익인간) 하노라]

일연과 이승휴의 책에서 그리 적힌 이 땅의 숭고한 조상의 뜻대로,

민심을 잃지 않는 이상 무너져도 끝끝내 다시 일어날 것이며,

언젠가는 정말로 저 창공을 뚫어 나갈 것이 분명했다.

옥좌에서 일어난 이욱이 무릎을 꿇었다.

이미 조정(朝廷, 근정전 앞마당)에서 이미 진작 꿇어 엎드려 다섯 번 절을 하였더라지만.

지금 그는 옥좌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온 어깨와 온 목과 온 머리와 온 다리에 천근이오, 만근이오 적힌 쇳덩어리가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그러했다.

황상께서 내린 하사품은 갚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은혜를 자신의 뼈에 새기고 새겨 아름다움과 자비로움을 칭송하는 것으로 족하다.

허나, 일신의 몸에는 더 이상 그 은혜를 새길 자리가 없는데 이를 어이할꼬, 어이할꼬.

* * *

끔찍했던 신해년도 마침내 지나갔고 임자년(개천력 397년)이 다가왔다.

엄청난 지원을 받은 덕에, 조선은 이미 기근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심지어 그해의 가을걷이가 끝나 얻은 곡물들은 전부 다 곡창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임자년 조선의 쌀값이 폭락했을 정도였으니.

아직까지도 시중에는 소비되지 않은 지원물자가 많았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비록 황상의 은혜는 갚을 필요가 없다 하나, 그 기억을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되었다.

이욱은 순자 유좌편의 사자성어, 만절필동(萬折必東)을 따와 만풍필동(萬風必東)이라는 어필을 경기의 가평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겼으니, 이를 조종암(朝宗巖)이라 부르게 되었다.

만풍필동의 뜻은, 조선에서 부는 수만 가지의 바람이라도 결국엔 동쪽으로 향하게 되니(편서풍) 조선의 지조와 절개가 오로지 동쪽에 있는 상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또한 우의정 송시열은 전국에 고려 황제 해찬을 기리는 사당을 만들자 건의했고 이 안건이 받아들여지자 만풍필동의 앞 글자와 뒷글자를 따 만동묘를 조선 십일도에 건설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바위에 은혜를 새기는 것, 사당을 짓는 것, 비석을 세우는 것.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욱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계몽군주 이욱은 정치의 동력을 거의 상실했다.

재난은 군주의 부덕함에서 기원한다.

허나, 그 부덕함의 결과물은 거대한 은혜로 사라졌으니, 그는 모든 행동과 모든 거동이 완벽하게 제약되어 버렸다.

고려는 북적(몽골)의 손아귀에서 조선을 한 번 구해준 적이 있다.

이를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불렀다.

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라는 뜻이렷다.

이번의 은혜는 부육지은(俯育之恩)이라 불리게 되었다.

맹자는 앙사부육(仰事俯育,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를 보살핌)이 인간의 도리라 하였으니.

고려가 조선을 부육한 만큼 조선은 고려를 앙사해야 하는 것이다.

“상국에서는….”

“상국의 경우에는….”

조정에서 이욱이 하는 모든 말은 매번 논파당할 여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욱은 반대로 신료들의 말을 이전과 같이 잘 반박하지도 못했다.

신료들이 조정에 나와 매번 싸우는 것은 상국의 의도를 어찌 해석해야 하느냐의 문제였고, 이제는 임금의 어명이라도 그 의도에 맞지 않는다면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뿐이랴.

좋지 못한 사건도 있었다.

원 간섭기 시절, 옛 왕씨 고려의 부원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야의 한 귀퉁이에서 입주책동(立州策動)의 시도가 이어졌다.

차라리 고려의 연방주가 되자는 의도였다.

왕씨 고려를 계속 착취하기만 했던 원과는 다르게, 조선은 이미 헤어나올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입장이니 민간에서조차 이런 여론은 거의 적대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에 감명받아 황상께 개인적인 상소를 올리는 자칭 결사도 생겨났으니 분위기는 심히 뒤숭숭했다.

“고려의 주가 되면 우리도 고깃국을 매일 먹을 수 있는 거요?”

“참말로!”

고려의 의도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여론을 듣는다면 고려 조정은 뒷목을 잡을 터.

하지만 어찌 되었든 조선 왕 이욱의 치세 중후반부는 이 입주책동의 여론을 어떻게 해서든 수습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욱은 도리어 자신의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열겠소. 과인 또한 백성의 여론을 모아 모든 이들과 함께 나아가는 정치를 펼치겠소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국왕과 사대부, 한성부의 시민과 상인들이 참가할 수 있는 이 회의는 조선에 온갖 풍파를 가지고 올 것이 분명했다.

마치 프랑스의 삼부회와 같은 초기 의회.

하지만 이 초기 의회의 힘은 점차 강해질 것이다.

상국의 선례가 존재하고 그 문화가 동경의 대상이니, 조선의 개혁―명예혁명―이 요구하는 피의 양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며 법치와 대타협의 길은 항상 열려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위기의 시대가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는 것이겠다.

제국은 굳건하며, 삼국은 그 그늘 아래에서 나아간다.

어제보다 내일이 더욱더 좋은 나날이 펼쳐질 것이니.

고려와 예맥한계 학자들이 이때 이후를 ‘살기 좋은 시대’의 시작이라 부른 것도 과언은 아닐 터.

허나 유럽에는 이 살기 좋은 시대(Belle Époque)가 도래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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