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00화 (200/653)

종원론

루크레치아 보르자에게 로마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나 물으면 그녀는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한 편의 즉흥연극(코메디아 델 아르테)와도 같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코메디아 델 아르테는 가면을 쓰고 벌이는 즉흥연극.

루크레치아는 스스로를 그 즉흥연극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달하는 꼬마 여자애라 생각했다.

그녀 스스로의 유년기를 떠올려보면, 썩 행복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성직자가 자녀를 낳는 일은 흔하다고 하나, 손가락질받지 않는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었다.

더군다나 종교개혁으로 도덕적 타락주의에 민감한 시대.

사람들은 그녀와 그녀의 남매들을 헐뜯으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었다.

가정사 또한 순탄하진 않았다.

아버지 로드리고 보르자(알렉산데르 6세의 속명)는 추기경에 오른 이후, 그동안 계속된 만남을 가진 어머니 반노차 카타네이를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

비록 아버지는 그래도 반노차와의 사이에서 낳은 네 명의 자식들을 모두 이뻐했으나, 여전히 그들은 사생아였기에 언제든지 버려질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루크레치아가 본격적으로 얼굴에 두꺼운 가면을 뒤집어쓰고 스스로의 속내를 감추며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미소를 짓고 다닌 것이.

그 후로 새롭게 줄리아 파르네세라는 미녀가 아버지의 정부가 되었다.

어머니 반노차는 줄리아를 증오했으나, 루크레치아는 줄리아와도 좋은 관계를 맺어나갔다.

줄리아 또한 열세 살에 불과한 루크레치아가 별달리 위협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난 딸과 친하게 지냈다.

줄리아는 천성적으로 재미가 있는 여자였으며 남자를 다룰 줄 아는 요부였다.

그녀는 성에 대한 여러 상식과 남자를 다루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지.

친어머니 반노차는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길 원해 루크레치아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아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아버지, 혹은 그 이전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명석한 두뇌는 그녀와 남매들 모두에게 은총, 혹은 저주를 내렸다.

조금씩 성장하면서 줄리아가 알려준 이상으로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을 다루는 법을 깨우쳤다.

그녀가 가진 본신의 아름다움은 실로 대단하여 남자들은 그녀를 혼이 나간 듯 응시했다.

엉덩이 밑까지 내려오는 길고 화려한 금발과 보석같이 반짝이는 연갈색의 큰 눈동자, 매력적일 만큼 큰 입과 가지런한 순백의 치아까지.

풍만한 가슴과 가녀린 허리,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피부.

축복받은 미모를 갖춘 루크레치아가 가녀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청하면 자신의 심장에 단도를 꽃을 수 있는 사내들은 수없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남자를 쥐락펴락할 수 있었으니까.

천성적인 아름다움 말고도 스스로의 노력도 대단했다.

마치 구름을 걷는 듯한 발걸음과 나긋나긋한 행동들은 그녀의 지극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후천적인 우아함의 결정체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노력을 응시하지는 않은 채, 그녀의 두꺼운 가면만을 보고 마음이 홀렸다.

당대 피렌체 출신의 이탈리아 문학가 중 한명은 한탄하듯 말했다지.

― 그토록 대단한(비꼬는 어투가 분명했다) 아버지 밑에서 어찌 저렇게 천사와 같은 완벽한 외모의 딸이 태어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런 그녀도 결국 자신의 운명을 눈치챘다.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외국이나 다른 귀족에게 팔려갈 선물.

자신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운명은 아니라는 것을.

루크레치아는 오빠 체사레에게 정략결혼을 취소하고 영원히 가족의 곁에 머물고 싶다 애원했다.

“난 아버지와 오빠 옆에서 살래. 평생 날 인도해줘요.”

체사레는 아름다운 여동생의 눈물에 넘어갈 뻔했지만, 새언니 카테리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한사코 루크레치아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고 싶어했다.

기왕이면 다시 만나기도 힘든 아주 먼 곳으로.

결국 카테리나는 남편 체사레의 충신 니콜로를 설득해 기어코 그녀를 정략결혼의 도구로 외국의 황족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하는 안건을 제시했다.

저 남쪽의 제국, 고려로.

루크레치아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열여섯. 이제 꽃다운 나이가 되었으니 그녀는 스스로의 신분에 걸맞는 정략결혼으로 제 몫을 해주어야 했다.

알렉산데르 6세 또한 아쉬운 감정을 감추고 딸을 보내며 부탁했다.

“너는 저 제국의 황제를 네 남자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네 오라비와 우리의 보르자 가문이 앞으로 다스려 나가는 이탈리아 왕국을 위해 최대한 좋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다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빠와 아버지의 손에서 떠났다.

해방감보다는 불안감이 더욱 들었다.

루크레치아는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수여받은 마지막 역할극을 하기 위해 고려로 떠났다.

* * *

루크레치아가 사절단과 함께 생전 처음 보는 나라에 도착해 그 문화에 감탄하며 적응하기도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지는 못했다.

사절단은 이탈리아의 설립을 축하하는 의례적인 답신뿐만 아니라 루크레치아를 잘 다루어 주겠다는 확답까지 받은 뒤에 떠났지만, 그녀의 처지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그녀는 본래 황제와 맺어져야 할 운명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황태자라도.

마침 그녀의 나이가 열여섯이니 쉰이 넘은 늙은 황제와 결혼을 하는 것보다, 아직 이십 대 초반인 젊은 황태자와 결혼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 해건은 태자 해선의 배필이 이미 있다고 설명하며 대신 제국의 두 번째 인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에 오른 재상과 이어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는 듣기로는 무척이나 젊고, 더없이 강인하며 몹시 지혜롭다 한다.

“좋아요.”

황족이 아닌 봉신과의 결혼은 다소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들은 정중한 말이 제의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해건의 명에 따랐다.

루크레치아는 황제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나름대로 부푼 꿈을 꾸며 제국의 재상에게 갔다.

그러나 그 이후, 이 ‘남편이 될 사람’은 그녀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했다.

고려의 시중이라는 지위는 그녀의 생각보다 더 높았다.

잘된 일이었다.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받은 명령을 잘 수행할 수 있었으니까.

보르자 가문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시중을 처음 만난 자리.

그는 연극에서나 쓰일 철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황제의 말대로 육신은 훤칠하게 컸고 강인해 보였다.

적어도 그녀의 마음에는 쏙 들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가 심각한 문제였다.

루크레치아를 바라보는 상민의 시선 속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상민 또한 그녀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긴 했다.

미인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상민이 인연을 맺었던 과거의 아내들은 제각기 특출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왕예나 잔, 그리고 연화까지.

우아함과 고결함, 그리고 건강함까지, 그 미덕들은 하나의 아름다움이라는 분류 안에 묶어놓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러나 눈앞의 루크레치아는, 단연코 상민이 지금까지 본 인물들 중 가장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를 수식하는 단어는 떠올리기 쉬웠다.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경국지색(傾國之色).

오직 여인의 미모라는 단 한 가지 의제를 두고 주님이 직접 창조했다거나 혹은 드높은 올림푸스에서 아프로디테가 손수 인간계로 내려왔다던가.

아직 남자조차 모를 열여섯의 소녀를 바다 건너에서부터 데려왔던 선원들은, 마치 반인반어의 괴물 세이렌이 배에 탄 것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다.

그녀가 내린 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상사병에 시달렸다 하지.

그러나 두 남녀의 시선이 맞닿는 지금 이 사이에 어떠한 감정의 교류는 없어 보였다.

불안함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그녀의 시선은, 이내 상민의 눈길을 견딜 수 없었는지 바닥으로 떨어졌다.

속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남성이라면 응당 보여야 할 증상들이 없었다.

고려인들이라고 해서, 특출나게 미인관이 다른 것은 아니라는 걸 이미 이곳에 올 때 배 안에서, 그리고 도착하고 나서도 거리에서 충분히 많이 확인했다.

그러나 그토록 예리하고 단단했던 그녀의 무기는 시중의 앞에서는 녹슬고 무딘 칼날이 되어 아무것도 헤집을 수 없었다.

[이젠 하다 하다 정략결혼까지 나에게 떠넘기는구나.]

그의 첫 말은 고려말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다.

“…….”

이해하지 못할 첫 만남 이후, 상민은 마치 집에 걸어놓을 만한 미인 그림을 얻은 것마냥 루크레치아에게 정녕당에 방 하나를 내준 이후 그녀를 공기처럼 대했다.

상민은 정략결혼을 파기해 외교적 관계에 물의를 일으킬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은 자신과 성격이 맞는 여인을 배필로 삼을 자유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필을 구하지 않을 자유도.

매번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벌써 몇 번의 비극을 겪었는가.

자신은 이미 수차례의 경험 끝에, 오랜 고승마냥 그러한 욕망에 초연해진 지 오래.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오직 제국에 대한 걱정이 전부였다.

해건의 생각이야 짐작이 가긴 했다.

어떤 남자가 이런 미녀를 마다하겠어?

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상민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살아오며 사람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 자부하는 사람.

만 나이 열여섯 살이면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런데 루크레치아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린 가식에 상민은 절로 두드러기가 돋는 것을 느꼈다.

‘무슨 어린애가 저렇게….’

자신의 반려감은 전혀 아니었다.

* * *

상민은 사실 이 원치 않는 동거인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훨씬 중요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개천 208(CE 1483)년, 한 책이 출간되었다.

연서궁에 소속된 생물학자 박래광(朴來曠)은 그동안 고종도(孤種島, 갈라파고스 제도)라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섬에서 한창 생물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독특한 이 섬의 생물들을 소개하는 단순한 책을 편찬했었다.

그러나 박래광은 차츰 고종도를 탐구하면서 얻은 생물학적 지식들을 본토의 생물들과 비교하여 그만의 이론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생물은 환경에 따라 진화한다.”

혹은

“환경에 적합한 종들만이 [자연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아 진화를 이룬다.”

박래광이 집필한 이 책의 이름은 종의 기원(종원론, 種原論, Origin of Species).

읽다가 졸도해버린 사람도 나올 정도로 학계에 거대한 충격을 선사한 이 책은 초판본이 매진되는 것도 모자라, 수차례나 증쇄를 했음에도 여전히 웃돈을 주고 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학계는 떠들썩하게 논쟁을 벌였다.

다행스럽게도 현 고려는 그 논의를 방해할 종교의 세력이 변변찮았다.

그토록 고려에 순종적이던 성공회와 정교회가 처음으로 불만, 혹은 우려와 비슷한 감정을 표출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종원론에 대한 논의는 꼬리에 꼬리를 거듭하여 진행되었고, 문인들은 침을 튀겨가며 몇 날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길거리에서나 연서궁에서, 심지어 황궁에서까지도 토론을 하고 다녔다.

사람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바뀌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래광의 종원론은 자그마치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검증을 거쳐야 했으며 그보다 더 많은 어설픈 반증들을 깨부숴야만 했다.

하지만 진리는 결국 승리하는 법.

수많은 방해요소들을 하나하나 무찔러가던 종원론은 마침내 ‘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했고, 정설로 굳어지기에 이르렀다.

고려의 학풍은 경직되지 않았다.

학자들은 마침내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였고, 그 이후부터는 진화론과 자연 선택에 입각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상민은 개인적으로 여기까진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실로 위대한 과학의 성취.

진화론의 발견은 그가 꿈꿔왔던 세계와 사회로의 발돋움 중 하나라 명명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과학적 업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개천 223년(CE 1498) 11월.

학계에 다른 서적이 출판되었다.

박래광의 사촌, 연서궁 문인 박도상(朴濤想)이 새로운 책을 저술했다.

사촌의 저서에 큰 영향을 받아 기술된 이 책은 종원론과는 달리 논리가 빈약하고 증거가 애매모호했다.

심지어 종원론의 저자 박래광은 박도상의 책을 읽더니 그 자리에서 내던질 정도로 분노했으며 큰 비판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대중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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