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을 위협하는 두 번째 적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말했던 것처럼, 고려의 의학은 수많은 학문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발달된 학문 중 하나였다.
재능있는 외과의사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큰 수술을 성공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야심 있는 일부 의원들은 바다를 건너, 외국 군주들의 궁정에 들어가기도 했다.
의학의 발전은 물론 상민이라는 큰 후원자가 가지고 있던 상식이라는 올바른 진로를 통해 학문의 발전을 장려함으로써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본다면 의학의 발전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아마 해부학의 도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상민은 건국 초부터 비밀리에 해부학을 장려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계몽주의의 학풍이 자리 잡아감에 따라 이제는 해부학이 고려의 양지로 올라오게 되니, 그 이후부터는 의학의 발전 속도가 더욱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구성 박씨, 박래광의 사촌 박도상은 생물학자라기보다는 해부학자였다.
많은 관리와 학자들을 배출한 부유하고 명망 높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다.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학문의 길을 택한 그는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길 원했으나, 이내 해부학자라는 약간 떨어진 방향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생명을 살린다는 고귀한 사명을 띤 다른 해부학자나 의원과는 조금 동기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처음, 도상은 국가에서 허용된 양만큼의 해부를 기다리다가 그런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극악무도한 범죄자 시신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도 없이 모자라는 것을 느끼고는 좋지 않은 곳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시신 한 구를 해부하는 일에 거의 서른 명이 넘는 수련의들이 달라붙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그의 취미생활을 제대로 즐길… 아니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말로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몹쓸 짓을 한 흉악범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죄수들은 복역 도중 사망할 시 나름대로 장례를 치러 주는 문화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시신 기증이라는 것도 화장문화가 보편화되고 망자의 안식을 중요시하는 고려의 특성상 솔직히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박도상이 사리 분별을 못 해 주변의 이웃들, 평범한 고려인들을 납치하여 살해한 뒤 해부를 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엄연히 그 또한 상당한 교육을 받은 식자.
일정 기간 동안 신원부를 갱신해야 하는 마을 구성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 추밀원이나 어사대, 지방이라면 연방보안관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잡으러 다닐 거라는 생각을 못 하진 않았으니까.
도상은 정해진 법규를 따르지 않기 위해 외지에 나갔다.
처음에는 북려로 갔다.
원주민들의 시체 또한 먹음직스러운 실험체들.
그러나 고려에 동화되어 그들만의 자치정부를 세운 문명화된 여섯 부족 또한 건드리기 까다로운 존재들이라, 그는 진주 북쪽까지 올라갔다.
그곳에는 진주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몇몇 부족들이 있었다.
누무누같이 무자비하고 격렬하게 고려에 저항하는 원주민 전사들보단 약하지만, 그래도 적대적인 자들이 많아 빈번하게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가 잘 벌어진다는 것은, 시신의 공급이 풍족하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고.
그는 그곳에서 전사한 원주민들의 시신과 실종되었다고 처리된 진주 군인의 시신을 해부하며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박도상은 우연한 기회를 얻었다.
진주로 상행을 온 남해 출신의 상인 하나가 술김에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에 대한 말이었는데, 악취미를 가진 높으신 분 몇몇이 특별한 노예들을 찾고 있다는 그런 해괴망측하고 뜬구름 같은 소리였다.
박도상은 그 상인을 만난 뒤, 기나긴 시간 동안 큰 노력을 들여 의심의 눈초리를 지운 후, 그에게 부탁하여 그만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건장한 노예들을 구해달라 부탁했다.
노예매매는 불법이다.
걸리면, 곧바로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불법이라고 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았다.
돈이라면 충분히 있었기에 웃돈을 준 도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해 출신 고려인 상인이 포르투갈 노예상에게서 샀을 것으로 짐작되는 상아해안 출신의 흑인 노예 몇 명을 얻을 수 있었다.
선인께서 말씀하시길, 위대한 발견에는 희생이 따른다고 했다.
으슥한 지하실, 수술대 위에서 울려 퍼진 비명을 양분 삼아 그의 학문이 꽃을 피웠다.
그는 마침내 다시 연서궁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자료를 정리하여 책을 편찬했다.
박도상이 출판한 책의 제목은 ‘인종 간 뇌의 크기에 관하여’.
피어난 꽃에는 치명적인 독이 숨겨져 있었다.
박래광의 진화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진 이후 고려의 생물학자들은 몇 가지를 추가로 더 제시했었다.
모든 종이 자연선택으로 인해 진화를 하게 된다면, 인간 또한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원생인류를 침팬지나 원숭이, 고릴라와 같은 유인원과 연결 짓는 사람은 아직 적었으나, 인류가 지금까지 진화를 거듭해 오고 있다는 소리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제 동의하기 시작했다.
박도상의 서책은 그것을 넘어섰다.
단순한 진화론적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이제는 가치판단의 영역까지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해부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몇 가지의 사례를 제시했다.
[확인해 본 결과, 남려에 사는 사람의 뇌가 가장 컸으며, 다음은 유럽계가 섞인 북려인의 뇌였고, 그다음은 아직 동화되지 않은 북려 원주민들의 뇌였으며 가장 작은 것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뇌였다.]
[뇌는 지적 생물체인 영장류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 당연히 뇌의 크기와 생물체의 지적능력은 비례한다.]
[따라서, 고려인들이 가장 우월하며, 그다음은 유럽인들이고, 그다음은 북려 원주민들이며, 마지막으로 가장 열등한 것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다.]
‘우월한’ 생명에 관한 학문인 우생학이 마치 암세포처럼 고려에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 * *
상민은 근본이 없었다.
출신 성분을 알지 못했으니, 가족에 대한 사랑은 결핍되었고, 가족과 가문에 대한 사랑이 없었으니 그 상위 개념인 민족에 대한 사랑 또한 결핍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받은 사랑이 결핍되었다 하여, 사랑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도 충분히 가능했다.
상민도 입시를 위해 역사 공부를 해나가자 한국인 특유의 애국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국사책을 보다 보면 이리저리 화병이 돋는 것은 자연스럽단 말이지.
괜히 그가 대전략게임을 할 때 대부분 자국을 골랐겠는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굳이 현역으로 갈 필요도 없었던 군대에 입대한 것에 애국심 또한 일정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평범하게 육군에 갔던 상민도 대부분의 남자들과 같이 군대에서 온갖 군상들을 만났었다.
그중에는 군내에서 충분히 가혹행위라 할 수 있을 만한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선임도 있었다.
사회에서 다시 만났다면 아마 턱에 주먹을 냅다 꽂아버렸겠지만, 그러한 말종도 가끔은 반면교사로서 그에게 몇 가지 교훈을 선사해 주기도 했다.
[자기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
상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공자도 똑같은 말을 했었더랬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그 가치관은 세월의 풍파에도 나름대로 잘 버텨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인류에겐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한국인으로서, 그는 유럽여행 중 몇 번 인종차별을 받았었다.
여행이 끝난 이후, 조국에 돌아와서도 인종차별은 그의 생활 안에 녹아 있었다.
회사의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나 인터넷을 돌아다닐 때나.
뉴스를 볼 때나, 축구경기를 볼 때나.
해외에 그렇게 많이 나가지도 않은 자신이 이럴진데, 다른 한국인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경험을 겪었겠지.
비록 지금은 조선인도, 한국인도 아닌 고려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였고 실로 오랜 세월이 지나있었던 까닭에 별 상관없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더라도.
상민은 여전히 그들과 똑같은 말종이 되긴 싫었다.
위선적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상민은 그의 손으로 정복당한 자들을 차별하진 않았다.
정복전쟁에 피가 흐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피가 흐른 피정복자들의 세대가 지난 이후, 그는 그 지역에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허가했으며, 그 지방 출신의 인재들의 출세를 막지 않았다.
그 조그마한 땅덩어리에 갇혀 있던 조선조차도 서로 그 출신성분을 문제 삼아 함경도를 비롯한 서북민들을 공공연하게 차별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그보다 자그마치 80배(남려 총면적으로만 비교하면)가 훨씬 넘는 지방의 수십, 수백 가지 부족들을 통합시킨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가치관을 수호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태조 시절, 해민은 국초부터 순혈주의를 타도하려 노력했다.
어떠한 설득이나 논쟁 없이, 순수히 막강한 태조의 권한으로 반발을 찍어누른 그는,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원주민들과 통혼을 강제했다.
사실 이곳에 온 삼별초는 극도의 남초 군사집단.
결혼적령기에 들어간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알맞은 배후자들이라고는 원주민들밖에 없었으니까, 이러한 순혈주의가 차츰 사라져 감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활발하게 개척사업을 벌여 광대한 땅으로 뻗어 나간 고려인들은 이제 단일민족이란 허상을 벗어던지고 많은 민족과 결혼했다.
건국기에는 주변의 과트라체족, 치족, 강족, 야족, 투피족, 칼리나족, 테우엘체족과.
팽창기에는 앙주의 프랑스인들. 화주의 카스티야―아라곤인들, 진주의 그리스인들, 체로키족과 촉토족, 치카소족와 마야미족, 시마놀족과 크리크족들과.
그런데 이제 와서?
국초의 그 모든 노력이 헛되게도, 이제 와서?
태조 해민은 실망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길 원한다.’
하늘에게 선택받은 대단하고 위대한 제국을 이루는 구성원, 고려인들은 그에 걸맞는 자긍심을 가지길 원하고 있었다.
선민사상(選民思想).
스스로가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계기는 어떤 한순간으로 정의되었다고 보긴 힘들었다.
민족적 황홀경, 속된 말로 국뽕을 주는 순간은 실로 여러 번 있었다.
개천 147년에 시작된 신원길의 세계일주.
개천 165년에 벌어진 해상십자군에 대한 대승.
개천 174년에 벌어진 아즈텍 정벌전.
그리고 동시대 다른 민족들에게서 나타나는 어리석음들은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증명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과 마녀사냥과 같은 끔찍한 일들을 겪고 있을 때 고려는 먼바다 너머에서 위대한 통치자 아래에서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이 기틀 속에서 선민사상이 자라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박도상이 쓴 책은 이러한 선민사상을 극도로 부채질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먼 조상의 피를 확인했다.
이리저리 원주민들의 피가 섞였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고려인들이 어떻게든 삼별초의 피를 이은 것은 맞긴 했다.
고려의 신민들은 불과 4만 명이었던 그 삼별초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이용하여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선택받은 자들의 자손이다!”
그 웃기지도 않는 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고려인들은 다음과 같이 나뉘어진다.
순수한 고려인(지금은 고려 내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을 이상향으로 둔다면.
남려 원주민과 통혼하여 고려 인구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일 순위.
나름대로 상당한 문명을 가꿨던 유럽인들과 통혼하여 북려의 기틀을 이룬 사람들이 이 순위.
고려에 동화되어가는 북려 원주민들과 통혼하여 낳은 사람들이 삼 순위였다.
남려 원주민들과 북려 원주민들이 다를 것 하나 없었다는 사실은, 오로지 기나긴 세월 동안 두 부류의 원주민들을 직접 본 상민이나 체험했었지,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그들의 조상인 남려 원주민들의 역사를 상당히 미화하고 있었다.
만약 피부로 이들을 다시금 분류한다면.
아름답고 우아하며 지적인 황인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자가 일 순위.
그래도 봐줄 만한 흰 피부의 유럽인의 특성이 나타나는 자가 이 순위.
까무잡잡한 깡촌의 원주민들의 특성이 도드라지는 자가 삼 순위.
그리고 자신들의 땅에 제대로 된 문명도 건설하지도 못했던 흑인들이 사 순위가 될 것이었다.
이런 순간이 올 것임을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긴 했지만.
상민은 우생학을 듣고 처음에는 역겨움을 참지 못했다.
그는 격노했다.
선택받은 민족?
‘정말로, 정말로 실망이다.’
이게 독일제3제국에게 당하고도 팔레스타인에게 그 악업을 되풀이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위구르와 여러 소수민족, 그리고 한국에게 만행을 저지르는 중국인들과 뭐가 다른가?
일제와 뭐가 다른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는 오직 그만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다른 사람들은 아마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민은 정말로 묻고 싶었다.
너희들이 누리는 이 모든 문명의 혜택과, 이성과 지성과 합리성이 너희들 스스로가 잘나서 그런 것이더냐?
아니.
너희들은 다른 이들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자들이다.
오히려 삼별초는 고려인들 중에서도 가장 불쾌하며 악덕으로 가득 차 있던 자들.
인간말종, 동포를 학살한 백정.
고려인들을 지켜야할 검이었으나, 고려인들을 베는 검으로 전락한 쓰레기들.
‘너희들은 잘나지 않았다. 너희들의 선조 또한 잘난 자들이 아니었기에.’
상민 자신이 그 속에 있어서 충분히 알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삼별초들 중, ‘고귀하다’, '능력이 있다'라고 칭해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그들은 이 머나먼 남려의 땅에 떨어진 후에도 그저 그런 운명, 혹은 본류인 고려보다도 더욱 퇴보한 채로 살아갔을 운명이었다.
선택받은 자는 따로 있었다.
이 모든 문명의 흐름은 단 한 사람이 바꾸었다.
다른 자도 아닌,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곳에 처음 떨어진 것도 그에게서 기원했다.
풀과 나무만 무성하게 있던 평야에 벽돌을 구워 성을 쌓고, 밭을 경작하게 하며 소금을 확보하고, 결혼을 통해 문명을 건설해 나간 것은 바로 그였다.
이미 썩어 문드러진 선인들의 퀘퀘한 말을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과학적 사고방식을 도입하여 관찰과 가설, 시험과 입증의 순서를 통해 진리를 발견해낼 수 있는 토양을 가꾼 것도 바로 그였다.
인류 최초로 거대한 제국을 영원히 지배하는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이성과 합리라는 가치를 위해 스스로 양위하고 물러나 과학을 꽃피운 것도 바로 그였다.
선택받은 자는 고려인이 아닌 바로 자신.
그가 초즌 원이었으며, 고려 문명의 알파였고, 제국 그 자체였으며, 황실의 근본이며, 연방의 수호자였다.
그가 프로메테우스였다.
‘미개한’ 고려인들에게 나아갈 불을 건네준.
[작가의 말]
벌써 200화가 되었습니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정말 막막해 보이던 지점이었는데 결국 어떻게 오긴 왔네요.
아마 독자님들이 응원해주시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지극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노력하여 제 첫 작품을 무사히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환절기 몸 건강하세요.
마늘맛스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