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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02화 (102/653)

조선인들

이도는 고려에 오자마자 마치 고국에 온 듯 빠르게 적응했었다.

그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도의 처, 조선의 경숙옹주이자 고려의 정경부인(貞敬夫人) 심씨 또한 조선에는 일말의 미련이 없었다.

이방원은 그의 외척인 여흥 민씨와 태자 이제의 외척인 광산 김씨를 박살 내었다.

그 끔찍함이 실로 무서웠는지 심씨는 남편 이도가 왕위와 멀어진 이후에도 자신의 친정이 자신 때문에 해를 입지 않을까 저어했다.

실제로 그녀의 아버지 심온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한 번 유배된 적이 있었다.

왕이 바뀌며 풀려나긴 했지만.

그러나 새로 즉위한 왕 이제의 냉혈함도 이방원과 비슷하거나 더하다고 보았기에, 그녀는 자식들에게까지 화가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도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은 뒤 가산을 정리해 유배에서 돌아왔으나 가산이 박살 난 외가의 인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오직 조그마한 패물들만 가지고 그 먼 바닷길을 건넜다.

실로 대단할 정도의 결단력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의 시중은 그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라, 예전만큼의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오히려 삶의 질 자체는 예전 삶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이도와 그녀는 조선에서 육남 이녀를 낳았다.

의젓한 첫째 아들, 이향(李珦)은 고려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관례를 올렸다.

세 살 어린 동생 이유(李瑈)도 청소년기를 고려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들은 둘 다 아버지와 같은 문신의 길을 걷지 않았다.

이향과 이유는 모두 숭무감에 들어갔다.

나머지 아이들도 잘 자라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이었다.

이도는 두 딸이 있었는데 맏이이자 큰딸은 어린 나이에 천연두를 앓다가 죽었다.

그는 몹시 슬퍼했는데, 고려에 와서도 그 생각에 눈물지을 때가 있었다.

‘아,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면!’

고려는 이미 대역병을 극복했다.

백오십 년도 전에.

사서에 적혀 있는 인두법과 지금 실시되고 있는 우두법은 지식과 과학 그리고 의학이 역신마저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도의 계몽사상에 한 몫을 거든 생각일 수도 있었다.

두 번째 딸이자 셋째, 정의(貞懿)는 향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셋째는 아름다웠고, 지적이며 총명했다.

그런 그녀가 단숨에 현 황제 해윤의 태자 해광(解炚)을 사로잡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태자가 그녀의 딸에게 거듭 호감을 나타내자, 심씨는 상당히 심란해했다.

만약 혼례가 이루어진다면 자신들이 외척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도는 역대 황제들이 딱히 외척만을 경계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랬던 적은 꽤 예전의 일이다.

‘이 나라의 태종께서는 외척이 아니라 그냥 모든 권신들을 전부 다 박살 내셨던 분이고.’

게다가 그들은 이 땅에 가문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처지. 황제가 경계할 어떠한 요인도 없었다.

상당히 많은 피가 섞여왔고 따지고 보면 그 전부터 야인들의 피가 어느 정도 흘렀겠지만 이민족 황후를 맞아 종통에 야인의 피가 본격적으로 흐르게 된 것은 현 태자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민족의 왕이나 지도자도 아닌 일개 여신관에 불과했으니.

아직 황후의 자질에 있어 아름답고 총명함은 혈통만큼 중요하진 않았다.

내색은 안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아주 일부 계층에 잔존해 있는 그 탐탁지 않은 시선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다음 며느리는 고귀한 혈통이 흐르길 원했던 해윤은 무려 조선의 왕통이 흐르는 이도의 딸을 태자비로 삼았다.

관직 자체는 국자사업에 불과했으나, 품계상으로는 무품위에 달하는 이도는 충녕공에 이어 다음 황제의 국구(國舅, 장인)가 되어버렸다.

여담으로 상민은 크게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이도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 *

조선인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제각기 바쁜 탓에 서로 오래도록 못 본 감회를 푸는 것만으로 시간이 꽤 흘렀다.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 당당하게 앉아 있는 장영실이었다.

“장(蔣) 장인도 신수가 훤해졌구려.”

“감사하옵니다, 대감.”

고려에선 진작 고려인에 대한 신분제가 철폐되었다.

물론 문, 무관직에 있는 자는 마땅한 존중을 받았으며 양반이라는 명칭이 아직도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신분은 세습되지 않았다.

양반의 자식은 과거를 합격해 등용되지 않는 이상 양반의 호칭을 물려받을 수 없었다.

반면 어디 변방의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의 자식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조정에서 중대한 벼슬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그 능력이라는 것이 대체로 좋은 집안에서 기원한다는 것은 어찌할 방도가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 차이 또한 국문의 일상화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금속활자가 책을 순조롭게 찍어내며 줄어들고 있었다.

기술이 진보해 아직 값비싼 종이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은 더 개선되겠지.

노예가 아닌 천민들이라는 개념 또한 서서히 사라졌다.

공노비와 사노비를 불문하고 노비의 개념은 진작 사라졌고, 그 자리를 고용인들이 메웠다.

그들은 고용주에게 정당한 삯을 받고 일을 했으며 일신상의 이유가 생길 때엔 그만둘 수 있었다.

물론 고려에도 모순은 존재했다.

노예제도는 아직도 존재했다.

대부분은 전투를 치른 동화되지 않은 야인들이었다.

지금 타완틴수유 출신들처럼.

특별하고 중대한 범죄에 대한 연좌제는 아직 진행되고 있었으며, 반역과 같은 대역죄인의 가족은 노비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조선에서처럼 남의 집의 사노로 들어가 온갖 수모를 당하진 않았다.

그저 관에서 지정한 더럽거나 궂은일에 부려 먹힐 뿐이지.

그리고 그들 또한 수 세대가 지나면 면천되었다.

옛 고려에서는 일천즉천의 원리 아래 노비의 수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창양 고려는 건국 초부터 일량즉량이라는 노골적인 노비 혁파를 의도했다.

당연히 시간이 흐르자 고려 내방의 인물들은 거의 다 양인화가 되었다.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 아닌가?’

어찌 되었든 영실은 이곳에 온 뒤, 천지가 개벽하는 현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조선 동래부 출신의 관노가 아닌 엄연히 시중 직속의 공방의 장인이었다.

그가 받는 품삯이 상당했기에 영실은 스스로 설계한 고급스러운 마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사회, 경제적 지위가 상승했다.

아무도 그를 천하게 취급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사람들조차.

영실은 시중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이 명백했다.

질투하며 시기할 법도 했지만 다른 세 명의 사람들은 원래부터도 그를 딱히 거리끼지 않았다.

“같은 조선 출신으로서 그대가 잘되길 바랄 뿐이네.”

이도는 물론이고 정인지와 김종서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은 딱히 좀스러운 양반이 아니었다.

게다가 외지에 나와보면 동향 사람들에게 애틋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영실의 평소 품행 또한 방정맞음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니 잘되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학역재 영감께서도 당하의 총애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직접 명하신 대업을 맡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약간의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감추기 위해, 또 아직은 천출이라는 자격지심이 살짝 남아있기에 영실은 부담스러운 조선 출신 관리들의 화제를 돌리려 시도했다.

고려에서 쓰이는 칭호도 아니었고 따지자면 영감이라 불릴 위치도 아니었지만 존중의 의미를 담아 건넨 영실의 말에 정인지가 조금 격하게 반응했다.

“총애는 개뿔… 후….”

그는 거뭇거뭇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그 모습 하나하나에 피곤함이 배여 있었다.

“그대가 정확히 하는 일이 뭐라 그랬었지?”

김종서의 물음에 정인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과사전인지 뭔지를 만들기 위해 고려의 모든 지식을 통합하고 정리하라 하셨습니다.”

“전 지식?”

“예, 세상 만물의 이치가 수록되길 원하십니다.”

김종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광오한 말이 아닌가?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당사자는 전혀 웃음 지을 사항이 아니었다.

국문 철자의 순서대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정리하라는 말은 너무나 해괴했지만 시중의 얼굴에는 확고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인지는 명을 받으며 상민이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나 생각을 해 보았을 정도였다.

‘고려에 귀화하는 것을 너무 늦게 결정해서 그러신 건가?’

하지만 그는 이미 일가를 꾸렸을 정도로 빠르게 적응한 편이었다.

이도에 비해서는 느렸지만 여기 있는 김종서에 비해서는 확실히 빨랐다.

문득 그는 궁금해져 입을 열었다.

“절재 영감께서는 결단을 내리셨습니까?”

최근까지도 고려의 관직에 나가는 것을 저어하던 김종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냥 단지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중년인에 불과했다.

“시중께서 이 사람에게 과분한 일을 맡기시긴 했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그는 만종 교단의 승려들이 칼리나해에 교단의 봉지를 세우는 것을 감독하는 경차관으로 특별 임명받았다.

정인지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라는 그 성정답게 승려들은 다른 꿍꿍이를 보이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자리가 실로 우리가 다 함께 모여 즐길 마지막 자리일 수도 있겠구려.”

이도가 약간 씁쓸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영실이 다소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세상은 실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저 먼 바다도 이제는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으니 반드시 다음에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맞소이다.”

그들은 서로의 잔을 높이 들어 이 순간을 즐겼다.

“조선을 위하여!”

알싸한 술을 한 모금 넘긴 이후, 이도가 다시금 술을 따랐다.

양손으로 받아든 선비들은 약간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모아 말했다.

“또한 고려를 위하여!”

전조의 충신 정몽주를 때려잡은 사람의 아들로서 이도는 약간의 헛웃음을 지었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들 중 누가 자신이 저 말을 입에 담으리라고 생각했겠는가.

* * *

영실은 불콰하게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들어갔다.

경호를 서던 병사 두 명이 신분을 확인하고 익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니.’

영실은 술기운에도 자못 감격스러워했다.

방금도 옛 조선의 선비들과 술을 나누고 온 터였다.

예전부터 친밀했으나, 신분의 벽은 높고 험했었지.

그러나 그 벽은 천천히 금이 갔고 결국엔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반대로 시중에 대한 충성심은 더욱 견고해졌다.

술자리가 있어 먼저 자라 말을 한 탓에 가족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조그마한 소리에도 잘 깨기 마련이니, 그는 아내와 자식들이 깨지 않도록 몰래 집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

무려 다섯 가지 열쇠를 순서대로 알맞은 곳에 꽂아야 하는 절차.

술에 취했어도 능숙하게 문을 조작한 그가 바닥을 조심하며 천천히 등잔불에 심지를 붙였다.

이곳은 별세계다.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방금 불을 붙인 등잔불조차 독특한 구조의 통에 담겨 있었다.

외부의 충격이 가해지면 옆에 있는 유리가 깨지며 물이 쏟아지도록.

안의 물품들은 더했다.

수많은 기기들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괴상하고 이상하게 생겼다.

효율적인 것도 있고 전혀 그래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상민이 육성한 고려의 기술관료(Technocrat), 공인(工人)은 수많은 단계로 나뉘었다.

과거를 봐 조정에 등용된 기술 관료들은 정해진 관품을 받았다.

민간의 장인들은 공식적인 품계를 가지진 않았으나 그들 나름대로의 위계질서가 있었다.

가장 말단의 공인은 수련공이라 불렀다.

이들은 사실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는 수련생임과 동시에 자체적으로 일을 받지 못했다.

그 위에는 공인은 견습공이 있었으며, 숙련공의 보조였다.

숙련공부터는 진정한 공인으로 대우받았으며 그 위엔 전문공이 있었으며 장인과 명인의 경지도 존재했다.

기술관료들은 상인 세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새로운 혁신을 통해 부를 창출하려는 세력이었다.

장영실 또한 마찬가지.

정치적,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인 시중의 아래에서 그는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장인의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시중께선 내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 은인이다.’

다만 그는 온전히 부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시중이 베푼 은혜를 갚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그가 자극하는 상상력의 파도 또한 매혹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시중의 아래에서 지극히 비밀스러운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 기술선도국(技術先導局)

기기서와 총통위조차 믿지 못하게 된 상민의 개인적인 공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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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Encyclopædia Britannica)이전에 고려 대백과사전(Encyclopædia Koreanica)이 먼저 나오게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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