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영빈관엔 그들만 있지 않았다.
전국 각지 거상의 대표들이 그에게 알현을 청했다.
그들은 다소 조급하게 물어보았다.
“정녕 카스티야와 전쟁을 벌이시려는 것입니까?”
상민은 무표정하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본관이 그대들에게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질문이 다소 무례했다고 느꼈는지 그들은 시중의 은은한 노기에 황망해했다.
금권정치를 펼치려 그래도, 시중은 금권 또한 정점에 있는 자.
어찌 후벼팔 구석이 나오지 않는 위인이다.
그래도 끝까지 평화의 당위성을 설파하려는 모양.
“하오나, 당하….”
그들이 이곳까지 와서 탄원하고자 하는 바는 얼핏 이해가 되었다.
고려에는 두 부류가 있다.
농민과 상민.
물론 후자가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영농화된 농민 계층은 크게 안정되었으나 덕분에 조정에 큰 정치력을 투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굶을 때 무서워지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대신 계속 건전한 토지정책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황실과 조정에 더없는 충성심을 보일 부류의 사람들이기도 했다.
다른 단체인 상인계급은 떠오르는 강력한 힘이며 고려의 황금기를 이끌고있는 주요 세력 중 하나였다.
그 힘은 삼십 년마다 거의 두 배로 뛰는 듯했다.
중상주의적 논리답게 외부의 자본을 고려로 축적시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들은 아직 인구가 적은 고려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이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유럽과의 교역이 끊겨버릴까 걱정하고 있었다.
“내방 시장은 한계가 있고, 아국의 경제적 구조 또한 이제 무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니….”
문제점은 상인들이란 부류 자체가 손익에 민감해 매사에 징징거림이 심하다는 것이지.
“그만! 어찌 그대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미리 근심하며 주변에 혼란을 조장하는 것인가?”
그의 고함에 그들이 바닥에 털썩 엎드렸다.
그러면서도 절대 송구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요.
상민은 한숨을 내쉬며 상인 대표들에게 말했다.
“저들이 선을 넘지 않는 한, 우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러나 상민은 얼핏 짐작하고 있었다.
카스티야는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영악한 놈들이며, 고려와 마찬가지로 이 교역줄이 끊겨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였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얼굴을 조아리며 물러났다.
‘카스티야는 그럴 확률이 농후하다.’
하지만 오를레앙은 다르겠지.
광신도의 대명사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잔 다르크는 대체 어떻게 행동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성과 논리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상당한 능력자라는 것이 더욱 무섭다.
묘사된 바로는 정말 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했을 정도였으니.
껄끄러운 것은 껄끄러운 것이고, 궁금한 것은 궁금했다.
‘만나보고 싶기는 하군.’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자와, 긴 세월 동안 신비를 직접 겪고 있는 남자.
그녀라면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수도.
* * *
중요한 화두가 있었다.
자신이 촉발한 기술 개발은 자신만 누리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약간의 시간적 이점을 두고 고려가 ‘먼저’ 누릴 뿐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짧은 시간에 누리는 그 이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당신이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300년 후에나 쓰일 법한 지식의 보따리를 당장 떠벌리고 다닐 것인가, 아니면 몇십 년을 주기로 조금씩 풀어놓을 것인가?
당연한 소리겠지만, 후자가 현 고려에겐 훨씬 더 안정성 있는 선택임이 분명했다.
‘아쉬워, 너무나도 아쉽다.’
만약 고려가 인구적으로 상당한 강대국이었다면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외부에 충분한 인력을 투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전근대의 지리적 제약은 무척이나 컸다.
가장 최근의 호구조사 결과는 꽤 고무적이었다.
개천 160년(1435)의 고려 내방의 인구는 431만 7528명이었다.
거의 연간 1퍼센트에 달하는 유래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인구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했다.
이도가 말하길, 인구 자체는 그 작은 조선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었으니.
또한 자신은 공돌이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하는 생각이 하루에 칠억 사천만 번 정도 들긴 했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갈 방법도 없는 노릇인데.
대학 때의 전공도 경제학이었으며, 사회에 나가서는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했다.
훈요 128조는 현대인으로서 중세인과의 괴리감을 좁히기 위해 쓴 책이었다.
게다가 상당수의 내용은 통치자가 해야 할 문리적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
이제는 학문만큼이나 기술이 중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그러나 그 면모에 있어 그는 일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역사와 군사 분야를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자세하게 공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가’라는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나’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라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일단 ‘다’라는 학문이 발전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다’라는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라’라는 제도를 구비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꽤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농업혁명과 의복혁명, 작업현장의 노동구조와 기구들을 개편했다.
평저선 일색이던 고려의 조선기술을 초창기 범선을 만들 수 있게 끌어올렸고, 총과 화약까지 개발했다.
수차와 갤리선을 만들었고 테르시오를 도입했으며, 총기병대를 육성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신이 앞으로의 기술 흐름도 마음껏 주도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세상엔 아는 것보다도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직접 산업혁명을 일으켜 철도를 깔고 열차를 만들며 기선을 만든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라도 있었으면 몰라.’
그가 위정자와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국가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잠재력이 있는 기술을 후원하여 문화를 꽃피울 수 있게 만드는 ‘라’ 정도.
즉,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하고 발굴하는 것이었다.
‘대략적인 기술의 발전상은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에게는 그 요소요소를 직접 행해 줄 동시대의 진정한 천재들이 필요했다.
귀화한 조선인들 같은.
* * *
문과적 천재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야흐로 중대한 학문들이 태동하고 있었다.
동 서양 철학을 집대성할 수 있을 정도의 학식과 배경을 지닌 자.
이도라는 굉장히 유니크한 사람에 의해서.
이도는 불교계 전체를 적으로 돌렸으나, 그는 행정관료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대저 증학과 합학 또한 불교와는 유학 이상으로 상극이라, 그들을 전면으로 공격하는 것은 몹시 통쾌한 일이었다.
“충녕공께선 조선의 현인이셨지만, 실로 고려의 귀인입니다!”
외지인, 그것도 개경 고려 멸망 이후 들어선 신 왕조의 고위 왕족이라는 신분은 고려인들과 이도 사이에 꽤 큰 벽을 세웠었으나 책 두 권은 그 벽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렸다.
상민은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둘러싸인 이도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정계의 아이돌이 따로 없구만.’
이도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선, 고려의 신료들 안에 녹아드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러나 정녕 그를 위한다면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 있으라 말해야 했다.
자정작용이 끝나고 불교 종단들의 혼란이 조금 수그러들 때까지.
이도는 국자박사에서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빠르게 관품을 올렸으나 상민은 그를 근신하도록 명했다.
앞으로 그를 더 중히 쓰기 위해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 * *
쉬는 기간, 고려의 화젯거리가 된 이도는 위대한 학자들과 토론을 하고 다녔다.
합학의 거두 민정산와 증학의 거두 안현록과 나눈 대담은 정리되어 하나의 작은 책이 되기도 했다.
고려의 학문뿐만이 아니었다.
헬라스와 이슬람, 그리고 중세 스콜라 철학까지.
연서궁에서 세상의 모든 철학을 보는 것은 상당히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서서히 만들어나갔다.
‘주희의 학문은 한계가 있었지만 그가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다.’
왜인지 시중은 주희의 학문을 혐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이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분이란 말이지.
그러나 그의 유교 혐오와는 다르게, 이도는 주희의 학문을 깊게 공부한 사람으로서 주희가 오로지 틀린 말만 주장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려의 합학과 증학은 동양의 이기론과 많은 논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툴지만 개념이 이제 손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 이는 원리이며 이치이다. 경험할 수 없지만 존재하니 합이니라.
― 기는 형질이며 현상이다. 경험할 수 있으며 증명할 수 있으니 증이니라.
― 이는 직접 감각을 뛰어넘어 경험할 수 없지만 그곳에 존재하니 오로지 알고 깨닫는 수밖에 없다.
이는 이데아다.
― 기는 취산굴신(聚散屈伸)하며 생멸한다. 오행과 태극, 음양의 이치는 구체로 무겁고 가벼우며 맑고 탁하며 순수하고 순수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기는 현상이다.
― 증학과 합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경험(증)은 오성(합)을 마주할 때, 지식을 완성한다.
지식의 근원은 독단적으로 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도는 생각을 정리하며 또 하나의 책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연서궁엔 유럽에서 건너온 기독교와 그리스의 정교, 이슬람과 유대교들의 경전들도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도는 이 서책들까지 탐독하게 되었다.
‘이자들의 모순 또한 참으로 많다.’
유럽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논리들.
이도의 책은 조금씩 그 내용이 방대해졌다.
처음에는 불폐논변을 본떠, 기폐논변(基弊論辯)이라 붙일 생각이었지만, 조금씩 그 논리가 방대해지고 견고해져만 갔다.
‘비단 불교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스를 통해 들어온 유럽과 중동, 그리고 서아시아의 종교들.
가톨릭, 정교회, 콥트, 사도 교회, 네스토리우스의 기독교 분파들.
수니와 시아, 하와리지 등의 이슬람 분파들
조로아스터, 마니교,
힌두교와 자이나.
도교와 불교.
타완틴수유와 아즈텍, 마야의 신앙들.
그 밖 수많은 토착 신앙들.
감히 논한다, 그들이 백성의 먹고사는 바와 안온함에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가?
독실함과 광신은 오직 종이 한 장 차이니 종교는 그들의 다름을 낳아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 되지 않았는가?
이는 기폐논변으로 적을 수 있는 분량의 서책은 아니었다.
순수종교비판(純粹宗敎批判).
최초의 무신론, 혹은 반신론적 사고방식.
불교는 물론 아브라함 종교계와 세계의 여러 종교에 대한 강력하며 광범위한 사상적 공격의 효시였다.
순수종교비판을 저술하던 이도는 정치사상의 윤곽까지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다.
이 종교라는 것이 미몽과 사특함으로 사람의 눈을 가리고 있다면 위정자의 본분은 무엇이냐?
주희는 거경궁리(居敬窮理)를 논했다.
본연지성을 오롯이 드러내기 위해선 기질의 영향을 받지 말도록 수양이 필요하다고.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논했다.
현상을 초월하는 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는 위정자가 가장 훌륭하고 선하다고.
그들의 차이점은 명백했다.
플라톤은 형이상학적 법치국가를 원했으며, 주희는 도덕적으로 통치되는 나라를 원했다.
하지만 이도는 달리 생각했다.
“백성들이 종교와 미신, 그리고 옛 관습과 같은 헛된 꿈(夢)에서 깨어나도록 계도(啓)하는 것이야말로 위정자의 제일 본분이지 아니한가?”
특유의 애민주의 사상과 결부된 이도의 철학은 훗날 그의 말을 따 계몽주의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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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계몽의 한자는 蒙 아닌 夢으로 바뀐 점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